[Opinion] 선악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 - 문신을 한 신부님 [영화]

글 입력 2021.04.09 0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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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영화의 내용이 무척 궁금해졌다. 문신을 한 신부님이라니.

 

좀처럼 같이 쓰이지 않는 말들의 조합이었기 때문이다. 신부님이 문신해도 되는지, 한다면 이유는 무엇인지 온갖 호기심이 들어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시작된 영화는 결말까지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를 만큼 완벽한 몰입감을 선사했다.

 


신부 포스터.jpg


 

영화의 주인공 ‘다니엘’은 소년원 출소를 앞둔 청년이다. 그에게는 사제의 길을 걷고 싶다는 꿈이 있다. 평소에는 무표정해 보여도, 교도소 내에서 미사를 드릴 때 나오는 미소와 열정은 그의 열렬한 신앙심을 보여준다.

 

하지만 전과가 있기 때문에 신학교는커녕 출소 후에는 지정된 목공소에서 평생 일을 해야 한다.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소년원에서 친하게 지내던 신부의 사제복을 훔쳐 목공소 근처의 성당으로 향한다.

 

누가 봐도 목공소로 가야 할 차림이지만, 훔친 사제복과 지금껏 쌓아온 미사 경험을 통해 그는 훌륭하게 마을의 신부로 자리매김한다.



게시판.PNG

 

 

마을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한편, 다니엘은 마을을 둘러싼 비극적인 사건에도 가까워진다. 바로 마을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다. 이 사고로 7명이 사망했지만, 마을 입구에 있는 게시판에는 청년 6명의 사진이 붙어있다.

 

그 사람도 추모해야 하지 않느냐며 왜 사진을 붙이지 않는지 묻는 다니엘한테, 주임 신부님의 뜻이라며 대답하는 마을 주민. 알고 보니 가해자가 술에 취해 사고를 일으켜 애꿎은 청년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그런데 대답하는 사람들의 분위기가 이상하다. 마을에 머무르면서 점점 사건에 근접하는 다니엘. 감춰진 진실에 가까워지며 그는 주민들의 예상치 못한 모습과 마주한다. 동시에, 그의 정체가 탄로 날 위기에 처한다.

 

 


1. 마을 주민의 위선



다니엘은 마을주민 ‘엘리자’를 통해 여러 사실을 알게 된다. 사실 사고로 사망한 청년 6명이 사고 당시 약에 취해 있었다는 것, 가해자는 사고 당시 술에 취해있지 않았다는 것, 가해자가 마을 묘지에 묻히지 못하고 외지에서 장례를 치렀다는 것, 그리고 가해자의 아내가 아무와도 교류하지 않고 집에서 나오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집 찾아감.PNG

 

 

평소 아내를 안쓰럽게 생각하던 엘리자와 함께 다니엘은 아내의 집에 방문한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충격적인 이면을 발견한다.

 

“취한 남편한테 운전을 시키니? 넌 알았을 거 아니야!”, “너희 둘 다 쓰레기인 거 온 동네가 다 알고 있어.” 피해자의 가족들은 가해자의 아내라는 이유로 인격적인 모독과 욕설이 가득 담긴 편지를 그녀에게 보냈다. 그 편지 중에는 미사 도우미로서 신실하게 지내던 엘리자의 엄마도 있다.

 


편지2.PNG

 

 

또한, 외지에 묻힌 줄 알았던 남편의 유골함은 아직 제대로 된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집에 보관되어 있었다. 사고의 원인이 꼭 운전자의 과실만이 아닐 수도 있는데 말이다. 주임 신부가 일이 잠잠해지면 꼭 묻어 주겠다고 약속은 했지만, 아내는 기약 없는 약속에 피가 마른다.

 


집 유골.PNG

 

 

아내가 밖으로 나갈 수 없던 이유는 그녀의 정신적 충격보다도, 마을 사람들의 과도한 원망과 따돌림 때문이었다. 남편은 이미 죽었기 때문에 감정을 풀 방법이 없으니, 애꿎은 분노의 화살이 아내로 향했다. 게시판에 남편의 사진이 없었던 것도, 마을 묘지에 묻히지 못했던 이유가 모두 피해자 가족이 원인이었다.

 

사람들은 용서와 사랑을 실천하라는 종교를 믿으면서도, 소중한 이를 잃은 슬픔으로 가해자를 용서하지 못한다. 고해성사를 통해 자신의 죄를 용서받길 바라면서도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지 못하는 위선적인 모습이다.


주임 신부와 마을 시장은 자세한 정황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가해자의 아내에게 행해지는 모욕적인 처사를 묵인한다. 피해자 가족들한테는 사고 당시 청년들이 약에 취해있었다는 사실도 알리지 않았다. 쌍방과실일 가능성이 높은 사고였지만, 갈등을 조용히 해결하기 위해서 한 사람을 가해자로 만들고는 사건을 종결해 버렸다.

 

진실을 밝히고 마음을 보듬어야 할 이들보다도, 가짜 신부인 다니엘이 더욱 신부 같은 모습을 보이는 상황이 참 모순적이다. 결국, 다니엘은 가해자의 장례를 마을에서 치러야겠다고 결심한다.

 

 


2. 선악의 기준


 

합의.jpg

 

 

이윽고 다니엘의 요청을 받은 시장의 중재 하에, 가해자의 아내와 피해자 대표가 만나 장례에 대한 합의를 진행한다. 피해자 가족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드디어 마을에서 장례식이 열리게 된다.

 

그런데 의외의 모습이 보인다. 쓸쓸하던 장례 행렬에 하나둘씩 주민들이 합류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피해자 가족 중 한 명이 그 행렬에 합류해 그의 명복을 빈다. 다니엘이 행한 용서와 사랑이 마을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인 덕분이다.

 

끝내 정체가 탄로 난 다니엘은 마을을 떠났지만, 마을에는 다니엘이 행한 노력의 결실이 남았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마을 사람들은 가해자의 아내를 다시금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인다.

 


교도소.jpg

 

 

이렇게 물심양면으로 가해자의 장례를 마을에서 치를 수 있도록 도운 다니엘을 어떤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는 죄를 지어 소년원에 갔었던 사람이다. 친구들과 놀다가 허세로 사람을 때렸는데, 피해자가 이송된 병원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살인죄로 복역하며 그 안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방관하고 사제복도 훔쳐 달아났다. 예정되어 있던 목공소에도 가지 않았으며 자신이 신부라고 사기까지 쳤다.

 


하하호호.jpg

 

 

그러면서도 한 노인의 죽음에 밤을 새우며 괴로워하고, 가해자의 아내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피해자들의 죽음과 가족들의 비통함을 진심으로 위로했고, 시장이 권력을 이용해 강압적인 요구를 할 때에도 저항하며 약자의 편에 섰다. 미사를 집전하며 그가 보인 말과 행동은 누구보다 신실했다. 그의 진심 어린 용서와 사랑은 마을 사람들의 증오마저 녹였다.

 


문신.jpg

 

 

끝내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나고 모든 사람 앞에서 사제복을 벗어 몸에 새긴 문신을 드러낼 때에도, 그는 당당하게 걸어 성당 밖을 나간다. 모든 이들의 죄를 십자가처럼 짊어진 예수님처럼 말이다. 실천하기 어려운 종교의 본질적 가치를 그들에게 몸소 보여, 곪아가고 있던 마을 사람들의 갈등과 상처를 보듬고 치유한 사람은 ‘가짜 신부’ 다니엘이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떤가. 열심히 기도를 드리며 신앙을 의지하는 마을 사람들은 언뜻 보기에는 신앙심도 깊고 선해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열심히 기도를 드리면서도 종교의 교리를 실천하지 못한다. 자신도 죄를 저지르면서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해 욕설을 퍼붓고 공동체에서 배제하는 그들의 행동은 당연히 선하지 않다. 세속에 물들어 종교의 가르침을 외면하는 주임신부의 모습 역시 마찬가지다.


목공소에서 일하던 다니엘의 교도소 동기는 그의 정체를 빌미로 삼아 돈을 내놓으라며 그를 협박했다. 그리고 제 뜻대로 되지 않자 다니엘의 정체를 고발한다. 이렇게 피도 눈물도 없는 악인처럼 보이지만, 다니엘의 화술을 인정하고 가족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무엇보다 다시 소년원으로 돌아간 다니엘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를 돕기도 한다.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인물들은 선한 동시에 악한 사람이었다.

 


장례 행렬.jpg

 

 

이들을 보면 전적으로 선하고 전적으로 악한 사람은 없다. 인간은 누구나 내면에 선과 악이 공존한다. 나 역시 그렇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그 사실을 잊는다.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다니엘이 출소자의 차림일 때는 비난과 불신을 보내던 사람들이 사제복을 입으니 돌변하는 태도만 보아도 여실히 드러난다. 선악의 기준이 외적인 것에 얼마나 간단히 휘둘리는지, 그리고 그 기준 자체가 얼마나 애매한지를 날카롭게 꼬집는 작품이다.

 

 

[최예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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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이정필
    • 큰 울림으로 이 영화를 보고
      토론회를 하기로 하고
      여러 평을 읽어본 중
      이 리뷰만큼 영화가 던져주는 메세지를 심도있게 풀어놓은것은 없다~~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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