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디오북에 스며들 수 있을까? [도서/문학]

비디오를 왜 놓아야 하는 건지!
글 입력 2021.03.30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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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를 듣는가? 아니오. 팟캐스트를 듣는가? 아니오. 오디오북을 듣는가? 아니오. 바야흐로 나는 시각적 자극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완전한 Z세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내가 여전히 제일 좋아하는 가수인 태연이 진행하는 에서 라이브를 기다렸던 시절이 있다. 그 때 생각이 나면, 유튜브를 틀어 당시의 ‘보이는 라디오’를 켠다. 덜 허전하고, 유튜브라는 도구가 익숙하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덕질을 어떻게 했는지. MP3의 라디오 기능으로 주파수를 잡고, 긴장하면서 기다리다가 노래가 시작하기 직전에 녹음 버튼을 눌렀고, 라디오가 끝나면 쿨에디트라는 프로그램을 켜서 듣기 좋게 음향을 조절하곤 했다.


부지런히 움직이던 나는 어디 가고, 방송사 뿐만 아니라 다른 팬들이 내어주는 직캠 없이는 못 사는 내가 되었다. 아직도 고스란히 녹음 파일을 가지고 있지만, ‘태연 친친 라이브’라고 검색만 하면 노래와 함께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의 앳된 모습까지 한 번에 볼 수 있다.


다시 녹음파일만 들으라고 해도 듣겠지만,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나. 우리가 어째서 습득한 새로운 감각을 포기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없다. 저렴한 이어폰으로도 음악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닥터드레를 써 본 사람이 9900원짜리 이어폰을 쓸 수는 없는 법이다. 감각은 깨어버렸고, 입맛은 풍부함에 익숙해져 고공행진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서 오디오북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 왜? 나는 먹방을 보다가 잠든다. 먹방 옆에는 하나같이 ‘ASMR’ 또는 ‘팅글(tingle)’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왜 나는 청각적 자극을 비디오 콘텐츠로 접하고 있단 말인가. 나 뿐만이 아니라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하기 때문에 한국의 먹방 콘텐츠는 세계적으로 고유명사를 만들며 자리잡았다.


그런데 오디오북 플랫폼 <윌라>는 현재까지 400억원이 훌쩍 넘는 투자금을 유치할 수 있었던 걸까? <스포티파이>는 현재 220만개의 팟캐스트를 지원하며, <밀리의 서재>는 누적 가입자수가 250만명에 달했다. 또 <오디언소리>는 오디오북 낭독자를 공개 캐스팅까지 하며 기세를 장악하고 있다.


비대면 재택생활이 늘어나는 상황 때문에, 영상 콘텐츠에 질려서, 웨어러블 디바이스가 상용화되면서 오디오 멀티태스킹이 용이해져서, 신선한 콘텐츠가 많아서, 이 정도가 시장의 성장세를 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작년 한 해 전세계적으로 전자책 시장이 20% 성장했는데, 그 중 8%가 오디오북이라는 것만 봐도 큰 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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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rstory

 


 

슬픈 점1


 

<윌라>의 주 연령층은 25 ~ 45세(45%)로, 직장인 연령층이라고 명명한다. 바쁜 현대 사회에서 오디오북을 소비하는 장소와 시간은 출퇴근길일 것으로 예상한다. 현대인은 모든 것을 잘해야 한다. 디자이너임에도 글을 잘 써야 하고, 개발자임에도 의사소통에 능해야 하며, 동시에 적당한 체격을 유지해야 하고, 재테크를 훌륭히 해내서 오를대로 오른 집값을 잡아내야 한다. 그런 현대인에게 쏟아지는 ‘현대인의 문제’ 칼럼들과, 그 중 하나는 ‘독서량이 현저히 적다’는 것.


틈틈히 책을 읽기는 하지만 내가 원해서 읽는 건지, 사회가 요구해서 읽는 건지 확신하지 못하겠다. 전자책을 끼고 출근길에 오르는 나는 심심하기 때문일까, 어떻게든 시간을 아껴보겠다는 것일까? 여기서 한가지, 나는 장기 여행 시 책을 읽기보다는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을 좋아했다.


일을 하러 가는 길에 다른 일을 하는 이 멀티태스킹을 유발하는 건 사회가 독서를 종용하기 때문이 아닐지.  출근 후에 접하는 모든 것이 언어 정보이고, 활자인데도 나를 여전히 ‘독서량 부족’으로 명명하기 때문은 아닐지. 내가 특출난 한가지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 두루두루 조금씩 할 수 있는 사람이 된 데에도 이런 멀티태스킹을 강요하는 사회 때문이 아닐지.


현대인이 독서량이 부족하다는 것은 독서의 정의가 고지식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구시대적 독서량이야 적을지 몰라도, 현대식의 독서가 있다. 뉴스 기사를 읽고, 커뮤니티에 올라온 베스트글을 읽고, 친구가 메신저로 보낸 구구절절한 그 날의 사연을 읽는다. 비디오 콘텐츠를 보며 동시에 댓글을 읽어나가기도 한다. 웹툰도 반절 이상이 글이다. 그런 이들에게 고전독서까지 요구하니 오디오북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아닐까?


글을 잘 쓰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을 강조한다. 특히 나 같은 경우에는 생각을 많이 한다는 다상량과 가장 밀접한 에디터다. 그런 나에게서 생각할 시간을 빼앗고 있는 독서 강요가 밉기도 하다. 그러나 책을 독서가 작문실력을 위한 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내 선택이 있다고 믿고 싶다.


무엇보다도 눈코입을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현대사회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내 자신이 안타깝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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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점 2


 

현재로서는 주로 연예인 혹은 작가가 직접 책을 읽어주는 콘텐츠가 가장 활발하다. 새로운 덕질의 창구가 열린 것. 이제 막 생성된 시장에서는 연예인만한 유인책이 없다. (물론 나도 찾아들었다.)


하지만 작가는 그렇다 치더라도, 연예인이 오디오북에 특화된 이들인가? 연예인공화국에서 오디오북이 아니면, 발 디딜 곳이 없는 이들인가? 연예인 뿐만이 아닌 모든 셀럽도 포함하도록 하겠다.


반면, ‘오디오’에 특화된 ‘성우’는 어떠한가? 오디오 콘텐츠가 활발해지면, 성우의 수요가 늘어나야 하는데, 이 기형적인 한국 사회는 이미 발이 넓은 셀럽들이 더 면적을 넓히는 곳이 오디오 콘텐츠 시장이다. 셀럽에 의한 ‘반짝 수요’가 지속할 수 있는 시장은 장기적으로 메리트가 있는 곳일까?


언제 어디서나 잘 사는 사람은 더 잘 살고, 못 사는 사람은 더 못 사는 구조를 훤히 볼 수 있다. 한 명의 성우가 한 애니메이션의 모든 목소리를 내는 경우도 있는데, 성우 채용이 활발하다면 아무리 대사가 짧더라도 이런 일은 줄어들텐데. 수요가 없기 때문에 채용이 활발하지 않은 것일 텐데. 누가 들어도 전문적인 성우였던 준비생이 결국 성우를 포기하게 되었던 다큐멘터리도 아직 내 머릿속을 휘젓고 있는데.


특히 <네이버>의 경우, 셀럽에 의한 콘텐츠를 대량 생산하면서도, 오디오북의 가격을 무료 혹은 굉장히 저렴한 가격에 출시하기도 하면서 소비자의 가격인식을 저가에 고정하고 있다. 지금은 어느 정도 당연해진 음원 지불 구매 메커니즘이 초기에는 엄청난 반발을 샀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대로라면 성우를 기용한다고 하더라도 임금이 매우 낮으면서도 경쟁이 매우 치열할 것이다. AI보이스까지 도입되는 오디오북 시장에 소리 전문가는 설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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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오디오 클립

 

 

  

그리고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점.


 

잠시 거쳐가는 관문이 아닐는지.


<네이버> 클로바 램프는 인공지능 스피커임과 동시에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고양이를 무릎에 앉힌 할머니의 롤을 하고 있다. 네이버의 OCR(광학문자판독, 텍스트 인식)은 TTS(텍스트 파일의 음성 변환)와 결합하여 발전 중이다. 물론 좀 딱딱한 말투이긴 하다.

 


네이버 클로바.png

 

 

<밀리의 서재>는 내가 만든 오디오북 KIT(내만오)를 출시했다. 요즘 핫한 딥러닝 기술을 이용해 AI성우를 도입한 것이 특징이다. 가입자가 직접 녹음할 수도 있지만, AI성우를 활용해 다양한 목소리로 책의 상황에 맞게 역할극도 충분히 해 낼 수 있다.


그럼 현재의 오디오북이 성공가도를 유지할 수 있나? AI성우가 감정을 완벽하게 표현해내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부여된 셈인데, 성우도 아닌 셀럽들이 이겨낼 수 있나?


게다가 유튜브에 판을 치고 있는 것이 n분 요약본이다. 책 전체를 읽지 않고, 영화 전체를 보지 않는 시대에 오디오북만이 요약본을 멀리한다. 내가 책을 직접 읽더라도 읽는 글자보다 읽지 않는 글자가 더 많을 것이다. 그런데 오디오로 같은 책을 읽는다면 나는 모든 글자를 곱씹게 된다. 하다 못해 빈지와칭(binge watching : 비디오 콘텐츠를 시청할 때, 몰아보거나 띄엄띄엄 보는 현상)이 넷플릭스와 같이 날아온 세상에 오디오북만은 맨 앞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본인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어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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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ube 검색 (keyword : 책 요약 리뷰)

 

 

수학 공식이 들어간 책을 오디오북으로 만들기 힘들다. (오디오북이 활자책보다 업데이트가 늦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분명 각자의 베스트셀러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오디오북으로 접했을 때 더 적절한 내용이 있다는 것이다. 오디오의 특성이 분명히 있는데도, 그저 낭독의 개념에 멈춰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오디오 콘텐츠 시장의 유지가능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청각독서와 활자독서의 효과 차이가 있는지를 증명해내면서도 AI보이스의 발전 속도가 더뎌야지만 오디오 콘텐츠 시장이 성장동력을 유지할 것이다. 누적 가입자에 비해 내 주변에서 오디오북을 즐기는 사람을 찾을 수 없다는 것 또한 서비스 실 사용량에 대하여 의심하게 만드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직도 시각적 자극이 0에 가까운 오디오북이라면, 각종 자극을 섭렵한 현대인이 오디오북에 머물 것이라고 확정하기 힘들다. 또, 그저 비디오가 지겨워 생성된 대체재라면 오디오북 또한 머지않아 대체제를 맞게 될 것이다.

 

 

 

처음으로, 기쁜 점.


 

LG에서 2021년 사회공헌활동으로 점자책 및 오디오북 생산에 기여하고 있다. 도서 전체를 점자 혹은 음성으로 변환한 뒤 일일히 검수해야 하기 때문에 올 연말까지 고작 160여권의 제작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시각장애인 뿐만 아니라 노령화 사회에서 시각적 자극을 수용하기 힘든 사람들은 점점 늘어감에도 제작 여건과 적은 수요에 그 속도는 너무 느리다. (분명 노령인구가 많아진다면 캐시카우가 될 것이다.)


하지만 녹음형 보이스 콘텐츠에 TTS, AI까지 더해진다면, 더 다채로운 세상이 될 터다. 수용체는 다르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모두가 세상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날을 나는 꿈꾸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조금, 더 많이 희망에 차올라도 될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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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vi

 

 

전래동화가 구전되어왔듯, 오딧세이가 음유시인들로부터 전해져왔듯, 오디오의 특성은 고유하다. 그 어떤 감각이 융합되더라도 이길 수 없는 무언가 있음이 틀림없다. 인간이 제일 처음 접하는 자극도 뱃속에서 듣는 ‘소리’다. 내가 계속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게 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명확한 장점은 명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에게서 시각적 자극을 덜어내 줄 오디오북을 나도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르나, 아직 그 형태가 명확하지 않다. 완전히 시각과 분리될 필요도 없어보인다. 오디오 콘텐츠만을 전부로 하는 것이 고전적 독서의 정의와 마찬가지로 감각을 각각 분리해내는 고전적 감각의 정의라고 본다.


나도 새로운 콘텐츠를 마음껏 즐기고 싶다. 그러나 시기상조라는 느낌이 계속 들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비디오 플랫폼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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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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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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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굉장히 공감되는 글이네요.
      생각을 글로 정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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