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케이팝은 퀴어팝이 될 수 있을까? [문화 전반]

서구의 인종주의적 관점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인가
글 입력 2021.03.19 14:32
댓글 3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언젠가부터 한국인들에게 그래미 어워즈의 새로운 관전 포인트로 BTS의 수상 여부가 꼽히기 시작했다. 케이팝의 소비자층 분포는 뉴미디어와의 결합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확장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나 영미 문화와 미디어의 영향력을 중시하는 한국의 상황 속에서 서구권이 케이팝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더욱 많은 집중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관련한 연구나 의견 등이 인문 계열의 학자들에게서 여러 차례 나오긴 했으나 케이팝의 유구한 향유자들과는 의견이 갈리는 교조적인 입장이라는 등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BTS를 비롯한 케이팝 아이돌을 분석하는 데에 다양한 기준을 부과하는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그 중에서도 흥미로운 것은 퀴어 케이팝 팬의 존재와 그들이 매료된 케이팝의 퀴어함(Queerness)이다. 이와 관련하여, 국내의 학자들이 ‘안전한 남성성’을 어필하는 것으로 남성 아이돌의 전략을 분석하고 이를 남성 아이돌의 퀴어니스로 여러 차례 짚은 바가 있다. 그러나 케이팝 팬의 지형 내에서 ‘남자 아이돌’이 이른바 ‘사고 치는 일’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단편적 해석이라는 지적을 다수 받게 된다. 여성 혐오적, 퀴어 혐오적 발언으로 구설에 오르거나 성범죄에 연루된 남성 아이돌이 다수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특히나 해외에서의 남성 아이돌 인기를 설명할 때에 안전한 남성성, 대안적 남성성을 명명하는 것은 인종주의적 관점일 수 있다는 문제가 지적된다. 서구 중심적 시각에서 아시안 남성이 좀 더 안전하고, 부드럽고, 아름다운 남성성을 어필할 수 있다고 독해하는 것은 케이팝이 가지는 문화적, 음악적 특성이 아닌 외부 자의 관점에서 보는 인종적 시각이 반영된 결과일 수 있다.

 

단순하게도 화장을 하고 꾸미는 남성성을 보여주는 케이팝 이미지가 대안적 남성성을 제시하고 있다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첫째는 인종주의적으로 아시안 남성에게 부과된 스테레오타입이며 두 번째는 케이팝의 원산지에서 아시아인 당사자들에게는 이 남성성이 항상 안전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기에 기만적일 수 있다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케이팝의 퀴어니스는 허상이라거나, 인종주의적 편견에 입각한 이미지일 뿐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할 수 있다. 아시아 국가 내에서도 케이팝의 퀴어함을 발견하고 즐기는 팬들이 많은 까닭이다. 그러나 독해에 주의를 필요로 하는 세계적인 대중문화로 자리매김한 만큼 인종과 퀴어니스의 교차적인 맥락을 점검하며 케이팝에 접근함으로써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케이팝 산업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퀴어한 케이팝은 케이팝의 내재적, 외재적 상황과 맞물려 형성된다. 케이팝의 내재적인 요소, 컨텐츠 내의 컨셉츄얼함과 내러티브, 상징적 이미지 등을 통해 퀴어함이 창출되는 것이다. 실제로 다양한 뮤직비디오의 레퍼런스가 퀴어 장르의 창작물(영화, 소설, 사진 등)인 경우가 다수 있었으며, 뮤직비디오의 서사, 퍼포먼스 등에서 퀴어한 요소를 추가하는 경우도 많았다. 젠더 규범의 경계를 넘나들고 흐리는 아티스트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IMG_9757.jpg
레드벨벨 아이린&슬기의 'Monster' 뮤직비디오는 레즈비어니즘을 상징적으로 다루는 뮤직비디오를 선보였다.

 

 

최근에는 퀴어문화의 일종인 댄스장르(왁킹, 보깅 등)나 드랙(drag)을 뮤직비디오 및 무대 연출에 활용하는 경우도 늘었다. 나아가 퀴어 당사자들로 이루어진 다양한 퍼포머들과 함께 작업하는 케이팝 아티스트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IMG_9756.jpg
청하의 'Stay Tonight' 뮤직비디오는 보깅 장르의 안무를 선보였다. 함께 작업한 댄서팀은 퀴어 당사자들로 이루어진 '커밍아웃' 댄스크루이다.

 

 

이는 뉴미디어 시대를 맞이하며 외재적인 상황과도 맞물리게 된다. 외국 시장의 경우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minority)가 즐기는 문화 중 하나로 케이팝이 자리 잡은 것이다. 대표적인 예시로 미국의 흑인의 삶은 소중하다(Black Live Matter) 운동이 SNS 내에서도 이슈가 되었을 때 국가를 막론하여 케이팝 팬들에게 연대가 요구되는 상황을 들 수 있다. 실제로 다수의 케이팝 엔터테인먼트사와 아이돌 개인이 지지 의사를 표명하거나 기부 사실을 알리기도 했다. 소수자 문화 중 하나로 케이팝이 꼽히며 소비자의 니즈 중 하나로 ‘소수자성(minority)’에 대한 인지와 프라이드 등이 요구되는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l_2020060901000992100078931.jpg
방탄소년단, CL, 갓세븐의 마크를 비롯한 다양한 케이팝 아티스트들이 BLM 운동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

 

 

국내에서도 케이팝의 퀴어한 지점을 논하고자 하는 세미나가 열리기도 했다. 서울세제션에서 진행한 ‘퀴어돌로지’가 그것이다. 물론 케이팝이 창출하는 다방면의 퀴어함이 퀴어베이팅이라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실제로 퀴어의 사회적 소수자 운동과 프라이드, 고충 등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으며 퀴어함이라는 특수한 이미지와 이점만을 활용하는 기만적 행위라는 것이다. 그러나 미디어의 다양한 레이어와 해석주체들이 서브컬쳐와 연동된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기획의 의도와 실제 정체성은 미디어 재현의 진실성과 발맞추어야만 의미 있다고 보긴 어렵다. 이러한 시각이 퀴어 당사자 중에서도 나타나며, 퀴어함을 케이팝 내에서 발견하고 향유하는 행위 자체도 새로운 퀴어 공동체의 유희 중 하나로 볼 수도 있게 되었다.

 

이렇듯 퀴어한 케이팝에 대한 논의는 국내외로 다각적인 맥락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상기의 인종주의적 요소에 기반을 둔 퀴어적 해석인 것은 아닌지에 대한 혐의를 조금 더 탐구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서구적 시각의 기저에 국가,민족, 인종적인 배경이 없다고 단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구에서 아시안인종의 남성은 인종적 특성을 이유로 여타 인종의 남성들보다 비남성적이라고 여겨졌다. 이러한 배경을 삭제한 채로, 퀴어하게 읽히는 케이팝의 신체를 강조하는 서구의 향유자들에게서 인종주의적 시각이 전혀 없다고 보긴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유구한 인종주의적 시각을 한순간에 완전히 없애지도 못하며, 모든 개인에게 ‘무결한’ 방식으로 케이팝 해석을 하라고 요구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케이팝의 해석 지형을 어떤 관점으로 이해해야 할까? 젠더적 인종, 인종적 젠더의 교차가 역사적으로 구성된 것이라는 사실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시로 제2차 세계대전 이전과 이후의 미국 내 일본인 남성에 대한 ‘이미지’ 변화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일본계 이민자를 비롯한 동양인 남성의 존재가 전쟁 이전에는 미국 주류 집단에게는 그 어떠한 사회적 위협이 될 수 없었기에 ‘위험하지 않은’, 비남성적 존재로 여겨졌던 것이다. 위험하지 않다는 묘사에는 여성 혐오적이고 퀴어 혐오적인 배경이 포함되는데, 백인 여성과 같은 공간에 있더라도 백인 여성에게 성적인 폭력을 행사할 일이 없는 것이 동양인 남성이라는 시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 이후 일본계 남성들에 대한 이미지는 급격히 변화한다. 전쟁 당시의 프로파간다를 담은 포스터들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는데, 일본군에 대한 경각심을 형성하는 방식으로 ‘백인 여성을 성적, 물리적으로 위협하는 일본인 남성’의 이미지를 묘사하는 것을 택한 것이다. 이는 젠더적으로도, 인종적으로도 문제가 있는 프로파간다임이 현대적 시각에서는 명확해 보인다. 하나 더 집중할 점은 비남성적으로 여겨지는, 여성화된 인종으로 동양인을 전형화했던 것 역시도 역사적 구성물이란 것이다.

 

 

2021-03-19 21;35;44.jpg

 

 

결국 위협적으로 분류될 수 있는 ‘남성성’ 역시도 사회적인 규범과 문화적 이미지일 뿐이며 절대적이거나 고정적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인종적 이미지에도 해당하는, 구성된 ‘규범’일 뿐이다. 차별적으로 형성된 규범과 편견에 대항하여 싸우는 일은 규범이 절대적이지 않으며, 주류집단의 권력을 용이하게 만들기 위한 헤게모니의 작업일 뿐임을 인지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인종주의와 젠더 간 연결고리의 역사는 유구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역시도 구성되는, 인간의 이데올로기적 산물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이를 통해 우리의 무력감을 이겨내고 입체적인 해석으로의 도약 점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2020062857274723.jpg
이달의 소녀 츄의 '하트어택' 뮤직비디오와 여자아이들의 'OH MY GOD' 뮤직비디오.

 

 

차별적 시선과 결부된 규범, 이미지를 이 현실에서 하루아침에 원천적 철폐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규범의 해체는 다각화된 해석과 비판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일 텐데, 케이팝의 퀴어니스는 그러한 지점에서 충분히 맥락 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인종 때문에 퀴어한 것이 아닌, 다양한 신체의 등장과 그에 상응하는 컨셉츄얼한 꾸밈, 퍼포먼스, 내러티브 등으로 퀴어니스를 구현하는 일이 케이팝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퀴어한 재현(representation)에 엔터테인먼트 산업 자체도 심혈을 기울인다고 생각해보자. 이는 인종주의적 젠더규범에 대한 퀴어적 전유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세계적으로 사회적 소수자들의 핵심적인 대안 문화이자 아이코닉한 엔터테인먼트 산업 중 하나로 자리 잡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성적인 대상화와 노동 착취적인 케이팝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본질적인 문제 역시 지적되고 변혁될 필요가 있다. 케이팝은 읽고 듣고 보는 이들에게 이미 퀴어팝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더욱 적극적으로 퀴어팝으로 도약하는 케이팝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참고 : 서울퀴어세제션이 주최한 ‘퀴어돌로지’

 

 

 

신명길.jpg

 

 

[신명길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댓글3
  •  
  • kjm
    • 난 레즈비언이 좋아
    • 0 0
  •  
  • ㅇㅇ
    • 오랜만에 보는 통찰력이 돋보이는 기고문이네요!
    • 1 0
  •  
  • 몽글몽
    •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시사점이 많은 좋은 글이네요!
    • 1 0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