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시작과 과정 그리고 그 끝까지. 국립극단만의 새로운 '파우스트 엔딩'

글 입력 2021.03.11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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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파우스트 엔딩_홍보사진1.jpg

 

 

연극이 끝나고, 막이 다시 내려갈 때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을 수 밖에 없었다. 110분간 보면서 느꼈던 원작과는 다른 것에서 오는 생경함, 충격이 휘발되기 전에 얼른 정리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먼저, 기존에 알고 있던 괴테의 작품 '파우스트'의 줄거리는 1부, 2부로 나눠질 정도로 매우 길지만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이렇다.

 

세상의 모든 학문을 섭렵하고 오히려 참된 진리에 도달하지 못했다며 우울에 빠져있던 파우스트 박사는 악마 매피스토펠레스를 만나 모종의 거래를 한다. 시간을 돌려 젊음을 되찾아주고 그 시간 동안 매피스토를 종으로 부릴 수 있다는 조건으로.

 

그러나 그 시간 동안 맛본 세계에서 파우스트가 참된 무언가를 느낄 경우,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하고 외치기로 계약한다. 그 외침이 있은 후 저승에서는 현생과 반대로 파우스트가 매피스토의 종이 되어 지내기로 한다.

 

1부에서는 다시 인생에서 젊음을 되찾은 박사 파우스트는 그레헨이라는 여인을 만나게 되고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악마 매피스토가 박사는 모르게 수작을 걸어 방해하고 결국 그레헨과 그녀의 오빠 모두 죽음에 이른다. 그렇게 2부로 넘어가면서 파우스트는 과거 역사를 오가며 전쟁과 수많은 일들을 경험한다.

 

역사 속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왕국을 건설하다 파우스트는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를 외치는데, 이 찰나에 악마 매피스토가 아닌 천사들에게 구원받게 된다.

 

 

여기까지가 기존 괴테의 작품, '파우스트'이다. 그리고 내가 만난 국립극단의 '파우스트 엔딩'은 기존 '파우스트'의 주제의식을 그대로 가져오되 현대적으로 재창조해낸 새로운 작품에 가까웠다. 그래서인지 공연이 끝나고 여운이 더 가시질 않았던 듯 하다.

 

파우스트와 파우스트 엔딩을 비교하자면 크게 세가지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주인공의 성별과 이에 따른 동성간의 사랑, 원작 1부 2부의 대서사시가 합쳐진 110분의 함축적이고도 현대적인 서사, 그리고 마지막 결말이다. 이 세가지의 요소에 기반하면, 이 작품은 괴테의 파우스트가 아닌 조광화 연출가와 국립극단만의 파우스트이다.

 

 

[국립극단] 파우스트 엔딩_ 공연사진01.jpg


 

파우스트 엔딩에서는 남성이 아닌 여성으로 파우스트 박사가 등장한다.

 

그러나 파우스트 박사가 여성으로 등장한다해서 그레헨의 역할을 남성으로 함께 바꾸는 식의 단편적인 각색을 하지 않는다. 기존 그대로 여인 그레헨과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이어 나간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동성간의 사랑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차별적인 시선을 그려내며 현실을 되돌아볼만한 지점을 만들어냈다. 더불어 원작을 그대로 살릴 경우 자칫, 젠더감수성의 문제로 이어질 요소들을 적절한 각색으로 지워냈다.

 

연출가의 의도에 따르면 나이가 많은 남성이 눈속임으로 젊어져 젊은 여성과 사랑에 빠진다는 원작의 이야기 보다는 교감하고 연대하며 한 아이를 돌보는 두 여성의 이야기로 각색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 판단했다고 한다.

 

그리고 역사 속 과거를 오가며 전쟁을 승리로 이끌던 2부에서의 원작 파우스트는 과감하게 삭제되었다. 다만, 조광화 연출가의 인터뷰에 따르면 욕망할수록 더 큰 희생이 따른다는 주제의식은 그대로 가져왔다고 한다. 과감하게 축약된 원작 2부의 빈 자리는 인간개조 서사와 현대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충분한 결말로 채워넣었다.

 

원작과는 다르게 완전한 이성, 기존의 인간을 뛰어넘는 개조인간 '호문쿨루스'가 파우스트의 제자들에 의해 탄생하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러나 이야기가 말하는 본질은 원작과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바로 과도한 이성, 인간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되는 것들이다.

 

좋은 의도로 시작했을지는 몰라도 그 시작이 과한 나머지 의도치 않은 희생이나 피해를 불러온다는 생각의 지점이 묻어났다.

 

 

[국립극단] 파우스트 엔딩_ 공연사진07.jpg

 

 

그리고 이 새로운 서사의 끝, 결국에는 천사들에게 구원받는 기존 파우스트와 달리 이 새로운 파우스트 박사는 주체적으로 천사의 뜻을 거부하며, 지옥으로의 길을 선택한다. 욕망을 하면 할 수록 뜻하지 않은 희생이 필연적으로 따라오고, 그만큼 스스로 책임져야만 한다는 주제가 엿보이는 지점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번 더 연출가의 의도를 엿본다면, 보는 이에 따라 인간의 자유의지적인 면으로도 해석할 수 있겠지만 이 책임론적인 결말은 오이디푸스적인 것에 더 근거한다고 한다. 현실적으로 현재 우리들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어떤 일이 자신에 의해서 벌어진다면 책임을 져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사실 파우스트가 자신의 욕망에 의해 여러 사단이 벌어졌는데도 결국에는 구원을 받는다는 서사는 이제와 생각해보면 의아하긴 하다. 워낙에 유명한 고전이기에 당시에는 그저 그렇구나 흘러가듯 생각했던 나의 단순함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결국 이 파우스트 엔딩의 '엔딩'도 현재 사회상에 맞게 변화한 것이다.

 

*

 

파우스트 엔딩은 외피적으로도 볼거리가 많은 무대였다. 모든 학문에 통달했으나 진리를 깨우치지 못했다는 좌절에 빠져 허무함을 외치는 박사 파우스트의 개인 서재가 메인 무대의 공간으로 자주 보여진다. 그러한 좌절감, 우울감을 잘 보여주는 무대의 여러 소품들과 배경이 극의 서사를 좀더 돋보이게 해주었다.

 

나아가 악마 매피스토를 따라다니는 들개, 개조된 인간 호문쿨루스가 인형으로 등장하는 지점도 재밌게 느껴진다. 배우들이 조종하며 등장하는 거대한 이 인형들이 서사 속에 녹아 관객에게 다가가는 모습은 다소 생경하고 때로는 충격적이었다.

 

이번 '파우스트 엔딩'을 통해 현대에 이르러서 현대적인 관점으로 다시 원작 파우스트를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가졌다. 또한 이렇게 재창조된 '파우스트 엔딩'은 기존보다는 디스토피아적인 분위기로 다가오지만 되려 희망적인 주제의식을 담고있다는 모순적 생각을 하게 했다.

 

고전을 현대의 시각으로 적절하게 재해석하는 방식의 희열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더 많은 사람이 이 희열을 함께 느껴보길 바란다.

 

 

[국립극단] 포스터_파우스트 엔딩.jpg

 

 

 

press명함.jpg

 

 

[이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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