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빌런, 존재의 당위성에 대하여 - 스토리 창작자를 위한 빌런 작법서

글 입력 2020.12.22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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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괴물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을 넘어서』 중에서

 

 

이미 보편이 되어버린 플롯 속 등장인물들은 상당히 평면적이다. 전래동화 속 인물을 떠올려보자. ‘콩쥐팥쥐’ 속 콩쥐는 한없이 착하고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 반면에 언니 팥쥐는 항상 어머니와 가세하여 콩쥐에게 일을 시킨다. ‘신데렐라’에 등장하는 엄마와 새언니들은 신데렐라를 두고 성대한 파티장에 간다. 이른바 계모와 아이라는 클리셰는 선과 악을 분명히 구분하는 요소로 작동한다.

 

괴롭힘에 못 이겨 극한의 상황으로 갔으나 결국에는 타인의 구원을 통해 신분상승을 하며 마무리되는 ‘권선징악’의 스토리는 전래동화의 대표적인 형식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독자들에게 ‘무엇이 착하고 나쁜지’ 가치판단을 할 수 있는 장치로서 보조한다. 그러나 이는 교훈적인 의미에 가깝지 재미나 현실적인 요소를 가미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작품 속 등장하는 인물의 성격은 시대가 변함에 따라 더욱 입체적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플롯 속에서 착한 인물은 일관되게 유지되었다. 불의를 참지 못하고, 언젠가는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 주위 사람들 도와주는 너른 배포. 아주 오랜 옛이야기나, 지금의 히어로물이나 별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다. 더 이상 ‘재미있는 이야기’는 착한 인물의 전유물이 아니게 된 것이다. 바로 ‘빌런’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빌런’ 단어만 들어도 짜릿하고 매력적이다. 오늘날 이토록 많은 이들이 ‘빌런’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토리 창작자를 위한 빌런 작법서>는 동시대 독자들이 열렬히 사랑하는 ‘빌런’에 대해 파고든 책이다. 빌런의 ‘탄생’에서부터 ‘특징’까지 빌런의 모든 것을 파헤친다. 특히 작가가 언급하는 열 일곱 가지의 특성을 읽어가다보면 ‘왜 지금 빌런에 열광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면성의 존재, 빌런의 등장


 

빌런(villan)은 악당, 악인을 의미하는데, 라틴어 빌라누스(villanus)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때 빌라누스는 마을(village)에 사는 농민을 의미한다. 그렇다. 빌런은 지극히도 삶의 보편에서 시작된 존재다. 빌런은 농장(villa)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의미하였으며, 중세 봉건 사회의 주축이었던 왕, 성직자, 귀족과는 대조되는 위치에 있었다. 이른바 기득권에 속한 이들은 자신들의 영지에서 일하는 농민을 자신들과는 다른 위치에 있는 존재라 생각했다.

 

그러나 시대가 발전하면서 농민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몇 차례의 농민 봉기를 통해 농민은 경계의 대상임을 깨달았다. 그렇게 빌런은 지극히 일상적이지만 본래의 면모는 숨기고 있어 언제나 조심해야 하는 양면성을 지닌 존재가 되어버린 게 아닐까 싶다. 빌런은 평소에는 조용히 있다가 결국에는 항거하고 마는 무서운 존재라는 게 일찍이 각인 되어버린 것이다. 기득권들이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서 농노가 없으면 안 되었던 것처럼, 플롯 속에서도 빌런은 주인공과 대조되는 자석의 양극으로 자리하고 있다.

 

 

 

재만큼이나 매력적인 빌런의 특징들


 

책은 자그마치 열 일곱 개의 키워드를 제시한다. <스토리 창작자를 위한 빌런 작법서>라는 책의 제목에서 ‘전형적인 작법’을 논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빌런’의 원형을 키워드에 맞게 분석한다. 그렇기에 스토리 창작자를 꿈꾸지 않더라도 빌런에 흥미를 느끼는 모두가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다가온다.

 

가장 처음에 등장하는 키워드인 ‘그림자’는 이제껏 놓치고 있던 빌런의 면모를 알게해주는 부분이다. 보편적으로 빌런하면 주인공과는 대조되는 악역을 생각한다. 그러나 때때로 빌런은 그 자체로 그림자가 되어 주인공의 내면에 숨겨져 있다. 빌런은 주인공과 마냥 대조된다고 생각했는데, 숨겨진 자아마저도 빌런의 특성이라니. 여기서부터 빌런의 근원을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악역, 혹은 악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은 본래 그러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보여지는 것에 가깝다는 것을.

 

서두에서 전래동화의 클리셰를 언급하며 여성 인물을 예시로 든 바 있다. (콩쥐팥쥐, 신데렐라 등) 그러나 자세히 본다면 그들은 그저 시기와 질투에 눈먼 욕망의 인물이며 빌런의 원형과는 거리가 있다. 빌런은 신념이나 목적의식을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데, 고전 이야기에서 내려오는 빌런은 근원없는 미움에서 행동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이란 키워드는 ‘빌런’의 경우에서도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작가는 이 점을 지적한다. 악은 성별을 구분 짓지 않고 존재하며, 작가들은 ‘여성 빌런’이 아니라 굉장한 빌런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이다. 흔히들 작품에서 대변되는 여성 빌런은 불안을 무기로 삼은 사이코패스 여성(『미저리』)이거나, 자기 스스로를 ‘사랑해선 안 될 여자’라고 말하는 여성(『원초적본능』)이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기저에 있는 ‘정신적 우월주의’로 인하여 빌런으로의 성장이 억제되고 말았다.

 

빌런은 ‘나쁘다’라는 형용사로 서술하기에는 그 특징이 너무 많다. 여러 특징 중, ‘신념’은 빌런의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한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안톤 시거는 ‘운명은 이유를 묻지 않는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는 죽어 마땅한 이유가 없는 인물(주인공 모스의 아내)를 죽인다. 작품 초반 시거가 모스와 나눈 통화의 내용으로 인해서다. 악당은 어떤 면에서 결코 정당화할 수 없는 이유의 행동을 선보인다. 그러나 그 기저에는 빌런 나름대로 세운 나름의 이유가 있다. 주인공은 이따금 태세를 전환하나, 신념이 있는 악당은 자신의 원칙을 장엄하게 지켜나간다.

 

 

 

나만의 빌런’ 만들기



 

스토리 창작자는 주인공보다 빌런을 더 사랑해야 한다. 창작자들은 그간 빌런을 너무 방치해왔다. 그래서 우리의 빌런들은 서럽고 처절하다. 온갖 고생을 다 하고 이야기가 끝나면 무대 뒤편에 앉아 더운 가죽옷을 벗고 홀로 땀을 닦고 있지만 누구도 다가 와 시원한 물 한잔 건네지 않는다. 스토리 감상자들이 승리한 주인공에게 환호의 꽃다발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스토리 창작자들은 무대 뒤에서 녹초가 되어 앉아 있는 빌런들에게 다가가 고맙다며 손을 내밀어야 한다.

 

_ 「에필로그」 중에서

 

 

자,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나만의 빌런’을 만들어보자. <스토리 창작자를 위한 빌런 작법서>는 주인공에 가려져 주목받지 못했던 숨은 빌런을 17개의 키워드를 통해서 속속들이 파헤친다. 매 키워드가 끝나는 페이지마다 ‘빌런 체크리스트’가 있다. 어떤 빌런을 탄생시킬 것인지는 순전히 창작자의 의도에 달려있다.

 

이 책을 통해 빌런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면, 그 마무리는 빌런의 요소를 체크하며 ‘나만의 빌런’을 만들어 보는 것이다. 어떤 신념을 바탕으로 행동하는지, 어린 시절 빌런이 겪은 트라우마는 무엇인지 등. 열린 환경 속에서 여러 조건을 대입해보자. 읽으며 상상하고, 체크하며 그려보는 ‘나만의 빌런’. 거창한 캐릭터가 아니어도 좋다.




저자 소개 (차무진)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 깊은 사유의 문장력을 담보하면서 독특한 미스터리적 설정으로 독자들을 매료시킨다.

 

2010년 『김유신의 머리일까?』로 데뷔하였고,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 계원예술대학교, 국민대학교 게임교육원 등에서 스토리텔링을 가르쳤다. 주요 작품으로는 『해인』 『모크샤, 혹은 아이를 배신한 어미 이야기 1, 2』 『인 더 백』과 『좀비 썰록』(공저) 『태초에 빌런이 있었으니』(공저) 등이 있다. 『인 더 백』은 2020년 판권이 계약되어 영상화 작업이 진행 중이다.

 

빌런를 테마로 한 앤솔러지 『태초에 빌런이 있었으니』에 참여함과 동시에 빌런에 관한 자신의 강의 노트를 정리한 『스토리 창작자를 위한 빌런 작법서』를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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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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