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스며드는 즉흥을 사랑하는 사람

언제 만나도 정다운 12년지기, J의 이야기를 담다
글 입력 2024.02.06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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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서 작가님의 <답장이 없는 삶이라도>라는 책에 ‘일 얘기는 나중에’라는 챕터가 있다. 어떤 이야기인가 하고 들여다보니 ‘인터뷰’에 관한 내용이었다. 퍽 반가웠다. 인터뷰이의 내밀한 이야기를 미리 준비한 질문들을 통해 조금 더 깊게 속속들이 파고들 수 있다는 것. 인터뷰가 끝난 이후에 나눴던 이야기들이 오히려 더 선연히 다가왔다는 것.

 

요즘 들어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게 특히 즐겁다. 비슷한 결이라 짐작했던 사람들이 나와는 조금 다른 질감을 가지고 있을 때 느껴지는 생경함이 흥미롭다. 인터뷰 자체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오래된 친구와 함께한다는 건 예상 밖의 일. 준비하는 과정이 조금은 낯설었다. 자꾸만 웃음이 났다.

 

중학교 동창인 J. 누구보다 자신의 삶을 온전히, 알차게 영위하고 있는 사람이라 자부할 수 있을 정도로 빼곡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다. 그와 이야기하다 보면 인간관계를 맺고 이어가는 과정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커피 향이 진하게 맴도는 공간에서 나눴던 친구 J와의 대화를 다시금 복기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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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시작해 볼까? 어쩌다 보니 저번 주에도 보고, 갑작스러운 나의 제안으로 인터뷰를 하게 됐네. 어쨌든 이걸 구실로 너의 이야기를 더 들어볼 수 있다는 건 좋은 것 같아. 편하게 대답해 주면 돼.

 

 

Q. 지난날을 되짚어보면, 우리가 만난 지 벌써 10년이 넘었더라. 12년 정도 됐지? 중1 때 만났으니까. 어떻게 친해졌는지 기억나? 나는 사실 확실하진 않거든. S는 나한테 먼저 말을 걸었던 기억이 있어서 그때부터 친해졌구나 했는데, 너와는 수련회 가서 같은 방을 쓰면서 친해진 것 같거든. 빨간 뿔테안경을 쓴 유난히 명랑하던 네 모습이 선명해.

진짜 기억이 하나도 안 나는 거야. 수련회 때 같은 방이었는지조차 기억이 안 나는데. (웃음) 일단 나는 어제 일도 기억을 못 하는 사람인데 12년 전 일을 어떻게 기억하겠어. 그냥 정말 자연스럽게 친해진 것 같아. 어느 순간 정신 차려 보니 너네랑 같이 책상을 돌려서 밥을 먹고 있었고, 과학의 날 행사 때 같이 준비해서 같이 PPT 발표도 하고 그랬었지.

 

나 기억이 안 나는데 그거. 어떻게 기억해? (웃음)

 

보통 그런 행사가 3인 1조인 경우가 많았으니까 셋이서 같이 팀 해서 발표했었지. 정말 갑자기 친해진 것 같아.

기억이라는 게 진짜 신기하지. 내가 기억하는 걸 네가 기억 못 하고, 네가 기억하는 걸 내가 기억을 못 하는 거 말이야. 시각에 따라 이렇게도 남아있는 게 다르다니.


Q. 중학교 때만 해도 사실 네가 체육에 뭔가 소질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거든. 몸으로 하는 건 잘 했던 것 같아. 달리기도, 피구도, 배구도. 그런데 네가 그쪽으로 진로를 정할 줄은 생각도 못 했어. 안타깝게도 우리가 고등학교를 서로 다른 곳으로 진학을 하게 됐잖아. 고등학교 2학년 때 진로를 체육 쪽으로 정했다고 들었는데 혹시 특별한 계기가 있었어?


그냥 현실에 안주했을 뿐, 특별한 계기는 없었던 것 같아. 그러니까 그때 고2가 사실 나한테는 중2보다 훨씬 질풍노도의 시기였다고 생각하거든. 중2는 생각으로만 난장판이라 하면, 고2는 생각도 난장판인데 주변도 다 난장판인 상태였달까. 내 진로를 이제 정해야 될 때인데, 내가 뭘 잘하는지도 나도 모르겠고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그러다 이제 엄마랑 얘기했을 때였을 거야.

 

엄마가 갑자기 “너는 어떻게 할 거야? 넌 대학 어떻게 갈 거야?” 이렇게 물어봤는데, 내가 생각해 봐도 “난 공부로는 못 갈 것 같아. 가더라도 잘 가지 못 갈 것 같아.”라고 말했던 기억이 나. 내 성적이 딱 평균이었기 때문에. 그러니까 나보다 잘하는 사람은 워낙 많으니 인서울 수도권 꿈도 못 꿀 것 같고, 그래서 다른 쪽으로도 생각을 해봤지. 

 

그때 내가 한창 좋아하던 게 피아노랑 운동이었는데, 피아노는 어릴 때부터 하던 사람도 워낙 많았고 잘하는 사람도 워낙 많잖아. 그 당시에 나는 피아노 치는 게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이어서 그걸 진로로 삼긴 싫었던 것 같아. 그래서 그나마 이제 조금 만만해 보이는 운동으로 한 거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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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랬구나. 비하인드 스토리는 처음 듣는 것 같아서 흥미롭다. 앞서 말했듯 이제 10대 후반에는 사실 교류가 좀 많이 없었던 것 같아. 서로 바쁘고 하니까 연락도 잘 안 하고. 그러다 보니까 네 얘기를 좀 들을 기회가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 방금 얘기했다시피 특별한 계기 없이 이제 체육 쪽으로 진로를 정하게 됐다고 했잖아. 체대 입시를 하면서 유독 힘들었던 게 있다면 어떤 거였어?

재능의 차이를 뼈저리게 느꼈던 거? 나도 솔직히 내가 몸을 잘 쓰지는 않더라도 못 쓰는 편은 아니라 생각했었어. 그래서 대학 진학을 위해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체육으로 정해서 심지어 남들보다 체육 학원을 일찍 다니기 시작을 한 거였거든. 막상 가니 재능이 넘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거야. 애매한 재능 말고 신체적으로 워낙 타고난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걸 체감하게 된 거지.

그래서 아무래도 이건 입시니까 그 성적을 맞춰야 되는데, 각 대학이 원하는 커트라인도 세상에 잘난 애들이 많은 걸 알아서 높아. 기준도 높은데 그걸 또 맞추는 애들이 있어. 이제 같은 학교를 쓰거나 비슷한 성적을 내야 되는 애들이랑 같이 운동하다 보면, 나는 심지어 걔네보다 일찍 시작했는데 이제 시작한 지 일주일 된 애가 그걸 뛰어넘는 거야. 거기서 열도 받고, 좌절도 많이 하고, 울기도 많이 울고 쪽팔림도 많이 당하고 그게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 내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내 몸이 따라주지 않는 그런 재능의 차이.

 

지극히 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공부는 진짜 열심히 하면 된다 생각하거든. 진짜 열심히 하면은 전교 1등 해볼 수 있다. 어느 정도의 가능성은 있다. 근데 이거는 내가 진짜 죽어라 열심히 해도 재능에 한계가 있으니까, 내 신체적 조건에 한계가 있으니까 못 뛰어넘는 거야. 오히려 힘들기만 힘들고 더 안 될 뿐이지.


Q. 그렇구나. 많이 힘들었겠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어쨌든 그쪽 계열로 대학 진학을 하게 됐잖아. 네가 생각했던 것만큼 과가 그렇게 잘 맞지 않았다고 들었거든.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느꼈던 거야?


정확히 말하면 과가 아니라 학교가 안 맞았어. 만약에 여기가 아니라 다른 학교를 갔다면 또 지금이랑 생각이 달랐을 수도 있는데, 일단 학교가 정말 작고 사립임에도 불구하고 돈이 없어. 등록금은 한 학기에 450을 떼 가는데 실습비 실기비는 다 따로 내야 했었으니까. 등록금은 등록금대로 내고, 장비 사야 된다 그러면 또 돈 들고. 뭐 수영장, 스케이트장, 볼링장 가야 한다고 하면 비용을 또 지불해야 해. 물론 지원은 해주긴 하는데, 코딱지만큼 해주니까. (웃음) 그러니까 한 학기에 그런 거 다 포함하면 거의 500이 넘게 들었던 거지.

다양한 수업을 듣고 그만큼 경험할 수 있다는 건 정말 좋았는데, 시설 자체가 너무 낙후되어 있다 보니까 만족도가 높지 않았던 것 같아. 여러모로 아쉬운 부분이 많지. 단점을 상쇄할 정도로 장점이 많은 학교는 아니었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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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현재 운동을 아주 열심히 하고 있잖아. 거의 매일 아침 6시에 크로스핏 가는 걸로 알고 있는데, 맞지. 솔직히 내 주변에서 운동 제일 열심히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중 하나인데. 운동에 그만큼 진심이라 기록용 SNS 계정도 따로 있잖아. 지금 어떤 운동하고 있는지, 운동에 좀 재미를 붙이게 된 계기가 있는지 그것도 좀 궁금하더라고.

지금은 일단 주된 건 크로스핏, 검도, 가끔 러닝과 등산인데. 운동이 원래는 진짜 꼴도 보기 싫었단 말이야. 입시할 때 질리도록 해서 입학하고 진짜 쳐다도 안 보다가, 대학교 2학년 때인가? 친구 중에 한 명이랑 갑자기 바디 프로필을 예약을 했어. 그냥 정말 갑자기 찍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친구가 한다고 하면 ‘그거 나랑 같이 준비하면 되겠다!’하면서 정말 충동적으로 일단 저질렀던 거야. 문제는 비용이었어. 촬영 자체도 비싼데 일단 예약금 15만원을 내야 하니까. 그런데 내가 만약에 바디 프로필을 안 찍거나 준비가 안 된 상태로 찍으면 예약금 플러스 알파가 날아가는 거잖아. 너무 아까운 거지. 그래서 운동을 정말 열심히 했어. 그때부터 헬스장을 다니기 시작을 했고. 처음엔 바디 프로필 때문에 시작했지만, 하다 보니까 재밌는 거야.

 

운동은 다른 거에 비해 내가 투자하는 만큼 그대로 눈에 다 보이니까. 물론 시간은 좀 걸릴 수 있지만 그래도 어찌 됐든 결과물은 내 눈에 정말 잘 보이니까, 거기서 나오는 성취감이 너무 좋은 거야. 그렇게 시작을 한 게 이렇게까지 될 줄은 나도 몰랐고 중간에는 사실 강박도 조금 있었어. 이게 다이어트라고 하기엔 좀 애매한데, 하루라도 운동을 안 하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느낌말이야.

 

뭔가 내 근육들이 없어지는 것 같고, 내가 건강이 안 좋아지는 것 같고 몸도 막 근질근질하고. 그래서 더 악착같이 한 적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생각해 보니까 그렇게 하면 재밌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 거지. 재밌으려고 하는 운동이고, 지금 내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취미 중 하나가 됐는데. 강박이 딱 생기니까 그렇게 말을 못 하겠는 거야.

 

그래서 헬스 그만두고 친구랑 F45를 시작했다가, 재미를 되찾게 됐어. 그런데 거긴 물리적으로 거리가 너무 멀다 보니 그냥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가게 됐고, 하다 보니 사람들과 어울려서 운동하는 걸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어. 혼자 하는 것보다 사람들이랑 화이팅 외치고 북돋아 주고 함께 하는 운동에서 쾌감을 느낀 것 같아. 스트레스도 같이 풀고 집어던지고 힘쓰고 하니까 그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이 안 들잖아.

 

운동 가기 직전에는 온갖 고민이 가득했는데 검도도 그렇고 크로스핏도 그렇고 격한 운동이니까 하는 도중에는 힘들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하거든. 내가 평소에 하고 있던 고민이나 뭐 이런 게 사그라들면서 몸은 힘들지만 머리가 가벼운 기분? 그렇게 운동이 끝나면 정말 진지한 고민이 아닌 이상 머릿속이 싹 그냥 정리되어 있는 거지. 자연스럽게 스트레스도 풀리고 생각도 되게 단순 명료해지는 것 같고, 그래서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아.


Q. 좋다. 정말 건강한 취미인 것 같아. 사실 내가 지금은 약간의 권태기가 왔지만 검도를 애초에 시작하게 된 건 네 덕분이지. 네가 하도 추천을 해서 3개월만 등록해서 해보자 하고 했던 게 지금까지 왔으니까. 근데 너는 사실 관원으로서만 검도를 한 게 아니잖아. 애초에 애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검도를 배운 거니까.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범 일을 약 3년을 했지. 그 기간 동안에 이제 애들을 가르치면서 배우고 느낀 점이 있다면 말해줄래?

이게 정말 어려운 질문이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얻은 게 없는 것 같단 생각이 컸다? 3년 동안 이 일을 했는데 배운 게 없는 것 같았달까. 검도 자체를 배웠다는 건 너무 1차원적이니까. 아이들을 지도해야 했으니까 해야만 했던 거고, 그 외적으로는 배운 게 없는 것 같아서 솔직히 허탈한 마음이 조금 들었는데, 좀 더 깊게 생각해 보니까 일단 관장님한테 배운 게 너무 많았던 것 같아.


왜냐하면 사범이라는 직책 자체가 관장님이랑 제일 가까울 수밖에 없잖아. 그렇게 가까이 있으니까 그분의 일거수일투족을 거의 다 본단 말이야. 관원으로서 보는 관장님의 모습과 내가 사범으로서 보는 관장님의 모습은 상당히 달랐어. 도장을 운영하는 사업자로서의 관장님은 굉장히 멋있으셨고, 본인만의 확고한 신념이 있는 분 같았달까.

 

또 어른으로서 좀 많이 배웠던 것 같아. 검도장에 오는 아이들은 수월한 편이 아니거든. 다른 곳을 다니다가 부득이하게 타의로 온 경우가 많기 때문에 말을 안 듣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생각하면 돼. 하기 싫다고 울면서 밖으로 뛰쳐나가는 애를 잡아다 오고, 그런 아이들을 가르치고 바로잡아야 했으니까 어쩔 수 없이 인내심도 많이 늘고 그랬던 것 같아.

    

그리고 하나 더 말하자면 내가 원래는 생각을 많이 거치지 않고 말이 먼저 나가는 타입이었는데, 애들을 이해를 시켜야 되니까 더 쉬운 단어로 풀어서 말하게 되더라고. 그러다 보니 그냥 평소에 말할 때도 어려운 단어를 잘 안 쓰려고 하게 된 것 같아.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 대화를 나눌 때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말하려는 일종의 습관이 생겼어.


Q. 지금 너의 인생에 있어서 모토 같은 게 있다면 말해줄 수 있어?

‘후회할 일을 하지 말자.’ 이게 내가 지금도 좀 그렇긴 한데 예전에는 사람 눈치를 엄청 많이 봤거든. 내가 초등학교 때 무리에서 약간 일이 있었어. 여자애들이 8~9명 되는 무리였는데 그 사이에 있다 보니까 다 기싸움이 엄청난 거야. 여기서 도태되는 순간 그 안에서 끝이니까. 그런 경험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커서 사람들 눈치를 엄청 많이 보는 것 같아. 이를테면 내가 이렇게 말함으로써 상대방의 기분이 조금 나빠 보이면 아예 입을 닫아 버린다던가, 내가 싫어하는 걸 남이 먹고 싶어 하면 괜히 입씨름하기 싫으니까 맞추는 거지.

 

그렇게 남한테 내 기준을 맞추면서 살다 보니까 나중에 되돌아봤을 때 후회되는 게 너무 많은 거야. 그렇게 안 하고 그냥 이렇게 하는 게 더 나았을 텐데. 그때 휘낭시에 안 먹고 에그타르트 먹었으면 내가 좀 더 만족감 있는 간식 시간을 가질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면 후회가 남는다는 걸 어느 순간부터 자각해서 남 눈치를 덜 보기 시작했던 것 같아. 이게 좋은 게 뭐나면, 만약에 실패를 하거나 뭐 안 좋은 일이 생기더라도 남 탓을 안 하게 되는 거야. 그리고 그 상황 속에서 온전한 내가 해결책을 찾으려고 해. 왜냐하면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 이게 잘못될지언정 후회는 안 하는 거지. 어떤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내가 찾음으로써 성장해 나가는 그런 기분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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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너와 내가 공통점이라고 생각하는 게 ‘기록하는 사람’이라는 거거든. 사실 나보다 네가 블로그를 먼저 하기 시작했잖아. 네 글 보면서 ‘나도 쓰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제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블로그를 시작했던 것 같은데. 나도 되게 기록하는 걸 중요시하는 편이거든. 예전에는 기록 자체, 기록을 남기고 나서 그걸 보는 게 행복하고 그랬다면 지금은 뭔가 쓰는 과정에서 쾌감을 느끼는 것 같단 말이야. 글을 적을 때 과거의 기억을 다시 불러와서 다시 되새긴다는 것 자체가 나한테 너무 의미가 크고, 그래서 나는 계속 기록을 하는 것 같은데. 너에게 있어서 ‘기록’이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

나도 너랑 비슷해! 처음에는 그때 한창 ‘블챌’이라고 해서 블로그 챌린지가 붐을 막 일으킬 때였어. 그래서 너도 나도 블로그 다 써서 포인트 받겠다고, 이모지 스티커 받겠다고 하던 때. 너도나도 다 쓰기 시작하니까 나도 한번 써볼까 하고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했다가 그 이후부터는 쓰고 나서 나중에 보는 거에 대한 재미를 좀 느꼈단 말이지. 

 

왜냐하면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 때문에 영원히 기억하지 못하니까. 지금은 내가 이렇게 생각했는데, 일주일 뒤에 보면 이렇게 생각 안 할 수도 있잖아. 그러니까 과거에 난 이랬구나, 이런 일도 있었구나 하면서 재밌어하는 것 같아.

   

근데 요즘은 쓰는 것 자체에 대한 재미를 좀 느끼기 시작한 것 같아. 너는 쓸 때 어떻게 쓸지 모르겠는데 나는 사진을 찍고 그 순간에 일단 블로그에 올려서 저장을 해두거든. 그리고 사진 보면 기억이 나니까 쓰는 걸 나중에 한 번에 쓴단 말이야.

보통 다들 그렇겠지만, 안 좋은 일은 잘 안 쓰게 되더라고. 쓰더라도 약간 웃음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 만한 그런 안 좋은 일을 쓰거나, 대부분 좋은 일만 적곤 하니까. 그 기억을 가지고 찍은 사진을 보고 쓰면서 나도 기분이 좋아지는 거지. 그때 기억을 다시 상기시키잖아. 그 과정 자체가 너무 행복하더라고! 수정 기능이 있으니까 발행을 했어도 갑자기 생각나는 게 있으면 붙여서 쓰고. (웃음)


Q. 네 블로그를 살펴보면, 약 4년간 만나온 남자친구와 함께한 기록도 꽤 많은데. 그만큼 꾸준히 써왔잖아. 좀 궁금했어, 장기 연애를 해온 너는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내가 질문지를 받아보고 이걸 제일 고민을 엄청 했거든. 난 사랑이 아직도 뭔지 모르겠어. 심지어 사전적 정의도 찾아보고 했는데도. 사전에는 대상을 귀중하게 여기는 마음가짐이라고 나와있던데, 나는 잘 이해가 안 가더라고. 세상에 사랑은 많잖아. 친구에 대한 사랑, 가족에 대한 사랑, 사물에 대한 사랑, 음식에 대한 사랑 등등 많은데 애인에 국한된 사랑으로 얘기해 보자면.

 

나는 처음부터 얘를 사랑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단 말이지? 근데 어느 순간 ‘나 얘를 사랑하나?’라고 느꼈던 게 내가 제육볶음을 먹고 있었어. 근데 남자친구가 제육볶음을 좋아해. ‘이거 얘가 좋아하는 제육 볶음인데’ 카페를 가서 아이스티를 마시는데 ‘이거 남자친구도 좋아하는 음료인데’ 하는 생각이 들 때. 그리고 아무래도 오래 만나니까 길거리를 걷다 보면 ‘여기 예전에 얘랑 같이 걸으면서 무슨 얘기 했던 곳인데’ 하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하게 되는 거지.

 

자꾸 내 일상 속에 얘가 소소하게, 불현듯이 들어와. 그러면서 ‘나 얘 좋아하나 보다, 많이 좋아하나 봐’ 이렇게 되는 것 같아.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속담이 있잖아, 딱 그거인 것 같아.

 

어느 누구도 명료하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기도 해서, 사랑에 대한 네 생각이 궁금했어.

넌 일상 속에서 그 사람이 스며들어 있다는 걸 느낄 때 사랑을 체감하는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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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살아가면서 힘들고 지치는 순간이 있을 거잖아. 무언가를 열심히 하다가 그게 딱 끝났을 때 번아웃이 올 수도 있고. 지친 너를 일으켜 줄 수 있는, 너한테 가장 힘이 되어주는 게 뭔지 말해줄 수 있을까?

사람들인 것 같아. 나는 인간관계가 되게 좁아. 정말 넓지 않고 굉장히 좁은데 그 테두리 안의 사람들과 되게 깊게 친하다고 생각하거든. 물론 내가 평소에 연락도 잘 안 하고 자기 할 말 있을 때만 하고, 가끔 보면 약간 비즈니스 관계 같긴 해. 근데 이건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이 다 그러더라고. 내가 그래서 내 친구들도 그렇게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웃음)

 

나한테 무슨 일이 있거나,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상관없이 그거에 대해서 얘기를 했을 때 두 발 벗고 다 나서줄 수 있는 친구들인 거야. 입장이 바뀐다고 해도, 나 같아도 발벗고 나설 수 있는 사람들이라. 내가 뭐 어려운 일이 있어서 극복해 내지 못할 것 같다고 말해도 앞에서 손잡고 끌어주고 뒤에서 떠밀어줄 사람들이라서 그 사람들 생각하면 못할 게 없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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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10년 전의 너와 지금의 너를 비교했을 때,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이 뭐라고 생각해? 나 질문 만들면서 이거 개인적으로 되게 궁금했다.

이건 딱 세 가지로 말할 수 있어. 첫 번째, 일단 외형적으로 많이 변했어. 치아 교정도 했고, 체형적으로도 많이 바뀌었고, 원래 쌍꺼풀도 한쪽만 있었는데 이젠 양쪽 다 있고. 외모가 가장 많이 변한 것 같고.

 

두 번째는 이걸 뭐라 해야 되지? 옛날에 나는 현실성보다는 감수성이 좀 더 있었다고 생각하거든. 지금 MBTI로 따지자면 파워 F랄까. 나 오늘 우울해서 머리 잘랐다고 누군가 말하면 ‘무슨 일 있어? 왜 우울해?’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의 나는 ‘머리 잘 됐는데?’라고 말하는 사람이 됐어.

예전에 비해 감수성이 줄어들었다기보단 현실 감각이 많이 올라간 것 같아. 오죽하면은 남자친구가 뭐냐 전에 그 말도 했는데, ‘자기 원래 F였잖아. 왜 갑자기 T로 바뀐 거야? 너 진짜 매정하다.’ 뭐 이런 말들? (웃음)

   

그리고 세 번째는 자존감. 아까도 말했는데 원래 자존감이 되게 낮았단 말이야. 남 눈치 많이 보는 게 그것 때문이었어. 근데 지금은 정말 많이 올랐다고 생각하거든. 솔직히 남자친구 영향이 제일 컸는데, 연애 초반에 나보고 예쁘다, 좋아해, 귀엽다, 사랑스럽다 등등 온갖 좋은 말을 다 해줘도 기분은 좋은데 ‘내가 왜 어째서? 그런 말을 들을 사람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었거든.

 

이제 그런 말을 하도 많이 듣고 그렇게 대우도 많이 해주니까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이 된 것 같은 거지. 자존감이 오르니까 그런 말을 들었을 때도 ‘맞아. 나는 그런 사람이야.’라는 확신이 들고 그게 내 일상에도 영향을 많이 끼치더라고. 도전해 볼 만한 일에 있어서도 예전에는 나 같은 사람은 이런 거 못할 것 같았다면, 지금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가면 일단 해봐. 안 될 수도 있지만 일단 해보고,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되면 오히려 좋은 거고. 이런 느낌으로. 그래서 그 차이도 생각보다 큰 것 같더라고.


Q. 이렇게 딱 3개 좋네. 뭔가 좋은 쪽으로 많이 변한 것 같아서 내가 다 뿌듯하다. 혹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을까?

이 질문들을 보면서 평소에 안 해볼 법한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 오로지 나에 대한 이야기인데, 나에 대해서 그동안 이만큼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거야. 나는 내일 밥 뭐 먹지, 내일은 무슨 하루를 보내지 이런 1차원적인 생각만 하지 이런 생각들은 안 하니까.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인 것 같아서 되게 좋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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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했던 이의 이면을 발견하는 것. 특정 사건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는 것. 

 

녹음본을 들으며 인터뷰이의 억양과 감정을 세심하게 살필 수 있고, 다시금 정리하는 과정에서 애정이 샘솟는다. 대화를 나눈 것뿐인데, 이렇게 두터운 느낌이 든다는 건 인터뷰만의 대체 불가한 매력이다. 친한 사이이지만, 한 뼘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이 글의 공백을 빌려 흔쾌히 인터뷰 요청을 받아준 인터뷰이 J에게 진한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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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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