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랑이라는 이름의 치열한 기적 - 올모스트 메인

창작집단 현인의 '올모스트 메인'
글 입력 2024.03.31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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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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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우리는 살면서 한 번쯤은 저마다의 멜로 드라마를 남긴다. 다른 명분이 아닌 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새삼스럽고 낯선 감정의 파도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영화 속 대사에서도, 책이나 노래 가사에서도, 하물며 친구들과의 수다 속에서도 우리 주변엔 온갖 종류의 사랑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그렇게 흔한 게 사랑인데도, 그 형태를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것 역시도 사랑이다. 일대일의 관계에서 탄생하는 드라마는 당사자 둘 말고는 그 누구도 깨뜨릴 수 없는 그들만의 세계라서 그렇다.


2018년 직장인 극단으로 출발해 100명 규모의 단체로 성장한 '창작집단 현인'이 선보인 존 카리아니 원작의 '올모스트 메인' 역시도 그런 여덟 개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다. 극중 배경은 눈 쌓인 추운 겨울, 운이 좋으면 오로라가 뜨는 북부 메인 주의 한 작은 마을. 지리적으로 행정 정리가 되지 않아 지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곳을 주민들은 거의 다 됐다며 ‘올모스트’라 부른다. 흰 눈이 쌓인 숲속의 시골 마을 한켠에는 이곳 주민들이 직접 세웠을 법한 표지판이 자리잡고 있다. “WELCOME TO ALMOST MAINE”라는 문구 중에서도 빨갛게 칠해진 ‘L’와 ‘O’, 뒤집힌 ‘A’와 ‘E'가 눈에 띈다.


도심으로부터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이곳은 사랑이라는 이름의 기적이 일어나기 충분한 장소다. 옷을 몇 겹씩 껴입어야 하는 추운 날씨 덕에 이곳 사람들에게는 사랑의 온기가 유독 뜨거울 것이다. 그래서인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여덟 개의 이야기들은 일상의 한 조각일 뿐이지만 마냥 당연하지는 않다. 사실은 사랑이란 감정의 특성이 원체 그렇다. 사랑은 인간의 본성에 기반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그 두 명에게만큼은 지구에서 일어나는 어떤 사건보다도 의미심장한 일생일대의 사건이 된다. 더군다나 오로라가 종종 하늘을 장식하고 지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곳이라니, 올모스트는 그 어떤 기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장소다.

 

가까워질수록 멀어지고 멀어질수록 가까워는 남녀, 결혼하고 싶은 여자와 아무 생각이 없는 남자, 제재소에서 일하며 오랫동안 친구로 지내온 남녀, 세탁실에서 일하는 여자와 통각을 느끼지 못하는 남자,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오래전의 청혼에 승낙하러 163마일을 달려온 여자, 클럽에서 우연히 재회한 옛 연인, 각자 데이트를 망친 절친한 사이의 두 남자, 그리고 오로라를 보기 위해 이곳을 찾은 여자와 그녀에게 마당을 빼앗긴 남자까지. 이중에서도 극의 색깔을 보여주는 동시에 극의 시작과 끝을 장식했던 두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하려 한다.

 

 

 

[돌려줘]



 

“그래서, 너한테 준 사랑? 그거 다 가져갈 거야. 

어쩌면 필요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나한테는 네가 준 사랑 밖에 없으니까, 그거 가지고 다시 새 출발할 수는 없잖아.

네가 준 사랑을 다른 남자한테 줄 순 없잖아.”

 

 

한 여자가 씩씩대며 남자의 집 마당으로 쳐들어와 난데없이 내가 준 사랑을 내놓으라고 외친다. 이들은 이미 헤어진 옛 연인이다. 결혼 얘기가 나왔을 때 남자의 대답이 영 미적지근하자 실망한 여자가 이별을 고했던 상황 같다. 여자는 네가 준 사랑은 이제 둘 곳도 없고 처치 곤란이니까 가져가 버리라며, 그 대신 내가 준 사랑을 죄다 돌려받아야겠다며 상대를 다그친다. 그리고 자기 몸집만한 빨간 자루를 몇 개씩이나 짊어지고 와서 바닥에 털썩 내려놓는다. 모르긴 몰라도 둘 사이가 연인 관계였을 때 남자가 그녀를 어지간히도 사랑했었나 보다.

 

내 사랑을 빨리 내놓으라고 외치는 여자의 언성이 점점 높아진다. 하지만 그녀가 화를 낼수록 짙어지는 건 미움이 아니라 미련이다. 결혼 이야기를 꺼냈을 정도라면, 아마 이들은 후회 없는 연애를 했을 거다. 상대를 믿고 모든 걸 쏟아부은 그녀에게 지금의 이별은 준비되지 않은 이별이다. 마음은 정리되지 않았는데 야속하게도 상황이 먼저 정리되어 버렸으리라.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한 상대를 떠나보내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기에는 도무지 자신이 없다.

 

남자는 여자의 등쌀을 이기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며 뭔가를 건넨다. 하지만 남자의 손에 들린 건 동전지갑만한 주머니 한 개뿐이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은 그녀가 내가 준 마음이 고작 이 정도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려는 순간, 주머니 안에서는 결혼반지가 나온다. 입을 틀어막는 여자에게 남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집에도 네가 준 사랑이 너무 많아서 둘 곳이 없었다고, 아버지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여쭤보니 그 사랑을 보관할 수 있는 자리는 결혼반지뿐이라고 대답했다고.

 

불과 몇 초 전의 실랑이가 무색하게도, 여자는 남자의 품에 안긴 채 약지손가락에 끼워진 결혼반지를 바라보며 눈물 고인 눈으로 환한 미소를 짓는다. 분명 서로간의 마음의 차이가 있었음에도 이들에게 해피엔딩이 주어진 것은 결국 각자의 진심이 일치했기 때문일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마음 속에 지니고 있었던 저마다의 사랑은 각자의 자리가 아니라 오직 서로의 장소만을 가득 채우고 있었으니, 이제 그 다음 장소는 이들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될 것이다.

 

 


[그녀의 심장]


 

 

“인공 심장을 이식하고 회복하고 있는데 그 사람이 찾아왔어요.

금방 퇴원하려는 중이었는데 그 사람이 돌아오고 싶다고 하더군요. 근데 제가 그랬어요. 

“나 새 심장을 달았어요. 미안하지만, 새 심장이 싫대요.“

(...)

저는 사랑을 할 수 없어요.

내 새 심장은 그냥 펌프예요. 피나 펌프질해 주는 가짜 심장이에요.

사랑을 하던 심장은 고장나 버렸어요. 

이제는 다시 사랑을 할 수 없어요.”

 

 

겨울옷을 껴입은 한 여자가 팜플렛을 들고 서성인다. 현관을 열고 자기 집 마당으로 나온 남자는 그녀를 발견하고 흠칫 놀란다. 여자가 무단침입을 한 모양이다. 남자를 본 여자는 그에게 팜플렛에 '이곳 주민들은 오로라를 보러 온 관광객이라면 어떤 이방인에게도 친절하게 마당을 내어준다'고 적혀 있다며, 순진하게 여기서 오늘밤을 보내면 안 되냐고 묻는다. 남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결국 그녀의 눈빛을 거절하지 못하고 승낙한다.


그가 그녀에게 첫눈에 반했기 때문이다. 남자는 오로라를 볼 기대에 가득 찬 여자와 대화를 나누다가 충동적으로 그녀에게 입을 맞춘다. 하지만 여자는 화들짝 놀라며 그를 밀어낸다. 그리고 난 남편이 있다고 소리친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은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죽은 사람의 영혼은 오로라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며, 자긴 남편을 보내주려고 여기까지 왔으니 나에게 이러지 말라고 화를 낸다.

 

사실 그녀의 심장은 인공 심장이다.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웠던 그녀의 남편은 심장의 수명이 다해 새로운 심장으로 교체하고 회복 중이던 그녀에게 뒤늦은 용서를 구하며 재결합을 하자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가 뱉은 말은 새로 갈아끼운 내 심장이 이제는 당신을 사랑하지 못한다는 대답이었다. 그렇게 돌려보낸 남편은 병원 밖을 나서는 길에 교통사고가 나 세상을 떠난다. 그녀는 남자 앞에서 남편이 죽은 건 내 탓이라고, 내가 남편을 죽인 것과 다름없다고 자책한다. 아마 그녀는 이 사건으로 무너진 줄 알았던 남편을 향한 사랑을 뒤늦게 다시 확인했을 것이다. 

 

그녀의 사랑은 이미 유효기간이 지났고, 수명이 다했고, 고장나 버렸다. 그런데도 그녀는 지금까지도 그때의 옛 심장을 그리워한다. 지금 마당에서 사랑을 고백하는 이 남자에게도 내 현재의 심장은 가짜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녀의 품 속에는 아직도 부서진 옛 심장이 든 주머니가 있다. 아직 과거에 머물러있는 그녀를 숨쉬게 하는 건 새 심장인데도 말이다. 남자는 그녀를 붙들고 난 수리공이니까 뭐든 고칠 수 있다고, 당신의 옛 심장도 내가 말끔히 고쳐 주겠다고 애절하게 말한다. 그녀의 고장난 심장은 과연 다시 뛸 수 있을까? 그리고 오늘의 밤하늘 위로 과연 오로라가 떠오를 수 있을까? 

 

 

 

사랑이란 치열하게 이뤄내는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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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이야기 속엔 잔잔한 유머가 섞여 있다. 하지만 마냥 흐뭇한 미소가 만면에 퍼질 때도, 씁쓸한 상황에 안타까운 웃음이 터질 때도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다. ‘올모스트 메인’은 사랑의 달콤함보다는 그 너머에서 ‘다름’을 이겨내려는 치열함에 대한 이야기라서 그렇다. 모든 연인들은 마음의 깊이에서, 생각의 방향에서, 각자의 속도에서, 혹은 저마다의 현실 사이에서 다름을 발견한다. 그러나 이 간극을 억지로라도 좁혀서 상대와 함께하려고 몸부림치는 건 다름아닌 사랑 때문이다.

 

사랑은 안간힘을 쓰지 않고선 완성될 수 없다. 사랑의 과정이란 어떻게 보면 참 비효율적이고 번거롭다. 연인은 둘도 없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고, 또 혈연이 닿지 않은 이들 중에선 가장 가족에 가까운 존재다. 하지만 그 위치가 이루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절대적인 데 비해 두 사람 사이의 공통지대는 친구나 가족의 관계에 비하면 정말이지 보잘것없다. 연인은 가족처럼 피를 나눈 사람도, 친구처럼 긴밀한 관계를 오래 쌓아온 사람도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상대에게, 그리고 상대가 내게 가장 특별한 존재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이 세워지면 둘 간의 필사적인 노력이 시작된다. 지금껏 따로 존재했던 두 개의 점이 일직선으로 연결되고, 또 중간부의 어느 한 지점에서 서로를 만나기 위해 끝없이 나아가는 과정이다. 물론 둘의 마음이 완전히 일치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그 치열한 시간은 두 점이 '올모스트', 거의 하나가 될 때까지 계속된다. 그 끝엔 특정한 완결도 뾰족한 목표도 없다.

 

그래서 사랑은 차라리 기적에 가깝다고 여길 때 그 모든 순서가 납득된다. 사랑이 가져다주는 특권도 바로 여기에 있다. 원하는 곳으로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이 언제나 나와 함께한다는 것, 손익이나 당위를 정당화하지 않아도 어딘가에 순수한 열의를 완전히 쏟아부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평범하고 일상적인 하루하루를 살다가도 어느 한 때 경이의 순간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사랑하는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기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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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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