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일단, 다시, 그리고 또 일단

글 입력 2024.02.20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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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 writing-923882_1280.jpg

 

 

어쩌다보니 글에 대한 글을 쓰는 것도 벌써 몇 번째다. 사실 이번 공통 주제 글쓰기에서 자신만의 글 기고 노하우를 다룬다는 것을 보고선 꽤나 참여를 망설였다. 노하우라니, 난 그런 걸 정리해낼 수 있을 정도로 능숙하게 글을 다루는 사람도 아닐 뿐더러 계획적인 글쓰기와도 영 거리가 멀기 때문이었다. 그럴듯하게 써낼 내용이 있긴 할까 싶어서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마지막의 마지막에 참여 의사를 표시했다. 언제가 됐든 좋아하는 것에 대한 얘기를 하는 건 지겹지 않고, 나에게 있어서 글은 마냥 수월하지만은 않지만 따져보면 확실히 '좋아함'의 영역에 속해있는 것이니까.

 

여전히 첫 문장을 시작하는 건 어렵고 지난 글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없다. 글감이 떠오르지 않아 종일 넋을 놓고 있기도 한다. 다만 조심스레 자부할 수 있는 건, 나에게는 이 순탄치만은 않은 과정 속에서 데굴데굴 구르고 또 넘어져가면서 무언가 꼬질하게라도 결과물을 내놓아본 경험들이 있다는 점이다. 거창한 노하우랄 것까진 없지만, 글이 안겨주는 갖가지 난관을 마주하며 쌓아온 나름의 요령이나 규칙들을 조금 풀어보고자 한다(글쓰기에 정답이야 없다, 본문에 전제된 건 어디까지나 '나의 경우는 이러했다'는 가벼운 뉘앙스 정도다).

 

 

 

일단, 다시, 그리고 일단


 

뭐가 됐든 일단 앉아야 한다. 사실 말이 쉽다. 개인적으로는 글을 쓰는 도중보다 이젠 정말 써야한다고 마음을 먹는 이 순간이 가장 어렵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을 글을 쓸 때만큼 절박하게 체감하는 순간이 없다.

 

자꾸 시작을 미루게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글을 쓰는 작업은 체력적으로도, 심적으로도 꽤 많은 품이 드는 일이라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가끔 드물게 이런 결심을 하지 않더라도 글이 술술 써지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그 언제가 될지 모르는 때를 기다리다 보면 마감 기한이 코앞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월히 글감이나 전개가 떠오르는 가끔의 경우에도, 급박하게 쓴 것보다 여유를 갖고 여러 번 곱씹을 기회를 가져 본 글이 더 만족스럽다는 건 말할 것도 없이 명백하다. 결과물이 균질적이려면 생각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을 스스로 보장해두어야 한다.

 

아무튼 게으른 몸을 일으키는 방법이야 사람마다 워낙 천차만별일 테지만, 규칙적으로 정해진 시간을 글에 할애할 수 있을 정도의 부지런함은 불행히도 갖추질 못했다. 분명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이들이 있을 테니, 게으른 사람으로서의 요령이라도 몇 자 적어보자면, 조금이라도 시작의 막막함을 덜어줄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활용하는 편이다. 일단 노트북을 펴기라도 하기 위해서, 일부러 스마트폰이 아닌 노트북으로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두거나, 영상을 몇 개 본다든가 하는 식이다. 일종의 워밍업인데, 정말 일차원적이지만 은근히 효과가 쏠쏠하다. 그렇게 앉아있다 보면 조금씩 활력이 돌고 놀 만큼 놀았으니 몇 자라도 적어보자는 마음이 든다.

 

하지만 가장 막막함이 덜어지는 순간은 아무래도 글의 중심이 되어줄 글감이 확실히 정해진 경우인 듯하다. 주기적으로 글을 써야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보니, 평소에도 틈틈이 소재로 쓸 만한 생각들은 마음속으로 한번씩 정리를 해 둔다. (보통은 부담스러워서 메모까지 해두지는 않지만)일상 속에서 느낀 여러 감정과 생각들을 스쳐지나가게 두지 않고 이런 건 글로 좀 더 파고들어봐도 될 것 같다, 하고 상기해보는 식이다. 이처럼 개인적인 경험에서 아이디어를 착안하는 경우에는 보통 에세이를 쓰고, 조금 더 구조화된 글을 쓰고 싶을 때엔 책이나 영화처럼 생각을 환기시켜줄 수 있는 매체들을 의도적으로 찾아본다.

 

특히 여러 매체를 접하는 건 큰 도움이 된다. 그 자체를 글감으로 삼고 분석하는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게 아니더라도 생각의 범위를 넓히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나의 생활을,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해선 다른 이들이 자신의 세계를 그려내는 방식을 익혀둘 필요가 있다. 그것이 모범적이든 그렇지 않든, 다양한 창작의 언어를 익혀두면 그 사례를 바탕으로 나의 언어를 구축해나갈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자투리 같은 감상과 생각들을 모아나가다 보면, 확실하게 글로 쓰고 싶은 소재들이 생겨난다. 개인적인 일상을 곱씹든, 다양한 매개를 이용하든, 어떤 방식으로든 나만의 생각을 전개해나가는 습관을 들여놓으면 어느 순간 글에 대한 막막함이 줄어든다. 글을 쓰기 위해 글감을 모은다기보단, 내 마음을 정리하고 명확히 하기 위해 글이라는 수단을 활용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아직 뚜렷하진 않지만, 내 속에 뭐든 꺼내 쓸 만한 것이 조금이라도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으면 글을 쓰기 위해 앉는 순간이 그렇게까지 두렵지 않다.

 

경험과 생각과 세상과 타인. 이들을 마음 속으로 엮어보는 습관은 글의 매력적인 도입을 쓸 때도 적극 활용된다. 도입에 꽤 많은 공을 들이는 편이라(그래서 시작하기를 이렇게나 어려워하는지도 모르겠다) 그에 대해 따로 글 한 편을 쓸 수도 있을 정도지만, 간단히 얘기하자면 내 생각을 일방적으로 갑자기 '들이미는' 식이 아닌, 내게 있었던 사고의 흐름이 독자들에게서도 자연스럽게 '재현'될 수 있는 도입을 쓰는 것이다. 공감대를 유발한다든지, 유명한 작품이나 경구를 인용한다든지,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동기 중 가장 호소력이 짙은 부분을 앞서 제시한다든지. 그러려면 경험과 생각, 생각과 문장, 문장과 문장간의 연결이 부드러워야 하고, 이 부드러움은 앞서 기술한 '생각하는 습관'에서 비롯하기 마련이다(나도 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물론 일상을 지내다보면 저런 의식적인 노력을 하지 못할 만큼 정신없이 하루하루가 지나가기도 하고, 모아뒀던 소재가 여러 이유로 무의미해지기도 한다. 막상 첫머리를 시작하니 그 이후를 이어나갈 만한 얘깃거리가 크게 없다든지, 이미 비슷한 논의가 충분히 있어서 쓰는 동안에도 진부함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든지. 그런 '글감 고갈' 상태에서는 앞서 말한 일차원적 워밍업의 시간을 충분히 가지면서 역으로 내 생활을 한번 더 톺아본다. 예전에 쓴 글,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읽어보기도 하면서 마음을 말랑히 풀어두고 있다 보면, 참 신기하게도 뭐라도 쓸 만한 건덕지가 생겨났던 것 같다.

 

가끔은 이런 시도들에도 불구하고 도통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땐 '일단 앉기'에 이어 '일단 쓰기'의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 뭐가 될진 모르겠지만, 명확한 글감이나 소재따윈 전혀 없지만, 일단 첫 문장이라도 써 보는 것이다. 엉망인 걸 알면서도 써나가다 보면, 엉켜있거나 묻혀있던 생각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어떤 방향을 가리키게 된다. 목적지를 정해두지 않고 쓰는 글은 또 그 나름의 재미가 있다. 모래 속에 파묻힌 유적을 살살 발굴하는 듯한 기분. 그 결과물은... 그닥 완성도 있거나 만족스럽지 않을 수도 있지만, 뭐가 됐든 또 한 편의 글을 완성시켰다는 사실만으로도 일종의 위안이 된다. 어쩌면 이렇게 잘 풀리지 않는 순간들이야말로 글쓰기의 근육을 튼튼히 하는 데 가장 많은 일조를 해 왔을지도 모르고.


그런데 이렇게 '일단' 앉아서 '일단' 쓴 글은, 곧바로 모두에게 내놓기에는 너무 날 것이다. '다시'의 과정을 반드시 한 번은 거쳐야 한다. 여기서의 '다시'는 오탈자 체크처럼 기본적인 검수도 물론 포함하는 것이지만, 특히 강조하고 싶은 건 구조적인 검토다.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쓰는 편인지라, 나에게는 당연한 논지 전개가 독자에게는 어색할 수 있다. 너무 당연해서 건너뛰었던 논리, 결과적으론 허술해진 부분을 보강하거나, 좀 더 매끄럽게 읽힐 수 있도록 문단 순서를 손보는 등의 후작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작업을 하기 위해선, 내 글에서 한 발짝 거리를 둬야 한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가장 쉬운 거리두기는 바로 시간차를 두고 읽어보는 것이다. 완성된 초고를 다음 날 읽어보면, 분명 쓸 때는 거슬리지 않았지만 흐름이나 논리가 어색한 부분들이 눈에 띈다. 글을 읽는 지면을 바꿔보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노트북으로 작성했던 글을 모바일로 읽어보거나, 최종 출력된 형태로 읽어보면 편집 툴에서 작성해둔 것을 읽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글이 읽힌다. 또 아트인사이트의 경우 웹상에 발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쇄까지 해보지는 않지만, 실제 지면에 실릴 글은 반드시 실물 상태로 한 번 읽어본다.

 

여유를 두고 다시 읽어 보기엔 시간이 부족한 경우도 종종 생기는데, 그럴 땐 음독을 해본다. 눈으로만 읽을 때보다 내용이 좀 더 또렷이 인식되는지라, 시간을 두고 다시 읽었을 때와 비슷한 효과가 있다. 또 소리내어 읽어보면 글의 리듬감이랄까, 하는 것이 느껴지는데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 글이 얼마나 읽기 편하고 자연스러운지가 어느 정도 가늠이 된다. 가독성을 위해 짧게 끊은 문장이 너무 뚝뚝 끊기는 것처럼 들리거나, 반대로 너무 호흡이 길어 읽기 어색한 문장이 있으면 다듬는다. 사실 글을 쓰는 단계에서부터, 마음 속으로 문장을 틈틈이 읽어보면서 운율적으로 툭툭 걸리는 부분들이 최대한 없도록 작성하면 경험상 더욱 좋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 '다시'가 지나치면 안 된다. 글을 고치고 있다 보면 완전한 완성이란 게 있긴 할까, 싶을 만큼 퇴고는 끝이 없다. 이것저것 사소한 부분들을 계속 고치다보면 글이 프랑켄슈타인마냥 너덜너덜해진다. 오히려 초고가 더 나았다 싶을 정도로. 그래서 대폭 수정을 할 때는 초안을 따로 살려두고, 삭제한 문장들은 따로 모아 적절히 배치할 수 있는 곳에 배치하거나 다른 글에서 활용해보거나 한다. 그렇게 '다시'의 과정을 거친 글은, 처음보다는 좀 더 봐줄 만한 것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건 마음을 내려놓는 일이다. 너무 공을 들이고, 너무 욕심을 부리면 이 글이 완벽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에 영원히 글을 완성시키지 못하게 된다. 처음에 '일단 쓰자'의 마음을 먹었던 것처럼, '일단 끝내자'는 마음을 먹어야 할 때가 온다(시간에 쫓겨 이 순간이 반강제적으로 주어지기도 하지만). 그렇게 반쯤은 체념하는 마음으로 글을 놓아주면, 그 순간 글은 독자에게로 전달되어 또 다른 생명력을 얻는다. 일단, 다시, 그리고 또 일단. 약간의 무모함과 신중함의 연속 가운데서 글은 태어나는 것이다.

 

거창해지지 않겠다고 했지만 또 구구절절 아주 길어지고 말았다. 여기서 글을 마무리지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내 식의 내려놓음이라고 민망하게 변명해봐도 될까. 아무튼 각설하자. 아무래도 좋다. 지금까지의 긴 얘기는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본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확실히 글에는 다른 매개로는 얻을 수 없는 즐거움을 안겨주는 구석이 있다는 점이다. 길고 지난해 보여도, 무언가 존재를 잡아매는 묘한 글의 힘에 이끌린 탓에 이 게으른 사람도 지금 이렇게 무언가를 쓰고 있다.

 

결국 모든 걸 요약하면 다음의 간단한 권유가 남는다. 어떤 방식이든, 어떤 형태로든, 일단 자신의 글쓰기를 시작해보라는 것. 나의 생각과 나의 언어를 마주하는 즐거움, 그 특권은 생각보다 꽤 강력하니까!

 

 

 

황수빈.jpg

 

 

[황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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