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제14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 미리보기 [영화]

우린 흔들리지 않지
글 입력 2020.11.30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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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1일부터 10일까지 제14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이 진행된다. 여성인권영화제 피움은 한국여성의전화 주최로 2006년에 시작되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1983년 첫발을 내디딘 여성인권운동단체로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이주여성문제 등 여성에 대한 모든 폭력으로부터 여성인권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여성폭력의 현실과 심각성을 알리고 피해자의 생존과 치유를 지지하는 문화를 확산하기 위한 활동의 일환으로 여성인권영화제를 진행하고 있다.

 

영화제 피움은 ‘여성에 대한 폭력과 인권’이라는 주제의식을 내세운다. 폭력과 차별을 가능하게 하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깊이 있게 성찰하고, 수많은 고통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아 성차별적이고 폭력적인 우리 사회를 바꿔가는 피해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고자 한다.

 

 


여성인권영화제와 만나다


 

여성인권영화제와 만난 건 재작년 2018년이다. 당시 자원활동가 모집 공고를 봤고, 모집대상에는 ‘성폭력과 성차별이 난무하는 세상에 의심을 품고 계신 분’이라고 명시되어있었다.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나는 한껏 예민하고 화가 나있는 상태였고, 지원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여태 대학교 내에서 학회, 동아리 활동만 했었기에 학교 밖 사람들을 만날게 조금 겁이 났다. 지원서를 쓰고, 면접을 봐야 했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야 했기 때문이다. 만약 자원활동을 하게 된다 해도, 주변에서 어떻게 반응할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모집대상의 저 문장이 잊히지가 않았다. 계속 머릿속에 맴돌고 아른거려, 결국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간신히 지원을 했다.

 

운이 좋게도 면접을 보러 갔고, 이벤트 팀에서 영화제 자원활동가로 활동하게 되었다. 대외 활동도 처음이고, 영화제 자원활동도 처음이고, 여성인권 관련 활동도 처음이었다. 처음이라 모든 게 낯설고 서툴렀지만, 여름의 끝과 가을의 시작 틈에서 만난 여성인권영화제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즐거웠던 기억으로 가득 차있다.

 

자원활동을 한다는 소식에 영화제를 찾아와 준 친구들. 장시간 영화제 현장에 머물며 함께했던 활동가분들. 설치된 이벤트 부스를 찾아와 이것저것 물어보고 응원해주시던 관객분들. 영화제에서 만난 새롭고도 다양한 분들 덕분에 용기를 얻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내 옆에 있네.’라는 위로를 받았고, 또 그 사실에 감사했다. “서로가 서로의 질문이 되어”라는 제12회 여성인권영화제의 슬로건에 걸맞은 경험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났던 순간이다. 사전 오리엔테이션에서 이전 상영작 <완전히 안전한>을 보고 다 같이 이야기 나누기도 했고, 활동 중간 남는 시간에 상영관에 들어가 영화를 관람하기도 했다. 자원활동가 후속 프로그램을 통해 상영작 중 보고 싶었던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이야기>, <좋은 부모 대소동>, <생리 무법자>, <웃어봐>, <내일 또 내일 그리고 또 내일>, <여자1 여자2 여자3>, <수잔과 남자>, <루비 파샤의 전설>, <델마와 루이스 다시 보기>를 관람했고, 관련 GV에 참여하며 다른 관객들과 함께 호흡했다.

 

작년에는 같이 자원활동을 했던 동생과 함께 영화제를 방문했다. (정작 시간이 맞지 않아 영화는 따로 봤지만) <최강 레드!>라는 다큐멘터리를 관람하고 ‘강간 문화 돌파하기’라는 주제의 GV를 들었다. 보고 싶었던 더 많은 영화들이 있었지만, 유독 바빴던 학업 일정 때문에 많은 멋진 이야기들을 놓쳤다.

 

그리고 반갑게도, 올해의 여성인권영화제는 역대 상영작 중 엄선한 영화를 앵콜 상영한다. 이전에 보지 못해 아쉬워했던 영화들이 상영작 리스트에 올라와있었다. 전편 무료 상영이며, 온라인 상영관에서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기에 욕심껏 4편의 장편 다큐멘터리와 4편의 단편을 신청해놓은 상태다.

 

 

 

사심이 담긴 추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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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앵콜 상영작 중 개인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다큐멘터리 <최강레드!>다. 해당 작품은 2012년 오하이오주 스튜번빌에서 일어난 강간 사건을 추적해나가며 ‘강간 문화’에 대해 파헤친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성폭력 사건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더 나아가 미디어에서 성폭력 피해자를 재현하는 방식이 어떠해야 하는지 한 번 더 생각하게 한다.

 성폭력 피해자는 스스로 피해 사실을 증명하길 요구받는다.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당시의 기억을 끊임없이 꺼내야 하고, 자신의 목소리로 경험에 대해 ‘객관적'으로 ‘일관성' 있게 이야기해야 한다. 주변에서는 피해자를 난도질한다. 피해와 관련된 사실은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으로 보도된다. 정작 가해자는 피해자 뒤로 숨어버린다. 전면에 나선 피해자를 보호해 주는 안전장치는 미비하다.

 미디어의 재현도 똑같다. 피해 상황에서 여성의 고통을 최대한 부각하고, 심지어는 포르노적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이는 ‘<영화명 OOO> 액기스’라는 영상 클립들로 소비되기까지 한다. 이에 반해 <최강레드!>에는 피해자가 화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피해자의 증언, 피해 당시의 재현 대신 당시의 SNS, 문자, 동영상 등에 남은 자료들을 제시한다. 피해자에 집중하지 않고, 가해자들과 그 주변 사람들에게 집중한다. 가해자와 가해를 옹호하거나 방관한 이들, 그를 가능하게 만든 맥락을 정면으로 노출시켜 비판한다.

 스튜번빌은 미식축구에 열광하는 작은 마을이다. 미식축구팀의 남학생들은 스튜번빌의 자랑이다. 팀 코치를 비롯한 마을 어른들은 아무도 가해자들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는다. 오히려 피해자의 고발을 ‘장래가 유망한 남학생들’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스튜번빌 사람들은 사건에 대해 피해자에게도 책임이 있다거나 일을 너무 키운다고 말한다. 지역 언론은 사건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다. 이들은 성폭력 사건이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탐탁지 않아하며, 마을을 지키기 위해 침묵을 지킨다.

 하지만 스튜번빌 출신의 아마추어 범죄 블로거 알렉스가 사건 해결을 위해 나선다. 해당 사건의 중요한 단서를 포착한 알렉스는 이를 공개적으로 알린다. 자연스레 많은 사람들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함께 분노하고 진실을 원하는 사람들의 거센 연대 덕분에 사건은 커지게 된다.
 
 이러한 연대는 전면에 나선 피해자를 붙들어 주는 일종의 안전장치다. 우리는 피해자의 목소리에 꾸준히 귀 기울이고 가해자와 사회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동시에 피해자를 그리는 많은 영화 혹은 미디어들의 재현 방식에 대해 묻고, 이야기해야 한다. 조금 더 사려 깊은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최강 레드!>는 이에 대한 답을 준다. ‘가해자’를 스크린 위로 소환해 ‘가해’에 관해 질문한다. 생존한 피해자에 (자극적인 방식으로) 초점을 맞추지 않고, 가해를 보호하는 ‘강간 문화’라는 구조의 악취를 오롯이 추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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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중에서는 <완전히 안전한>, <여자1 여자2 여자3>, <루비 파샤의 전설>, <생리 무법자>를 추천하고 싶다. <완전히 안전한>은 독일 난민캠프 속에서 발생한 데이트 강간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캠프 안에서 회의가 열리고, 피해자 보호라는 명목으로 가해자는 불참하고 피해자만이 참석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피해자의 목소리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고개를 숙인 피해자의 모습만 가끔 비칠 뿐이다.

 

영화에는 남성 가해자와 여성 피해자라는 젠더 외에, 인종과 계급이라는 거대 담론이 작용한다. 이 속에서 사라의 피해는 축소되고, 사적인 것이 된다. 그리고 오직 남들에 의해서 심판받는다. 난민들에게 난민 캠프는 안전한 곳으로 여겨졌을 터다. 하지만 영화는 질문한다. ‘과연 누구에게나 완전히 안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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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1 여자2 여자3>은 미디어 산업에서 어떻게 여성이 지워져 왔는지를 익살스럽게 풀어간다. 물론 웃을만한 상황은 아니지만, 쉬어갈 틈 없이 웃기고 통쾌하다. 영화는 단연 국내에서 논란이 된 '여자 시체'역을 떠오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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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 파샤의 전설>은 파키스탄의 강제혼 이슈와 맞물린 작품이다. 루비가 약혼자와 그 가족을 죽이고 사라진 후의 사람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페이크 다큐 형식으로 보여준다. 영화를 보다 보면, 루비를 열렬히 응원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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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 무법자>에서 고등학생 리안은 정혈대를 사지 못해 휴지로 대신하다가 수업 발표 중에 모두가 보는 앞에서 피를 흘리게 된다. 리안은 자신을 놀린 학생과 선생님, 자신의 요구를 가로막는 사회적 낙인에 반항한다.

 

영화를 보면서 이런저런 경험들이 떠올랐다. 국내에서도 주목받았던 생리(정혈) 빈곤층 이슈, 갑자기 정혈이 터졌을 때 화장실에 정혈대 자판기가 없어 모르는 사람에게 정혈대를 빌리거나, 바지에 피가 묻을까 노심초사하면서 편의점까지 갔다 왔던 일. 정혈대 자판기를 설치하겠다고 하자 면도기 자판기나 설치해달라고 하던 사람들. 아무렇지 않게 '너 그 날이야?'라는 한 문장으로 퉁쳐지는 불쾌한 '유머'. <생리 무법자>는 흘러내린 피에 대한 반응과 (정혈대 자판기와 대조되는) 무료 콘돔 배부를 통해 생리에 대한 기득권적인 사회관과 담론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우린 흔들리지 않지


 

‘코로나, 격리된 가정폭력’, ‘#METOO는 흔들리지 않는다’, ‘MY BODY MY CHOICE’, ‘만들어진 여성들, 넘어서는 여성들’, ‘내가 나로 존재하기 위해’, ‘웃는 날도 있어야지’, ‘우린 "함께라서" 흔들리지 않지’의 총 7개의 섹션과 경쟁부문 ‘피움 초이스’로 이루어진 제14회 여성인권영화제에는 위에서 추천한 작품들 외에도 더 다양하고 멋진 작품들이 상영된다. 온라인 상영이지만 ‘피움 톡! 톡!’과 ‘감독과의 대화(GV)’ 또한 진행된다.

 

코로나 19의 상황 속 진행되는 올해의 여성인권영화제 ‘피움’은 “우린 흔들리지 않지”라는 슬로건을 내세운다. 2020년은 많은 희망을 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강고한 여성폭력과 성차별의 현실이 다시금 드러난 해이기도 했다. 많은 분노를 느끼는 요즘이지만 우리는 흔들릴 수 없고, '우리'이기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의지와 희망을 슬로건에 담았다고 한다. 현실에 분노를 느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꺼운 마음과 기대감을 안고 이번 영화제에 걸음 했으면 좋겠다.

 

나와 같은, 혹은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건 행운이다. 2018년 여성인권영화제에 자원활동가로 참여하며 느꼈던 감정이다. 그리고 이를 지속하는 건, 그 어떤 것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의미를 가져다주기에 중요하다. 2019년에 관객으로 참여하며 가졌던 마음이다. 기꺼이 나와 너의, ‘우리’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다는 건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곳에서,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경험담이니 믿어도 좋다.

 

이 곳에 모이는 사람들이 모두 완전히 같지는 않다. 결국 ‘우리’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서로 다른 ‘차이’를 어떻게 다룰지 함께 고민하기에 나와 네가 ‘우리’가 될 수 있다. 연대의 시작이다. 이번 여성인권영화제 ‘피움’에서 이 마음을 느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활짝 피어나길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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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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