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화장 지워주는 남자: 편견 지워주는 웹툰 [문화 전반]

자연스럽게 고정 관념의 벽을 허무는 예술
글 입력 2020.11.2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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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예술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물론 여기에는 많은 견해가 오갈 것이고 정해진 정답은 없다. 하지만 필자에게 예술은 무엇인지, 예술의 역할은 무엇인지를 한마디로 표현해 보라고 한다면 ‘예술은 자기표현이며 예술의 역할은 편견 부수기이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필자에게 '예술의 역할'을 너무나도 잘 수행해준 것으로 다가온 웹툰이 하나 있다. 바로 이연 작가님께서 연재하신 네이버 웹툰 ‘화장 지워주는 남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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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금요 웹툰 '화장 지워주는 남자'

by 이연 작가님

 

 

(웹툰 본문 캡처는 비상업적 용도의 사용을 허가한다는 작가님 본인의 허락을 받고 사용하는 것입니다.)

 

일명 ‘화지남’으로 불리는 ‘화장 지워주는 남자’는 2018년 5월 3일 네이버 정식 연재를 시작하여, 2020년 11월 19일 후기 편을 마지막으로 하여 완결을 맞이했다. 지금부터 필자와 함께 이 작품이 어떻게 편견을 깨부수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내용상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웹툰을 직접 볼 의향이 있다면 유의하길 바랍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강박



주인공 ‘예슬’은 주위 사람들의 ‘대학 가면 예뻐져’, '대학 가면 연애할 수 있어'와 같은 이야기를 줄곧 듣고, 학창 시절 내내 학업에 열중한다. 하지만 대학에 오니 돌아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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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 지워주는 남자' 1화 中

 

 

대학교 3학년이나 되었지만, 주변 어른들이 이야기하던 ‘대학 가면 어쩌고~’가 본인에게는 하나조차 이루어지지 않자, 예슬은 ‘예뻐져야겠다’라고 마음을 먹는다. 그러고는 메이크업 샵으로 향한다. 그러나 그가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인신공격성 뒷담화와 실력 없는 메이크업뿐이었다. 이 부분까지만 하여도, 웹툰 ‘화지남’은 ‘단순히 외모를 다루는 웹툰’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예쁜 것이 좋은 것’ 및 ‘여자는 꾸며야 한다’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외모지상주의적인 웹툰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몇 화만 더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었겠지만, 이 작품은 전혀 그런 종류의 웹툰이 아니었다. 작가가 초반부에 보여준 것은 작품의 탄탄한 구성을 위한 밑 작업일 뿐이었다. 위와 같은 외모지상주의적인 관념들을 보란 듯이 깨부수기 위하여, 사회에 만연하는 편견들을 작가는 하나하나 끌어온 것이다.

 

예슬은 우연히 천재 메이크업 아티스트 ‘유성’을 만나게 된다. 유성은 예슬에게 현실 속 ‘슈퍼스타K’의 메이크업 버전이라고 볼 수 있는 ‘페이스 오프 신데렐라Face off Cinderella’(이하 페오신)에 참여할 것을 제안 및 반(半)강요한다. 이 웹툰은 그렇게 얼떨결에 메이크업을 주제로 한 인기 TV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 메이크업의 ‘ㅁ’자도 모르던 평범하고 소심했던 대학생이 겪는 일들을 다룬다. 본 웹툰은 대개 ‘로맨스’ 장르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필자는 그보다는 ‘성장 소설’ 쪽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번 오피니언의 취지는 본 웹툰의 전체적인 내용 설명이 아닌, 이 작품이 어떻게 사회적 고정 관념을 깨부수는지를 짚어보는 것에 있다. 따라서 필자가 감명 깊게 보았던 '벽을 허무는' 포인트들을 위주로 글을 전개하도록 한다.

 

 

 

화장은 자기만족을 위한 자기표현인가



독자 여러분은 화장을 하는가? 필자의 경우 아주 열심히 하는 편이다. 목적은 ‘자기만족’이다. 그리고 이것이 ‘자기표현’이 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면, 필자는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리고 화장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이에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본 작품에서 작가는 화장이 진정한 ‘자기만족’을 위한 ‘자기표현’이 될 수 있는가를 반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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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 지워주는 남자' 28화 中

 

 

위의 그림은 예슬의 32강 화보 사진이다. 사진 속 인물의 입술이 무슨 색으로 보이는가? 흑백사진이지만 ‘당연히’ 붉은색일 것이라는 인식이 자리잡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위의 사진 속 입술색은 ‘붉은색’이 아니다.

 

주인공 예슬은 반문한다. “일반 사진도 아닌 ‘메이크업’ 화보에서 왜 다른 색의 가능성은 열리지 않은 걸까요. ··· 메이크업이 정말로 개성을 표출하고 자기만족을 위해 하는 거라면 이 화보의 입술이 붉은색으로 보이지 않았을 테니까요.” 타당한 지적이었다. 메이크업이 정말로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하는 것이려면, ‘보편적인 기준’ 같은 것은 없어야 한다. 하지만 모두의 메이크업은 ‘피부톤이 밝아지는 파운데이션’, ‘잡티를 가려주는 컨실러’, ‘이목구비를 살려주는 쉐딩/컨투어링’, ‘붉은빛 내지 핑크빛 립스틱, 틴트, 블러셔’ 등의 기준들이 자리잡고 있다.

 

다만 필자는 여기에 대해서 조금은 다른 입장도 가지고 있다. ‘보편적’ 화장이 사회의 ‘보편적’ 미의 기준에 의해 정해져 있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 ‘보편적’ 규율을 살짝씩 뒤틀어가며, '자신만의' 것은 아니더라도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고, 소소한 ‘규범 어김’을 곁들인 '규범 따름'을 통하여 ‘자기만족’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비록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틀에 맞춰지고 있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약간의 변주와 함께 사회적 틀에 맞춰짐으로써 화장을 하는 본인이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적절한 자기표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주는 ‘권력자’인가?



작가가 작중에 종종 다루는 주제가 있다. 바로 ‘아름다움은 권력인가’라는 논제이다. 이 논제에 대한 작가의 견해 및 지향점은 작품 전체에 걸쳐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는 11화. 또 다른 주인공인 ‘희원’은 ‘인스타 여신’이라는 설정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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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 지워주는 남자' 11화 中

 

 

희원은 ‘아름다움’이 권력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권력이 ‘진정한’ 권력이 아니라 사회적인 시선이 부여하는 것임을 역시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그 권력을 포기하지 못한다.


'공주'는 권력자인가? ‘붉은색’이 주제였던 32강에 이어서 16강의 주제는 ‘동화’였다. 주인공 예슬&유성 팀은 ‘고수머리 리케’라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동화를 선택하게 된다.


대부분의 동화에서 '공주'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존재로 등장한다. 특히 남성인 ‘왕자’에게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다. 공주는 권력자여야 한다. 최고 권력자인 ‘왕’의 ‘친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주의 권력은 진정한 것인가? 만약 공주의 권력이 왕의 권력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라면, 사람들은 상당한 경외심과 함께 무조건적인 마음으로 공주에게 복종해야 한다.

 

그러나 동화 속 공주의 권력과 위대함은 ‘현명한 왕자’를 만났을 때 실현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당장 유성&예슬 팀이 선택한 ‘고수머리 리케’의 경우에만 하더라도 ‘못생겼지만 현명한’ 왕자 리케와 ‘아름답지만 어리석은’ 공주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공주는 리케의 도움을 받아 현명해지고, 그제서야 비로소 아름다움과 현명함을 겸비하게 된다. 왜 아름다운 공주는 어리석고,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하며,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야만 변화할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을 진정한 '권력자'라고 할 수 있을까.

 

작가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작중 인물에 투영한다. ‘공주처럼’ 꾸미고 하루를 살기로 한 예슬은 집에 가기 위하여 택시를 잡았지만, 택시 기사는 성희롱적 발언과 협박을 일삼고 납치 시도를 한다. ‘다행히도’ 주변을 지나가고 있던 유성이 택시를 가로막아 예슬을 돕는다. 예슬은 유성에게 고마움을 느끼긴 하지만, ‘공주’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곤란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현실에 대해 비참함을 느낀다. 그리고 주체적인, 정말로 자신에 내재한 능력으로부터 힘을 얻는 공주상(像)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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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 지워주는 남자' 45화 中

 

 

예슬은 ‘고수머리 리케’에서 아주 짧게, 엑스트라로 등장하는 ‘못생겼지만 스스로 지혜로운 둘째 공주’의 모습을 연출하게 된다. 공주는 힘이 있는 사람이다. 힘이 있는 사람은 자신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의 도움에 의해서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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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 지워주는 남자' 50화 中


 

이것이 필자가 본 작품을 성장 소설로 분류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작가는 우선 사회 보편적인 인식의 문제점을 꼬집어 끌어낸다. 그리고 이를 이겨내고 성장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아름다움과 권력의 관계에 관한 작가의 견해는 4강 에피소드 중 하나인 ‘여신’을 주제로 한 희원&누리 팀의 주제에서도 드러난다. ‘여신’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무엇인가. 말 그대로 ‘여성의 성별을 한 신’이라는 의미이다. 그 어디에도 ‘여신’이라는 단어에 ‘아름다움’이 내포되어 있지는 않다. 하지만 앞서 언급하였듯 희원은 ‘아름다움’을 이유로 ‘인스타 여신’이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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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 지워주는 남자' 118화 中

 

 

여신은 외적으로 아름다운 존재가 아니다. ‘신’은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존재가 아니라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여야 한다. 사람들의 빛이 그곳으로 향하기 때문에 그가 '신'인 것이 아닌, 그곳에서 빛이 나기 때문에 그가 신이어야 하는 것이다. 작중 야광으로 표현된 ‘누리’의 메이크업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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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 지워주는 남자' 118화 中

 

 

 

아이가 '성숙한'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다.



‘미미’는 ‘페오신’의 11살 초등학생 참가자이다. 또한 희원의 큰 팬으로, 희원을 따라하며 그처럼 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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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 지워주는 남자' 56화 中

 

 

작중 희원은 흔히 ‘코르셋’이라고 불리는 ‘여성에 대한 아름다워야 함의 당위’로부터 탈피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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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 지워주는 남자' 68화 中

 

 

하지만 그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 미미에게, 그것은 또 하나의 코르셋으로 작용하여 옥죄인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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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 지워주는 남자' 66화 中

 


미미는 나이에 맞지 않게 ‘원숙미’를 보여준다며 큰 주목을 받고, 기분 나쁜 시선과 함께 성희롱적 언행으로부터 가해를 받는다. 하지만 미미는 ‘이겨내는 척’을 한다. 그는 그것을 ‘아이돌이 되려면 당연히 견뎌내야 하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아주 현실적인 문제인 이것에 대해 작가는 큰 그림을 구성하며 작품의 후반부인 119화부터 어느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11살 어린아이에게 화장품의 기능이 바람직할 때는, 그저 그것이 놀잇감과 호기심의 대상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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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 지워주는 남자' 120화 中

 

 

4강에서 ‘은하X미미’ 팀은 화장을 ‘일부러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화장을 못하는 것'이 11살에게 어울리는 화장법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화장품이 궁금해서 장난감처럼 이것저것 따라 칠해보는 것, 그것이 어린이에게 어울리는 화장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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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 지워주는 남자' 121화 中

 

 

필자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한 것은 이 장면을 보고 미소를 짓는 희원의 모습이었다. ‘코르셋’에 구속되어 ‘아름다워지기 위한 화장’이 어린아이에게까지 강박으로 자리 잡게 하는 사회적 압박은 올바르지 못함을, 잘 보여준다.

 

 

 

여성미란 무엇인가: 젠더리스Genderless에 관하여



작중 등장하는 흥미로운 팀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은결&세라 남매 팀이다. ‘남동생’ 은결은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누나’ 세라는 모델로 참여한다. 첫 번째로 크게 주목받는 것은 65화에서인데, ‘아이돌’을 주제로 한 16강 컨셉에서 ‘한국적인 여성미’를 살린 것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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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 지워주는 남자' 65화 中

 

 

조금 의아했다. 작가가 ‘여성미’ 같은 개념을 대입할 타입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니나다를까, 작중 아티스트로 '지원'했던 남동생 은결은 사실은 모델로, 모델로 '지원'했던 누나 세라는 사실은 아티스로 활동한 것이다. 즉, 위의 '한국적인 여성미’를 살린 모델은 누나 세라가 아닌 남동생 은결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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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 지워주는 남자' 65화 中

 

 

여성미란 무엇이고 남성미란 무엇인가. 본 작품은 이와 같은 젠더 고정 관념의 벽을 허무는 작업을 여러 차례 시도한다. 그중 가장 강렬했던 시도가 바로 이 은결&세라 팀을 내세운 것이지 않을까 싶다. 본 작품은 페미니즘 사상을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녹여낸 작품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물론 좁은 식견을 보유한 필자에게 이 작품을 판단할 자격은 없지만, 필자는 이 작품을 페미니즘을 담아낸 작품이라기보다는 ‘젠더리스genderless’ 이념을 녹여낸 작품에 더 가깝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물론 페미니즘에서 이야기하는 요소들을 반영한 시도도 다분히 접할 수 있었지만, 궁극적으로 작가가 원했던 것은, 필자의 소견으로는 젠더리스의 추구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다소 생소할 수도 있는 젠더리스의 개념에 관한 이야기를 간단히 해보도록 하겠다. 젠더리스는 ‘(사회적/관념적)성’을 뜻하는 ‘젠더gender’와 ‘없음’을 뜻하는 ‘리스less’가 합쳐져 만들어진 단어이다. 즉 사회적 성별의 구분을 하지 말자는 이념이다. 젠더리스를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사회적인 ‘여성적 역할’과 ‘남성적 역할’은 존재할 수 없다. 또한 ‘동성애’와 ‘이성애’도 존재하지 않는다. 생물학적인 남성이 남성을 좋아하는 것과 여성이 여성을 좋아하는 것, 그리고 여성이 남성을 좋아하는 것은 모두 젠더리스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저 한 개인이 다른 한 개인을 좋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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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 지워주는 남자' 101화 中

 

 

8강에서 탈락하게 된 은결&세라 팀은 101화에서 과감히(?) 자신들이 성별을 속였음을 밝히고 당당히 퇴장한다. 긴 머리를 하고 ‘여성적’인 옷을 입었던 은결은 사실 남성이었고, 짧은 머리를 하고 ‘남성적’인 옷을 입었던 세라는 사실 여성이었다. 각 생물학적 성별의 특성을 따지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가를 보여주는 듯하다.

 

 

 

지식 한 움큼 쥐여 주는 학습만화



편견 부수기와는 관련이 없는 주제이긴 하지만, 이 웹툰이 독자들에게 선사하는 부가적인 재미 요소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만화 중간중간에 코스메틱 지식을 한 움큼씩 쥐여 준다는 것이다. 다양한 색조 화장품의 종류, 선크림의 SPF와 PA의 정도에 따른 기능 차이, 눈썹의 모양에 따른 인상 변화 등 중간중간 유용한 지식을 전달해 준다. 이로 인해 화장품 PPL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가끔 등장하는 광고 역시 거부감 없이 볼 수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페오신’은 화보가 중요한 경연인 만큼 사진에 관한 지식도 간간이 등장하는데, 작가가 원래 알고 있던 지식이었든, 만화를 공부하기 위하여 새로 학습하였던 지식이었든, 새삼 작가가 더욱 존경스럽게 느껴지게 되는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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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 지워주는 남자' 127화 中

 

 

이처럼 편견을 무너뜨리는 데에 넘어서서 일종의 ‘학습 만화’로서의 기능도 톡톡히 한 ‘화장 지워주는 남자’. 이 웹툰은 필자로 하여금 몇 번이고 눈가에 눈물이 맺히게 한 작품이었다. 아직 이 웹툰을 보지 못한 독자들이 있다면 이연 작가님의 편견의 벽을 허물어버리는 예술적인 시도를 목격해 보도록 하자. 혹은 한 번 본 경험이 있는 독자라고 하더라도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한 번 이 작품을 감상하는 기회를 가지는 것도 좋을 듯하다. 참고로 필자는 본 오피니언을 기고하며 다섯 번째 정주행을 마쳤다.

 

이번 오피니언은 여기까지 하도록 한다. 매번 긴 글을 지켜봐주는 독자 여러분께 감사의 말을 전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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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용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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