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살벌하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영화]

폴 토마스 앤더슨의 영화 <팬텀 스레드>
글 입력 2020.10.17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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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사랑에 대한 영화 중 어떤 영화를 가장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폴 토마스 앤더슨의 <팬텀 스레드>라고 답할 것이다. 앞으로 더 멋진 영화를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지만 아직은 그렇다.
 
국내에선 2018년에 개봉한 이 영화를 2년 전 학교 영화관에서 보고, 영화의 분위기에 완전히 매료당했다. vod를 결제해서 여러 번 돌려보고, 그걸로도 모자라서 거의 세 달 간 매일같이 라디오헤드의 기타리스트인 조니 그린우드가 작곡한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들었다. 'House of Woodcock'은 김연아가 2018년 갈라 프로그램에서 선보이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영화를 본 직후부터 줄곧 이 영화에 대한 감상을 정리해야겠 다고 생각했지만 차분하게 글을 전개할 자신이 없어 2년 동안이나 미뤄뒀다. 오랜 시간이 지났다고 해도 좋아하는 영화를 얘기할 때 흥분하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이제는 조금 차분하게 생각해보려고 한다.
 
이 영화가 매력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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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TA'라는 멋진 약칭으로 불리기도 하는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국내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보유한 감독이다. <부기 나이트>, <매그놀리아>, <펀치 드렁크 러브>, <마스터>, <인히어런트 바이스>... 영화를 좋아한다고 자부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제목을 들어봤을 유명한 영화들이다.
 
<팬텀 스레드>를 본 뒤 왠지 모를 오기가 생겨 감독의 영화를 공부하듯이 찾아봤다. 배경도, 캐릭터의 설정도 너무 다른 이 영화들 사이의 공통점을 굳이 찾아본다면 한 인물에게 깊게 파고든다는 점이다. 이 영화들은 한 인물의 다양한 면모를 매력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특정한 시대의 분위기를 환기하는 음악과 의상과 배경을 사용한다. 인물이 속해 있는 시대적인 배경은 은근하게 드러나고 특정한 역사적 사건이 부각되지는 않는다.
 
카메라는 <마스터>에서는 프레디, <부기 나이트>에서는 더크, <펀치 드렁크 러브>에서는 배리라는 인물의 내면과 외면 모두를 집요하게 쫓아가며 다른 캐릭터들은 주인공과 관계를 맺었다가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면서 이 인물의 내면을 밖으로 끄집어내는 역할을 한다. 사건과 사건이 점처럼 찍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인간의 삶을 선으로 그리는 것. 핵심 인물과 그를 둘러싼 환경을 보여주는 것은 촬영 기법에서도 드러난다.
 
<부기 나이트>에서 화려한 나이트클럽의 생태계를 보여주는 오프닝 시퀀스 샷은 <팬텀 스레드>에서 규칙과 질서로 유지되는 우드콕의 집을 보여주는 오프닝 시퀀스에서 다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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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 디자이너 우드콕의 아름답고 고요한 요새에 알마라는 인물이 들어오면서 레이놀즈 우드콕의 삶에는 흠집이 나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레이놀즈가 알마를 만나고 변화하는 이야기보다는 두 사람의 권력 다툼에 가깝다. 영화의 초반에는 괴팍한 디자이너의 ‘뮤즈’ 역할을 하는 알마라는 여자의 관점에서 레이놀즈를 보여주는 영화인가 싶었지만 알마는 뮤즈라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캐릭터다.
 
교외의 작은 마을에서 서빙을 하던 알마에게서 자신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도시로 데려와 신데렐라로 만들어준 것까지는 이전에 레이놀즈의 집을 거쳐 간 수많은 여자들과 같았고, 그래서 알마 또한 이전의 ‘뮤즈’들처럼 모든 걸 통제하려 드는 레이놀즈의 방식에 염증을 느껴 집을 떠날 거라고 생각했지만 알마는 절대 떠나지 않는다. (알마 직전의 ‘뮤즈’였던 조한나는 아침 식사 자리에서 레이놀즈가 먹지 않는 빵을 권해 레이놀즈와 말다툼을 하고 이후 조한나는 등장하지 않는다. 알마도 식사 자리에서 식빵을 요란하게 먹는다는 이유로 레이놀즈와 말다툼을 벌이지만 먼저 자리를 뜨는 건 레이놀즈다.)
 
알마는 레이놀즈의 옆자리에 앉아 시끄럽게 그릇을 긁는 소리를 내며 빵에 잼을 발라 먹고, 우드콕의 드레스를 입고 교양 없게 행동하는 여자에게 레이놀즈 대신 화를 내고, 드레스의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동시에 알마는 뚜렷한 욕망을 가지고 있는데, 레이놀즈가 자리를 비운 사이 아주 중요한 주문 제작 드레스에 자신의 자수가 새겨진 천을 몰래 집어넣는 장면에서 그녀의 욕망이 드러난다.

레이놀즈는 자신이 세운 규칙과 질서에 의해 움직인다. 그는 외부의 요인이 자기 삶에 간섭하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는데 그가 만드는 옷에서도 이런 면모가 드러난다. 패션의 유행을 따르지 않고 고전적인 드레스만을 디자인하는 그의 모습은 신념을 넘어서 고지식해보이기까지 한다. 레이놀즈는 바느질 자국이 없는 옷,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완벽주의자, 이상형과 이상향을 정해두고 그에 맞지 않는 것들은 과감하게 버리는 '우드콕의 집'의 주인이다.
 
동시에 그는 폐쇄적이고 겁이 많은 사람인데, 드레스를 디자인하는 건 레이놀즈이지만 이외의 모든 것을 관리하는 건 누나 시릴이고, (그래서 집의 이름은 레이놀즈의 집이 아닌 ‘우드콕의 집’이다) 우드콕의 집에서 옷을 만드는 사람들과 그 옷을 주문하러 오는 고객은 전부 여자라는 점에서 레이놀즈는 '우드콕의 집'에 갇혀 있는 존재처럼 그려진다. 그런 그가 두려워하는 대상은 어머니와 죽음이다.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그를 집요하게 따라다니고 어머니의 유령은 항상 그가 직접 만들어준 웨딩드레스를 입은 모습으로 찾아온다.
 
중요한 일을 끝낸 레이놀즈가 한 차례 몸살을 앓으며 어머니의 유령을 보는 장면에서는 그가 드레스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어떻게 보면 드레스를 만드는 과정이 웨딩드레스를 입은 어머니의 유령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결국 그를 죽기 직전의 몽롱한 상태로 데리고 가며 강박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사람은 알마다. 알마를 만나기 전 레이놀즈의 삶은 일 아니면 죽음, 둘 중 하나였지만 알마가 경험하게 해 준 것은 일도 죽음도 아닌 주도권을 상실한 상태였다. 알마의 품에서만 가능한, 처음 겪어보는 무기력함이 레이놀즈에게는 쾌락으로 다가왔을 것이고 알마에게는 그런 레이놀즈의 모습을 내려다보는 것이 쾌락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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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는 내내 알마와 레이놀즈 사이에서 이리저리 휘둘리는 기분이었다. 조마조마할 정도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싸우는 두 사람과 배우들의 연기, 그 표정과 몸짓을 섬세하게 따라가는 카메라, 감정을 고조시키는 음악까지 영화의 모든 구성 요소가 레이놀즈의 드레스처럼 완벽하게 짜여 있다고 느꼈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빅키 크리엡스의 존재감이 엄청나다는 건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영화의 복잡한 분위기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오직 '사랑'밖에 없다는 것이 이 영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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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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