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TMBP 05. 자퇴에서 졸업까지

졸업을 축하해
글 입력 2020.08.31 14:43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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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BP05.JPG

 

 

TMBP[Too Much 'B'formation Project]

 

TMB프로젝트는 한국말로 구구절절이라는 뜻의 '투머치인포메이션'이라는 단어에서 영감을 얻은 프로젝트로, Inforamtion의 I 대신 제 이름 첫 글자이자 마지막 글자인 B를 넣었습니다.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나는 에세이 프로젝트입니다. 다섯 번째 에피소드 <자퇴에서 졸업까지>로 이어갑니다.

 

*

 

자퇴를 하러 가던 날이 생생하다. 2월이었고 코끝이 시렸다. 늘 지하철로 다니던 학교에 새마을호 기차를 타고 갔다. 나는 자리에 앉아서 도착할 때까지 흥분된 얼굴을 카메라로 비춰보고 '혹시나 학교 측에서 자퇴를 말리면 어떡하지? 그러면 다른 학교 합격했다고 당당하게 말해야지' 하는 기분 좋은 상상을 했다.

 

1호선 끝에 있는 역에 내려서 통학버스를 타고 학교 앞에 내렸다. 학교는 여름에도 서늘했고 겨울에는 발끝의 감각이 사라질 정도로 추웠다. 얼음이 잔뜩 언 101개의 계단을 올라가면서 처음 입학해 학생회 선배를 쫓아 동기들과 줄을 서서 계단을 올라가며 여기를 맨날 어떻게 오르냐며 힘들지만  앞으로의 날이 설레서 웃음이 피식피식 나오던 생각을 했다.

 

자퇴는 허무했다. 지도 교수님과 통화하여 다른 학교로 간다고 하니 거기는 좋은 학교라고 하시면서 잘 지내라고 했다. 그리고 학교 측에서 내어준 자퇴 신청 서류에 서명을 하니 자퇴가 끝났다. 후련하기만 할 줄 알았던 마음이 복잡했다. 동기들과 술게임에서 살아 남기 위해 기숙사 1층 로비에서 옹기종기 모여 열심히 술게임을 연습했던 생각이 났다. 유독 나를 좋아해 주던 영어 교수님과 일본어에 소질이 있다며 겨울방학 숙제를 챙겨 주던 일본인 교수님의 얼굴이 생각이 났다. 학교 앞의 브리또 맛집에서 마지막 만찬을 즐기고 기차를 타고 올라왔다. 집에 와서 나는 자퇴한 게 너무 홀가분하면서도 믿기지 않아 학교 홈페이지에 로그인을 해서 '자퇴한 학생입니다'라는 문구를 눈으로 계속 확인해 보았다. 그렇게 나는 현역으로 입학한 대학교를 자퇴했다.

 

현역 때 3년 내내 내신을 따기 위해 아등바등했던 노력이 무색하게 입시를 망쳤다. 학원 한번 다니지 않고 2등급 중반까지 올려 놓은 성적은 교과전형으로만 인서울을 하기엔 애매했고, 논술이나 수능을 준비하기에는 정보도 돈도 없었다. 담임선생님은 성적이 아깝다며 재수를 권했으나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엄마가 대학은커녕 실업계 고등학교에 가길 원했으므로 안전빵으로 써서 붙은 대학교에 입학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에 영어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 과외 학생의 성적이 수직 상승하는 기쁨과 동시에 정작 나는 입시에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휴학을 결정하고 수능을 다시 보기로 했다. 나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상황이 도무지 아니어서 투잡을 뛰었다. 과외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교재를 사고 독서실에 다녔다. 나중에는 시간이 애매한 두 아르바이트를 관두고 낮 시간은 레스토랑 아르바이트를 하고 저녁 시간에는 공부를 했다.

 

사실 나는 많이 두려웠다. 믿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괜한 시간을 허비하는 거 아니냐며 말했고, 여자는 나이가 중요한데 언제 졸업하고 언제 취업할 거냐고 말했다. 나도 1년을 버릴까 무서웠다. 그때 나는 어떻게 버틸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들어 학교에 정을 붙이지 못하니까 있는 힘 없는 힘 다 써보고 만약 실패한다면 죽도록 노력해도 안되는 걸 알았으니 열심히 정을 붙이고 학교에 다니자고 생각했다.

 

입시가 망할까봐 걱정되는 마음 말고도 말하지 못할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모아놨던 돈이 바닥나 독서실에서 짐도 못뺀 채로 주인아저씨에게 짜증까지 들으며 쫓겨났는데, 저렴하고 가까운 독서실이 그곳 뿐이라 돈이 생길 때마다 자존심을 뭉개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다시 독서실에 갔다. 6월 모의고사를 치러야 했기 때문에 고3때 담임선생님에게 재수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리고 모교에 가서 현역 학생들과 같이 모의고사를 치렀다. 모의고사 성적 결과 국어 100점이 나왔을 때는 친구 앞에서 펑펑 울었다.

 

수능날 불수능이었다며 뉴스에서는 떠들고 채점 결과 모의고사에 훨씬 못 미친 성적에 앞이 막막했다. 코엑스에서 열린 정시박람회에 혼자 쭈뼛쭈뼛 성적표를 들고 가서 네 다섯 개의 부스에서 상담을 받았을 때 인서울은 글렀고 수도권 대학에 갈 수 있을까 암담했다. 진학사 성적 분석 서비스를 결제해서 며칠을 고민하여 정시 원서 세 개를 넣었다. 그리고 수능을 보느라 한 달간 쉬었던 레스토랑 아르바이트에 다시 나갔다. 아르바이트 중에 추가합격 전화를 받은 날 조금 울고 많이 웃었다.

 

그런 내가 졸업을 한다. 이전과 다른 선배 문화에 감탄하고 설렜던 신입생 시절을 지나, 복수전공을 신청해 타과생들 사이에서 수업에 대한 정보 없이 독강을 해야했던 2학년 시절을 지나, 연극동아리에 들어가 처음으로 100명의 사람들 앞에서 연기를 해봤던 3학년 시절을 지나, 취업에 대한 뚜렷한 준비 없이 마지막으로 듣고 싶은 수업을 듣겠다는 포부로 전공생도 아니면서 연기학과 전공을 듣고 미술서양사에 대해 공부하며 4학년 2학기를 마쳤다. 학교에서 정해준 토익 점수 기준을 달성하고 복수전공 졸업시험과 주전공 졸업논문까지 통과하여 나는 이제 졸업한다.

 

졸업을 하러 가는 날, 코로나 때문에 졸업식은 취소됐지만 학위수여장을 받으러 가는 나는 자퇴를 하러 가는 만큼이나 마음이 벅차다. 지나온 길이 이렇게도 생생한데 졸업을 한다니 그 사실이 새삼스럽다. 이곳에 들어오기 위해 혼자 애쓴 내게 대학교 졸업장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 같아 많이 기쁘다. 대학에 갈 수나 있을까 싶었고 졸업을 할 수나 있을까 싶었던 지난날의 나를 안아주며 졸업을 축하한다고 말하고 싶다.

 

 

"졸업을 축하해"

 

 

*

 

주어진 시간 안에 최선을 다해 노력해본 경험이 앞으로의 삶에 밑거름이 될 거라고 믿으며 글을 마칩니다. 올해 졸업식 없이 졸업해야 했던 모든 분들 졸업 축하드립니다.

 

TMB프로젝트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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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1
  •  
  • 이다빈
    • 늘 애써 온 비 너무 고생 많았습니다아
      큰 축하와 축복을 전했는데
      이제 보니 더 짙은 농도의 마음이어야 했네욤
      정말 축하합니다 고생해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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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4ghdql
    • 이다빈다빈님과 잠깐 다녔던 1학년이 제겐 큰 행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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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밀
    • 그동안 너가 겪은 크고 작은 일들에 나는 그저 제3자밖에 되지못해 속상하고미안한 적이 많았는데, 이 글을 읽고나니까 그런 마음들이 부끄러워져. 넌 모를거야 너의 끈기와 우직함이 얼마나 멋있는지. 그런 부분을 내가 부러워하는 것도! 그리고 글을 읽으면서 뿌듯했던 건 너의 자퇴에서 졸업까지 회상할 수 있다는거야 (비록 졸업식은 못갔지만) 늘 네 옆엔 내가 함께였잖아 앞으로도 함께일거고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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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밀
    • 비밀혼비의 졸업 내가 제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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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4ghdql
    • 비밀성지님 댓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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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Zoo
    • 안녕하세요! 일단 졸업하신거 정말 축하드려요. 졸업, 학교 이야기에 괜히 또 반가운 마음에 댓글 남기고 갑니다,, 앞으로 하시는 모든 일 다 잘되기를 바라며 응원할게요. 진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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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4ghdql
    • Zoozoo님 늘 응원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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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찬찬
    • 나도 추가 합격 전화 받고 학교에 입학했는데 그 때 생각이 나네 ㅋㅋㅋ
      전화 받아본 사람은 알 만한 그 뭐랄까 떨리고 좋은데 뭔가 이상한 기분..
      그게 벌써 몇 년 전 일이라니...!!!
      일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보면 언니는 진짜 생각한 건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 같
      아. 졸업하면서 이 때까지 해왔던 것들을 돌이켜 보면 뿌듯해질듯! ㅋㅋㅋ 일학년 때보다 더 멋있어져서 졸업하네. 나도 졸업할 때 뿌듯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어,,, (졸업 선물은 좀만 더 기다리고 있어봐!!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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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4ghdql
    • 찬찬찬미님 저처럼 멋진 으른이 되길 바라요 ^^ 졸업까지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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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나 왜 이거 보면서 눈물맺혀...? 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재수하게됐었는데 언니는 두렵고 걱정되는 상황에서도 스스로 선택해서 한게 너무 멋지고 대단해. 다시 한번 졸업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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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의세상
    • ❤︎ ♥님 감사합니다. 어떤 상황에 있던 1년을 꼬박 준비하는 데에만 쏟아붓던 마음은 똑같이 괴로웠을 거라고 생각해요. 졸업식에 오셨던 분인 것 같은데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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