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책 좀 빌려줄래? [도서]

글 입력 2020.08.24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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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전이던 2019년의 8월 나는 교환학생으로 프랑스에 있었다. 첫 수업은 마케팅이었고, 교수님은 팀플을 위해 조를 나눈 후 팀플 주제로 '기업의 마케팅 사례'를 제시하셨다.

 

아이디어 회의를 하는데 같은 팀 조원이 '아마존의 킨들에 대해 마케팅 하는 거 어때? 라고 제안했다. 킨들은 아마존 기업이 내놓은 전자책 단말기. 전자책에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이번 기회에 알게되면 좋겠다 싶어서 조원의 의견에 찬성했다.

 

모두의 찬성으로 우리 팀의 소재는 킨들이 되었다. 킨들을 획기적으로 마케팅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우리의 최종 목표가 되었으나, 이에 앞서 '킨들'에 대해 익숙해져야 했다. 각자 노트북을 켜 구글에 킨들을 검색해서 정보를 찾아보니, 292g의 가벼운 무게와 함께 책 200권을 담을 수 있는 용량이 눈에 띄었다. 면 티셔츠 한 장의 무게에 책 200권이 들어있는 셈이었다.

 

킨들을 들고 다니면 가방 든 어깨가 한층 덜 뻐근하겠다고 생각했다. 두꺼운 책들 들고 다니는 게 보통 일은 아니니까. 요즘 내가 들고다니는 '일간 이슬아 수필집'만 해도 500페이지가 넘는 책이라서 가방에 그 책 하나만 넣어도 존재감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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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게와 용량 외에도 전자책이 가진 장점들은 많았으며 당시의 나는 팀원들과 함께 킨들에 대해 마케팅을 해야 하는 입장인만큼, 전자책의 장점들에 대해 언급하며 과제에 임했다.

 

과제가 끝났으니 솔직하게 말해보자면 난 아직까지 전자책을 사용해보고픈 마음은 없다. 에코백에 두꺼운 종이책을 넣고 다니면서 어깨에 빨간 자국이 생겨도 말이다. 참고로 나는 핸드폰과 노트북에서는 최신형 모델을 쓰고 싶어한다. 그런 내가 책에서만큼은 시대의 변화를 따르지 않는지 스스로가 궁금할 따름이었다.

  

왜 나는 전자책이 끌리지 않을까? 생각하던 프랑스에서의 나는, 일년 후 어떤 애서가의 '종이책에 대한 애정어린 그림 에세이'를 보며 일년 전 고민에 대한 대답을 찾았다. 책의 제목은 '책 좀 빌려줄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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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에 대하여


  

표지부터 웃음이 났다.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여자 너머로 남자는 '저 사람 무슨 책 읽는걸까?'하는 호기심 가득한 눈길을 보낸다. 실제 책에서는 책장 속 남자의 얼굴만 네모 모양으로 파여있어서 책장의 두께가 입체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책은 크게 두가지 결로 나뉜다. 책에 푹 빠진 탐독가로서의 이야기와 창작의 기쁨과 고통을 절실히 느끼는 작가로서의 이야기이다. 

 

전반부 탐독가로서의 이야기는 책을 읽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다들 공감할만한 내용이다. 늘 서점 장바구니에 수십 권의 책이 담겨 있고, 책장에는 읽지 않은 책이 숙제처럼 쌓여 있으며, 도서관이나 서점에 들어가면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우리의 모습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책에서 삶의 방향을 찾아온 우리들, 그래서 책과 함께하는 시간에 가장 나답다 느끼는 우리들의 모습이 페이지마다 가득하다. 작가는 그 짧은 순간을 몇 컷의 그림으로 응축해냈고, 우리는 그 안에서 우정 어린 공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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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에 대하여


 

'읽기'에 관한 글과 그림이 대체로 화창했다면, '쓰기' 파트는 반대로 고통스럽고 흐린 분위기다. 후반부 작가로서의 이야기는 읽고 쓰며 보낸 낮과 밤들에 대한 이야기다.

 

빈 노트나 컴퓨터에 무엇이든 끼적여본 사람은 창작의 길이 얼마나 외로운지 안다. 책이 좋아서 작가의 길에 들어섰지만, 애정만으로 완성되지 않는 그 길은 때론 진흙탕이고 때론 블랙홀처럼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다. 책 곳곳에서는 창작자로서의 비애와 희열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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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향유하는 일과 책을 창작하는 일은 대척점에 있을 지도 모른다.

 

책을 향유하기 위해서 필요한 준비물은 푹신한 소파와 목을 축일 물, 그리고 책 정도면 충분하다. 소파에 앉아서 훌륭한 작가의 말끔한 문장들을 즐기면 된다. 시중 서점이나 도서관에만 가보면 좋은 문장들을 품고 있는 책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이 단계에 있을 때의 나는 기성작가들의 책들을 여러권 훑으며 좋은 책과 나쁜 책을 구분할 수 있는 안목이 생겼고 '나도 한번 써볼까?'라는 생각을 했다. 전반적으로 안온한 분위기 속에서 문장을 즐겼다.

 

'쓴다'는 2음절의 단순한 동사지만 이 속에 담긴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분명 좋은 문장이 무엇인지 잘 아는데, 내 손끝에서 나오는 말들은 유치하기 짝이 없어서 답답했다.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보면서 좌절하는 일도 잦았고.

 

*

 

종이책이 좋은 이유에 대한 대답은 '읽기에 대하여' 파트에 있었다. 전자책이 훨씬 편리하다는 걸 알지만 아직까지는 서점과 도서관에 가서 책 냄새를 맡으며 책을 고르고, 손끝으로 책을 넘기는 게 좋기 때문이다. 오래된 책에서 나는 눅눅한 냄새, 새 책에서 맡을 수 있는 빳빳한 새 종이 냄새 같은 것들은 킨들에서는 느낄 수 없다.

 

내가 계속해서 글을 쓰는 일은 킨들을 사지 않고 종이책을 고집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종이책을 쓰고, 글을 쓸 때의 불편함과 고통이라는게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다. 책을 향유하는 일과 창작하는 일은 완전히 다른 방향이라는 것 역시 알지만 그럼에도 나는 쓰는 걸 멈추고 싶지 않다.

 

종이책이 왜 좋아?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종이책에서 얻은 것처럼, 왜 쓰고 싶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 역시 쓰면서 얻을 수 있을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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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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