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비틀즈가 사라진 세상, 'Yesterday' [영화]

글 입력 2020.08.02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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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포함

 

 

[크기변환]예스터데이포스터.JPG

 

 

무려 비틀즈를 소재로 삼은 이런 영화가 작년 이맘쯤 개봉했다니, 전혀 몰랐다. 나도 그렇고 주변에서도 그때 당시에 극장에서 이 영화를 관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 의아스러울 지경이었다. ‘무려 비틀즈니까!’ 이제서야 이 영화를 접하게 된 건 며칠 전 지인의 추천 덕분이었다.

 

서로가 최근에 본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지인은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예스터데이>를 보게 되었는데 관람객들의 평이 그렇게도 혹평일 수가 없다며, 헌데 본인은 나쁘지 않게 봤으니 한 번 보고 다음에 만나면 같이 그 영화에 대해 대화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고 나는 그날 밤 바로 <예스터데이>를 재생했다.

 

참고로 나는 음악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음악 감상을 굉장히 좋아하고 영화 또한 마찬가지이지만 그 둘이 합쳐진 작품이 내게 시너지를 주기보단 마이너스가 되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인데, 이를테면 라라랜드, 비긴어게인, 맘마미아가 내가 뽑는 최악의 영화들에 속하는 편이다.

 

하지만 위플래쉬, 싱스트리트, 보헤미안 랩소디는 내가 사랑하는 영화들에 속한다. 이렇게 보면 그저 음악과 로맨스의 결합물을 싫어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건 분명히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다. 아무튼, 구구절절 설명하기엔 꽤나 까탈스러운 나의 영화 취향과 널린 혹평으로 인해 <예스터데이>에 딱히 기대는 없었다.

 


[크기변환]예스터데이.jpg

 

[크기변환]예스터데이1.jpg

 

[크기변환]예스터데이2.jpg

 

 

영화는 대형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점장에게 갈굼과 외모 지적을 받는 비루한 잭의 모습을 비추며 시작한다. 그는 본업인 교사를 잠시 관두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디든 가리지 않고 공연할 수 있는 무대를 찾아 전전하는 무명 가수이다. 그가 계속해서 음악을 할 수 있었던,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늘 그의 곁에서 함께 해주고 그를 응원해주는 오랜 친구이자 매니저인 엘리 덕분이었을 것이다. 여느 날과 같이 엘리가 잡아온 공연을 끝마치고 귀가하던 중 전 세계적으로 12초간 정전이 되는 사태가 발생하고 그 순간 잭은 교통사고를 당한다.

 

깨어나 보니 병원, 간호를 온 엘리에게 ‘내가 64살이 돼도 날 사랑하고 거둬줄 건가요?’라는 농담을 던지지만 엘리는 알아듣지 못한다. 평소 비틀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때부터 눈치를 챌 수 있을 것이다. 잭이 불세출의 명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d’의 9번째 수록곡 ‘When I’m Sixty- Four’ 인용했음을. 그는 농담을 알아듣지 못하고 뜬금없이 웬 64살이냐 되묻는 엘리에게 이상함을 느끼는데 머지않아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세상에서 비틀즈가 사라지게 된 것이다. 구글에 검색해도 딱정벌레 사진만 나올 뿐, 아무도 비틀즈를 모르고 아무도 그들의 전설적인 노래들을 알지 못한다. 당혹감도 잠시, 잭은 비틀즈의 노래들을 자신의 것으로 둔갑시키고 진짜 에드시런의 도움으로 순식간에 스타덤에 오르고 부와 명예를 얻게 된다. 그리고 동시에 절친 엘리와는 사이가 미묘하게 틀어지는데, 이는 엘리가 꽤 오랜 시간 잭을 절친을 넘어 이성으로 바라봤기 때문이다.

 

영화 중반까지만 해도 둘 사이에서 로맨스 적인 느낌을 받지 못해서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갈 줄은 몰랐지만, 결국 잭은 명예와 엘리중에 엘리를 선택하고 스타 뮤지션과 양심 사이에서 양심을 택하며 영화가 끝난다.

 

*

 

뭔가 애매하다. 음악 영화도 아니고 로맨스 영화도 아니고 판타지 영화도 아니고 간간이 웃기긴 했지만 코미디 영화도 아니다. 총체적으로 애매하다. 왜 혹평이 난무하는지도 알겠고 왜 나의 지인은 나쁘지 않게 봤다고 말했는지도 알겠다. 관람객들이 무엇을 기대했고 어떤 부분에서 실망했는지는 더욱이 잘 알겠다.

  

그렇지만, 나로 말하자면, 괜찮았다. 마지막에 난데없이 살아있는 존 레논을 만나 잭이 사랑에 관한 진실에 관한 조언을 듣는 장면에서는 감동보단, 작중에서와 같은 평행 세계라면 존 레논과 그의 뮤즈 오노 요코와의 인연은 없었을 텐데 저 사랑에 대한 조언은 우리가 흔히 아는 오노 요코에 의한 존 레논의 이미지 때문 아닌가? 싶어 개연성에 아쉬움을 느끼긴 했지만.

 

애초부터 초면인 주연 배우가 비틀즈의 음악을 완연하게 구현해낼 것이라고는 일말의 기대조차 않았고 조악하게 비틀즈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보단 아예 비틀즈의 이야기는 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영화는 실로 그러했다. 그다지 특출나지 않은 노래 실력을 가진 배우가 노래함은 오히려 인간적으로, 현실을 투과한 듯 보였고 비틀즈의 드라마를 그리지 않음으로써 그들을 등에 업고 돈을 쓸어모아 보겠다는 얄팍한 술수를 부리지 않았으니 말이다.

 

잭과 엘리의 진부한 로맨스에도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한 내가 감상에 포커스를 맞춘 부분은 비틀즈의 곡을 훔치기 직전의 잭의 모습과 훔치고 난 후에 괴로워하는 모습이었다. 이는 창작을 전공으로 하는 내겐 너무도 크게 와닿았다. 나 또한 20세기 유럽 최고의 도예가 루시 리와 그녀의 걸작들이 세상에서 소멸한다면 분명 욕망과 도덕의 기로에서 갈등하다 결국 잭과 같은 결말을 맞을 것 같았다. 선망하고 동경하던 대상의 것을 내 것이라 착각하게 되었을 때의 쾌락은 잠시일 뿐, 존경하던 대상에 대한 죄악감과 제아무리 애써도 남의 것은 온전한 내 것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테니 말이다.

 

영화는 의미와 가치는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가변하는 것 아니던가. 난 잭을 통해 나의 모습과 현실에 충실하고 그 안에서 행복을, 일상을 진가를 알자는 메시지를 보았다. 혹시 모르지 않나. 정말로 내가 사랑하는 코카콜라와 떡볶이와 치킨이 사라지는 세상이 올지도. 그러니 그전에 당연시했던 것들을 소중히 보듬는 사람이 되어야지.

 

 

PS.

비틀즈는 판타지적 설정을 위한 장치일 뿐이니 비틀즈에 관한 음악 영화를 기대하는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럼 왜 굳이 비틀즈냐고 묻는다면, 이 역할에 그들만큼 제격일 수 있을까? 현대 대중음악의 전설이자 선도주자로 비틀즈와 비교 대상이 될 수 있는 뮤지션이 몇이나 있을까? 어떤 뮤지션이든 세상에서 사라졌다고 했을 때 그들만큼 충격적일 수 있을까? 적어도 내겐 오아시스, 라디오헤드, 그린데이가 사라진 세상보다 비틀즈가 사라진 세상이 더욱 쇼킹할 듯싶다. 영국인들에겐 더욱이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감독이 굳이 비틀즈를 택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강안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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