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거꾸로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밈'들처럼 [문화 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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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출시된 켈로그의 시리얼 ‘파맛 첵스’의 광고 영상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 번째는 파맛 첵스라는 제품의 정체성이 ‘밈(Meme)’* 그 자체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러한 제품의 ‘밈’적 정체성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또 다른 밈인 ‘관짝소년단’* 을 활용했다는 것이다.
*밈(Meme): SNS 등 뉴미디어 환경에서 유행하게 되어 다양한 모습으로 재생산되는 사진, 혹은 동영상을 일컫는다. 원래의 뜻은 ‘자기 스스로를 복제하여 세대를 이어 자기 자신을 보존하는 생물학적 존재’라는 뜻.
*관짝소년단: 2017년 BBC를 통해서 알려진 아프리카 가나의 장례식 댄서들로, 보통 엄숙한 장례식 분위기와 달리 밝고 쾌활한 분위기에서 관을 어깨에 올리고 춤을 춰 붙은 애칭이다.
사실 ‘파맛 첵스’의 출시는 켈로그 측의 ‘실수 아닌 실수’로 16년의 기다림 끝에 결정된 일이었다.
2004년 켈로그는 자사의 제품 ‘첵스 초코 시리얼’을 마케팅하기 위한 차원에서 신제품 출시 투표 이벤트를 열었다. 초콜릿 맛을 대표하는 캐릭터 ‘체키’와 파 맛을 대표하는 ‘차카’를 내세우고, 전자가 더 많이 득표할 경우 기존의 초코 맛을 더 진하게, 후자가 더 많이 득표할 경우 새로운 ‘파맛’ 시리얼 제품을 새로 출시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연히 더 진한 초코맛을 선택할 것이라는 켈로그 사의 예측을 깨고, 네티즌들은 후자인 ‘차카’에 몰표를 주었다. 이에 당황한 켈로그 사는 16년 동안 파맛 첵스의 출시를 미뤄왔는데, 최근 파맛 첵스에 대한 네티즌들의 꾸준한 재소환과 공약 이행 요구가 이어지자 마침내 출시를 결정한 것이다.
이는 밈 문화의 유발 및 진행 과정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 발생한 것이 아님에도 소비자들의 기억 속에서 꾸준히 되새김 되어왔고, 그 결과 오늘날 유행하는 트렌드에 적합한 옷을 입고 재생산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밈(Meme)’은 2020년 상반기 대중문화 전반의 중심에 서 있다. 특히 기존에 태동되었던 유행어, 신조어 문화현상과는 그 결이 확연히 다르다는 점이 특징이다. 유행어나 신조어는 화제가 되기 이전의 역사가 부재하는 반면, 밈의 경우 본격적으로 재생산이 이루어지기 이전에도 이미 한 차례 이상 화제가 되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2002년 방영된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처음 파생된 밈 ‘사딸라’를 그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김두한 역할을 맡았던 김영철 배우가 극 중 협상 장면에서 반복해서 외쳤던 ‘사딸라’라는 대사는 이미 2016년 말부터 2017년 초에 한차례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베네수엘라의 마이크로소프트 홈페이지를 통하면 윈도우10 운영체제와 MS오피스 정품 등을 불과 우리 돈 몇 천 원 정도에 구매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네티즌들 사이에 알려지면서, ‘사딸라’라는 대사가 헐값을 일컫는 대명사로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지에서 유행되었던 것이다.
그 후 2년이 지난 2019년, 햄버거 브랜드 ‘버거킹’이 4,000원 대의 세트메뉴를 소비자들에게 적극 어필하기 위한 용도로 이 대사를 한 번 더 사용하면서, ‘사딸라’는 20여 년 동안 쉬지 않고 진화되어 온 밈 문화의 대표사례가 되었다.
한편, 최근 유행하는 밈의 대표적인 문화 전파 루트가 역주행적 경향성을 띈다는 것 또한 눈여겨볼 특징 중 하나다. 그 대표적인 예로는 2017년 발매된 비의 타이틀곡 ‘깡’을 들 수 있겠다.
‘깡’이 최근 보여준 역주행의 시작은 유튜브 댓글창이었다. 유튜브의 관련 동영상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이 곡을 처음 접한 네티즌들은 곧 하루에 한 번은 깡을 들으러 출석체크를 해야 한다는 ‘1일 1깡’을 그들만의 인터넷 놀이 문화, 하나의 문화 공유 대상으로 승화시켰다.
그렇게 지난 3년간 꾸준히 축적된 ‘밈’화 댓글들과 ‘깡’ 뮤직비디오 조회수는 올해 들어 마침내 B급 인터넷 문화의 경계를 넘어설 정도에 이르렀다. 여기에 원작자인 비와 방송, 연예계의 관심이 이어지며 깡의 역주행 현상이 완성 단계에 도달한 것이다.
최근의 많은 ‘밈’들이 유행 이전에 가지고 있던 역사, 그리고 역주행적 경향성은 결국 뉴미디어 시대의 문화 결정권이 대중에게 있다는 증거로 매듭지어진다. 과거 전통적인 미디어가 지배하던 시대에서는 문화의 권력이 곧 콘텐츠의 생산자들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따라서 유행의 재생산은 생산자들이 콘텐츠를 만들어 낸 직후부터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인터넷 상에서의 유행은 필연적으로 메인 미디어에서의 콘텐츠 생산 이후 시점에서만 발생했다.
그러나 2010년대 후반 이후 SNS와 뉴미디어 환경이 문화 산업의 메인 스트림으로 대두되면서 그 흐름은 완전히 역전되었다. 대중문화의 결정권은 생산자들에게서 수용자들로 옮겨졌고, 이미 오래전에 생산되었던 콘텐츠라 할지라도 뉴미디어 환경에서는 대중들이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는 형태로 아카이빙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러한 최근의 대중문화적 흐름을 바탕으로 예측해보건대, 앞으로 대중문화 속 ‘스타’ 혹은 ‘트렌드’의 바운더리는 점점 더 소수의 인기 연예인과 유명인에 국한되지 않고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유튜브를 통해 좋은 콘텐츠를 가지고 있다면 누구나 유명해질 수 있는 시대가 이미 도래했고, 일각에서는 일시적 흐름일 것이라고 전망했던 레트로 열풍이 여러 아카이빙 채널을 기반하여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한 언택트 시대의 예상치 못한 본격화 속에서도 홀연히 빛나고 있는 ‘밈’ 문화, 그 다음은 어떤 형태일까? 불안하고 힘든 시국에 더 큰 위로와 웃음이 되어줄 또 다른 밈을, 오늘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려본다.
[김현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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