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얼굴 조형학의 과감한 가설 세우기 - 도서 '예술적 얼굴책'

글 입력 2020.06.26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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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조형학의 과감한 가설 세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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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이미지에 의미를 부여한다. 의미뿐만 아니라, 리듬과 역동성을 부여한다. 몬드리안의 작품도 대단했지만, 선과 모양이 흩어진 칸딘스키의 작품에 나는 특히 충격을 받았었다. 인간의 미적 감각은 하나의 사물 외에 존재한다. 단순하지만 익숙해질 수 없는 문장이다.

 

우리의 감탄을 끌어내는 감상은 본질적으로 어디에 존재하는가? 그 질문에 대해서 다양한 미학자들이 의견을 내놓았지만, 나는 아직 이렇다할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어떤 대상에게 느끼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으레 그러하듯, 우리는 어느 순간에 예상치 못한 대상에서 가슴 떨림을 느낀다. 가슴 떨림은 이윽고 주관적 경험과 만나 사랑으로 변화한다.

 

<예술적 얼굴책>은 우리가 어떤 사물에 감탄을 느끼는 현상에 대한 하나의 설명으로서 '형태'라는 하나의 가설을 세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익숙하고, 가장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영역인 '얼굴의 형태'로 말이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고등학교 때 읽은 작가의 인터뷰 답변 하나를 떠올렸다."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온갖 이야기가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책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이 문장은 '하나의 형태로써 얼굴'이 가지는 서사의 힘이라는 것으로 구체화 될 수 있다는 데에 동의할 것이다.

 

책을 접하기 전까지 '예술적 조형으로써의 얼굴'은 익숙함에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소재였다. 사실 대개 우리는 사람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사물들을 이미지화한다. 어린 아이들이 모든 사물을 인격체로 대하는 것처럼, 우리는 사물에 영혼이 존재하는 것처럼 대할 때가 있다. 우리가 당장 손떼 탄 물건들을 버리지 못하고, 토이스토리를 상상하는 것도 우리의 인간중심적인 인지체의 예시가 될 수 있겠다. 교실에 기대어진 대걸레에서도 사람의 머리카락을 찾는 우리가 왜 이토록 '사람의 얼굴'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찰하지 못했을까?

 

 

 

암만 그래도 관상이론이랑은 구별을 좀 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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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독일 아래에서 유대인을 가려내기 위하여

얼굴의 각 부분별 크기를 측정하는 모습

 

 

개인적으로 이에 대한 답을 해보자면, '조형으로써의 얼굴'이 상대적으로 관심 밖이었던 것은 '해석체계로써의 얼굴'이 너무 큰 민폐를 저지르고 다녔기 때문인 것 같다. 얼굴의 면면과 그 형태를 천천히 따라가면서 서사를 찾아내는 조상들의 슬기는 가치가 있지만, 우리는 너무 오랜 시간 동안 그것을 차별의 도구로 사용해왔다.

 

"얼굴만 보아도 그 사람의 인생이 그려진다". 내가 잠깐 다니던 직장에는 대단한 관상론자가 있었다. 아이들이 잠재력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존귀하신 면면과 천박하신 면면이 다 보인다는 이 신비학자는 음기는 깨끗한 곳에서 고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뭐? 이게 무슨 말이냐고? 여자들은 답지 않게 나대지 말라고. 나참, 정말 오만하기 짝이 없다. 이런 이야기들을 최소한 오징어 땅콩 정도의 맥주 안줏거리로 그 이야기들을 데굴데굴 굴려볼 순 있다. 서사는 재미있으니까. 다만 그걸 대단한 평가체계라고 주장하면서 들이댄다면, 어, 뭐, 그렇게 하던가? 그런데 미안하지만 난 땅콩이 아니라 성차별 알러지가 있어서 좀 빼줬으면 좋겠네?

 

관상의 역사는 그야말로 색안경의 역사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저자의 서술을 빌려오려 한다. '공자의 동양,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서양은 나름의 '관상이론'을 발전시켜 왔다. 우선, 동양에서는 기득권자 편향의 이론이 체계화되는 경향이 있었다. 이를테면 관직 선발에서 충신을 가려내는 등, 일종의 면접 참고자료였다. 특히 서양에서는 사람의 얼굴을 동물과 연결 짓는 등, 이를 나름대로 학문화했다. 그런데 르네상스를 지나 근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이를 '유사과학'이라며 도외시했다.

 

한편으로, 독일 '나치즘(Nazism)'에 의해 이 이론은 인종별 우위를 가리는 '우생학(eugenics)'으로 정치적으로 왜곡되어 활용되기도 했다. 그 이후에는 이를 효과적인 인간관계의 '처세술', 원하는 바를 성취하려는 '성공학' 등으로 부드럽게 적용하는 시도를 통해 대중적인 관심을 다시금 이끌어냈다. 그리고 4차혁명 시대에 이르러 요즘에는 범죄자 검거나 범죄 예방을 위한 CCTV 기술이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인공지능의 활용과 맞물리면서 특정 행위를 한 인물이나 특정 성향의 인물을 얼굴로 가려내는 방식이 특정 지역에서 유통되며 이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져갔다.

 

여기까지 읽어봤다면, 관상이 얼마나 별로인 색안경인지 납득할 수 있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비판한다. '관상이론은 결과론적이고, 교조적이며, 지식 중심적이다. 이런 관상이론은 언제나 문제를 낳는다.예를 들어, 송나라 때의 '마의상법(麻衣相法)'으로 대표되는 동양 관상을 보면, 특정 종족을 정당화하고 성차별을 당연시하는 성향이 강하다. 또한, 사고를 위한 개념적인 틀이라기보다는 이미 정해진 운명인 양, 정답이라고 가정하는 태도를 보인다. 읽다 보면 정말 가끔씩 대책이 없다.' 대책이 없다. 정말 이보다 적절한 표현은 없다. 어휴, 따라 쓰다보니까 외모지상주의 사회와 더불어 괜히 나까지 짜증이 치솟는다. '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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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평가로부터 자유로운 얼굴 감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얼굴조형학'이라는 가설을 세우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에 대한 답을 저자는 책의 전반부에 제시하고 있다. 저자 임성빈은 2016년 봄에 태어난 딸의 눈빛으로 글을 시작한다. 빛나는 얼굴 사이에서 저자는 가족적 사랑뿐만 아니라 어떤 예술적인 감상을 느꼈던 것 같다. 실로 예술가다운 태도다. 이전에도 관상과 사주와 같은 전통에 관심이 있었다던 저자가 어느 기점부터 공적인 전시로써의 얼굴에 관심을 두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전시 작품을 보면서 그만의 이론을 세워나갔다. 책의 후반부는 그가 뚫어지게 감상했던 면면들에 그가 만든 체계를 끼워맞춰 본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왜 얼굴 조형학을 읽어야 하는가?'를 책을 읽은 독자로서 대답해 보자면 이렇다. 우리는 형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존재기 때문이다. 우리는 칸딘스키의 그림에서 교향악을 들을 수 있고, 대걸레에서 친밀감과 아련함을 느낄 수 있는 존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굴의 형태를 무시하고, 우리의 상상력을 억제할 필요는 없다. 다만 저자의 말대로 그것이 '좋은 색안경'이 되도록 노력할 뿐이다.

 

저자는 얼굴을 하나의 '전시'로 바라볼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바라볼 때, 도시의 가치판단 체계를 내려놓고 상상을 통해 인물의 서사를 상상해 보는 것이다. 감상의 영역에 있는 객체는 판단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관람객은 그 나름대로 답을 상상할 뿐, 자신의 상상을 굳게 믿고 남들에게 설파하지 않는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예술의 향유 과정이다. 여기에 어떤 권위나 강제성이 생기면 그건 더이상 예술이 아니라 정치가 된다.

 

정치가 아닌 하나의 감상 대상으로써 존재하는 인간의 얼굴이라, 불쾌하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다. 감상에는 선과 악, 부정성과 긍정성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가치평가체계는 힘을 잃는다. 이런 식으로 바라본 인간은 차별의 대상이라기 보다 애정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저자는 끊임없이 이 점을 강조하고 있고, 나도 그런 면에서 저자의 실험이 마음에 든다.

 

이 책의 목적은 하나의 체계를 구축하는 데 있기에, 그 체계에 기반에 깔린 사상에 관해 이야기하느라 너무 많은 지면을 사용했다. 이쯤에서 이 책이 소개하는 체계와 책 자체에 대한 감상을 말해보려 한다. 우선 각 조형에 대해서 나름의 기준을 마련한 점이 흥미로웠다. 사실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감상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하나하나의 준거는 그리 구체적이지 않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럴 필요도 없다. 오히려 거기에 낭비할 노력을 각 영역의 분류에 쏟은 것은 적절한 선택으로 보였다.

 

평소에는 관심없이 모호하게 지나간 얼굴의 자극들이 저자의 분류에 따라 생명력을 얻었다. 하나하나의 부분에 집중하고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함으로써, 작품의 인물들은 더 풍부한 서사를 갖추게 된다. 이 책의 2부는 체계에 퍼즐 맞추는듯한 즐거움이 돋보인다. 섬세한 분류체계는 감상 뿐만 아니라, 창작자에게 있어서도 관심있게 읽힐만 하다. 개인적으로는 인물 그림그리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각 부위가 주는 인상을 넘길 때마다 탄성을 질렀다. 나와 마찬가지로 어떤 창작활동, 특히 인물 설계를 즐기거나 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책상의 구석에 자리를 마련해봄직 하다.

 

그런데 반대로 얼굴의 각 세부 항목이 개성과 이미지가 중요하고 자세히 기술되기에, 음과 양의 총점은 해석과 불일치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예를들어 전체적으로 음의 기운의 얼굴이라는데, 나한테는 양으로 보인다거나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책에는 기본적으로 가중치에 대한 개념이 없다. 저자가 반복해서 말했듯이 기술적 계산은 별 의미가 없지만, 실제 활용에 있어서는 이런 부분을 인식해두는 것이 수월할 것이다.

 

 

 

나가며


 

글을 쓰면서 저자의 인상을 최대한 반영해보려 했다. 느껴졌는지 모르겠지만, 이 책의 저자는 정말 지적이면서 발랄하다. 지적인 부분은 이 책에서 만들어내려는 체계에서 느껴지고, 발랄함은 이 책 전반에서 느껴진다. 무겁지 않게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저자의 글을 보고있자면, 자기가 발견한 보물들을 남들에게 (그것도 오해 없이, 자기가 즐긴 만큼) 보여주고 싶어하는 아이가 떠오른다. 저자의 지식이 왼 손에, 사랑하는 작품들의 모음집이 오른손에 들려있다. 그래서 책은 술술 읽힌다. 무려 불쾌하지 않게 말이다. 이건 책을 쓰는 사람으로써 가지는 보물 중 하나다.

 

하지만 앞서 기술했듯, 하나의 기술로써 이 책은 부족한 면이 있다. 하지만 저자가 반복해서 기술한 것처럼, 구체적이고 실리적인 기술은 별 의미가 없다. 그는 감상자의 풍부한 상상을 위해 의도적으로 체계를 다소 엉성하게 구성했다. 그가 본질적으로 우리에게 소개하고 싶은 것은 하나의 감상체계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견 엉성해보이는 그의 체계는 사실 어떤 법칙을 만들려고 했던 얼굴이론보다 더 견고하다. 저자가 신나게 쌓아올린 성에서는 늘 즐거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일상에서도 예술적 즐거움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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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 얼굴책

- 얼굴로 세상을 바라보기 -

 

 

지은이 : 임상빈


출판사 : 박영사


분야

예술일반/예술사


규격

153*225


쪽 수 : 468쪽


발행일

2020년 05월 30일


정가 : 22,000원

 




[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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