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도 위조할 수 있을까? - 베스트 오퍼 [영화]

글 입력 2020.05.16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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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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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등장인물


 

주인공 버질 올드만은 미술품 경매회사를 운영하는 세계적인 미술품 감정인이자 경매사다. 아주 어릴 적부터 어깨 너머로 미술품 복원을 배우면서 공부한 덕분에 한눈에 예술품의 진위와 가치까지 정확하게 알아보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고 명성에 따른 부와 명예도 얻었다.


하지만 노인이 되도록 젊고 예쁜 여자 눈 한 번 제대로 마주치지 못할 정도로 여자관계에 있어선 전무한 숫총각이었다. 그뿐 아니라 타인과 닿는 것을 극도로 기피하여 언제나 장갑을 끼고 손수건을 들고 다닐 정도로 결벽증과 강박증을 앓고 있었으며 안식처로 느끼지 못하는 집에서 홀로 고독하게 살아왔다.


그런 그에게 한 가지 괴벽이 있었는데 바로 평생에 걸쳐 수집한 여인의 초상화들을 자신만의 비밀공간에 채우고 가만히 감상하는 일이었다.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그 초상화들을 수집하는 데에는 오랜 친구 빌리의 역할이 크게 작용했다.

 

빌리는 경매에 참가하여 높은 값어치의 작품을 헐값에 매수하는 방식으로 올드만과 협력해왔다. 그리고 그 이전에, 그는 절친 올드만에게 예술적 재능을 인정받지 못한 화가이다. 많지 않은 그의 대사는 매번 올드만에게 인정받지 못한 섭섭함과 아쉬움을 내포한다.

 

기계 수리공 로버트는 뭐든 고쳐내는 실력자이자 여자가 끊이지 않는 훈훈한 외모의 젊은 남자이다. 그는 올드만이 모아온 부속품들로 점점 그럴듯한 형태를 갖춘 기계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뿐만 아니라 여자 경험이 많은 그는 줄곧 올드만의 연애와 관련해 고민 상담도 해주곤 하는데 올드만은 그를 믿음직한 조력자로 여긴다.

 

클레어 이벳슨은 미지의 젊은 여자이다. 남들 사는 세상에 나가는 것이 두려워 12년간 집 밖을 나간 적이 없는, 누군가 집에 있을 때는, 그게 설령 부모님이라 하더라도, 벽 속의 방문을 잠그고 숨어버리는, 대인 공포증과 광장 공포증을 가진 여자이다. 누구도 그녀의 얼굴을 본 적이 없으며 타인과는 목소리만으로 교류한다.


 

 

2. 줄거리


 

어느 날 올드만은 집 안의 물건들에 대한 감정을 의뢰하는 전화 한 통을 받게 된다. 명확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의뢰인 클레어의 모습에 신뢰를 잃은 그는 일하지 못하겠다며 큰소리치지만, 자신과 같은 듯 다른 의문의 여자에게 야릇한 동질감, 보호 본능과 호기심을 느끼게 되고 이내 그들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처음이기에 그들의 사랑은 어설프기도 했지만 그만큼 진실해 보인다.


올드만을 통해 클레어는 은둔을 그만두고 세상과 소통하게 되고 완전하진 않지만, 타인과 어울려 살아가는 삶에 점차 적응해나가는 듯 보인다. 그런 그녀를 보며 올드만은 경매사 은퇴 후 클레어와 함께할 행복에 부푼 미래를 꿈꾼다. 하지만 그가 은퇴하던 날 클레어는 떠나고 올드만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모든 일은 몇 없는 올드만의 주변인들이 철저히 계획해 온 것이다.

 


 

3. 베스트 오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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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오퍼란 경매에서 낙찰받은 최고가를 뜻한다. 이를 단순한 금액일 뿐이라고 치부하기 어려운 것이, 이는 경매를 통해 여러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이기에 유동적이며 불특정하고 구매자와 경매사 간의 갈등과 조율의 연속이어서 심리 싸움으로 보이곤 하기 때문이다. 결국 베스트 오퍼는 상품 그 자체의 가격이 아닌 구매자 스스로가 결정한 가치이다.

 

그렇기에 의심스럽다. 내가 부른 값이 최선인지 결코 알 수 없다.


우리 인간은 전지전능한 신이 아닌 유약한 인간이기에 살아가면서 때론 모조품에 베스트 오퍼를 거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물론 그 순간만큼은 그것이 진품이라 믿었을 것이다. 혹은 보고 싶은 것, 믿고 싶은 것만 선택해 취하면서 모조품 속에 진품의 면모가 있다고 합리화했을 것이다.


불행이 시작되는 시점은 모조품에 베스트 오퍼를 건 순간이 아닌, 속았다는 것을 깨달은 그 순간부터다. 그 순간은 많은 것을 다시금 고찰하게 만든다. 삶이란 원래 이런 것일까, 사랑이란 무엇일까, 내 사랑의 값어치는, 사랑을 위해 무엇을 얼마만큼 포기할 수 있을까, 진품을 모방한 위조품에도 위조작가의 시그니처가 새겨져 있듯이 감정에도 진짜와 가짜가 있다면 연기된 사랑에도 일말의 진심은 존재하지 않았을까와 같이. 하지만 위조품이란 것을 알게 되었어도 누구도 탓할 수 없다. 가치의 무게를 정한 것도 나 자신이었고 값을 지불한 것도 나 자신이었기에, 모든 결과는 나의 선택으로부터 비롯되었기에.

 

올드만을 향한 클레어의 사랑이, 빌리와 로버트와 올드만의 우정이 전부 거짓은 아니었을 거라 생각한다. 경찰서 앞에서 발길을 돌린 올드만의 모습을 보면 아마 올드만 또한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혹은 자신의 사랑과 우정이 위조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수도.

 

마지막에 프라하로 떠나 시계탑이 보이는 숙소에 체크인하고 클레어의 추억의 장소인 night and day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올드만의 모습은 꽤나 인상적이다. 그에게 클레어는 후회 없는 베스트 오퍼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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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플롯 자체는 다른 영화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부와 명예를 가졌지만, 대인관계, 여자관계엔 서툰 노인과 재주 많고 바람기 많은 열정적인 청년의 대비라면 말이다.


하지만 그 안에 존재하는 인생과 관계, 사랑과 우정의 배신, 교만과 멸시의 최후, 감정의 작용까지. 많은 것을 이 영화는 위화감 없이 묵직하게 녹여낸다. 그렇기에 장인의 작품이라고 하는 걸까. 쥬세페 감독과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 자극적인 영상미 없이 고요하면서도 화려한 미장센들의 환상의 하모니는 오감을 만족시켜주기에 충분했다.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감상하고, 현재의 삶이 과연 베스트 오퍼였는가 돌이켜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길.

 




[강안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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