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부부의 세계, 지나치게 폭력적인. [드라마]

글 입력 2020.04.27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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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부부의 세계" 스포일러와

폭력적인 장면에 대한 묘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JTBC에서 방영 중인 "부부의 세계"는 최근 시청률 22.5%(닐슨코리아)를 돌파했다. 카페에서 기사를 작성 중인 지금, 뒷 자리 테이블에서도 부부의 세계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정도로 시청자들의 열렬한 관심을 받고 있다.  나 또한 뒤늦게 드라마 시청 대열에 합류하였다. 고급스러운 연출과 배우진의 명연기, 속도감있는 전개로 그 인기의 원인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드라마 구석구석, 나를 불편하게 하는 요소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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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자극적인 폭력 묘사


 

18일 방영된 8화 중, 지선우(김희애 분)은 의문의 괴한으로부터 습격을 받는다. 이 가해 장면을 가해자 1인칭 시점으로 설정함으로써, 폭력을 마치 VR게임처럼 묘사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목이 졸리고, 구타를 당하며 피를 흘리는 피해자의 모습을 자극적인 전개의 소재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단순히 폭력을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도구로 본 것이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굳이 이 장면을 구체적으로 연출한 것도 전개상 뜬금없이 느껴졌고, 피해자의 시선도 아닌 가해자의 시선으로 장면을 구성한 것은 더더욱 이해하기 어려웠다. 더군다나, 현실에서는 여성에 대한 무차별적인 혐오 폭력이 난무하고 있는데 이러한 여성에 대한 가학적인 폭력장면을 드라마에서 오락거리처럼 여겼다는 점이 실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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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 뿐만 아니라 극중 초반, 데이트 폭력을 당하는 민현서(심은우 분)의 피해 장면도 여과없이 그대로 송출했다. 머리채를 잡힌 채 복도에서 끌려가는 민현서의 모습은 그야말로 참혹했다.


한국의 데이트폭력은 큰 사회 문제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8년 데이트 폭력 일평균 신고건수는 64건이었으며, 2019년 (7~8월 기준) 67.5건이었다. 신고건수는 매년 상승세를 타고 있다. 그러나 데이트폭력에 대한 특별법이 부재하기에 가해자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경우가 많다.


물론, 데이트폭력에서 쉽사리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사회적으로 데이트폭력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하게 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으나, 위 장면과 마찬가지로 일상 생활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폭력을 지나치게 생생하고 자극적으로 묘사했다는 점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더군다나, 이러한 장면에 대한 트리거 워닝은 전무했다. 이는 데이트 폭력 등에 트라우마가 있는 시청자를 고려하지 않은 처사다.

 



시대착오적인 여성 묘사


 

부부의 세계 8화에서는 20대의 종업원인 조이(오서현 분)가 매일 같이 바람을 일삼는 손제혁(김영민 분)에게 명품 가방을 사달라고 요구하며 그를 유혹하고 함께 하룻밤을 보낸다. 이 장면을 보며 입이 떡 벌어졌다. 이 얼마나 구시대적이며 여성혐오적인 대사란 말인가!


여성이 물질적 대가를 위해 남성을 유혹하고, 그 대가로 하룻밤을 함께 보내준다는 서사는 여성을 주체가 아닌 그저 '신체'로 보는 것과 다름없다. 또한, 현실 세계에서 여성들을 물질적 대가를 얻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꽃뱀" 취급하는 목소리가 실재하는데도 불구하고, 부부의 세계의 이러한 전개는 물질적 대가를 얻기 위해 성관계를 맺는 여성들이 존재한다는 설정을 통해 "꽃뱀"이라는 단어에 힘을 실어주는 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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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중에서는 여다경(한소희 분)이 가운만 걸친 채 마사지 받는 장면이 필요 이상으로 강조되어 여성의 신체를 대상화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존재한다. 실제로 관련 영상의 댓글에는 배우의 신체 부분을 희롱하는 것도 다수 있었다. 여성의 신체 대상화는 구시대적이지만 드라마, 영화 할 것없이 판을 치고 있는 연출이다. 불필요하게 (여성의 신체 노출이 필요한 장면이 무엇이 있을까라는 의문도 있다.) 여성의 노출을 사용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고산은 '고구마 산지'의 줄임말인가


 

드라마가 빠르게 전개되고 있으나 바람을 핀 남성, 폭력을 가하는 남성에 대한 제대로 된 대응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아 시청자 사이에서는 작중 배경인 '고산'이 '고구마 산지'의 줄임말이 아니냐며 그 답답함을 표현하고 있다. 실제로 부부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여러 불합리한 상황들은 여성에 의해 용인되고, 인내되는 것에 그친다. 심지어 지선우(김희애 분)은 자신에게 폭력을 가하고 바람을 핀 전 남편과의 영상을 보며 과거를 추억하고, 주변인들은 둘 사이에 아직 감정이 남아있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최회장의 아내는 남편의 외도로 인해 성병에 걸렸음에도 이를 묵인한다. 여다경의 가족들은 외도를 한 이태오(박해준 분)를 위해 외도와 폭력의 피해자인 지선우를 눈엣가시로 여기고 그에게 가정 불화의 책임을 전가한다. 고구마를 먹은 듯 답답하다. 그러나 이렇다 할 해결이 진행되고 있지 않다. 앞으로 부부의 세계의 전개가 여성과 피해자가 상황을 참거나 합리화하는 것이 아닌 불의에 맞서고 가해자가 합당한 처벌과 보복을 받는 것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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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현실에 기반을 둔다. 아무리 픽션이라고 할 지라도, 현실의 요소들을 고려하며 극을 쓰고 연출해야한다. 드라마를 시청하는 사람들에게 현실의 폭력을 재생산해서 제공해서는 안될 것이다. 여성 혐오범죄가 들끓고, 여성들이 끊임없이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현실을 고려하고, 이에 대한 인식을 지닌 연출로 부부의 세계의 인기를 이어갈 수 있길 바란다.

 

개인적인 바람을 하나 덧붙이겠다. 극 중 이경영은 딸의 행복을 위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 여병규 역을 맡았다. 2001년, 위력을 이용해 미성년자 성매매를 했던 성범죄자 이경영을 드라마에서 보는 일이 더는 없었으면 좋겠다. 성범죄자를 드라마에 출연시킨다는 것은 많은 것을 내포한다. 이 또한 현실의 폭력을 재생산하고, 미성년자에의 성착취와 성범죄를 눈감아주는 것과 같은 기능을 한다고 느낀다. 한국 드라마가 더 건강한 현실을 만들어나가는데 일조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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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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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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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해
    • 정말 공감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드라마 업계 정신차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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