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공명하는 아픔 [도서]

글 입력 2020.04.14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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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하는 아픔



여전히 사랑하는 애인을 보낸 지 3년, 남자친구의 죽음을 영원히 잊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정아’에게 난데없는 소식이 들려온다.


『오늘의 엄마』는 상실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엄마를 돌보려 서울과 부산, 경주를 오가는 정아의 간병기다. 내일의 엄마를 기대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정아의 이야기가 생생히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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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엄마, 강진아 2020

 


삶의 복잡성과 모호함을 충분히 알고 있음에도 우리는 환자와 보호자의 삶을 손쉽게 슬픔으로 은유한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암에 대한 인식은 대단히 절망적이다. '암적인 존재'라는 비유가 가벼이 통용되는 게 무례하고, '암걸릴 것 같다'는 탄사는 대단히 모욕적이다.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과 누군가를 돌보는 것은 단적인 감정과 비극으로 단정되기에는 넘치게 풍부하다. 충만하고, 저릿하고, 신이 나고, 아쉽고, 때로는 기쁘다. 누군가를 돌볼 때만, 아프고 아파야만 다다를 수 있는 감정의 심연이 있다. 엄마와 함께 하는 산책에 “손이 떨릴 정도로 좋았다”는 정아의 말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메마른 가지에서 새싹이 돋아나듯 엄마의 몸에도 새싹이 돋을지 모른다. 그 무심한 반복에 홀려 정아도 덥석 희망을 품게 되었다. 엄마가 죽지 않을지도 모른다. 희망은 눈앞에 있는 개나리처럼 생생해져서 이제 명확한 미래가 된다. 엄마가 건강해지면 절대 잊지 말아야지. 엄마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꼭 기억해야지. 야무지게 다짐까지 하는 정아의 눈은 한 장의 꽃잎도 놓치지 않으려고 분주하다.


 

생소했던 병원 냄새가 코에 익게 될 동안 병원 밖과 정아 사이의 간극은 커진다.


“불쌍하고 그럼 안 돼?” 와 “너는 동정이라도 받잖아.” 같은 타인의 숙고 없는 말은 위로의 옷을 입고 다가와 정아를 찌른다. 정아의 사정을 듣자마자 찌푸러지는 미간과 어쩔 줄 몰라함에 담긴 연민은 정아에게 슬픔을 강제한다. 어쩌면 분명한 적의보다 더 치명적인 상처를 주는 것은 무지일지도 모르겠다.


타인과의 소통 불가능성과 행복이 금기처럼 느껴지는 세계에 마음이 긁히다가도, 내게 용기를 준 것은 정아가 여전히 '살아있는 것.' 매번 일어나 살아있음에 생경해하는 정아가 나는 너무 다행이다.

 

 

깨어나면서 아직은 죽지 않았구나. 살아 있구나. 라는 감각을 매번 경험하게 된다. 덕분에 정아는 그 전까지 스스로를 불멸의 존재라고 믿어 왔음을 깨닫게 되었다. (중략) 근거 없는 확신은 하룻밤 꿈으로 쉽게 뒤집혔다. 자신도 죽을 것이다. 그처럼, 엄마처럼 죽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과 다르게 지금은 살아 있다. 아직은 살아 있다.



막연한 엄마의 죽음을 잠깐 상상하기만 해도 대책 없이 슬퍼지는 마음을 안다. 그래서 더 이 책에 대해 말하고 싶다. 아픈 사람과 그 곁을 지키는 사람의 이야기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명되면, 질병은 더이상 혼자만이 감당해야할 막역한 공포가 아닌 모두의 과제가 될 것이다.

 


[곽성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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