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첫 발을 내딛는 당신에게, 마녀 배달부 키키가 [영화]

아주 작은 친절의 마법
글 입력 2024.01.01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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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처음으로 사회에 발을 내밀었다고 할 수 있게 됐다. 나는 대중교통으로 집에서 약 2시간 거리의 지역에 자취방을 얻고 목에 사원증을 걸었다. 비정규직이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대단한 일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나는 설렜고, 떨렸고, 스스로 대견했다.

 

그러나 그 마음이 오래가지 못했다. 풍경은 낯설었고 모든 사람은 너무나 대단한 어른처럼 보여서, 자꾸 기가 죽어 뭘 물어보는 것조차 눈치가 보였다. 한 일주일은 신경이 곤두서 밤에 조금 훌쩍이기도 했다. 들어앉은 자취방은 너무 작았고, 나는 바보 같이 가구도 들여놓지 않아 맨바닥에서 혼자 잠 들어야 했다. 나를 책임진다는 일은 외로운 싸움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뜻이었다. 나는 싸움엔 젬병이다.

 

지브리 영화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 유명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도저히 지루해 30분을 넘기지 못하고 끄기 일쑤였고, 아직도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왜 재미있다는 건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 감성의 문제였다. 따뜻하고 동화 같은 작품들엔 내성이 영 없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성인이 되고도 한참을 거들떠보지 않던 지브리의 작품들에 눈길을 돌리기 시작한 건, 다름 아닌 지브리 가장 초기작 중 하나인 <원령공주> 덕분이었다. 내가 관심이 없던 건 지브리의 작품이 아니라, 구체적인 메시지가 없는 작품들이라는 걸 그 작품을 통해 깨달았다.

 

몇 편의 작품을 더 관람하고, 이젠 내 취향에 맞지 않는 작품들만 남은 것처럼 보이던 시점에 <마녀 배달부 키키>를 봤다. 내가 이 영화에 갖고 있는 편견이란, '전형적인 일본만화 분위기의 이미지를 좋아하는 학생들의 배경 화면에 자주 등장하는 만화' 정도로 축약할 수 있겠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폄하는 아니다! 부디 이해해 주길.) 또 <하울의 움직이는 성> 같은 스토리 없이 예쁜 작품 아닐까, 그런 시큰둥한 생각으로 틀어본 이 작품은 내게 다른 충격을 줬다. 

 

아! 이건 꼭 막 사회초년생이 된 여자들이 봐야 하는 만화야.

 

이게 내 감상이었다. 그리고 나는 사회초년생이니, 당연히 이 만화를 보면서 제법 울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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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키는 겨우 13살짜리 꼬마애지만, 마녀가 되기 위해선 연고 없는 타지에서 1년간 자립해 수련해야 한다. 이 맹랑한 꼬맹이는 가족과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배웅을 받아 설레는 마음으로 큰 항구도시에서 생활하게 되나 자립이란 쉽지 않다. 사람들은 냉정하고, 집은 없고, 빗자루 운전(?)이 위험하단 이유로 경찰에게 쫓기는 신세까지 됐다. 대문을 열어 놓고 살아도 될 시골의 삶과 전혀 다른 앞날이 막막하기만 하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키키에게 공감이 됐다. 대학을 위해, 또는 직장을 위해 상경해 비좁은 방에 갇혀 한숨을 쉬어본 사람들이라면 그의 처지가 우리를 본떠 그린 것임을 안다. 사람들은 친절하지 않고, 지하철은 너무 복잡하고, 돈은 없지만 부모님에게 차마 손을 벌릴 수도 없다. 막막하지만 버텨야 한다. 성인이기 때문이다.

 

막막하고 두려워 한숨을 내쉬는 키키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이들은 빵집의 사장님, 그리고 한 패션 디자이너다. 사장님은 머물 곳과 아침 식사 그리고 일할 장소까지 기꺼이 내어주는 친절한 여성이다. 그렇다고 마냥 베푸는 것도 아니라, 키키는 그의 빵집에서 열심히 일을 해 보답하고자 한다. 사장님의 추천에 패션 디자이너 마키는 키키에게 선뜻 일감을 맡기고, 키키는 처음으로 자신이 마녀로서 능력을 펼칠 수 있다는 데 감개무량한다.

 

그뿐인가. 키키를 돕는 사람들은 더욱 많다. 하마터면 배달할 물건을 잃어버려 처음부터 크게 좌절해 집으로 돌아가야 했을 그에게, 화가 우르술라는 기꺼이 물건을 돌려주고 친구가 되어준다. 손녀에게 줄 선물을 부탁한 노부인은 어떤가? 키키가 기특해 생판 처음 본 꼬마애지만 초대해 초코케이크를 선물한다.

 

이런 작은 친절들은 그들에게 대단한 사건이 아니다. 베풀 수 있는 작은 친절일 뿐이었다. 하지만 효과는 대단하다. 낯선 도시 생활에 진이 다 빠져 자꾸만 소극적으로 변하려던 키키를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커다란, 아주 잘 보이는 손인 셈이다. 베풂으로서 그들의 삶 또한 아름답게 빛이 난다. 어린애의 꿈과 희망을 계속 유지시켜줄 수 있다는 효능감은 물론이요, 모두가 행복한 유토피아에라도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나의 첫 사회생활 1년은 어땠나. 돌이켜보면 분명 나쁜 일도 있었다. 코로나로 인한 재택근무 시기가 길어져 제대로 된 인수인계를 받지도 못한 채 한 2주는 뛰어다녀야 했다. 그 막막한 상황에서 내가 좌절하지 않고 적응해 지금까지도 버틸 수 있게 한 건 아주 작은 배려와 친절이었다.

 

기기 작동 방법을 몰라 우왕좌왕하던 나를 도와주었던 이름도 모를 타 부서의 누군가, 조금이라도 궁금한 일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물어보라며 기꺼이 바쁜 시간을 쪼개주던 사수, 기꺼이 점심시간을 내주고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한 동료를 만들어주려던 이제는 퇴사한 과장님...

 

너무나 많은 다정한 손길을 거쳐 20대 중반의 내가 됐다. 나는 그 기억으로 앞길을 헤쳐 나갈 것이다. 그리고 나와 똑같이 불안하던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주리라. 이 다짐은 계속해서 순환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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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켜볼 사람은 언제나 있다는 걸 알려주는 따듯한 영화 <마녀 배달부 키키>. 용기는 너무나 쉽게 무너지곤 하지만, 일어서는 것 역시 언제나 가능하다.

 

어지러운 세상이다. 계속되는 불경기에 일자리는 없고, 가짜 정보는 난무하고, 별것 아닌 거로 늘어져 물고 싸우는 사람들로만 가득해 보인다. 내가 이 세상을 잘 헤쳐 나갈 수 있을까, 그런 능력이 있기는 한가? 고민은 자꾸만 커지고 거의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포기하지 말자. 그런데도 세상은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이 여태 돌아가는 거다. 작은 친절은 마법 같은 힘이 있으니 기꺼이 거기 현혹되기를 바란다. 때로는 그런 것들이 삶을 지탱해 준다.


잘하는 게 없어도 괜찮다. 조금 혼나도 되고, 누군가에게 미움받아도 괜찮다. 누구보다 뛰어날 필요도 없으니, 그저 나 자신을 알고 키키 속 세상처럼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는 초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언제나 행운이 가득하길 바란다.

 

 

[유다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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