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로 본 사랑과 섹슈얼리티 그리고 페미니즘

신화를 재해석하다
글 입력 2020.03.19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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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 신화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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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는 굉장히 넓은 범위의 의미를 포괄하고 있고, 동시에 여러 모순되는 의견이 충돌하는 복잡한 개념이다. 어떤 지점에서 바라보면 신화는 신과 관련된 신성한 이야기이며, 어떤 지점에서 바라보면 그저 원시적 설화일 뿐이다. 또, 누군가에게는 신화란, 역사적 사실을 극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허구적 이야기나 단순한 미신일지도 모른다.

 

이 중 어떤 것이 신화에 대한 맞는 정의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신화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인간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텍스트로서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오래 살아남았다는 것은 매력적인 서사를 가졌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시간과 공간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렇기에 신화를 읽고 해석한다는 것은 이 세계가 무엇인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우리 삶에서 중요한 가치란 무엇인지 등의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고전이 그렇듯이 몇 십 세기 전의 텍스트를 지금의 세계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위험하다. 신화가 만들어지고 전승되는 과정에서 그 시대의 이데올로기가 자연스레 반영이 되기 때문에 현대 사회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리스 로마 신화가 여성 인물들을 소비하는 방식은 정말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어린 시절 만화로 신화를 읽었을 때에는 이런 소비 방식이 문제라는 것조차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 놀라울 수준이었다. 이런 이야기들을 접하며 자랐던 나와 같은 아이들의 안에는 자연스레 여성 혐오적 편견과 이데올로기가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


 

 

연극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


 

연극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는 이런 이데올로기의 재생산이라는 악의 굴레를 끊어내려 시도한 공연이라고 할 수 있다. 제목처럼 극은 올림포스의 신들 중 세 명의 여신인 헤라, 아프로디테 그리고 아르테미스가 메인으로 등장한다. 신화를 읽다 보면 이 세 여신의 행동들이 때로는 이해가 가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들을 이해하고 싶었지만, 어디에서도 그들의 목소리로 들을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연극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는 정말 반가운 연극이었다. 신화를 부수고 튀어나와 무대에 서 있는 세 여신들은 생명력이 흘러넘치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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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때때로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처럼, 세 여신들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가벼운 참견이 서로에 대한 비난과 힐난으로 번졌고, 세 여신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변호를, 그들의 감정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여신들의 이야기 : 사랑과 섹슈얼리티


 

세 여신들이 충돌하는 가장 핵심 지점은 사랑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관점이다.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 모두 헤테로 시스젠더 여성이기 때문에 사랑에 대한 관점이란 말은 곧 남성과의 관계에 대한 관점이라고도 치환해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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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에게 사랑은 영원한 안정적인 관계를 보장해 주는 하나의 약속이다.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같은 이 흔한 결말처럼 결혼이 사랑의 완성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결혼을 사랑의 종착지로 여기는 이러한 태도는 사회학자 앤소니 기든스가 이야기한 ‘낭만적 사랑’의 관점으로 해석해볼 수 있다.

 

낭만적 사랑이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널리 믿어지는 착각 중 하나이다. 자신의 운명의 단짝을 만나, 영원하고 헌신적인 관계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사랑을 고백하는 제우스에게 결혼을 약속할 것을 요구하고, 이후 변해버린 사랑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자아 파괴적 행동을 하는 헤라에게서 이러한 믿음을 찾아볼 수 있다.


만약 그녀가 낭만적 사랑의 믿음에서 자유로운 인물이었다면, 그녀 스스로와 다른 이들을 괴롭게만 하는 제우스와, 결혼 생활에서 벗어나 자신의 본연의 능력을 펼칠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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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아프로디테는 ‘열정적 사랑’의 태도를 가진 인물로 보인다. 열정적 사랑이란 사랑과 강렬한 성적인 애착이 함께 존재하는 상태를 말한다. 낭만적 사랑과 달리 쉽게 감정적으로 동화 되기 때문에 애착 관계가 굉장히 빠르게 형성되며 상대에게 깊이 빨려 들어가는 데에 반면 관계를 비교적 오래 지속할 수 없다.

 

사랑에 대해 연구한 영국의 브로니슬라프 말리놉스키는 “사랑은 하나의 열정이다. 그것은 몸과 마음에 많든 적든 고통을 주며 수많은 곤경과 스캔들과 비극을 가져오지만, 간혹 삶을 밝히고 마음을 넓히며 기쁨이 흘러 넘치기도 한다. ”고 이야기 한 바가 있다. 모든 형태의 사랑을 긍정하고 감정에 충실한 아프로디테는 이 학자가 내린 사랑에 대한 정의를 아주 잘 실천하는 인물이다.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고 사랑을 하는 아프로디테가 자유로워 보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어딘지 불편하기도 했다. 헤라나 아르테미스가 비난한 것처럼 '가벼워 보인다'의 문제는 전혀 아니다. 그저 여성의 성적 아름다움을 강조하며 사랑을 꼭 필요로 하는 모습이 어쩐지 남성과의 관계에서 종속적인 여성의 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 관계들 속에서 본인이 행복하다면 누구도 그녀를 비난할 수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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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미스는 처녀성과 순결을 수호하는 신으로서 앞선 두 인물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다른 신들과 달리 님프들과 함께 숲에서 사냥을 즐기며 독립적으로 지내는 아르테미스는 남성과 사랑의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곧 종속적 권력관계를 맺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여긴다. 이러한 모습은 최근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비연애 혹은 탈연애 논의를 떠오르게 한다. 누군가에게 종속되지 않기 위해 남성 중심 사회의 이성애적 ‘정상’ 연애를 거부한다는 논지이다.

 

연애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일어나는 수많은 문제들은 개인의 차원이라기보다는 구조적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에 비연애 혹은 탈연애가 필요하다는 설명엔 자연스레 동의를 하게 된다. 하지만 쉽사리 그 선언에 참여하지 못하겠는 것은, 살아가며 자연스레 생겨나는 감정과 욕망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아직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치 첫사랑에 실패한 아르테미스가 다시는 사랑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울부짖는 것처럼 말이다.


 

 

페미니즘 '입문극'


 

세 인물들의 대화는 그들의 태도를 보여주고 감정에 공감하게 하면서 동시에 우리가 쉽게 놓쳐버리고 말았던 신화의 폭력성을 고발한다. 강간, 데이트 폭력, 유리천장 등 현대 사회에서도 숱하게 일어나고 있는 여성에 대한 폭력들이 몇 천년 전부터 계속해서 일어나왔다는 끔찍한 사실을 다시 확인하니 속이 답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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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 아프로디테, 그리고 아르테미스는 대화를 통해 문제가 자신들에 있음이 아니라 상황에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는 듯해 보였다. 하지만 아르테미스가 연대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려는 순간 상황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헤라는 제우스의 외도 상대를 잡으러 가고, 아프로디테는 헤르메스와 사랑의 말을 나누며 떠나고, 아르테미스는 다시 홀로 숲으로 돌아간다.


최근 들어 사랑과 관련하여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만일 연극에서 이것을 좀 더 깊숙히 다뤘다면 어떤 결론으로 귀결이 됐을지 궁금해져 약간의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에서 크게 변화를 주지 않고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을 통해 여러 굵직한 문제들을 수면 위로 띄웠다는 점, 고정된 이미지로서 소비되던 여신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 줬다는 점에서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는 페미니즘 입문극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고 할 수 있겠다.


앞서 신화를 읽고 해석한다는 것은 이 세계와 인간에 대한 질문들에 대답하는 과정이라고 이야기했다. 이제 우리는 이미 굳어져 버린 텍스트로서의 신화보다는 여태껏 놓쳐왔던 행간을 읽어야 할 때일지 모르겠다. 그 행간들에서 어쩌면 진실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

- 페미니즘 입문극 -



일자 : 2020.02.29 ~ 2020.03.29


시간

평일 8시

주말 3시

월 쉼


장소 : 콘텐츠 그라운드


티켓가격

전석 40,000원

  

주최/주관

창작집단 LAS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연령

만 16세 이상


공연시간

90분


 


 

 

창작집단 LAS

 

 

창작집단 LAS는 즐겁게 공연을 하기 위해 모인 젊은 예술가들의 집단입니다.

 

우리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다양하고 감각적인 표현력으로 무대화하려 노력합니다. 이는 연극, 문학, 무용, 음악, 미술, 영상 등 어느 한 장르에 머무르지 않는 한층 진보된 무대언어를 만들어내려는 시도로 나타날 것입니다. 또한 이 시도가 관객들에게 생소하고 일방적인 소통방식으로 다가가는 것보다 이성적, 감성적인 공감으로, 신선한 즐거움으로 받아들여지길 바랍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이 '놀이'에서 출발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연극은 놀이다'라는 개념을 잊는다면 우리가 시도하는 과정들이 결코 즐거워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즐겁게 공연하는 창작집단 LAS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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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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