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호랑공주의 우아하고 파괴적인 성인식 [도서]

우아함과 파괴의 공존
글 입력 2020.02.26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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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근래 보았던 책 중에서 가장 파격적이었다. ‘호랑공주의 우아하고 파괴적인 성인식’.


요즘 시대에 공주가 어디 있으며 미성년자는 성인식을 치르지도 않는데 뭔가 소설 속 설정이 특이하긴 하나보다, 싶었던 것이 소설의 첫인상이었다. 우아와 파괴가 동시에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 궁금하면서도 대한제국이라는 배경 설정에 대한 호기심까지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는 오랜만이었다.


제목과 내용은 거의 같았고 적잖이 겁 없는 성격의 주인공 호랑 덕에 끝까지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책 내용을 짧게 요약하자면, 어느 날 갑자기 대한제국의 공주가 된 천방지축 이호랑이 성인식을 치르는 과정이다. 이(번) 글에서는 필자가 이 소설에서 개인적으로 매력 있게 보았던 점들을 꼽아 정리해보려 한다.

 

 


책 소개



호랑이 굴에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데, 어린 혁명가 ‘호랑’이 궁에 가서도 정신 차릴 수 있을까요? 대한제국 타임라인의 끄트머리를 급습한 파괴적인 공주 ‘호랑’의 우아한 성장기. “권력은 인민에게! 황족은 궁 밖으로! 펑크로 세계정복이다!”

 

앰프에도 연결되지 않은 기타 독주를 가열차게 선보이는 고등학생 호랑. 공부도 입헌군주제의 모순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이 혁명가와도 같은 연주에 그는 영혼을 쏟아붓는다. 열여덟 번째 생일, 호랑은 이 땅에서 뿌리 뽑고 싶은 ‘황족’이라는 신분이 본인을 가리킨다는 것을, 그것도 차기황제라는 커다란 그림자가 본인의 어깨 위로 드리웠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영광된 이 자리에서, 누구보다 사랑해야만 할 여러분들 앞에서 소리 높을 넘어, 사랑해야 할 사람들을 앞에 두고 어떤 선언을 들려줄 것인가. 《호랑공주의 우아하고 파괴적인 성인식》은 권력을 혐오하는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권력 앞의 엄중한 책임감을 천진한 개성으로 부각한다.

 

 


누구보다 이 ‘호랑’



이야기의 시작이자 중심인 호랑은 두려울 게 없는 한국, 아니 대한제국의 고등학생이자 예비 황제 1순위이다. 이름부터가 호랑인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설정으로, 자신의 생각이 확고하면 저돌적으로 밀어붙이는 인물의 성격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황손임에도 입헌군주제를 부정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며, 전통과 권위에는 별 관심이 없어 주변 사람들이 힘들 때가 많지만 호랑이 틀린 결정을 하는 때는 거의 없다. 어리지만 보는 사람을 철들게 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현실로 만들고자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따뜻한 시선마저 보내게 한다.


앞뒤 재지 않고 달려드는 성격의 주인공은 현실적이지 않다, 너무 극적이다, 등의 이유로 만나기 힘들었던 근래에 이런 성향의 주인공이라니 당연히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모든 부분에서 정상이라 생각되던 범주를 넘어서는 것은 그래서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호랑은 불량학생은 맞았지만 불량인간은 아니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해 호랑은 불량인간으로 분류될 짓을 가끔 하기는 했어도 어디까지나 부분적으로만 불량인간이었다. 이성과 합리적인 방법론으로 성심껏 수업을 지도하는 교사한테마저 행패를 부릴 수는 없었다.

 

p. 85 | 3. 이리 떼를 막자고 호랑을 불렀으니


 


대한제국에서 황제 되기



황실의 궁궐복원 프로젝트를 반대하는 ‘종가행진’의 나이는 막내이지만 리더로 등장하는 호랑은 정치에도 관심이 매우 많다. 입헌군주제에서 황실의 권위는 사라지고 민주주의가 권력을 균등하게 배분하는 방법이라 믿는 호랑이라서, 어떤 공주가 될지도 의문이 많이 들었다.


성격이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평면적인 인물이지만 매순간 어떤 말과 행동을 할지 예측이 되지 않아 공주나 황제라는 자리가 호랑과 어떻게 어울릴지 궁금증을 유발하는 것이 이야기를 끝까지 읽는 좋은 동력이 되었다.


이 소설의 제목이 성인식이지만, 성인식을 치르는 호랑의 이야기 뿐 아니라 공주가 되어가는 이야기이기도 해서 이전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또 한명의 공주가 탄생하겠다는 생각은 했었다. 생각보다 훨씬 강한 결단력을 보여주며 어른답지 않은 황실과 세상 사람들을 향해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하고, 리더십까지 있는 인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어 괜스레 뿌듯한 마음도 들었다.


철들지 않고 당당히 자신 앞에 있는 일들을 헤쳐나가며 호랑답게 공주가 되고 황제의 자리에 올라가는 과정은 신선하게도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호랑처럼, 자리가 사람을 만들지 않고 사람이 자리를 만들어 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인물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 리더의 역사



여기 대한제국에서의 여성 리더는 더 이상 특이하거나 귀하지 않다. 민주주의인 현실에서는 오히려 여성 리더가 많지 않으나, 더 보수적일 것 같은 이미지의 황실에서는 능력 있는 황손이 황제가 되는 것이 그렇게 특별한 일은 아닌 듯 했다.


호랑의 할머니, 이모는 위엄 있고 현명한 리더로 대한제국의 황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잘 해나가고 있었다. 호랑은 물론 특이한 아이이지만 그것이 여성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제2기 대한제국사를 연구하는 역사가들이 하나같이 가장 중요하다고 꼽는 사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일본 제국주의 점령 아래서 휘종이 대한제국 황실의 국외 망명자들을 규합해 독립운동의 상징이 되었던 것. 다른 하나는 산종이 군부 독재정권 아래서 친군부파 황실에 맞서 민주화 진영의 상징이 되었던 것. 이 두 사건은 시민들이 입헌군주제를 받아들이는 결정적인 계기들이었다. 그리고 그 두 번째 사건에서 현 황제 혜종의 어머니, 산종이 보인 활약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영웅적 결단이었다.

 

p. 40 | 2. 호랑님의 생신날이 되어


 

소설 속 가상의 근현대사에서도 친군부파는 국가의 발전을 저해하는 인물로 그려졌다. 대표적인 친군부파 황실 인물 이익태는 호랑과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로써 자신 혹은 그의 아들이 황제가 되기를 원하나 매우 무능력해 매번 호랑에게 당하기만 한다.


권력을 원하지만 올바르게 쓸 줄 모르고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정치인의 상을 투영한 인물이 아닐까 싶게 만드는, 현실적인 씁쓸함을 불러일으킨 인물이었다. 이에 황실 세습의 정당함과 권위, 논리로 이모인 혜종과 차기 황제 호랑이 반박해가는 과정은 여성이기 때문인지 더 시원시원해 보였다.

 

*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기보다 벌처럼 날아서 그대로 쏘아버린 호랑의 호탕한 황실 정복기는 이렇게나 우당탕탕이었다. 그러나 작가의 인터뷰를 찾아보니 실제로는 작품이 논리에 논리를 거듭한 완벽한 설정 하에 쓰인 것이라니 사실 조금은 의외였다. 완벽하게 ‘우아함’과 ‘파괴’를 보여주기 위해 호랑이 성인식을 거치는 과정에 재미 요소를 넣고 장면을 쪼개어 구성한 덕에 완성도 높은 팩션이 탄생했나 보다.


상식과 허례허식을 과감히 파괴하고 거부하는 호랑이라는 여성 캐릭터, 주인공은 성장하지 않지만 진정한 어른다움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 현실과 닮은 듯 다른 동시대의 대한제국까지 – 이 세 요소가 잘 어우러지는 팩션 성장소설을 꼭 추천하고 싶다.

 


[차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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