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모두를 투영하는 거울, 마치 가의 네 자매 이야기 - 작은 아씨들

글 입력 2020.02.23 17:0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곽아람 기자가 작성한 책 초반부 추천사에는 이런 고백이 등장한다. 여타 글쟁이 여성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자신의 어릴 적 우상은 조 마치’였음을 외치는 것에 반해서 자신은 ‘나처럼 맏딸인 데다 얼굴도 가장 예쁜’ 메그를 좋아했다는 이야기다. 이 말을 털어놓으며 그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자신에게 ‘글 쓰는 여자’로서의 자질이 애초부터 부족했던 것 같다는 말을 덧붙인다.

 

다들 그렇겠지만 나도 책을 읽으면서 추천사를 주의 깊게 읽지는 않는 편이다. 하지만 이 문장은 책을 읽는 내내 나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내 모습, 내 어린 시절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 역시 고백하자면 그 당시 내 ‘최애’는 조가 아니라 베스나 에이미였던 것 같다. 워낙 어릴 때부터 변방의 캐릭터를 좋아하는 취향이기도 했지만 말괄량이에 터프한 조에게는 아무래도 감정이입이 쉽게 되지 않았다. 어쩌면 나에게 조는 ‘그렇게 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동경의 대상이었는지도 모른다. 누가 가르쳐주거나 무언가의 영향으로 계몽된 것도 아닌데 그저 타고나기를 멋지게 태어난 사람처럼 보였다고 할까.


 

그림2.jpg

조와 에이미의 대화.



수년 전 국내에 페미니즘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를 비롯한 많은 여성들은 ‘여자’로 살아왔던 어린 시절의 삶을 그전과는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 그 시절의 나는 과연 누구였을까? 조, 메그, 베스, 에이미 중 누구와 가장 비슷했을까?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나는 어린 시절의 내가 그랬듯 가장 이입할 만한, 나와 가장 비슷한 인물을 찾아 헤매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곧 그런 생각이 얼마나 좁고 미숙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네 명의 자매들은 누구도 나와 완벽히 같지 않았고, 또 그렇게 무 자르듯 설명할 수 있는 밋밋하고 일관적인 인물들도 아니었다. 훨씬 생생하다고나 할까. 주체적이고 당당하게만 보이는 조 역시도 사회의 기대와 강요에 맞서 모든 걸 포기할 만큼 영웅적인 인물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그저 자신만의 개성을 가진 개인일 뿐이었다. 답답하고 보수적으로 보이는 메그 역시 나름의 주관과 결단력이 있는 강인한 여성이었고, 누구보다 심성이 착하지만 결코 성자로 묘사되지는 않는 베스, 그리고 어른이 되어 보니 가장 놀라울 정도로 입체적인 캐릭터인 에이미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각자 너무 다르지만 또한 서로 비슷하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그 모두와 닮아 있고 또 많이 달랐다. 책을 좋아하고 시니컬한 조의 성향이나 바라는 것과 의무 사이에서 갈등하는 메그의 기질, 성실하게 맡은 일을 해 내는 베스의 성격, 또 에이미의 성취욕과 현실성은 나와 닮았지만 그 밖의 특성들은 모두 네 자매들 고유의 것이었다.

 

이처럼 살아 움직이는 인물들을 그려낼 수 있었던 건 작가가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아냈기 때문도 있을 것이다. 어릴 때 문고판으로 읽었던 <작은 아씨들>이 1부에서 끝났던 것과 달리 이번 완역본에서는 후속편인 2부도 함께 접할 수 있는데, 나처럼 다른 독자들 역시 주인공 조가 결국 결혼과 육아라는 의무에 편입되는 결말을 안타까워했을 것이다. 해설을 읽어보니, 당시 올컷을 향해 조와 로리를 이어달라는 독자들의 요청이 쇄도하면서 나름대로 고민 끝에 지은 결말이라고 한다. 막상 올컷은 조가 바라던 모습처럼 독신으로 살면서 작가로서 생계를 이어갔으니 아이러니한 점이다.


 

그림1.jpg

<작은 아씨들> 완역판. 두께가 상당하다.



아직 새로 만들어진 2020년판 <작은 아씨들> 영화를 감상하진 못했지만, 현대적인 해석에 맞게 결말을 새롭게 수정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현대적으로 바꾼 버전도 물론 멋있겠지만, 원작에서의 결말은 그 한계를 명확히 드러낸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조가 본래의 뜻대로 독신 여성 작가로의 삶을 영위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충분히 해피엔딩이 되겠지만 사실 우리네 삶은 언제나 그렇게 해피엔딩이 아니라는 걸 안다. 시대적 상황도 고려해야겠지만 강력한 사회적 요구로부터 나약한 ‘개인’이 언제까지고 혁명가일 수는 없는 법이다. <작은 아씨들>의 결말을 통해 우리는 개인에게 사회의 목소리가 강제되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고,  동시에 그런 결단을 내린 조라는 인물에 대해 다시 한번 신중하게 되돌아보게 된다.

 

원작에서 조는 선택을 강요당한 피해자로 그려진다기보다는 결혼을 주체적으로 ‘선택’한 인물로 그려진다. 여기서의 선택이 정말 순전한 선택으로 여겨질 수 있을까? 아니면 비록 순전한 선택이 아니었더라도, 그것 역시도 선택이기 때문에 그 점만으로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오늘날까지도 계속해서 논의될 가치가 있는 쟁점을 던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작은 아씨들>은 여전히 널리 읽힐 가치가 있는 책이다.

 





작은 아씨들
- Little Women -


지은이
루이자 메이 올컷
 
옮긴이 : 공보경

출판사 : 윌북

분야
영미소설 / 고전

규격
124*178mm

쪽 수 : 968면

발행일
2019년 07월 30일

정가 : 15,800원

ISBN
979-11-5581-217-4 (02840)



 

 




[한민희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71414
 
 
 
 

등록번호 : 경기, 아52475   |   E-Mail : artinsight@naver.com
발행인/기사배열책임자 : 박형주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형주
Copyright ⓒ 2013-2020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