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악을 마주한 네 형제 '브라더스 까라마조프'

글 입력 2020.02.20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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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죽었다. 모든 증거가 가리키는 유력한 용의자가 체포된다. 죽은 표도르 까라마조프의 첫째 아들 드미트리. 모두에게 드잡이를 하는 포악한 성품을 지닌, 늘 아버지를 죽여버리겠다고 포고를 해대고 다녔던 드미트리는 친부 살인죄를 부인하며 말한다. 나는 악당이지만 살인자는 아닙니다.

 

그날 밤 모스크바에 있던 이반, 수도원에 있던 알료샤, 그리고 간질 발작을 일으켰던 스메르자코프를 포함한 네 형제들은 서로 의심하고, 반목하고, 마침내 각자가 자신에게 묻는다. 나 역시 아버지의 죽음을 바라지 않았던가? 악마로 비유될 수 있을만큼 방탕하고 잔혹하고 끔찍한 인간이었던 표도르의 죽음은 사실 모두가 바라왔던 것이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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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던 장로는 죽은 뒤에 그 시체가 빠르게도 썩어가는데, 모두가 악인이라 피하는 표도르 까라마조프의 시체는 당장에라도 일어나 보드카를 들이킬 듯 생생하다. 무신론자인 이반은 이를 지적하며 수도사 견습생 알료샤에게 묻는다. 그리고 믿음에는 증거가 필요치 않다는 알료샤의 말을 비웃는다.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는 아버지를 죽인 진짜 범인이 누구인가, 하는 질문과 동시에 신과 악에 대한 질문도 끊임없이 늘어놓는다. 이반이 말하는 신의 아들을 불태우는 논문은 듣기에 껍데기만 번지르한 궤변 같기도 하나, 그의 그런 ‘헛소리’는 마찬가지로 덧없는 ‘수증기’라는 의미의 이름을 가진 스메르자코프의 손으로 힘을 얻는다.


그들 앞에 선 알료샤의 모습은 도리어 덧없고 나약해 보이지만 결국 마지막에 홀로 우뚝 선 것은 신을 내려놓고도 무릎 꿇지 않은 알료샤뿐이니, 내내 도피하고 위선의 가면을 쓰고서도 마침내 가장 강인해지는 것은 알료샤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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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의 말에 따르면, 신은 연락이 끊긴 지 오래되었지만, 무대 위의 악은 눈앞에서 선명하게 살아 숨 쉰다. 극의 시작과 동시에 죽은 아버지 표도르는 다만 시체로 누워있지 않는다. 그는 살아있는 그 누구보다도 강렬한 에너지를 가지고 삶을 찬미하는 악이다.


술을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고, 크게 웃는다. 아들들은 그의 피를 제 몸에서 빼내고 싶어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이반은 악 역시 증거가 없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표도르의 큰 발소리에서 그 증거를 보는 듯한 기분에 휩싸인다. 아들들이 아버지를 그토록 증오하고 경멸하면서도 또한 사랑한다고 말하였을 때에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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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냐, 행동이냐. 행동하지 않았어도 그 의지를 가지고 있던 것만으로 죄를 짓는 것일까? 이반은 결국 그리 자수하고, 드미트리 역시 행동하지 않았음에도 사람들로 하여금 그런 의심을 받게 만든 것은 자신의 잘못이라 말하며 무릎을 꿇고 눈물로 사죄한다.


그간 신에게 의지하며 까라마조프의 피로부터 도피했던 알료샤는 도리어 형제들 중 가장 순진하지도 솔직하지도 못한 인물일지도 모른다. 그런 알료샤가 로만 칼라를 빼내 놓고, 꿇어 앉은 두 형들 사이에 선 장면은 인상적으로 눈에 박힌다.

 

*


극장 안에는 유령처럼 여성들의 이름이 떠돈다. 벌써부터 기억 속에서 흐려져가는 이반이 사랑하는 드미트리의 약혼녀의 이름, 드미트리와 표도르가 동시에 원하던 여인의 이름, 네 형제들의 세 어머니와 알료샤가 보았던 휠체어에 탄 여자... 수 많은 이름의 여성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은 마치 무력한 유령과도 같다.

 

무대는 어떠한 고해의 장소처럼 보이기도 하고 마치 카타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사방 구석에 위치한 아들 각자의 공간 가운데, 무대 중앙에 놓인 단은 종교적인 제단처럼 보인다. 산산이 흩뿌려지는 장미꽃과 흘러내리는 흙모래, 간혹 성수처럼도 느껴지는 보드카가 그런 종교적인 느낌을 더한다. 지난 시즌과는 크게 달라진 연출이 있을까 기대하였으나, 그렇지는 않았고, 눈에 익으면서도 상징적인 연출이 무대를 메우고 있었다. 그러나 대사와 가사는 직설적이고 반복되어 이해를 돕는다.


무엇보다도 배우들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대단하다. 홀로 무대를 채워나갈 때는 물론 워낙에 서로 다른 성향의 인물들인지라 둘 이상이 맞붙었을 때에도 강하게 부딪혀 무대를 가득 채운다.

 

*

 

네 형제들은 결국 자신의 의지와 악을 직면했다. 누군가는 도망치고 누군가는 무릎을 꿇었고 누군가는 다른 것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두 발로 똑바로 섰다. 신을 내려놓고도 악을 직면하여 단단히 마주 선 인간.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는 그렇게 끝나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브라더스 까라마조프
- The Brothers Karamazov -


일자 : 2020.02.07 ~ 2020.05.03

시간

평일 오후 8시

토 오후 3시, 7시

일 2시, 6시

월 쉼


장소 : 대학로 자유극장

티켓가격

전석 60,000원

 
주최/기획
과수원뮤지컬컴퍼니

관람연령
만 13세 이상

공연시간
100분
 


 
 
[김민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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