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런던에서 백남준을 만나다. [문화 전반]

비디오 아트스트로만 기억되기엔 너무나 큰 예술가
글 입력 2020.02.0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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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테이트 모던

 

 

지금 런던 테이트 모던엔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백남준 그의 이름 'NAM JUNE PAIK' 포스터가 당당히 걸려있다. 명성있는 미술관 테이트 모던에서 그의 개인전이 열린다니. 괜히 내가 다 기쁘고, 자랑스럽다. 현지인, 외국인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에 귀를 기울이고, 관심있게 바라보는 모습을 보며 그가 세계적인 아티스트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번 전시를 통해 그의 다채로운 모습들을 접하기 전까지 내가 그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은 '백남준은 비디오 아트라는 새로운 예술 장르를 개척한 사람'이라는 것. 그 뿐이었다. 어렸을 때 체험학습으로 어쩌다 백남준 아트센터에 가봤던 적은 있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 그의 작품을 제대로 마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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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eyeglassesm (1971)

 

 

처음 이 작품을 실제로 마주했을 땐, 뭔가 어떤 표현으로도 형용하기 어려운 그런 감정이 들었다. '새롭다', '특이하다'는 말로는 그 느낌이 온전히 표현되지 않는다. 아마 '섬뜩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듯 하다.

 

TV 화면에 나오는 알 수 없는 영상과 색감은 공포영화같았고, 입력 과잉 시대 속에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혼돈의 세계로 빠져들어가는 그 혼란스러움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내가 느낀 이 오싹함은, 수많은 미디어 매체 속에서 노예가 되어 판단력을 잃고 살아가는 시대에 대한 무의식적인 두려움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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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정원 (1975년) 

 


초록색 풀 사이에 여러 대의 TV를 설치해 영상을 틀어둔다는 그의 아이디어 또한 충격적이었다. 어떤 생각으로 이 작품을 만든 건지, 그의 의도가 궁금해지는 작품이었다.

 

자연과 기술이 어우러지는 세계를 소망하는 것인가? 아니면 자연을 지배하는 기술의 등장에 대한 위험을 예고하는 것인가? 혹시 그 두 가지 모두를 말하고 싶은 건가? 아니, 어쩌면 그냥 그 때 당시의 첨단 기술을 사용해 번뜩이는 영감을 표현한 실험적인 작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방가르드 작곡가, 존 케이지를 존경했던 백남준


 

비디오아트의 창시자인 그는 사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부유한 집안에 태어나 피아노 레슨, 작곡, 성악 등 포괄적인 음악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중학생 때 작곡가였던 음악선생님을 만나며 아르놀트 쇤베르크의 음악세계를 알게 되었다.

 

쇤베르크는 소음에 까까운 불협화음을 사용하며 연주한 난해한 작곡가로 유명한데, 그의 음악에 매료된 백남준은 쇤베르크의 전문가가 되겠다고 결심했고, 실제 도쿄대학 졸업논문으로 그에 대한 연구를 하기도 했다. 그 자체가 전통음악에 대한 반란인 쇤베르크 음악을 좋아했던 것을 보면, 기존 예술의 흐름을 철저히 거부하고자 하는 반항심은 어린 시절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도쿄 대학 졸업 이후 그는 본격적으로 음악 공부를 하기 위해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그리고 독일에서 그는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또 한 명의 중요한 사람을 만난다. 그는 <4분 33초>로 유명한 아방가르드 작곡가 존 케이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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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과 존 케이지

 

 

그는 “나의 인생은 존 케이지와의 만남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며, 그를 스승으로서 아주 많이 존경했고, 그를 위해 A Tribute to John Cage라는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이 비디오에는 비명소리나 모터사이클 소음이 들리고, 살아있는 암탉이 든 상자 등 예측할 수 없는 것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모르겠는 것들이 계속해서 나오는데, 이는 그가 존 케이지가 말하는 우연성을 비디오라는 매체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문화 테러리스트, 백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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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타이를 자르는 퍼포먼스 (1960)

 

 

백남준. 그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파괴적이고 도발적이며 반항적인 사람이었다. '피아노 포르테를 위한 연습곡'을 연주하다 청중석에 끼어있던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느닷없이 잘라버리기도 하고, 샬롯 무어맨과 '인간 첼로' 퍼포먼스를 하기도 하며, TV와 피아노를 결합하여 전자조각을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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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ce by Merce (1978)

 

 

전시를 보는 동안, 내 머릿속은 ‘왜?’라는 물음으로 가득했다.  ‘말하고 싶은게 뭐지?’ ‘왜 이런 작품을 만든거야?’ ‘이렇게 까지 한다고?’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새로운 작품을 보면 볼수록 더 많은 궁금증이 생겨났다. 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려 같은 작품을 여러번 보기도 하고, 옆에 붙어 있는 작품 설명을 다시 읽어보았지만, 혼란스럽기만 했다.


그래도 그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악기를 부수고, 파괴하고, 이미지를 계속해서 분리시키는 그의 난해한 작업들은 섬뜩하고 기괴해보였지만 보이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가 작품을 하는 데 있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어떤 특정한 것을 의도 하고 만든 것일까. 아니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작품을 통해 어떤 의미를 찾길 바랐을까. 여러 궁금증이 머릿속을 스쳐지나 갔지만, 어쩌면 그는 그냥 예술을 하는 그 과정 자체를 진심으로 즐겼던 것 같기도 하다.


그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세계의 역사는 우리에게 알려준다. 주어진 게임에서 이길 수 없다면 규칙을 바꿔라.”라고.

 

무엇이 됐든 예술, 음악, 기술, 과학 등의 장르를 넘나들며 작업 영역을 확장시켜 나가는 그의 모험정신과 도전정신은 정말 대단하다. 그가 지금까지도 높게 평가 받고 있는 이유는 첨단기술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재설정하며, 예술의 본질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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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어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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