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여기 그녀들의 삶을 좀 봐 주세요 - 체홉, 여자를 읽다 [연극]

글 입력 2020.01.27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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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홉, 여자를 읽다>는 유쾌했다. 고전 소설답지 않은 세련된 연출과 웃음 포인트는 '안톤 체홉'이 '대학로'에 나타났음을 알렸다. 고전의 특성상, 이야기의 배경이나 상황 등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요소들이 적은 연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연극을 보며 많이 공감했다.

마냥 웃으며 보기에도 좋았고, 그 웃음 뒤에 남는 쓰라린 잔상도 좋았다. 공연은 매우 다채로웠고, 적정선을 잘 지켰다.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으면서 메시지 전달에도 소홀하지 않던, 의미 있는 공연이었다.

나는 이 연극을 통해 무대라는 공간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공연 시작 전, 소품들만 올려져 있던 무대는 건조하고, 적막했다. 하지만, 공연이 시작되자, 무대는 인물들의 말과 눈물, 그리고 감정으로 가득 채워졌다.

짧은 에피소드들이 지나가는 동안, 무대 위의 감정은 겹겹이 쌓여 짙어졌다. 그 감정들은 연극이 끝나서야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웃고 즐기다 공연이 끝나고, 무대 위를 바라보니, 그 감정들이 쌓여 있었다. 나는 <체홉, 여자를 읽다>가 다루던 이야기가 여자의 욕망이 아닌, 여자의 '생'이었다고 생각한다.



사랑이 하고 싶어요, 삶을 살고 싶어요.


연극 <체홉, 여자를 읽다>의 여자들은 가정이 있는 여자들이다. "약사의 아내", "아가피아", 그리고 "소피아". 그들은 전부 누군가의 아내이지만, 다른 남성에게 사랑을 느끼고 갈등한다. 가정이 있는 여자가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왜 나는, 관객은 그녀들에게 공감했을까? 관객이 전부 나빠서였을까? 아니면, 연극 내의 남편들이 너무 거부감 들게 묘사되어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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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틀렸다. 그녀들의 남편들이 아무리 매력적인 모습으로 등장했어도 관객은 그녀들에게 공감했을 것이다. 왜냐면, 그녀들에게는 결혼에 대한 선택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남편은 "사랑"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저 주어진, "남편"이었을 뿐, 애초에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의 남편들 역시 그녀들을 사랑하지 않았다. 연극 속 인물들의 결혼은 그저 그 시대에 충실했던 하나의 의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불륜은 도덕에 어긋나는 행위이다. 그러니까, 당시 여자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맺은 결혼 관계로 인해, 그 외의 누군가에게 사랑을 느끼는 그 순간, 부도덕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욕망은 본능이고, 사랑은 삶의 일부이다. 나는 극 중의 여자들이 느끼고 싶어 하던 것은, 단순한 사랑과 쾌락이 아닌, 그들의 주체적인 삶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녀들의 욕구 중 절대 드러나서는 안 되는 것이 사랑이었으므로, 불륜이라는 소재를 통해 더욱 극적으로 묘사되었을 뿐, 그들은 '일탈'이 아닌, '생'을 원했다.

극 중 남편과 함께인 여자들은 마치 죽어있는 것과 같았다. 남편을 위해서 헌신하지만, 그에게 사랑받지도, 존중 받지도 못했다. 그녀들이 유일하게 숨을 쉬고, 생을 느끼는 것은 다른 남성과 함께 있을 때였다. 단지 즐거워서만이 아니라, 그녀들은 자신의 감정에 충실할 때 자유로웠고, 힘이 있었다. 그런 삶을 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활기차고, 행복하고, 솔직할 수 있는 삶을 살 때, 그녀들은 더욱 아름다웠다. 그것이 불륜이어야 했던 당시의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죽어 마땅한 아내였다고요?

 


라울 - 저는 쾌락, 즐거움, 즉흥성 따위로 아내들을 독살하지 않았습니다. 그 작고 허약한 존재들에게 모르핀과 인이 발린 성냥을 권한다는 게 어디 쉬운 줄 아십니까?



4개지 에피소드 중, 3번째 에피소드는 남자의 시점에서 진행이 된다. 연극 <체홉, 여자를 읽다>의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는 이 장면은, '푸른수염'의 '라울'이 자신의 아내들을 살해한 이유를 설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마지막에 실수로 죽인 7번째 아내를 제외한, 6명의 아내를 죽인 이유를 설명했다. 과장된 연출을 통해 묘사된 이 장면은, 극적인 코믹 요소들과 함께 관객들 역시 '어유, 저 정도면 같이 못살지!'라는 마음을 갖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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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처럼 자신을 따라다니던 아내, 감정표현이 심한 아내, 계속 노래하는 아내, 지식이 너무 많은 아내, 시인과 불륜관계를 맺은 아내, 그리고 파티를 좋아하던 아내. 연극 내에서 그녀들은 정말 징글징글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녀들의 죽음은 웃음으로 소비된다. 연극적 요소와 함께 '라울'의 살인이 정당화되는 것이다.

이 에피소드는 가장 코믹한 에피소드였지만, 가장 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남자가 살해를 해도 여자의 죄라며 정당성을 주장하는 사회의 모순을 보여주었다. "약사의 아내", "아가피아", "소피아"에서의 남편들의 모습은 정말 최악이었다. 아내들이 가정에서 도망치고 싶을 만큼 그녀들을 아끼지 않았고, 무시했다.

하지만, 결국 욕을 먹고 죄인이 되는 것은 아내들이었다. 불륜, 그 이유 하나 때문에 결론적으로 여자가 문제라는 시선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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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어떤 사람이든, 살인은 정당화될 수 없다. '라울'은 당당하게 자신은 그녀들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고, 누구라도 그랬을 거라고 덧붙였다. 여자를 자아를 가진 한 개인으로 존중한다면, 그런 주장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살인의 원인을 피해자에게서 찾고, 가정불화의 원인을 여자의 불륜에만 돌리는 것, 지나치게 남성 중심적인 사고의 모습이다. 물론 지금 시대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지만, 여전히 많은 여자들은 "여자가 어떻게 ..." 따위의 말들을 듣곤 한다.

아직까지도 여자는, 살아보려고, 자신의 삶을 느껴보려 하는 것들에 따라붙는 제약과 금기로 망설여야 할 때가 있다. 가령 패션이나 커리어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에는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반응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연극에서는 욕망, 사랑에 대해 다뤘지만, 현시대에 남아있는 사소한 차별들 역시 충분히 대입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연극 내에서 유쾌하게 표현되어서 그렇지, 실제 그들의 감정과 아픔을 상상해보면, 참 비참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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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체홉'은 질문을 던지는 작가였다고 한다. 나는 그가 여자를 남자의 전유물로 보지 않고, 개인으로 바라보던 사람이었음을 연극을 통해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바라본 여성의 삶은 박동하고, 요동치며, 설레는 그런 사랑스러운 삶이었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시대적, 사회적 억압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생을 포기하며 지내야 했지만, 여자도 인간이다. 여자도 느끼고, 사랑하고, 울고, 웃는다. 불륜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 당시 사회에 묻고 싶다. 과연 그 시대의 결혼제도는, 여성의 지위는 정당화될 수 있었느냐고.

현재까지도 여자의 삶에 많은 억압이 가해지고 있다. 연극 <체홉, 여자를 읽다>는 그 억압과 시선을 풀기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한다. 여자를 있는 그대로의 한 개인으로 인정해주는 것. 모두에게 그 자세가 필요하다.

여성이기 이전에, 아내이기 이전에, 그들도 그들의 삶이 있다. 자신만의 감각으로 느끼고, 사랑하고, 꿈을 꾼다. 억압되고 부정한 것으로 취급되기에는, 너무도 소중하고 예쁜 삶의 모습이다. '약사의 아내', '아가피아' 그리고 '소피아'가 집을 떠나며 느꼈을 수많은 감정들이 뒤엉켜 여전히 무대 위에 남아있을 것만 같다. 나는 감히 그녀들의 결백을 주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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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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