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내가 당신의 이름으로 불린 후에, 파인드 미 [도서]

당신도 나를 찾고 있나요
글 입력 2020.01.12 14:19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표지1.jpg

 

 


Prologue.



이 책을 읽기로 한 건 순전히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잔상 때문이었다. 아마 나와 같은 이유로 책을 선택할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친구들의 추천으로 보았던 이 영화는 누구나의 첫사랑에 관한 기억을 미화했고, 인물들과 줄곧 함께 비춰지는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풍광은 입소문이 자자할 만큼의 영상미를 탄생시켰다.


단지 영상미가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그들이 그려내는 풋풋한 향의 사랑이 그립고 보고 싶어져 오래도록 장면 하나하나가 기억에 남는 영화로 나에게 자리 잡았다. 그러니 ‘파인드 미’를 읽게 된 건 우연이 아니다. 나를 포함해 많은 이들이 궁금해 했을 그들의 뒷 이야기에 대한 물음에 작가가 응답해주어 감사할 따름이다.

 
 
 
미란다, 새뮤얼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영화로 잠깐 보고 줄거리를 파악했던 정도라, 디테일한 묘사 하나까지 기억하고 있지 않았지만 후속작의 상당 부분에 전작의 모습이 겹쳐 있었다. 전편에서의 떠나간 사랑 이후, 다시 자신을 찾아주기를 바라고 또 한번의 사랑을 기다리는 새뮤얼과 엘리오의 모습이 소설의 주요한 내용이었다.
 
아내와의 결별 이후, 자신이 살아온 삶 전체에 대해 무력감과 회의를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냈던 새뮤얼이 기차에서 미란다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과정은 급작스러우면서도 매우 섬세했다. 왜 미란다라는 사람에게 빠지게 되었는지, 그의 감정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묘사하는 부분은 물이 흐르는 모습을 연상케 했다. 첫 번째, 눈맞춤으로 발을 담그고-두 번째, 대화의 시작으로 물장난을 치다-세 번째 순간부터는 무릎 높이라고 생각했던 계곡에 온 몸을 적셔버린 것 같았다.

물론 미란다의 나이가 자신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몇 번의 주춤거림이 있었지만 그건 아무래도 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한 번의 주파수가 맞은 뒤부터는 서로가 운명이라고, 내가 찾던 사랑일 거라고 굳게 믿고 함께할 것을 약속했다.
 


오래전 바로 이 로비에서 키스한 여자가 떠오를 줄 알았지만 기억나는 거라고는 로비에 밴 불멸의 매트 곰팡내뿐이었다. 로비는 절대 나이 들지 않아. 우리도 마찬가지야. 아, 하지만 우린 나이가 들지. 성장하지 않을 뿐.


- 101p



사실 작가가 이 작품의 거의 유일한 여성 캐릭터인 미란다를 묘사하는 시선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그녀의 매력 대부분은 외모에서 오는 것이며, 아무래도 자신의 사랑이 좋지 않았던 것이 연륜이 부족해서라는 인상을 적지 않게 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마다 취향과 가치관이 다르지만, 많은 매체에서 남성의 나이가 많은 이성 커플을 다루는 방식과 어조가 생각나 이들에게 불편한 시선이 투영되었는지도 모른다. 한번쯤 짚고 넘어가고 싶어 사족을 덧붙인 격이 되었으나, 그렇다고 새뮤얼과 미란다의 사랑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본 것은 아니다. 삶의 마지막에 가까워져서든, 비관에 빠져있을 때든 운명의 상대를 만나 사랑한다는 것은 모두가 꿈꾸고 갈망하는 것이니까.
 
 
 
엘리오, 미셸, 그리고 다시 올리버

 

엘리오는 새뮤얼과 조금 달랐다. 여전히 떠난 올리버를 그리워하고 ‘진짜’ 사랑이 없는 현재의 삶을 비관적으로 바라보지만, 아직 어리기 때문인지 사랑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기억하는 엘리오는 영화 속의 앳된 소년이라 갑자기 나이를 먹었다는 사실이 와닿지 않았지만 다행히도(?) 그의 마음은 그리 나이를 먹지 않아, 다시금 그에게 몰입할 수 있었다.


“벽이 뭐라고 말할까요?” 미란다가 엘리오와 벽에 완전히 심취해서 물었다.
“뭐라고 하느냐고요? 간단해요. ‘나를 찾아. 나를 찾아 줘.’”

“엘리오는 뭐라고 말하죠?”

“나도 같은 말을 해요. ‘나를 찾아요. 나를 찾아 줘요.’ 그럼 우린 둘 다 행복해하죠. 여기까지예요.”


- 138p



15년이라는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마음 속 사랑이 열일곱에 머물러 있기 때문인지 여전히 조심스러운 성향의 엘리오는 성당에서 우연히 만난 미셸에게 단번에 끌렸다. 생에 두 사람만이 진짜 사랑이라며, 올리버가 자신을 찾아주기를 그토록 기다리면서도 또 다른 형태로 미셸과의 만남에 행복을 느낀다.

사랑받는 느낌을 주고받으며 온전한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미셸이 고맙지만, 한 번 더 자신이 찾고 있으며 자신을 찾아주길 바라는 올리버에게로 떠난다. 이후 올리버 역시 같은 생각으로 이탈리아에 돌아와, 엘리오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계속 함께할 수 없던 까닭에서인지, 주인공이기 때문인지 책을 덮지 얼마 되지 않은 지금에는 미셸을 떠나 올리버에게로 간다고 말하던 엘리오의 모습이 더 기억에 남는다. 막연히 자신도 모르게 또 다른 사랑을 기다리고 있던 새뮤얼, 한 번의 사랑이 같은 사람으로 다시 와주길 바랐던 엘리오. 둘 다 나를 찾아달라고 외치던 이전의 모습에서 마침내 사랑을 찾자 삶에 환희와 행복이 넘치던 모습.
 
진정한 사랑 없이 살아가는 삶이 소설 속에서는 이렇게까지 무미건조하나 싶을 정도로 그려지지만, 연애를 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또 사랑스럽고 애틋한 마음마저 들었다. 아마도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영상미에 사로잡혔던 것처럼, 안드레 애치먼의 문체가 독자들을 이런 감정까지 끌어올린 것 같기도 하다.
 
스스로 사랑에 편견이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다양한 형태의 사랑에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도록 아름답고 우아하게 그려낸 섬세한 감정선이며, 묘사하는 장면마다 느껴지는 특유의 향이 참 좋았다. 로맨스가 생각난다면 이 책을 오래도록 곁에 두고 읽어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좀 더 나이가 들어 나에게서 많은 사람이 지나간 후에 이 책을 다시 읽어본다면, 그때의 감정을 지금의 것 옆에 새삼스레 또 적어보고 싶다.


기나긴 시간, 기나긴 세월, 우리를 스치고 떠나보낸 모든 삶이 결코 쉽게 일어날 수 없었던 것처럼, 설령 그렇더라도 시간은, 우리가 껴안고 늦게 잠들기 전에 그가 한 말처럼 시간은 언제나 아직 살지 않은 삶에 치르는 대가다.

- 292p


 
[차소연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3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