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대에 머물다 [사람]

이제 조금 이해가는 것
글 입력 2019.12.25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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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 아닌 사건을 기억한다. 무한도전 특별기획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그때의 나는 평소 무한도전을 챙겨보던 애청자도 아니었을뿐더러, 수능을 거하게 망치고 줄줄이 대학에 떨어져 좌절한 상태였다. 하지만 겨울을 뜨겁게 휩쓸었던 토토가의 열기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방청 양도 표를 구하는 게시물, 역주행 하는 그 시절의 곡들, 녹화에 다녀왔다고 자랑하듯 말하던 윤리 선생님, 티비를 틀면 언제나 토토가의 재방송이 나오고 있었고, 90년도 스타들의 재조명도 한동안 이루어졌다. 당시 세상을 등지고 있던 내가 기억하는 게 이 정도라면 실제로 어땠을지는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나는 그 인기가 이해되지 않았다. 회사에 연차를 내고, 비행기 표를 끊어서까지 올 정도로 가치 있는 일인가?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새로운 사람을 사귀면 각자의 노래 취향에 대해 이야기하곤 한다. 전에는 하지 않던 일인데 어느 순간부터 그 사람이 어떤 장르의 노래를 좋아하는지, 어떤 노래를 듣는지 물어보게 되었다. 최근에도 즐겨 듣는 노래를 공유하다가 한 가지 생각을 했다. 나는 지금도 10년 전에 살고 있구나.


무슨 소리인가 싶을 수도 있지만 아주 이상한 말은 아니다. 체리필터 <피아니시모>, 동방신기 <그리고…(Holding Back The Tears)>, 박지윤 <바래진 기억에> 이 세 곡은 정렬 기준을 많이 들은 순서로 배열하면 나오는 것들이다. 10년 전부터 감상해온 동시에 그 이전에 발매된 곡이기도 하다.

 

 

 

 

실제로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 아이팟에는 2008년에서 2012년 사이에 발매된 곡이 많이 들어있다. 그 당시에 넣은 곡이기도 하지만, 이후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를 사용하게 되어 아이팟 속 노래는 아직도 그 시절에 머물러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요즘 발매되는 곡을 아예 듣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나는 계속 나의 아이팟을 찾게 된다. 그때 들었던 그 플레이리스트의 곡을 듣기 위해.

 

왜 나는 검색 기능도 없어서 손가락으로 휠을 돌려 노래를 찾아 들어야만 하는 구닥다리 아이팟을 자꾸 찾는 것일까. 나에게 아이팟은 그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켜주는 매개체다.


이제는 어색해진 주렁주렁한 이어폰을 단종된 지 오래된 아이팟에 끼우고, 손수 한 곡 한 곡 재생목록에 추가해 둔 노래를 듣고 있으면 교복을 입고 이른 새벽 등교 버스에 몸을 실은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수업 시간에 몰래 노래를 듣기 위해 친구들과 작당 모의하던 순간과 이 노래는 꼭 들어야 한다며 서로의 mp3를 들고 옹기종기 모여있던 순간 같은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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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노래들은 지금 내 취향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아카펠라 댄스 그룹으로 기획되어 다섯 명의 음색이 조화롭던 동방신기의 곡을 수 백 번 수 천 번 들은 내가 요즘 아이돌의 곡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건 그리 이상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나는 어릴 적 부터 랩이나 힙합 장르를 좋아하지 않았다. 때문에 랩이 필수조건처럼 포함된 요즘의 노래를 듣기 힘들어하는 게 아닐까. 그들의 노래를 비하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의 취향이 아닐 뿐이다.

 

몇 달 전 가을에 가족끼리 외식하러 가다가 아빠가 작게 부르신 노래를 들었다. 스쳐가듯 짧은 한 소절이었지만 너무 유명한 곡이라 나도 알고 있던 노래였다. 이용의 잊혀진 계절을 흥얼거리시는 모습이 다시금 떠오른다. 글을 쓰기 전 검색해보니 아빠가 열여섯 살 때 발매된 곡이었다.


아빠에게 ‘잊혀진 계절’이란 내가 아직도 놓지 못하고 있는 것들과 같은 것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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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교대하기 위해 편의점에 가면,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잊혀진 계절' 같은 느낌의 곡이 매장에 틀어져 있곤 한다. 아빠만의 플레이리스트인 셈이다. 나름의 사연을 가지고 있을 플레이리스트를 둘러보며 언젠가 아빠가 그 시대에 머물게 된 이유를 여쭤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처럼 아빠도 나의 시대와 지금 시대를 낯설게 느끼고 계실지 궁금하다.

 


[김혜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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