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제는 심청과 친해질 수 있을까? - 뮤지컬 심청날다

글 입력 2023.11.04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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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7일, 서울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소리꾼 오단해와 신예주를 주축으로 한 국악 크로스오버 밴드 ‘날다’가 심청전을 재해석한 국악 뮤지컬 <심청날다>를 관람했다. 메트라이프생명 사회공헌재단과 한국메세나협회가 2019년부터 이어온 문화예술 사회공헌 ‘The Gift(더 기프트)’ 프로젝트는 재능 있는 예술단체를 발굴해 3년간 지원하고, 공연을 개최해 지역사회에 문화예술을 향유할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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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전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아버지를 위해 기꺼이 목숨까지 바친 효녀 심청의 이야기는 미취학 아동 시절부터 귀에 딱지가 앉게 들었다. 사람들이 하는 말은 다 정답으로 여기고 마냥 심청이를 우호적으로 여겼던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 국어 시간에 ‘비판적 사고’를 배우면서 조금 다른 시선을 갖게 되었다.

 

능동적인 해석을 강조하던 그 수업에서는 효녀 심청을 두고 ‘아버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행동이 오히려 더 큰 불효는 아닐까’라는 질문이 나왔다. 생각지 못한 질문에 나는 또 아무 생각 없이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중학생이 된 이후부터는 굳이 심청전 같은 옛날이야기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 성인이 된 이후 가부장적인 가치관을 비판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심청의 행동을 마냥 ‘효도’로만 보지 않는 시선이 늘어났다. 아버지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행동을 어떻게 개인의 선의로만 해석하는지, 심청을 인당수까지 내몬 상황이 얼마나 악랄한지 말하는 목소리를 듣고 내가 초등학생 때 배운 비판적 사고가 제대로 된 비판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심청은 더는 효녀가 아니라 불쌍한 가부장제의 피해자였다.

 

뮤지컬이 막 시작했을 때는 이 공연이 심청전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거만한 태도로 판단하려 했다. 초반부 심청이 강렬한 퍼포먼스로 자신은 효녀가 아닌 그저 평범한 사춘기 소녀라고 말하는 부분을 보면서 과연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겠구나 싶어 흡족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기존 이야기의 결말이 완전히 뒤바뀌는 수준의 재해석을 기대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내가 기대한 파격적인 재해석은 없었다. 심청은 인당수에 들어갔고, 심봉사에게 끝까지 헌신적인 착한 딸이었다. 그럼 나는 이 뮤지컬에 불만족했을까? 이것 역시 결과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처음에는 심청전에 대한 비판적 견해가 머릿속에 잔뜩 떠올랐지만, 소리꾼들의 시원시원한 노래와 연주자들의 열성적인 연주에 곧바로 마음을 빼앗긴 채 마음 편하게 공연을 감상했다.

 

뮤지컬을 보다 보면 배우들이 정확한 발음으로 노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들은 게 맞는지 괜히 의심스러울 때가 있는데, <심청날다>는 거대한 스크린 화면에 가사를 띄움으로써 그 불안을 해소했다. 판소리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보니 어려운 한자어가 많아 이해를 돕고자 한 것으로 추측되는데, 내게는 몹시 유용한 장치였다.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 것은 물론 배경 화면으로 노래 분위기에 어울리는 영상이 띄워져 인물들의 감정에 더 수월하게 이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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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팔짱 끼고 뮤지컬의 해석 방향을 심판하려 했던 내가 그저 마음 편하게 이 공연을 즐기자고 생각을 바꾼 것은 단순히 아버지를 향한 효심만으로 인당수에 뛰어들지 않는 심청의 모습을 보고 나서였다. 이 뮤지컬은 심청에게 새로운 꿈을 심어주는데, 그 꿈은 바로 가수가 되는 것이다. 물론 뮤지컬 속 심청도 원작의 심청 못지않은 효녀지만, 인당수에 가기까지 가수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포함되었다는 점이 초반부 그녀 말대로 그저 효녀가 아닌 사춘기 소녀처럼 보였다.

 

괜히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가벼운 마음으로 이 새로운 심청전을 즐기자 마음먹으니 여간 즐거운 게 아니었다. 뮤지컬 덕분에 더는 심청이 마냥 수동적인 피해자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아버지를 많이 사랑한 꿈 많은 사춘기 소녀로도 해석할 수 있는 거였다.

 

 

 

문화예술이라는 선물



공연 관람 전날까지 나는 몸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다. 환절기 날씨와 더불어 갑자기 무리한 일정을 소화한 탓에 오랜만에 몸살에 걸린 것이다. 워낙 건강한 체질이어서 아픈 감각 자체를 잊고 산 터라 사소한 몸살마저도 내겐 제법 큰 타격이었다. 원래 몸 상태에 맞춰 꽉 채워진 할 일이 잔뜩 미뤄졌고, 무기력하게 누워서 보내는 하루에는 도무지 익숙해질 수 없었다. 생각보다 길게 이어지는 몸살 기운에 몸도 마음도 지쳐갈 무렵, 기적적으로 관람 당일 아침에 완전히 나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할 일을 소화하고 하루의 끝에 <심청날다>를 감상하면서 건강한 몸과 정신으로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생각했다. 소리꾼들의 시원시원한 노래는 한동안 꽉 막혔던 내 가슴속까지 뻥 뚫어줬다. 예술가들이 열정적으로 자기 일을 해나가는 모습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며 나의 일상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The Gift가 준 문화예술이라는 선물 덕분에 나는 건강한 삶을 되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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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적으로 사회공헌은 ‘사회를 위해 힘을 써 이바지하는 일’을 의미한다. 나는 문화예술로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The Gift의 생각에 동의한다. 문화예술로 누군가의 삭막한 일상이 조금이라도 다채로워진다면, 그렇게 다채로워진 일상으로 내면이 풍요로워진 사람이 많아진다면 더 나은 사회가 건설될 거라고 믿는다. 지역사회에는 향유의 기쁨을, 예술단체에는 창작의 기쁨을 선사하는 The Gift의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다.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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