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디즈니의 반성 - 모아나 [영화]

우리가 디즈니를 주목해야하는 이유
글 입력 2019.12.1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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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콘텐츠의 중요성과 위험성


 

문화콘텐츠는 중요하고 위험하다. 중요해서 위험하기도 하고 위험해서 중요하기도 하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것들에서 다양한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더욱 광범위하게, 역설적이게도 때론 더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특히 최근에는 유튜브, 넷플리스 플랫폼의 부상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문화콘텐츠를 향유하고 있다.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으로 인해 책, 영화, 뮤지컬, 연극 등의 전통적인 문화예술 콘텐츠 이외에도 다양한 콘텐츠가 우리의 일상속에 자리잡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일상적으로 SNS를 살펴보며, 주말에는 영화를 보러 나가고, 습관적으로 유투브 영상을 켠다. 유투브에서 유행하는 말투는 빠르게 퍼져 일상에서도 종종 사용된다. 이처럼 문화콘텐츠의 영향력이 커져가고 있음은 우리 주변에서도 경험적으로 느낄 수 있다.


문화콘텐츠의 중요성에서는 반기능주의의 관점을 활용해 ‘문화콘텐츠와 비평의 의무’라는 제목으로 짧게 살펴본 바 있다. 자세한 내용에 관심있는 분들은 ‘[Opinion] 아이유를 어떻게 하시겠다고요? - 문화콘텐츠와 비평의 의무 [문화전반]’ 에서 확인하길 바란다. 한 단락을 뽑아 옮긴다.

 


문화콘텐츠를 의식 없이 만들고, 그에 대한 비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그건 다시 하나의 문화가 되고 나아가 사회구조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즉, 문화콘텐츠는 하나의 권력이 되고 부정적인 질서체계를 공고히 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부정적인 인식을 생산하거나, 바람직하지 못한 사회의 코드를 반영하고 다시 재생산하는 콘텐츠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야할 의무가 있다.


 

 

우리가 디즈니를 주목해야하는 이유


 

애니메이션은 '어린 아이들이나 보는 것'으로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런 인식은 시간이 흐르며 점차 완화되어왔다. 특히 1980년대 일본은 버블경제의 영향으로 폭발하는 경제성장을 누렸고 이에 따라 문화 예술 부문에도 막대한 자본을 투입했다. 이때 만들어진 높은 퀄리티의 명작 '카우보이 비밥', '아키라' 등의 작품은 그 역할을 선두에서 감당해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애니메이션은 여전히 아이들이 보는 것 혹은 일부 매니아들을 위한 장르라는 인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런점에서 디즈니는 대단하다. 특히 <겨울왕국1>과 최근 개봉한 <겨울왕국2>는 모두 관객수 천만을 넘는 흥행을 기록했다. 디즈니는 분명히 한국에서 애니메이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반전시키고 대중적인 위치로 끌어올리는데 큰 역할을 하고있다.


 

 

 

그러므로 디즈니가 어떤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는가는 이제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서론에서 언급했듯이 문화콘텐츠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우리의 생각보다 크기 때문이다. 특히 몇몇 작품들을 통해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디즈니는 지금까지 여러 비판을 면치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까지 디즈니가 어떤 비판을 받아왔는지 살피고 긍정적인 변화를 보여준 작품에 주목하는 일은 충분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모아나표지.jpg

 

 

오늘은 디즈니의 반성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긍정적이고 유의미한 변화를 보여준 작품 <모아나>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모아나>가 어떤 방식으로 기존의 문제의식에서 탈피하는지 함께 살펴보자.

 

 

 

디즈니의 문제의식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관한 문제의식은 ‘서사‘에 관한 부분과 ’시각적인 요소‘에 관련된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디즈니의 작품을 즐겨보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디즈니의 서사가 예측 가능한 형태로 흘러 간다고 분석한다.

 

선행 연구에서는 디즈니 전형 서사의 특징으로 회상성, 친근성, 환상성, 보수성을 주목하며, 기본 스토리텔링의 두 축으로 ‘피터팬 신드롬’과 ‘백설공주 콤플렉스’를 꼽는다. 해당 연구에서도 지적하고 있는 것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전형 서사에서는 아름다운 여성 혹은 사악한 여성이 등장하며 그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는 핵심 역할은 왕자라는 점이다.


즉, “여성 주인공의 최종 목표는 남성 주인공과의 사랑의 결실을 맺고 보다 나은 신분상승을 이루는 것”이며 그 외에는 “모성애나 여성성을 요구하는 남성사회에 귀속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악으로 간주된다.“ 전통적인 <알라딘>에서도 쟈스민은 주체적인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하나 결국 알라딘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연약한 여성으로 전락한다. 이런 점이 바로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드러나는 첫 번째 문제의식이다.

 


디즈니 공주.jpg

 


두 번째 문제의식은 시각적인 요소과 관련되어 있다. 디즈니에는 수많은 공주가 등장한다. 현재는 흑인 공주가 이미 등장했지만, 초기에는 모든 공주가 흰 피부에 얇은 허리, 하늘하늘한 팔을 가진 모습이었다. 뚱뚱한 공주, 흑인에 곱슬머리인 공주는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이 편향적인 그림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비판을 제기해왔다. 이런 관점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이 서구화되고 획일화된 미의 기준을 지속적으로 생산-재생산한다는 것이다. 디즈니의 주 타켓층이 아직 가치관이 확립되지 않은 아이들이라는 점에서 더욱 문제적이다.

 

 

 

다른 아름다움의 등장


 

모아나 사진.png

 

 

<모아나>의 시각적인 부분을 먼저 살펴보자. 모아나는 다른 아름다움을 가진 캐릭터이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전통적으로 디즈니의 여성 캐릭터는 사랑에 빠지는 공주 이미지가 강하고 허리와 팔이 가늘고 연약하게 형상화됐다. 그런데 모아나의 경우 작은 키에 적당한 근육과 구리빛 피부, 과장되지 않은 눈을 가진 모험심 가득한 캐릭터로 형상화 되고 있다. 서구적인 기준의 획일화된 미로 표현되지 않았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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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캐릭터인 마우이의 경우도 파격적인데, 마우이도 기존에 형상화되던 서구식 미남과 거리가 멀다. 짧은 목에 곱슬머리이며 몸을 문신으로 채우고 있는 독특한 개성을 가진 인물이다. 일반적으로 기존의 디즈니가 제3세계 주인공 캐릭터를 그려낼 때 그들의 삶과 특징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제1세계의 시선을 투영해 캐릭터를 창출해내는 방식으로 인종차별적인 오리엔탈리즘을 보여줬던 것을 생각하면 커다란 발전이다.

 

덩치 큰 근육질 몸매에 강해보이는 인상을 강조한 캐릭터를 의도한 것으로 보이지만, 지나치게 뚱뚱한 모습으로 형상화했다며 논란이 되기도 했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기존에 캐릭터에게 부여됐던 미의 관점에서의 캐릭터 표현을 벗어나 캐릭터의 특징을 살린 표현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새로운 (여성) 영웅의 탄생



서사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모아나>의 주인공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전형적인 영웅 서사에 부합한다. 순종적이고 희생적이며, 간혹 주체적인 인물로 그려지더라도 후반부에 사랑에 빠지며 끝나거나 주체성을 상실하는 디즈니의 문제적인 여성상에서 탈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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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나는 어린 시절 데피티의 심장을 돌려놓을 인간으로 바다의 선택을 받고, 바다 너머로 나가길 원하지만 억압을 받는다. 그러다 부족의 사정으로 소명을 받고 바다로 나서지만 시련을 겪고, 바다의 도움으로 조력자 마우이를 만나게 된다. 그 이후에 마우이와 함께 성장하며 임무를 완수하고 진정한 영웅(추장)이 되는 스토리이다. 모아나가 어린 시절부터 비범한 인물로 형상화되고 소명을 받으며, 시련을 겪고, 조력자를 만나고, 성장해 결국 소명을 완성하기까지의 일련의 과정들이 기존의 전형적인 영웅 서사(제임스 켐벨의 “Hero’s Journey”)와 부합한다는건 놀라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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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주인공이 남성만의 전유물인 시대는 어느 정도 지나왔다. 아직 부족함이 많지만 여성이 서사의 주체로 등장하는 경우는 여러 있고, 그것 자체가 큰 발전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성 주인공은 남성과 동등한 층위의 역할을 부여받지 못했다. 그런데 모아나의 서사는 주인공이 여성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남성과 큰 차이가 없다. 여기에는 여성이 아니라 영웅이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여성 주인공을 긍정적인 방식으로 다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소제목에서는 주인공이 '여성' 영웅임을 강조했다.)이 작품은 새로운 시대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새로운 젠더- 대상화되거나 남성과의 사랑을 통해 신분상승을 꾀해야 하는 연약한 존재가 아니라 남성과 동등한 층위에서 주체성을 가지는-의 실천이 드러나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아름다운 바다,  표현하는 바다


 

 


짧은 지면이지만 「모아나」의 아름다운 그래픽을 언급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면 3D 애니메이션의 경우 ‘uncanny valley’(불쾌한 골짜기)를 겨우 지나온 수준이었다. uncanny valley(불쾌한 골짜기)이론은 인간이 인간과 닮은 것들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에 대한 이론이다. 이론에 따르면 인간과의 유사성과 호감도는 비례하다가 특정 지점에서 호감도가 급락하는 지점이 발생한다. uncanny valley(불쾌한 골짜기)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사례는 시체와 좀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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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나」는 시각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이나 보는 것’이라고 저평가된 역사가 있지만 이제는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고 말해도 누구 하나 이견을 달 수 없을 정도가 됐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의인화된 바다의 감성 색채 표현을 내러티브와 연관시켜 표현하기도 한다. 논문 (영상 내러티브에 따른 바다의 감성 색채 표현-디즈니 모아나를 중심으로, 2018, 송화선) 을 참고하면 이런 식이다.

 


<모아나>에서 파도(wave)는 실제와 다른 스토리텔링에 어울리는 독특한 방식으로 움직인다. 기분이 좋을 때는 가장자리에 장난기 어린 물보라가 이는 둥글고 넓은 모습으로, 슬플 때는 일정한 리듬으로 느리게 파문이 일고 소용돌이치면서 잔잔해지며, 동요할 때는 표면이 심하게 균열된 모습으로, 분노할 때는 역동적이며 공격적으로 무엇인가 부서뜨릴 듯한 기세로, 생각에 잠긴 바다일 때는 부드러운 곡선과 매끄러운 선들이 돋보이며 온화하고 반짝거리지만 지나친 움직임이 전혀 없이 파스텔 색채로 시각화했다.


  

모아나에서 바다는 단순한 장소가 아니다. 사건의 대부분이 벌어지는 공간적 배경인 동시에 캐릭터처럼 살아 움직이며 내러티브에 영향을 준다. 시각적인 요소가 단순히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게 아니라 캐릭터의 감정을 표현하고, 때로는 주제의식과 결부되어 이야기를 전달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런 지점을 살피며 관람하는 것은 작품을 더 재미있게 즐기는 방식 중 하나일 것이다.

 

*

 

디즈니가 어떤 식으로 우리 문화의 코드를 반영하고 인식을 재생산해나가는지 앞으로의 작품을 통해 지속적으로 지켜봐야 할 것이다. 문화콘텐츠를 주목하고, 이의를 제기할 권리와 의무가 우리에게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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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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