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사람]

“Here's looking at you, kid”
글 입력 2019.10.21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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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가 만날 때마다 [멜로가 체질]이라는 드라마를 주야장천 얘기한다. 불현듯 작가라는 직업이 무척 매력적으로 보인다며, 취미로 글을 쓰는 클럽에 가입하려 여러 클럽을 찾아보고 있다고 한다. 함께 취미클럽모임에 동참하지 않겠느냐고 이촌동 스스무의 어슴푸레한 조명 아래 맛있는 음식들로 나를 꾄다.

 

절레절레, 요즘 나는 의욕을 조금 잃은 무미건조한 상태여서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나는 인기 많은 드라마를 즐겨보지 않는다. 왜 그런진 몰라도 인기 많고 화제성이 다분하면 으레 피하게 되고, 찾아보지 않는다.

 

오래전, 박신양이 나왔던 드라마 [쩐의 전쟁]이 한창 인기 있을 때, 난 다른 채널의 [메리대구 공방전]의 열렬한 마니아 팬이었다. [쩐의 전쟁] 탓에 시청률은 아주 저조하고 미미했지만 그 당시 우리 나이대를 대변해주는 로맨틱 코미디 청춘물이어서 나는 눈물 나게 리모컨을 사수하며 이 드라마의 마지막회까지 시청했다.

 

여름에서 가을 무렵이면 가끔 그때의 드라마가 생각난다. 지금은 인기가 무척 많아진 북촌 한옥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몇 안되는 드라마였고, 내가 효창공원을 좋아하게 된 계기도 바로 이 드라마 덕분이다. 지금도 가끔 검색창에 [메리대구 공방전]을 쳐보면 명장면, 명대사가 즐비하다.

 

그때의 감정들이 필요할 때가 있다. 언제고 어깨에 힘이 빠졌을 때, 지금처럼 무언가 무미건조함을 느낄 때 내가 좋아했던 드라마를 찾아보며 피식 웃기라도 하다 보면 뭔가 마음이 몽글몽글 따뜻해지면서 다시 자그마한 힘을 얻곤 한다.

 

요즘 선배도 무슨 힘든 일이 있는 건지 만날 때마다 [멜로가 체질]을 얘기하며 SNS의 짧은영상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이미 드라마는 마지막회까지 성황리에 끝을 맺었다는데 이 언니의 드라마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기세다. 머 얼마나 재미있길래 이다지도 나를 유혹하려는 건지 결국, 못 이기는 척 언니가 보여주는 영상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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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장면은 딱 이 장면이다. 남자가 여자의 눈동자에 술잔을 부딪치며 건배를 하는 장면.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여자는 무언가의 얘기 끝에 코끝이 찡한 듯 빨개져 있고, 눈도 충혈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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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5분도 되지 않는 그 짧은 영상이 선배가 왜 이 드라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지를 충분히 설명해주고 있었다. 카사블랑카의 대사를 읊조리며 두 남녀가 술잔을 왜 그렇게 기울이고 있었는지도 너무 궁금했다.

 

그 길로 나 역시 [멜로가 체질]의 모든 회차를 전부 시청했고, [메리대구 공방전]에 버금가는 평생 좋아할 법한 드라마라는 생각을 했다. [메리대구 공방전]이 사회초년생 즈음의 이야기였다면 [멜로가 체질]은 서른이라는 나이에 관한 얘기를 매력적으로 잘 엮은 이야기였다.

 

무엇보다도 내가 반했던 장면의 두 남녀는 상수와 은정이라는 인물이었고, 은정의 꾹꾹 눌러담은 아픔에 상수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위로하는 장면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짧은 영상만으로도 계속 생각나게 하였던 상수의 눈빛과 나지막한 목소리와 대사가 잊히지가 않는다.

   

“Here's looking at you, kid”

 

아,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건 [멜로가 체질]의 줄거리가 아니라, 그렇게 한 장면만으로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 각인될 만큼의 매력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나느냐는 것이다. 누군가는 평범한 것이 제일 어렵다지만, 유난히도 매력적인 것 역시 평범한 것 그 이상의 배로 어려운 일이 아닐까.

 

얼마 전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던 한 셀럽의 너무도 안타까운 어린 생을 마감한 최근의 일을 마주하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처럼 의욕이 없는 요즘이다. 그래서 나는 임시방편으로 아주 작은 사소한 것들에서부터라도 매력적인 대상들을 찾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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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함이 내재하여 있는 작가 이석원을 좋아한다. 그런 그의 블로그를 오랜만에 찾았다. 그는 언니네이발관의 오랜 보컬이었고, 어느 날 갑자기 은퇴를 했다. 언니네이발관으로 활동할 당시, 그는 늘 공식사이트의 일기 카테고리에 짧은 글과 간혹 긴 글을 꾸준히 적었다.

 

나를 포함한 그의 팬들은 그가 써내려간 글을 보며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그저 멀게만 느껴지던 인기 많은 밴드의 그도 우리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일상의 힘듦과 괴로움이 있고, 오히려 그의 냉담한 표현적 요소에 위로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들어가 본 그의 블로그는 여전히 아직도 꾸준히 글을 쓰고 하루를 기록하고 있었다. 본인을 옭아매었던 가수와 작곡가로서의 부담에서 이제는 벗어났을까? 그렇지만 이제는 글을 쓰는 작가로서의 또 다른 부담을 안고 있을 듯하다. 그래도 여전히 그의 글은 매력적이고, 소장하고 싶게끔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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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그가 썼던 [보통의 존재]가 올해로 벌써 10년을 맞이한다고 한다. 예쁜 노란색의 겉표지에 의자 세 개가 그려진 유난히도 눈에 띄던 책커버였다. 그때 당시엔 원색으로 노란색을 썼던 책은 없었는데, 이 책 이후로 원색의 책표지를 자주 본 듯하다. 실재와 허구를 알아챌 수 없게 써내려간 그의 이야기는 아직도 무척이나 매력적이구나.

 

내가 먹고 싶은 술과 어울리는 안주를 추천해주는 선배도 매력적이다. 나보다 운전을 더 잘하고, 좋아하는 것에 있어 나보다도 집요한 몇 안 되는 언니가 좋다. 마음 터놓고 정치에 관해 마음껏 떠들 수 있고, 우리와 일면식도 없지만 허망하고 안타깝게 떠나버린 그녀의 명복을 빌며 목놓아 우는 언니의 감정에 함께 동요된다.

 

줄곧 나는 나 자신을 잘 안다 생각하다가도 어느 순간 내 맘 같지 않은 나 자신 때문에 괴로워할 때마다 곁에서 필요한 충고로 가감 없이 찔러준다. 이 여자, 이제 보니 엄청나게 큰 매력 덩어리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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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일상이니까, 나는 지치지 않기 위해 내 주변의 아주 사소한 것들이라도 그 매력을 찾으려 고개를 들 것이다. 아주 작은 순간들을 크게 느끼고 싶다. 눈이 번뜩거릴 만한 횡재는 아니더라도 단지 지금의 나를 웃게 하는 단어들을 짐작해본다.

 

일단은 낮잠, 바다, 수영, 산책, 노을, 길상사, 서울숲, 편지, 책 등과 같이 소박한 단어들을 떠올리면 될 것 같다. 아, 소주 한 잔도 곁들여서. 그러면 일단은 조금 실실거리며 웃을 수 있을 것 같다. 자연스러운 시간이 지나고 나면 금방 다시 무르익은 즐거움이 또 오지 않을까.

 


[정선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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