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언젠가는 통기타 쳐봐야지 - 기타 초보의 1달 남짓 이야기 [음악]

글 입력 2019.09.16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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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레미파솔라시도

내겐 주기적인 '뽐뿌'가 온다. 기타, 재즈댄스, 수영 같이 생각만 해뒀다 미뤄뒀던 일들이 머리 속을 가득 채우는 것이다. 오, 지름신보다 더 셀거다. 운동은 지금도 내 수준에는 많이 하고 있는 편이었고 이번 뽐뿌는 통기타였다. 가고 싶은 곳이 한 군데 있었다. 아늑한 분위기 같아 보였고 1:1 레슨비가 너무 비싼 편도 아니었다. 나중엔 노래와 연주를 녹음도 한다니 신기하기도 했다. 그래도 소심하게 일주일은 영상과 글을 찾아보면서 고민했다. 답은 정해져 있었던 것 같지만. 연주하고 싶은 곡들을 카톡 나와의 채팅창에 저장해 놓았다. 신청곡도 받아놨는데. 아주 김칫국이 제대로다. 모르지, 올 해 안에 몇 곡 치게 될지는. 설레는 것도 좋지만 조급함은 내려놓아야겠다.

새로운 악기를 시작하는 게 무척 긴장되고 떨렸다. 다시 아무것도 모르고 서투른 사람이 되는 게 겁이 나는 걸까? 새 악기를 배우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될 거라 그게 긴장되는 걸까? 낯을 가리진 않지만 어색하긴 할 테다. 전화를 걸어서 문의를 하러가니 구체적인 질문을 하는 설문지를 작성했다. 내가 어떤 악기를 배우고 싶은지, 어느 수준과 진도를 목적으로 하는지, 좋아하는 가수와 노래, 신기했던 건 노래에서 가사, 인성, 멜로디 등 순위를 매기는 질문이었다. 아마 하고 싶은 곡을 따질 때 그 점도 고려가 되나 보다. 통기타, 우쿨렐레, 일렉 기타, 베이스 기타, 클래식 기타중에서 고를 수 있었다. 세상에, 베이스 소리가 너무 좋잖아! 라고 생각했지만 선생님이 쳐주신 통기타 소리도 무척 좋았다. 언니가 남겨두고 간 악기도 통기타이기도 했고. 우선 통기타를 배우기로 결정했다.

상담을 해준 선생님께서 나의 레슨선생님이 되셨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하다 했는데 고등학교 학원 수학선생님과 닮았다. 아직 말씀은 못 드렸는데 덕분에 그래서 편하다. 선생님께서 악기를 잘 배울 것 같다, 오래 배울 것 같다는 긍정적인 말씀을 하면 저는 손도 느리고 생각보다 잘 못할지도 몰라요, 제가 오래 할 수 있을까요? 라며 한 발 뒤로 뺐다.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고 의지라는 녀석이 예전보다 쉽게 지치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랜만에 예습이란 걸 했다. 코드부터 배우지 않을까? 하고 유투브에서 ADE코드를 익숙해지게 연습해갔건만. 첫 시간은 10여년이 더 된 작은 언니의 기타의 줄 갈기와 도레미파솔라시도 배우기였다. 기타 줄을 가는 걸 보면서 말씀을 나눌 땐 재밌었다. '이빨 뽑는 것 같네요' 라고 했더니 무척 재밌어 하시더라. 정말 비슷해서 그런건데. '무슨 줄로 바꿔줄까요?' 하면서 세 가지 선택지를 주셨는데 기타도 '줄빨'을 받냐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그렇다면 초보인 저는 줄빨이라도 받아야겠다고 답변드렸다. 줄까지 갈고 나니 제법 모양새가 난다. 선생님 손이 금손이시다!

이제 저 줄에 손이 아릴 차례. 악기하면서 어디 안 아플 수가 있던가. 관악기는 입이 아프고 현악기는 손이 아프고, 그 외에 다른 곳도 아프고. 도레미파솔라시도를 배울 시간. 즐거운 음악시간이여야 했을텐데. 아니, 머리도 바보고, 손도 바보인겁니까? 상호 바보인겁니까? 잊고 있었다. 내가 1:1 레슨에 무척 긴장하는 편이라는 걸. 집에 가서 연습을 좀 많이 해야겠다 다짐했다.

​통기타를 별 것 모르는 입장에서 좋은 점은 어지간하면 소리가 작아서 심심할 때 연습하기 좋다는 것이다. 멍멍이도 색소폰 소리에는 번개소리 들은거마냥 충격을 받더니 기타는 뚱땅띠롱 이런 소리가 나도 옆에서 가만히 있는다. 악기의 단짝 친구 튜너와 메트로놈. 스마트폰에서 잘 쓰고 있다. 튜너로 잘 맞춰보고 메트로놈으로 아주 느리게 서서히 연습을 해보고 있다. 손가락과 머리 힘내보자! 연습곡이 산토끼, 나비야, 반짝반짝 작은별, 도레미송이다. 도레미송이 제일 연습곡 중 고난도! 다 아는 곡이고 쉬운 곡이지만 통기타로는 처음이니까.

​고작 도레미파솔라시도일지도 모르지만 거기서 모든 게 시작한다. 독학으로도 많이 배우는 게 기타지만 이번엔 처음부터 선생님과 배워보고 싶었다. 색소폰을 배울 때는 여유도 없었고 레슨을 못하고 마냥 대강 배우고 한 터다. 당장 정기적인 동아리 연주회를 준비하기 바빴다. 그 버릇이 어중간한 실력을 만들고 나중에 내 발목을 잡고 원점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시작이 잘못 되면 되돌리는 게 그렇게 힘들다. 부족한 점을 알아도 도망치는 게 더 편한 사람인 걸 알아서, 다른 악기를 배울 때는 그러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손이 아프다는 얘기를 많이 듣고 시작한 터라 아프겠거니 했지만 아프긴 하다. 그래도 쉬었다 뚱당, 또 쉬었다 뚱땅 하면 금방 30분씩 간다. 다음 레슨 때 연습곡들을 멋지게 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매일 옥탑방에서 어스름한 저녁에 뚱당거리는 소리가 들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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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코드와 굳은살

두 번째 레슨. 레슨 시간은 반은 만담, 반은 레슨식으로 흘러가는 느낌이다. 새삼 이렇게 50분이 빨랐나 싶기도 하고. 자, 도레미파솔라시도를 해봅시다. 실전에 강하면 참 좋을 텐데 내겐 기세가 부족한가 보다. 늘 연습 때보다도 주눅이 들어있다. 한 주간 열심히 연습한 도레미파솔라시도는 소리가 음마다 끊어지는 느낌이라 음이 끊기지 않게 연습해보라 하셨다. 물론 혼자 하지 말고 모든 음악의 동반자 메트로놈과 함께.

대망의 연습곡이다. 좋았어, 내가 연습한 산토끼와 나비야, 반짝반짝 작은 별을 보여주겠어! 다짐하던 터였다. 그러나 선생님은 제일 어려웠던 곡이 뭐냐고 물으셨고 솔직하게도 나는 도레미송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선생님은 도레미송만 시키셨다. 아차 하면 망조였는데 긴장하니까 폭망이다. 아쉽다. 반짝반짝 작은 별은 진짜 잘할 수 있는데.

그나저나 자세가 이상하다. 손가락을 보면서 치려고 했더니 삐딱한 자세를 하고 있었다. 피크를 잡는 것도, 기타 헤드의 위치도 다 어긋나 있었다. 다시 알려주셨다. 아메리칸 그립에 익숙해집시다. 손은 악수를 하듯 뻗고 고대로 접어주세요, 피크는 검지는 90도 비슷하게 접고 엄지를 올리고 그 사이에 피크가 소로록. 대강 요약하자면 그렇다. 앞으로 고쳐나가면 된다고 하셨지만 한 주간 폭발적이던 의욕이 시무룩해지긴 했다. 의욕만 넘치면 뭘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는 걸. 선생님은 농담조로 기타는 새로 배우고 있으니까 답답하죠?라고 하셨다. 태권도로 치면 흰 띠 같고. 흰 띠도 맞고 신입도 맞는걸요,라고 답했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조금은 익숙해지는 날이 오겠지.

​드디어 코드의 시간이 왔다. 처음 배우는 코드들 C, Am7. Em7, G7. 끊기지 않고 이어지듯이 코드를 옮길 수 있다면 최상이지만, 실제론 G7과 C 코드를 왔다 갔다 할 때 버벅거리고 있다. 한 칸 내리고 한 칸 올리는 손가락이 뭣이 그리 어렵냐 하면은,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마음 같지가 않더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음악을 다룬 드라마나 영화처럼 알고 보니 난 타고난 재능이 있었다는 전개나 머리가 이해한 대로 몸이 따라주는 편리함을 기대하지는 말자. 현실은 이렇게 한 칸 사이에서 손가락이 길을 잃고 있는 법. 잊지 말자. 흰 띠다. 새하얀 흰 띠. 욕심도 새하얗게 씻어버리자.

​동요 연습곡 2탄이다. 산토끼는 재등장, 멋쟁이 토마토,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곰 세 마리 등이 등장했는데 문제의 F 코드가 벌써 등장하셨다. 코드가 맞나 보려고 노래도 흥얼거려봤다. 내가 음이 안 맞나 왜 이렇게 어색한가 싶었는데 곧 익숙해졌다. 멋쟁이 토마토는 생각보다 잔인한 노래다. 왜 토마토가 주스가 되고 케찹이 되어야만 하는가! 사람 좋자고 만든 것 같은 노래다. 토마토는 그냥 빨간 토마토가 되고 싶었을 텐데. 곰 세 마리는 아빠는 뚱뚱, 엄마는 날씬, 애기는 귀여움을 강조하는 노래다. 예전엔 왜 그런가 보다 했을까. 아빠곰도 엄마 곰도, 애기곰도 건강하고 따뜻하면 그뿐이다. 코드를 집고 4비트에 맞춰 2,4박자마다 악센트를 주고 있다. 코드는 아직은 난항. 손가락이 줄을 짚었다가 아랫줄을 누르거나 해서 코드가 제 소리를 못 내는 경우가 많다. 요렇게 조렇게 손을 살짝 조정해보고 있다. 레슨이 얼마 안 남았는데 걱정이다.

어느새 손가락에 굳은살 비스무리한 것이 자리 잡고 있다. 선생님이 줄을 좀 더 세게 눌러도 괜찮다며 지긋이 손가락을 눌렀는데 눈을 멀뚱멀뚱하고 있는 게 신기하셨던 모양이다. 안 아프냐 그러길래 아프죠, 근데 견딜만합니다. 제가 둔할지도 모른다고도 했었다. 그러다 마지막에 손가락이 아픈 걸 안다고도. 아직 굳은살은 안 생겼는데, 하셨는데 다음 주까지 하면 제법 딴딴해지지 않을까 한다. 잘 참는 게 꼭 좋은 것만도 아니지만 여기선 나쁘지만은 않을지도 모르겠다. 잘 되는지 못 되는지는 모르겠고 매일 30분씩 기타는 소리를 내고 있다. 잘 하네, 못 하네 하는 생각은 접어두고 싶다. 그러다 의욕이 절반은커녕 반의 반도 안 될지도 모른다.

​요즘 영문을 모르게 기타 레슨생이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요, 했더니 노 젓기가 싫다고 하신다. 바다도 싫고. 영문을 모르겠는 만담의 시작. 그냥 물가일 수도 있잖아요, 그랬더니 너무 얕은 건 싫고 호수가 좋단다. 음, 호수도 노는 저어야 할 걸요 움직이려면. 그랬더니 말로는 못 당하시겠다면서 나를 놀리실 때는 기타 소리를 내신다. <동백꽃>의 점순이처럼 "얘, 느이 집엔 이거 없지" 하듯이 너는 기타로 이런 건 아직 못 치지 같은 분위기가 묘하게 난다. 몇 달 전 종영한 슈퍼밴드 때문이든, 이제 3개월 남짓 남은 2019년이 아쉬워 기타를 시작한 것이든, 레슨생이 많이 들어오는 건 좋은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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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옛사랑 - 1

레슨에 처음 늦었다. 젠장. 주섬주섬 안경을 쓰고 하기가 싫어서 일회용 렌즈를 이용하는 데 준비를 다 해놓고 렌즈를 까먹었다. 그날따라 마을버스는 늦었고 게다가 기다린 보람도 없이 꽉 차서 탈 수가 없었다. 지나가는 택시를 얼른 탈까 고민하다 말았는데 탈 걸 그랬다. 감을 믿지 그랬어! 그래도 말씀드린 대로 딱 5분 늦었다. 게임을 한 판 하시려던 선생님을 김빠지게 하긴 했지만.

날짜를 보다가 벌써 한 달이 가네요, 했더니 선생님께서는 에이, 아직 배운 지 한 달 밖에 안됐다고 하셨다. 그냥 한 달이 지나간다는 말씀이었는데 역시 선생님의 관심은 기타 레슨에 있었다. 맞다, 한 달마다 더 배울지 말지를 결정한다고 했었으니 그러실만도 하다. 다만 나는 한 달이 지나가는 걸 한 번씩 이렇게 느끼고 가지 않으면 후루룩 지나가 버리는 게 싫어 그렇다고만 했다. 누군가는 반복되거나 무료한 삶일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도 하고 누군가는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도 한다. 어느 쪽인 걸까?

큰 형부가 독학으로 기타를 배우고 있다고 유투브에 영상도 있다고 하니 잠깐 보고 가게 됐다. 정말 처음 배우는 게 맞냐며 신기해하시고 요즘은 아마추어만이 낼 수 있는 울림이 좋다고도 하셨다. 음악을 업으로 하시는 분들이 그런 말씀을 하시곤 한다. 우리가 모르는 것들이 있겠지. 모르는 게 나은 게. 형부의 영상에 간혹 음질이 살짝 아쉬운 것도 있지만 아주 잘 하고 있다 하니 칭찬은 형부에게 전달드리기로. 형부처럼 1년 정도 기타를 쳤을 때 나는 어느 정도가 되어있을까? 레슨을 받은 김에 이왕이면 형부보다는 쪼금 더 잘하면 좋을 것 같다. 기타를 잘 모르는 입장이지만 듣기 좋았으니까.

형부랑은 어색한 사이인데 기타를 배운다고 하니 얘기할 거리가 생겨서 괜찮다. 선생님은 형부와 처제가 의외로 어색한 사이란 것에 한 번, 형부가 처제에게 용돈을 주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두 번 놀라셨다. 내가 수완이 없는 걸 수도 있고 마음으로는 처제라고 형부 지갑에서 당연히 용돈이 나오길 기대하는 건 좀 그런 것 같았다고 그럼 이해를 하시려나. 다들 먹고살기 바쁜 세상이니까요.

좋아하는 곡을 20곡 정도 찾아와서 연습하자고 해서 신나는 마음에 엄청 빨리 보냈었다. 목록을 보내고 보니 세상 느리고 잔잔하고 약간 우울한 것도 같다. 그렇게 말씀드리니 '감성적인 걸 좋아하는 걸로' 보자고 선생님은 그러시더라. 내게 오래, 자주 찾아듣게 되는 곡은 가사가 좋은 곡이다. 레슨을 처음 시작할 때 고민하다가 음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가사를 먼저 두었듯이. 물론 멜로디는 동물적인 감각이니 귀를 이끌기 때문에 아무리 가사가 좋아도 멜로디를 무시할 순 없다.

에픽하이나, 하온, 빈첸, pH-1의 곡도 좋아하지만 기타로 연습하기엔 지금은 무리일 것 같아서 뺐다고 말씀드렸다. 어느 레슨생 분은 '으르렁'을 엄청 좋아하셔서 3주 내내 그것만 치셨다는데. 나는 그 정도의 '최애곡'이 있나 싶다. 20곡 안에는 김광석, 유재하, 이문세, 변진섭, 성시경, 조원선, 10cm, 선우정아, 곽진언, 김수영, 스탠다드 재즈곡과 팝송, 주변에게 받은 신청곡 등이 들어가 있다. 막상 내고 보니 좀 뻔한 거 아닌가 싶지만 뻔해도 좋으면 그만이려니.

선생님과 함께 형부의 연주 동영상과 내가 좋아하는 가수 동영상을 살펴 보니 벌써 레슨 시간이 반이나 훌쩍 지났다. 진도는 4비트를 다음의 8비트. 2,4번째 박자에 악센트를 주는 4비트와 달리 8비트는 3, 7번째 박자에 악센트가 들어간다. 그리고 만난 새로운 코드 네 친구 G, D, Am, Em. 다른 건 괜찮지만 G부터 저런, 소리가 나온다. 새끼손가락이 말을 안 듣지만 우여곡절 버퍼링 끝에 누르니 좋은 음이었다. 걱정하지 마시라! 이렇게 손가락이 말은 안 듣지만 좋은 음을 내는 코드가 잔뜩일테니까.

제출한 곡 목록을 보다 보니 배운 코드+a로 할 수 있는 첫 연습곡을 받았다. 이문세의 <옛사랑>. 좋아하는 곡이다. 가을겨울 느낌도 나고 아련한 멜로디에 좋은 가사, 좋은 목소리. 코드 전환이 쉽지는 않지만 반복되는 코드 진행이 많아서 그나마 낫다. 원곡도 느리긴 하지만 거의 2-3배속은 느리게 치고 있다. 레슨받을 때 노래도 같이 부르라고 하시는 건 아닌가 걱정스럽기도 하다. 가창 시험도 그렇고, 누군가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건 역시 머쓱하고 민망하다. 감성도, 호흡도, 힘도, 기교도 부족하고 썩 잘 부르는 건 아닌 걸 알고 있어서이기도 하고. 자네가 지금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할 타이밍이 아닐세. 기타를 치라우! G-D-Em-B7-C-G-A7-D7 = 남들도 모르게 서성이다 울었지.

지난주 첫 코드를 배우고 동요 연습곡과 함께 하면서 '곰 세 마리'를 연습하는 데 코드를 두 개 밖에 쓰지 않는데 전환이 쉽지 않아 자괴감이 +1 되었다. 옛사랑도 세월아 네월아지만 연습하고 나면 덜 헛돈다. 좋아하는 곡을 연습하는 차이라 자괴감이 아직 안 찾아온 모양. 악기를 배우는 건 이런 일희일비의 과정이 아닌가 싶다. 새로운 걸 배우면서 뭔가 되긴 되나 보다 하는 신기함, 마음먹은 대로 몸으로 출력되지 않는 자괴감, 그 와중에 천천히 되지 않던 게 조금씩 잘 되는 뿌듯함. 일희일비하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마음이 한결 같았으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작은 언니의 기타는 트래블 기타라 작은 것 같다고 다른 통기타를 쓰는 게 좋겠다고 한다. 건너건너 쓰던 통기타를 전달받았다. 입문용 크래프터 기타. 줄이 오래되어서 갈고 나야 소리를 제대로 알 수 있을 듯 하다. 무거운 악기를 하다가 아주 가벼운 악기를 만나, 줄빨로나마 울리는 소리가 싫지 않다. 요즘은 집에 가면 기타를 들게 된다. 30분은 꼭 연습하자. 왼손은 단단해지고, 해는 짧아지고 있다. 해가 지기 전에 얼른 서두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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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옛사랑 - 2

한 달째의 레슨은 빠르게 끝났다. 새로 바꾼 크래프터 기타의 줄을 가는데 시간이 왕창 갔기 때문. 그 와중에 선생님과의 만담은 길어졌다. 오늘의 의상을 보더니 흠? 하시는 표정이길래 결혼식 갔다가 기타만 들고 바로 왔다고 말씀드렸다. 옷이 나뭇잎 같고 좋네요, 하셔서 네 나뭇잎 무늬 원피스죠, 감사하다고 했다. 이게 무슨 대화인가. 줄빨을 위해 엘릭서 기타줄을 선택했다. 고정 핀을 뽑을 때 역시 이번에도 이빨 뽑는 것 같다고 하셨더니 무서운 소리 하지 말라 신다. 정말 그러도 나니 핀이 너무 조여져 있었는지 두 개나 부러져서 새 걸로 갈았다. 예전엔 이를 빼고 나면 옥상에 던지면서 얘기하던 풍습이 있었다던데. 헌 이 줄게 새 이 다오. 새 이빨 같은 고정 핀을 두 개 얻었다.

책꽂이를 보다가 노자와 장자와 류시화의 책이 들어왔다. 오, 저도 노자와 장자를 좋아한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그렇다고 찾아 읽어본 건 별로 없지만 수능 볼 때 윤리를 했을 때 가장 공감을 많이 했다고 말이다. 물론 문제를 풀 때 제일 좋은 건 칸트에요. 그 사람은 답이 정해져 있으니까 답을 찾기가 수월하다고. 실제로도 산책하는 시간이 딱 정해져 있었을 만큼 규칙적이고 확실한 면도 있었고. 선생님께서는 류시화의 책은 인도의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보셨다고 한다. 그분이 그 분야의 책을 주로 번역하기도 했고.

선생님은 수많은 레슨생을 만나면서 전문가가 된 사람들이 겸손하기보다는 모든 일에 자신이 전문가인 것처럼 하는 모습에 놀랐다고 한다. 진짜 전문가가 되면 오히려 아직도 내가 이만큼 밖에 모르는구나, 다른 분야의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생각했을 것 같다고 말이다. 새로 준비하시는 일에서 본인이 나중에 지금 자신이 비판하는 사람들처럼 될까 걱정하시길래 그럼 제가 정신 차리시게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음, 명치를 한 대 쳐드리거나 너무 폭력적이면 죽비같이 소리만 크고 아프지 않은 걸로 탁 한 대만 쳐드린다고. 나도 누구한테 정신 차리라고 한 대만 때려주게 부탁이나 해둬야 할 까보다. 등잔 밑이 어두운 법.

공부와 운동만 한 것 같은 공무원에 합격한 친구가 짧게 레슨을 배우러 왔다 한다. 한 번도 누굴 좋아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누굴 만나본 적도 없는 것 같다고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하신다. 아직 만난 지 한 달 밖에 안됐는데 그런 얘기를 선뜻 꺼내겠냐고 말씀드렸다. 생각이 많은 사람일 수도 있고요. 특히 마음속으로 혼자 좋아했다면 더더욱. 누군가에게 꺼내놓기도 아깝고 말로 하기도 조심스럽지 않겠나. 왠지 그렇게 꺼내놓으면 그 마음이 별게 아닌 게 되어버리는 것 같고. 여튼 지켜보시지요, 했다.

우여곡절 끝에 줄을 갈았다. 갈고 나니 장력이 세고 미끌미끌해서 잘 눌러지지 않는다. 연습할 땐 그래도 제법 됐는데 아쉽다. 8비트를 4비트씩 나눠서 치고 코드가 바뀌는데 4번째 박자가 끝나고 코드를 뗐다가 다시 잡으라고 하셨다. 지금도 하고 있긴 하지만 좀 더 명확하게. 옛사랑을 불러보라고 하시는데 듣는 사람이 하나인데도 긴장이 된다. 기타 코드는 남자 키 기준이고 노래 목소리는 좀 높고. 짚을 줄 아는 코드는 몇 개 안 되고. 어찌 맞출지 아리송하다. 혼란하다 혼란해.

버벅거리며 미끌거리는 새 줄에 코드를 잡고 있는데 갑자기 다음 주에 녹음을 해보자고 하신다. 네? 녹음이요? 저런. 기타 레슨을 시작하고 나서 그 말을 많이 하게 되었다. 저런. 선생님은 신기해하신다. 누구나 뭘 탓할 수 없지만 아득할 때 하는 소리다. 황망함의 저런이라고요. 여기 레슨생분들은 자주 녹음을 하시는 것 같다. 녹음을 한다고 하면 열심히 연습할 테니 그 동기부여를 위해서일텐데 것보단 걱정이 앞선다. 버벅거리는 반주에 키가 잘 맞지 않는 노래라. 자괴감이 폭발하는 건 아닌가. 그러나 이건 음원도 아니고 뭐 어떤가. 해보고 싶은 직업에 가수는 없었고 할 수 있다 생각도 해보지 않았으니 마음을 내려놓자. 그냥 부끄러움의 몫이 주로 내게 올 뿐.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기로 했다. 기대가 하나도 안 되는 건 아니다. 휴대폰으로 녹음해서 들어보던 것과 얼마나 많이 다를지 궁금하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을지도 몰라. 아련하고 쓸쓸한 옛사랑. 의도치 않게 약간은 설레고 아주 많이 긴장되는 곡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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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랑 3 - 4(完)

옛사랑을 사골처럼 오래 우려먹고 있다. 지겨울지도 모르니 하나로 합쳐버리자. 물론 연습하는 건 지겹지 않았다. 좋아하는 곡을 하라는 이유가 그래서인가 보다. 도통 지겹진 않단 말이지. 특별하게 많은 코드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 몇 개의 코드로 만들어진 노래가 사람들의 귀에, 마음에 인상을 남기고 찾아듣게 한다니. 내게는 손으로도 많은 기억을 남긴 곡이다. 왼손은 코드가 고정되어 있지만 오른손을 다르게 배웠다. 4/4박자 8비트 슬로우 고고로 새로 연습했다. 별로 다른 게 없는 거 같지만 마음에 들었다. 딴딴딴딴 딴딴딴딴이 딴딴딴따다 읏따다딴따다가 되는 즐거움? 칠 때는 좀 귀찮고 잘 안되긴 하겠지만 박자가 쪼개지면 음악도 더 섬세해지는 기분이 든다.

피크는 여전히 약간은 어색하고 줄은 한 번에 예쁘게 쳐지진 않는다. 한 번에 잘 치라면서 스트럼을 예쁘게 쳐보자!라고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셨다. 무엇보다 피크로 칠 때는 소리가 훨씬 크게 나기 때문에 혼자 있지 않을 때는 연습을 그냥 손으로 했다. 작은언니가 아이를 낳기 전에 집에 와서 내 방에 함께 머물고 있다. 말은 쳐도 된다고 하지만 피크로 크게 울려 퍼지는 소리를 내가 감당하지 못하겠더라. 언니는 열심히 하는 게 신기했던지 자기는 악기에 재능도 흥미도 별로 없는데 너는 열심히 한다고 했다. 매일 운동 가기 전후로 운동하는 마음으로 기타를 잡을 뿐 재능과 흥미가 샘솟는다고 말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내가 듣기에도 내 소리가 듣기 좋은 소리가 나는 날이 오는 날이 온다면! 그때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담아뒀다.

지난 주 선생님은 노래를 녹음하자고 하셨지만 다행스럽게도(?) 잊어버리셨고 나는 굳이 상기시켜드리지 않았다. 노래를 누군가 앞에서 녹음한다는 상상만으로도 긴장됐다. 좋습니다! 녹음 가시죠! 완전 준비됐어요! 라는 마음은 들지도 않았고. 그렇게 한 주는 넘겼고 지난주에는 녹음을 피할 수 없었다. 사람 일은 모른다더니 근데 저번 주에 하는 게 차라리 나을 뻔했다. 감기와 함께 하는 역대급 추석 기간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기침병이라도 난 것처럼 기침을 쿨럭거리다가 레슨 때는 그래도 잠잠했는 데 감기 걸린 목소리로 녹음이라니! 그 와중에 녹음 장비는 좋더라. 선생님은 잘 할 필요 있냐고 하셨지만. 그게 그렇게 생각하면 참 좋을 텐데요. 제가 제 목소리를 너무 듣기 싫더라고요. 심지어 그 좋은 녹음 장비로!

하지만 포기하고 내려놓으면 편하다. 고집을 부려서 목소리 녹음만은 피하려고 했지만 하기로 한 날인 건 사실이니까. 환자라서 몸이 헤롱하니 선생님께서 약을 간단하게 주셨다. 덕분인지 기운도 나고 기침도 잠시 멈췄다. 중간중간 선생님의 눈치를 보면서 열심히 녹음을 끝냈다. 내가 연습한 키와 내 목소리의 키가 좀 많이 차이 나서 기타와 노래를 따로 녹음했다. 그래도 노래할 때는 기타 반주를 선생님께서 멋지게 쳐주셨기 때문에 오, 기타 좋다 이러면서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코드는 이미 다 외웠지만 몇 개 코드는 명확하게 울리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쉬웠다. 첫 술에 배부르랴. 그러다 늘 매번 부족한 수저질만 선보이게 될지도 모르지만 적든 많든 모이면 든든한 한 그릇이 되겠지. 그저 그때 그때 좋은 한 술을 뜨도록 노력할 뿐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녹음 파일은 이미 전달받았지만 판도라의 상자 같아서 들어보질 못했다. 언제쯤 이걸 열어볼 용기가 날까. 다음에 더 좋은 기타와 목소리로 녹음하고 나서가 좋겠다. 예상을 해보자면 내가 녹음할 때 들었던 목소리 같으려니 하고 있다. 연기를 해보고 나면 모든 연기자가 대단하고, 노래를 불러보고 나면 모든 가수가 대단해 보인다. 모든 악기 연주자도 마찬가지고. 비평이야 자유로운 것이나 내가 직접 해보면 쉬운 게 하나 없다.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남겨두고, 그대 생각이 나면 생각난 대로 내버려 두듯이 이 녹음 파일도, 지금의 기타 소리도 남겨두고 내버려 두기로. 감기를 동무 삼았던 추석도, 광화문에 흰 눈이 덮여갈 겨울도, 방 안에 놓여있는 기타도, 예전보다 많은 것들이 옛사랑이라는 노래를 떠오르게 할 것 같다.


[장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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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안녕
    • 즐겁게 읽고 가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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