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왜 아동 문화에 혐오가 보일까? [문화 전반]

애니메이션 '미라큘러스'로 살펴보는 아동 문화의 혐오와 그 이유
글 입력 2019.06.17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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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전부터 시간 감각을 없애준다던 넷플릭스를 보기 시작했다. 진지한 이야기보다 밥을 먹으며 간단하게 볼 이야기가 필요해 둘러보는데, 미라큘러스라는 아동 애니메이션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 일본, 프랑스의 합작이라는 점에서 몇 년 전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을 때부터 궁금했고 아동 애니메이션 특유의 발랄함과 30분의 짧은 시간이 식사 시간에 잘 어울릴 거 같아 1화부터 차근차근 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게 푹 빠져, 설거지를 할 때에도 침대에 누워서도 쉴 새 없이 다음편을 누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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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애니메이션 미라큘러스의 포스터

 


여성 주연 액션 히어로물에 남성 조력자가 있는 아동물이 흔하지는 않은 편이고 칠칠맞고 거절도 잘 못하는 성격의 마리네뜨가 자신감을 자기도 자신의 의견을 말하거나 (시즌 1, 12화 반장 선거에서 공약을 차분하게 말하는 장면) 같은 반 클로이에게 부당하다는 말을 하기도 하며 성장하는 모습이 재미있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한국과 일본, 프랑스의 합작이라며 홍보한 이유가 싶을 정도로 씁쓸함이 몰려온다.



*

본 기고문은

미라큘러스의 스포일러가

포함 되어 있습니다.




비슷한 외모, 동양인



미라큘러스 시즌1 16화에 동양인 치료사가 나온다. 의사가 아닌 치료사라고 언급한 이유는 해당 동양인이 징을 치고 기를 이용해 치료를 하기 때문이다. 한의원에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양의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증상을 묻고, 해당 부위를 꼼꼼히 살펴보고, 치료한다. 치료의 방식이 양의원과 다르게 침과 뜸, 혹은 약주사나 한약일 뿐이다. 정형외과처럼 물리치료를 하는 일은 있어도 징을 치고 기를 이용해 병을 치료하는 일은 없다. 치료사가 미라큘러스를 마리네뜨와 아드리앙에게 나누어준 미라큘러스의 수호자이며 해당 치료가 마리네뜨를 레이디버그로 변신시켜주는 신비한 동물 티키였다는 점에서 이해해보려고 해도, 시즌1 22화에서 징을 치며 사람을 치료하는 장면이 나와 이해하지 못하게 만든다.


중국인인 마리네뜨의 어머니나 중국에서 온 먼 친척, 그리고 16화에 등장한 치료사의 이목구비는 모두 비슷한 생김새이다. 눈이 찢어졌고 위로 올라갔으며, 코는 동글고 작다. 시즌 2기에 등장하는 츠루기 카가미의 외형까지 어느 누구도 동양인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여성 캐릭터의 경우 보라색~파란색의 머리까지 전형적이고 편견적인 외모다.


중국계 프랑스인 마리네뜨의 본명은 마리네뜨 뒤펭 챙이다. 서양인이 들었을 때 중국인이 말하는 소리가 ‘칭챙총’으로 들려서 비하하는 단어로 자주 쓰는 ‘챙’을 굳이 중국인의 이름으로 쓴 이유는 뭘까. 실제 중국인 성으로 흔하다 한들 동양인 차별의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시즌1 25화에 마리네뜨의 먼 친척이자 유명한 요리사의 이름은 왕챙이다. 왕도 챙도 성에 많은 이름이다. 왕 챙이 인사를 할 때에 두 손을 모으는 소위 무림식 인사를 하거나, 마리네뜨의 엄마가 무술을 잘하는 설정도, 그럴 수는 있으나 서양인이 보는 동양인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동양에 대한 기본적 지식없이 동양인 캐릭터를 사용했다는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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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부터 왕 챙, 마리네뜨의 엄마, 츠루기 카가미.
 
 


진짜 악은 왜 처벌받지 않나



미라큘러스에 나오는 편협한 시선은 이 뿐만 아니다. 시장의 딸 클로이 부르주아는 매번 자기 아버지의 권력을 가지고 아이들을 괴롭히거나 특권을 받으려고 한다. 언뜻 보면 권력 남용을 하는 부르주아층을 그저 풍자하기 위한 캐릭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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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괴롭히지만 처벌받지 않는 부르주아 클로이



애니메이션 ‘미라큘러스’에서 악당은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인 일반인이다. 악당 호크모스가 부정적인 감정에 빠진 사람에게 검은 나비를 보내면 부정적인 감정이 증폭되어 악한 일을 행한다. 그런데 시즌 1에서 마리네뜨의 반 친구 중 대부분이 클로이의 말과 행동 때문에 악당으로 변모한다. 시즌 1 24화에서 유일하게 친한 친구가 클로이의 매서운 말 때문에 악당이 되었음에도 사과를 하지 않고 대신 계속 친구로 받아준다는 뉘앙스만 풍기며 결말이 난다. 클로이가 돈과 권력으로 휘두르면 그 결과가 대부분 좋지 않다. 하지만 클로이가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고, 클로이 때문에 상처를 입어 악당이 된 아이들만 히어로와 싸우고, 감정을 푼 뒤 얼렁뚱땅 끝나는 에피소드의 반복은 흡사 상처 받은 아이들이 이상하고 나쁜 것처럼 느껴진다. 실질적 가해자는 따로 있음에도 피해자와 싸우고 감정 정화를 하면 상처를 받은 사실이 없어지는 것처럼 사라지기 때문이다. 어떨 땐 악당보다 클로이가 더 악당같은데도 클로이는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모두가 그저 그런 아이로 넘어가고 용인한다.


학교 폭력은 실제로 흔히 일어나는 문제이고, 애니메이션의 대상이 이러한 폭력에 노출되어있는 아동, 학생이기에 클로이를 그려내는 시점은 더욱 불편하다.


 


관습, 관성, 늘 그래왔으니까



물론 완벽한 이야기는 없다. 하지만 언제나 남성 히어로의 조력자이며 미숙하고 실수하는 모습이 자주 나오던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능동적인 여성 히어로물 아동 애니메이션으로 큰 관심을 모았던 미라큘러스에서 왜 이런 편협한 시선이 나타나는 것일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 때에 문득, 몇 년 전 학교 과제로 교정교열을 보았던 책 한 권이 생각났다.


책은 어린아이가 왜 아빠가 존재하는지 물어보며 시작한다. 엄마도 일을 하고 엄마도 조명을 갈 줄 알고 엄마도 무거운 짐을 옮기며 청소와 빨래, 설거지 등을 다 하는데 왜 아빠가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아빠는 본의 아니게 여러 직업을 가진 사람을 만나며 계속 고민하다, 답을 내린다. 아빠가 왜 있어야 하는지는 아이들에게 물어봐야 한다. 아이와 더 시간을 보내고 집안일을 나누어 하면서 가정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고 사랑하며 이야기는 끝난다. 교정교열을 보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첫 번째는 부부간의 존댓말 사용이다. 아내는 화가 날 때에도 존댓말을 사용하고 남편은 사과를 할 때에도 반말을 사용한다.


아빠에게 도움을 주는 여러 남성다운 직업을 가진 사람은 대부분 허황되거나 엉터리거나 외롭다. 남성답다는 말을 강조하는 아빠는 너저분하고 수염이 나고 제대로 길도 못 찾는 사람으로 나온다. 결말에는 부부가 같이 집안일을 나누고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나누는 식의, 좋은 교훈을 주려는 동화다. 이런 동화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왜 굳이 남편은 반말, 아내는 존댓말을 하도록 만들었을까? 곰곰이 생각하다 내린 대답은 간단했다.


습관적이다. 늘 그래왔기 때문이다.


아동 물건을 제작하는 회사에선 대부분 분홍색은 여아용, 파란색은 남아용으로 판매한다. 여아는 분홍색을 선호하고 남아는 파란색을 선호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겨울왕국에서 엘사가 하늘색 드레스를 입고 온 뒤 여아가 하늘색을 선호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남자가 좋아하는 색, 여자가 좋아하는 색이 선천적으로 정해져 있다기보다 여아는 분홍색, 남아는 파란색이라는 습관적 편견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에 가깝다. 엘사가 남자색이라고 생각했던 파란 옷을 입고 나오자 파란색이 남자 색이 아닌 걸 깨달은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습관적 편견을 답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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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여아용, 남아용 물품을 치면
바로 찾을 수 있는 색상
 


미라큘러스에서 동양인 캐릭터의 외형을 비슷하게 만든 이유는 습관적이다. 이전부터 서양인은 동양인을 찢어져 위로 올라간 눈으로 많이 묘사했기 때문이다. 학교 폭력의 주범인 클로이가 어떤 사과도 없이 남을 해코지하면서도 행복한 일상을 계속하는 이유 역시 습관적이다. 초반에 다른 캐릭터가 부정적인 감정이 들 만한 사건을 만들어야하고, 비꼬기 식으로 부르주아 클로이를 사용해 사건을 만들었다. 이 상황이 반복이 되다 보니 권력층에 대한 풍자 캐릭터였던 클로이한테서 풍자는 사라지고 그저 사람을 괴롭히면서 사과는 하지 않는 뻔뻔한 가해자만 남은 것이다.




습관은 고칠 수 있다



우리 모두 나쁜 습관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다. 고쳐야 되는 걸 알지만 참 편하고 귀찮아서 고치길 포기한 일이 많다.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다같이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으면 보편성이 되면서 더욱 고칠 필요가 없다고 느껴진다. 그러나, 역시 우리 모두 알 듯이 나쁜 습관을 좋은 습관으로 고치면 그 또한 길게 지속된다. 처음에는 고치는 게 어렵다고 느껴지고 힘들지라도 지속하면 습관이 된다.


문화 속 나쁜 습관은 누군가를 반드시 상처 준다. 아동 문화에 존재하는 나쁜 습관은 아동이 자연스레 편견을 배우게 하는 교과서가 되기도 한다. 현재 자라나며 어른이 만든 문화를 볼 아이들이 커서 똑같은 편견에 뒤덮인 문화를 만들어 차별을 조장하고 누군가를 상처 주기 전에, 귀찮고 의식하기 힘들고 번거롭더라도, 편견과 혐오를 만드는 습관을 고쳐 차별을 줄이는 습관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김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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