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오직 잉그리드만 생각나는 책 [도서]

스위밍 레슨을 읽고
글 입력 2019.04.05 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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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도 엄마도 아닌, 잉그리드

“그녀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은 후 한동안 그런 생각에 잠겼다.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그녀가 있는 곳에서는 행복하게 웃을 수 있기를 기도하고 싶었다. 그녀의 삶이 어쩌면 많은 이들의 몽타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오래전 ‘사랑과 야망’이라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미자’는 ‘태준’과 결혼하면서 여배우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아내와 엄마로서 살아갔다. 자수성가함으로써 넉넉한 가정을 일구어낸 태준과의 결혼이었기에 마냥 해피엔딩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지만, 그녀는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에 시달려야 했다. 이 드라마를 봤을 적엔 필자가 너무 어릴 때라, 미자의 심리가 이해 가지 않았다.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고 입고 싶은 것을 언제든 입을 수 있는 환경인데, 무엇이 그녀의 마음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인지 의아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야 미자에게 필요한 것은 부유함이 아니라는 것을, 남편과 자식의 사랑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미자는 오로지 ‘나’ 자신이 필요했다. 그녀의 우울함은 누군가의 아내나 엄마가 아닌 ‘김미자’를 찾고 싶은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미자라는 캐릭터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아픈 캐릭터로 남아 있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잉그리드는 미자와 많이 닮았다. 차이점이 있다면 미자의 경우 직업적으로 성공을 맛본 후 결혼했지만, 잉그리드는 임신하면서 대학을 중퇴한 이후 어느 것 하나 이룬 것 없이 결혼했다는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친구와 세계를 여행하는 일은 영원히 꿈이 됐다. 그래서인지 잉그리드는 미자보다 더욱더 안타까운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잉그리드는 너무 어린 나이에 임신해버렸다. 성인의 나이였다곤 하지만, 그녀는 사랑이 전부라고 생각한 스무 살일 뿐이었다. 이처럼 내가 걷는 길이 어떤 길인지도, 내가 하고 있는 사랑이 참된 사랑인지도 잘 알지 못하는 나이에, 잉그리드는 새 생명의 삶을 책임져야 했다. 이에 그녀에게는 자식이, 모성애보다는 책임과 의무라는 부담감을 주는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러한 마음을 어느 누구에게도 드러내지 않았다.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생각해보면 ‘어머니’라는 존재는 자식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고 싶어 하는 존재로 인식되어 왔다. 그렇기에 자식을 낳으면 앞으로 어머니로서만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 진리처럼 작용했다. 그리고 그 진리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것으로 포장됐다. 자신의 이름이 아닌 어머니라는 명함만 존재하는 것에 대한 공포감은, 어디에서도 비춰주지 않았다.

한편 이 책에서는 잉그리드를 누구의 부인이나 어머니로 지칭하지 않고, 쭉 잉그리드로만 지칭했다. 그래서 아내나 엄마로서가 아닌 그녀의 삶에 집중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만약 그녀를 아내로, 엄마로 봤다면 자식들을 버리고 떠난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 독자들이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던 건, 그녀가 잉그리드였기에 가능했다.



어쩌면 여전히 잉그리드는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고 결혼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 단란한 가족을 구성하기 위해 나 자신을 기꺼이 희생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누구나 자아 정체성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기에, 나의 전부를 희생하는 것은 어려운 선택이다. 하지만 희생만큼 따라오는 보상이 있어 과감히 희생하는 것이다. 그 보상이 누군가에게는 자식의 행복일 수도, 남편의 사랑일 수도, 안정적인 가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필자에게는 나 자신보다 소중한 것이 없기에 어떤 보상도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는다. 잉그리드도 마찬가지였으리라. 그녀는 본인의 희생을 아내나 엄마의 책임감으로 승화시키기에 바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오는 압박감을 수영으로 해소했다, 사랑과 야망의 미자가 술로 우울함을 잊어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해소의 방법이 달라서 그렇지, 저마다 마음속 어딘가에 잉그리드와 같은 마음 하나쯤은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누구나 아내이기 이전에 엄마이기 이전에 ‘나’였기 때문이다. 친구와 해외여행을 꿈꾸고,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 졸업장을 받고, 멋진 회사에 취직하는 꿈을 꾸는 ‘나’. 나를 영영 잃고 싶지 않은 그 마음을, 누구나 다 지니고 있기에 어쩌면 잉그리드는 여전히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


[황채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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