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플래시 온 창작플랫폼 – 연극 "여전사의 섬"

글 입력 2019.03.31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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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끝이 다가오지만 여전히 차가운 공기가 옷깃을 스친다. 광활한 대로를 거니는 사람들의 기분은 좋아보였다. 이 길을 나란히 걷는 사람들은 무슨 일로 이 광화문에 찾았는지 궁금했다. 필자는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하는 연극 <여전사의 섬>을 관람하기 위해 오랜만에 광화문을 찾았다. 주 7일 아르바이트하느라 요즘 몸이 고단하지만 일을 마치고 부랴부랴 찾아왔다.


필자가 관람할 연극은 서울시 극단에서 주최한 프로그램 《플래시 온 창작플랫폼》에서 선발된 <여전사의 섬>이라는 작품이다. 《플래시 온 창작플랫폼》은 우리나라 연극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신진 작가들에게 멘토링과 적극적인 지원을 해주는 예술 양성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신인 작가들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커리큘럼이라 만약 내 주변에 극작가를 준비하는 친구가 있었다면 지원해보라고 일러주었을 것 같다.


연극 <여전사의 섬>은 제목에서도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듯이 여성과 여성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되고 있지만 정작 시원하게 해결되지 않는 이슈이다. 임주현 작가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아마조네스에서 착안한 ‘여전사’라는 소재를 가져와 알게 모르게 당하고 있는 여성을 향한 사회적 시선, 강압, 폭력 등의 요소들을 압축적으로 풀어냈다.



[세종] 서울시극단_여전사의섬_엄마(김원정)2.jpg
 


그녀는 카멜레온이다



연극의 시작은 여전사의 두 딸 중 한 명인 ‘이지니’의 면접으로 시작한다. 그녀가 자기소개를 시작하자마자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남성 면접자들의 자기소개 발언들.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몸은 움츠러든다.


지니는 본인이 카멜레온이라고 소개한다. 상황에 맞춰 자신의 색을 변화하는 것처럼 그녀 또한 유연하게 대처하는 사고를 지녔음을 어필한다. 곧 취업준비생이 될 필자로서는 너무나도 와 닿았던 오프닝이었다. 수많은 경쟁자들 사이에서 나만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까. 몇 개월 뒤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지니의 답답한 심정이 이해가 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면접에서 계속 떨어지는 지니는 자신의 뿌리가 궁금하게 되었고 하나(여동생인지 언니인지 모르겠지만)와 함께 아버지에게 엄마에 대해 묻게 되었다. 그녀들의 엄마는 ‘여전사들의 섬’을 찾아 외국으로 온 여성이었다. 우연히 그녀들의 아버지를 만나게 되었고 어떤 깨달음(?)에 의해 둘은 결혼하게 된다.


하지만 평범한 가정의 아내와 엄마가 될 수 없었던 그녀들의 어머니는 결국 집을 떠나게 되었고 홀아버지 아래에서 자라게 된 것이다.




여자는 소신껏 행동하면 안 되나?



또 다른 주인공 하나는 항공 승무원이다. 일찍이 일을 시작하여 본인의 일에 대한 프라이드가 강했고 지니와는 다른 카리스마도 겸비한 인물처럼 보였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 준비도 하면서 바쁜 일상을 보내던 차, 신뢰하던 회사의 부당한 해고 처리에 그녀의 일상은 흔들린다.


퍼스트 클래스에서 발생한 기내 사고에 대한 대처를 매뉴얼대로 따라 처리했을 뿐인데, 회사 측에서는 승객이 VIP라는 점을 문제 삼아 하나의 지나친 대처라며 모든 것을 그녀의 탓으로 돌렸다. 이와 동시에 시부모가 될 남자친구의 부모들은 자신들을 따라 정신병원의 검진을 받자며 그녀를 나무랐고 결국 그녀는 파혼을 선언했다.


사실 하나 남자친구의 부모들의 처음 등장했을 때 태도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녀의 남자친구였다. 파혼을 선언하니, 와서 매달리고 집착하며 끝으로는 데이트 폭력으로 장식했다. 정말 최악이었다. 사랑을 외치며 결혼을 준비한 연인이었던 두 사람의 끝이 이리도 비참해도 되는 것인지 싶었다. 그녀는 엄마 없이 자랐다는 말이 듣기 싫어 완벽한 자신이 되고 싶어서 지금껏 소신대로 살아왔다고 한다.


그녀가 잘못한 것은 무엇인가?




알바는 외모다?



하나는 이런 상황에 놓여있는데 지니는 면접에서 떨어지는 것에 지쳐 카페 알바에 지원했다. (대다수의 취준생들이 그러하듯이 마음 놓고 취업 준비를 할 수 없는 사회적 모습을 또 한 번 보여주시는 작가님..) 그런데 사장은 이상한 사람이 걸렸다. 전에 일하던 알바의 외모나 태도 등에 대해 뒷담을 하면서 이래저래 부당한 요구를 하는 사장을 지니는 면접 보기 전에 당연히 몰랐을 것이다.


필자가 현재 일하고 있는 카페 사장님은 여자 분이시다. 사장님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여성에 대한 차별적 시선과 스스로 옥죄는 틀에 갇혀 있으시다. “서비스업은 보여 지는 직업이다. 날씬하고 예뻐야 한다. 새로 알바를 뽑는데 인물이 없어서 뽑지를 않았다.” 등의 말을 필자에게 가끔 하신다. 앞의 내용은 연극을 보는 바로 그 날 들은 말이다.


아니, 친절한 미소와 서비스면 됐지, 알바생이 스스로의 외모를 서비스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은 더 이상 듣기 싫었다. 이미 그런 사고가 자리 잡힌 분들이 많아 답답한 현실이다. 여전히 여성에게 더 엄격한 외모 기준은 미디어의 영향도 크지만 사회 속 이런 작은 부분조차 개선되지 않아 변하지 못하는 것이다.



[세종] 서울시극단_여전사의섬_지니(허진) 하나(김유민).jpg
 


지니와 하나의 상황은 대한민국의 여성 중 일부가 충분히 겪을 만한 요소들이 많았다. 하지만 독특한 그녀들의 가정사는 그녀들을 결코 연약하게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굳건하게 만들어줬을 뿐.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을 포기해야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다. 자신을 잃지 않아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킬 수 있다.” 여전사가 되었을지 모를 그녀들의 엄마가 외친 말이다.


다른 사람에 맞추어 변하는 카멜레온 같은 이진이에서 더 이상 자신의 색을 잃지 않겠다는 이진이와 그 동안 완벽함 그 자체를 추구하는 것에서 살짝 내려놓아 스스로를 좀 더 찾아가겠다는 이하나. 두 자매의 깨달음만으로도 그녀들이 여전사의 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연극을 보고 난 후 체온은 뜨거워졌고, 생각은 복잡했다. 무거운 주제를 작가만의 재치와 유머를 가미해 만들어지고 다듬어진 작품 <여전사의 섬>이었다.





[정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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