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는 직시하기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 여전사의 섬 [공연]

연극 <여전사의 섬>을 보고나서
글 입력 2019.03.29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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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한달 전 힘들게 일자리를 구한 나는 이 연극을 보며 속으로 참 많이도 울었다. 그 이유는 극 중, 일자리를 구하는 지니를 보며 요즘 극심 하다는 취업난을 뚫고 일자리를 구했던 내 지난 날들이 떠올라서 만은 아니다. 다만, 내 정체성을 꿰뚫어본 듯 나를 관통해왔기 때문이다. 지금을 살아가는 나를 직시하게 만들고, 나를 만든 세상을 직시하게 했다.



[세종] 서울시극단_여전사의섬_엄마(김원정)2.jpg
 



판타지와 현실의 조화, 연극 <여전사의 섬>



연극 여전사의 섬은 면접을 보지만 번번히 떨어지는 쌍둥이 지니와, 완벽하고 일에 있어 철저하지만 예비 남편으로부터 데이트폭력을 당하는 쌍둥이 하나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런 소재 자체를 과장해 표현할 법도 하지만 여전사의 섬은 현실을 판타지적 요소인 여전사 아마조네스를 빌어 색다르게 표현한다.



[세종] 서울시극단_여전사의섬_지니(허진) 하나(김유민).jpg
 


엄마의 부재, 믿음의 부재



전설 속 존재 아마조네스의 여전사는 당당하고 싸움을 즐기는 강한 존재이다. 쌍둥이의 엄마는 전설 속 여전사로서, 여전사의 본성을 버리지 못해 두 딸을 낳고서는 갑갑한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여전사의 섬을 찾아 떠나버렸다. 쌍둥이 자매는 자신이 처한 현실의 버거움을 엄마의 부재로 인한 균열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지니와 하나는 말한다. 어쩌면 우리가 이렇게 된데에는 엄마에 대해 알고 있는게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쌍둥이는 여전사의 섬으로 사라져버린 엄마를 찾는다. 그들은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저 삶에 치여 스스로를 지키는데에 열중했을 뿐 자신에 대해 알아 나갈 여유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엄마의 흔적을 찾으려 한다.




저는 카멜레온 같은 사람입니다



연극은 쌍둥이 가족 하나와 함께 면접준비를 하는 지니를 보여주며 시작된다. 두꺼운 노트 한권을 가득 채울만큼 면접준비를 했지만 번번히 떨어진 지니는 새로운 회사 면접에서 이렇게 말한다.


“저는 카멜레온같은 사람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카멜레온 같이 잘 적응할 수있다는 긍정적 의미로 생각해냈을 그 말은 조롱거리가 되어 애써 정의내린 그녀의 정체성을 흔든다. 그리고 나를 마구 흔들었다.


또, 하나의 시어머니가 하나를 보며 너무 틈이 없이 잘 해내는 하나가 왠지 싫었다는 대사를 할 때는,  잘 버텨내기위해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는 세상 모든 이들의 노력을 가치없는 것으로 비웃는 듯 해 혐오감이 일었다. 이런 상황들은 여러가지 색깔을 가진 게 장점이라고 여기며 살아온 나를 두고 하는 이야기 같아서 견디기 힘들었다.


이것저것 할 줄 안다는게 또 다른 정체성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내 정체성을 그런대로 존중하려고 하며 살아왔지만 나는 그 속에서 참으로 힘들었나보다. 또 힘든 마음들을 많이 외면했나보다. 적응하기 위해서 내 본연의 색을 감추고, 때에 따라 적절히 바꾸며 적응하는 삶을 사는 나를 대견하게 여겼던 지난 날이 지나갔다.

 

새롭게 주어지는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를 바꾸어왔다는 것을 알면서도 외면했던 이유는, 그렇게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러지않고서는 나 하나 지켜내는 일이 버겁고, 언제고 사회 안에서 낙오 되어도 관심조차 않는 이 사회에 발 붙이고 살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나를 찾는 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혼란 스러웠다. 하나의 색을 가지고 하나의 것을 제대로 해 내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는 관점은 어쩌면 또하나의 틀이 아닐까. 여러가지 색을 가질 수있다는 것이 축복받은 능력일 수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가치없는 것으로 여기는 이유는, 결국 하나의 색을 가지는 편이 길들이기 쉬워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계속 틀을 주입한다. 연극은 이런 현실을 파악하고 여자로서의 틀, 성공한 사회인의 틀, 이제는 사람 그 자체의 정체성까지 틀에 넣으려고 하는 사회의 현실을 녹여냈다. 나아가 그 사회에 살아가는 나 자신을 투영할 수 있게 만들었다.



[세종] 서울시극단_여전사의섬_단체.jpg
 


섬세한 연출



이렇듯 짧다면 짧은 80분의 시간동안 많은 감정이 들었던 것은 잘 짜여진 극본과 배우들의 생생한 연기 덕분도 있지만, 메세지를 전하는데에 있어 섬세하게 고려되어 연출된 표현이 많기 때문이다.


지니와 하나가 그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인물들과의 관계를 통해 느끼는 압박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로, 극은 5단계 높낮이를 가진 구조물을 이용한다. 배우들은 이 구조물에서 적극 오르내리며 연기하는데, 이런 연출은 보는 이로 하여금 직접적 압박을 가하는 것 보다 묵직하게 지니와 하나의 처지를 느끼게 한다.


또, 폭력적 인물들이 폭력을 행사하는 방법에 있어 다같이 한 목소리로 대사를 읊게 하거나, 알바생이 된 지니에게 끊임없이 앞치마를 입히는 방법 등으로 풀어낸 방식 역시 흥미로웠다.


그리고 지니와 하나의 아버지는 진정한 사랑을 찾아 떠난다고 했지만, 사실은 외국인 여성과 중매 결혼을 했던 것일 뿐이었다는 설정도 현실을 적절히 녹여내어, 사랑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했다. 이러한 세세한 디테일이 모여 보는 사람이 현실과, 현실을 너머 자신을 직시하게 해주었다.




지금을 살아가는 지니와 하나



처음 신진 작가의 창작 플랫폼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 연극을 접하려고 했을 때는 판타지적 요소가 극의 배경이라 난해 하지는 않을지 걱정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연극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구태여 화려한 은유로 점철된 장치를 쓰지 않았다. 다만 전하려는 메세지에 충실할 뿐이다.


그래서 이 연극이 좋았다. 나 역시 지금을 살아가는 지니와 하나 중 한명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연극은 보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아가 더 많은 사람이 봤으면 좋겠다. 적어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지니와 하나들은 꼭 봤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들이 나처럼 위로 받았으면 좋겠고, 자기를 존중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세종] 서울시극단_여전사의섬_하나(김유민) 남자친구(장석환).jpg



결국 바꿀 수 있는 건 나 자신 뿐



끝으로,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연극을 본 이후 시간이 조금 지났다. 그래서 쌍둥이 자매를 떠올리면 연극을 처음봤을 때 스스로를 투영하며 격해 졌던 감정이 떠나가서 그들이 대견하게 느껴진다. 다만, 조금 씁쓸 하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부서진 현실에서 다시 일어나기 위해 답을 본인으로부터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사실은 쌍둥이가 부당한 상황에 처한 건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 그들을 그렇게 몰아버린 사회에 잘못이 있는데도 말이다.


그렇지만 답을 본인에게서 찾으려 한다. 또 그렇게 본인을 바꾸려한다. 힘이 없는 개인이 바꿀 수 있는 것이란 본인 뿐이라는 것을 이미 쌍둥이들은 느꼈을 지도 모른다. 어쨌든 떠난다. 진정한 그들의 모습을 찾아서 말이다.



[세종] 서울시극단_여전사의섬_엄마(김원정).jpg
 


여전사의 섬



그들은 이제 여전사의 섬에 가있는지도 모른다. 싫은 것을 싫다고 말할 수있는 곳이기도 하고 그래서 환상 속에만 존재하는 그 곳에 말이다. 그리고 그들이 아직 그곳에 다다르지 못했더라도 괜찮다. 나는 단지 그들의 여정이 순탄 하기를 바란다. 운이 좋아 세상이 조금 도와준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고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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