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거도라는 사람
'하거도'는 하거도에서 태어나서 하거도를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말을 할 수조차 없는 환경에서 자라 그는 하거도에서 말을 하면, 자기마저도 더럽혀질까 봐 말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똑같이 되고 싶지 않아서, 억울한 일을 당해도 꿋꿋이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인간을 모두 똑같게만 바라보기도 한다. 그럴 경우, 전자의 경우에는 자신은 타인과 다르다는 우월 의식을 가진 것이고, 후자는 동등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동등하게 생각하는 것은 가치가 격하되거나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전자와 후자의 두 가지 상황은 전제 자체가 다르다. 사람을 경멸하는 사람과, 경멸하지 않는 사람. 거기서부터 두 가지의 논리가 펼쳐진다. '이해할 수 없다'와 '이해는 못 하겠지만, 조금 알 것 같아.'의 차이라고 할까.

하거도의 발전소는 우리의 삶을 축약해서 물리적으로 한곳에 모아놓은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평생 살면서 느낄 괴로움과 두려움, 공포, 부정적인 감정들, 힘듦, 등 온갖 육체적인 고통을 그 작은 공간에 다 모아놓은 것이다. 발전소 밖에 있는 우리도 사실은 자유롭지 못하다.
내가 쓰는 글은 <하거도>라는 연극을 전부 보여주지는 못한다. 쓰고 싶은 것만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나의 머릿속에 담긴 것을 쓰고 있기에 <하거도>를 직접 관람하면 분명 나와는 다른 것을 느끼고 다른 것을 보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정부에 대한 비판, 선과 악에 관한 이야기, 부정부패, 비리들, 잘못된 법, 등 아주 수많은 것을 다루라고 하면 다룰 수도 있고 그것을 글로 쓰라고 하면 쓸 수도 있겠지만, 나는 <하거도>라는 연극에서 이번에도 나를 보았다.
드라마를 볼 때 답답해하면서도 계속해서 다음 편을 보게 된다. 암 걸리는 주인공을 욕하고, 바보 같은 주변 사람들을 욕하고, 자기 트라우마 때문에 착한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역을 욕한다. 좀 더 좋은 해결방안이 있는데 문제를 회피하는 사람들을 욕하기도 한다.
진짜 화가 난다면 아예 그 드라마를 보지 않겠지, 그런데도 당신이 그 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정말 할 일이 없어서라거나, 아니면 해야 할 일에서 회피하기 위해서라거나, 또는 진심으로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의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서 드라마를 계속해서 보겠지.
<하거도>와 같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부류의 작품을 보다 보면, 내가 살아가다 마주친 문제들은 사실은 별것 아니었다고 느낄 때가 많다. 아주 필사적으로 생존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나의 문제들은 사실 미뤄질 수도 있고, 쓸모없을 수도 있고, '고차원적'이라는 핑계 하에 사실은 하지 않아도 좋을 것들이라는 사실도.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쥐꼬리만 한 음식을 먹고 버티는 것을 보며 나는 사실 먹지 않아도 될 것들을 얼마나 많이 먹고 있는 것인지를 느낀다.
사람 인생의 목적은 없다고들 한다. 그리고 인생의 목적이 없다면 자기가 만들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들도 많다. 모든 사람의 목표는 다르고, 삶의 목적이 살아가는 것만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살아감을 위해 사는 사람들에게서 얻는 생의 의미는 남다르다.
바보같이 일 년이 넘는 기간 동안 같은 문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면, 몇 년이 지나도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면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정말 누군가가 필사적으로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작품을 보기를 추천한다.
아마 그렇게 하더라도 쉽게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내가 추천하는 방식이 자기 삶의 문제에서 회피하는 것일지라도, '문제'란 것은 사실은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