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엄마를 미워해도 될까요? [도서]

엄마의 딸이 아닌, 온전한 나를 찾는 길.
글 입력 2018.11.26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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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는 말을 들으면

당신은 어떤 단어가 떠오르시나요?





컷비디오는 5살부터 50살까지의 여성을 대상으로 이렇게 질문했다. 그리고 그들의 대답은 사랑부터 영웅, 아름답다, 희생, 돌봄, 인내, 최고, 조건 없는 사랑, 지지, 축복 등으로 다양한 듯 엇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tvN의 시사교양 프로그램 <어쩌다 어른>에서 수도권의 20~50대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엄마"라는 말을 들었을 때 떠오르는 감정을 질문한 결과 1위 사랑 (23%), 2위 미안하다 (22%), 3위 감사하다 (19%)라고 답했다. 하지만 64%의 사람들이 긍정적인 답변을 말한 가운데, 4위와 5위에는 앞선 답변과 사뭇 대비되는 부정적인 단어들이 자리했다.


4위 짜증난다

5위 부담스럽다


두 답변이 공개되자 스튜디오의 패널들은 술렁였다. 말도 안 된다는 말부터,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는 사람, 그리고 이해가 된다는 반응도 있었다.


엄마를 떠올리면 '짜증난다', '부담스럽다'라는 감정이 먼저 떠오르는 사람들.


모두 불효자일까?


 


사랑,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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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향한 짜증과 불편감은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선 일종의 금기다. 사회가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부모에 대한 올바른 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부모에 대한 뒷담화를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익명의 힘을 빌려 현실에선 꺼내기 힘든 부모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을 털어놓는 것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반응은 상반되게 갈린다. 비슷한 일을 겪어본 사람들이 내놓는 '이해가 간다'라는 반응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래도 어떻게 부모님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 말한다. 아무리 그래도 "부모님"인데, 그 정도는 참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엄마에게 <모성애>라는 책임이 지워지듯, 자녀에게는 <효도>라는 과업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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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아이돌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부모님께 집을 사드리는 것이며, 쇼미 더 머니의 온갖 래퍼들은 어머니를 부르짖으며 자신의 불효에 용서를 구한다.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는 우리는 이를 당연한/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받아들이며 그들을 기특해한다.


한국 사회에서 <효>란 자녀에게 마땅히 주어진 의무와도 같다. 부모님의 말씀에 거역하지 않고, 큰일을 결정할 때에는 부모님의 허락을 구하며, 독립을 해서도 주기적으로 그들을 찾아뵙고, 경제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자신이 받은 사랑의 값을 다양한 방식으로 치러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부모님을 사랑해야 한다.


앞선 모든 행동은 모두 "부모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출발해야 한다. 부모를 의무감의 영역에 두는 것은 금기시된다. 부모를 거추장스럽게 여기고 부담스럽고 불편한 존재로 취급하는 행동은 금기다. 불효다.




엄마를 미워해도 될까요?



하지만 여기 엄마가 "싫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엄마와 함께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하며, 엄마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는 사람이 있다. 그녀의 엄마는 삼시 세끼 잘 챙겨주고, 어릴 땐 숙제도 대신해줬으며, 피아노도 사주시고, 딸과 단둘이 떠나는 여행을 위해 기꺼이 큰돈을 쓰기도 하는, 그런 엄마다. 그런데 왜 딸은 그런 엄마를 떠나고자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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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엄마를 미워해도 될까요?>는 만화가 다부사 에이코가 자신이 엄마로부터 자립하기까지의 일들을 그린 만화다. 도대체 그녀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에이코의 일상을 따라가보자.


아래의 글은 본 만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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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코는 자신의 엄마를 '늘 에너지가 넘치고 소탈하여 사람들을 웃게 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지만, 화가 나면 180도 달라져버리는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다혈질 엄마는 (자신의 관점에서) 좋은 것들을 멋대로 잔뜩 퍼준 뒤 상대가 그만한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욱해서 윽박을 지르고 화를 내버린다.

"내가 이만큼이나 너한테 해줬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에이코의 엄마는 늘 억울하고 화가 나있다. 그런 엄마의 곁에서 에이코는 점점 주눅 들고 자존감을 도둑맞는다. 피아노보다 만화책이 더 좋은 에이코, 엄마 생일을 위해 어설프게 케이크를 만드는 에이코, 엄마와의 여행보단 친구들과 스키를 타러 가고 싶은 에이코는 모두 엄마의 윽박 아래에서 힘을 잃고 시들어버린다. 몇몇의 사건들을 통과하며 에이코는 배운다. '내'가 아닌 '남'을 위해 사는 법. 그리고 그건 그녀에게 일종의 '생존'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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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로 피아노를 배우게 된 에이코는 엄마가 볼 때마다 만화책을 숨기고 피아노를 치는 시늉을 내며, '브래지어쯤은 네 돈으로 사!'라는 엄마의 말에 엄마의 브래지어를 훔치기 시작한다. 그렇게 자신의 요구가 아닌 엄마의 요구와 생각에 의해 살아가기 시작한 에이코에게, 엄마란 그저 "자존감 도둑"이다. 에이코의 영혼과 자기애를 갉아먹고 엄마는 점점 커다란 올가미로 그녀를 옭아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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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코의 눈에 엄마는 다른 사람의 편처럼 느껴진다. (상대의 잘못으로) 에이코가 친구와 다퉜을 때조차 엄마는 "우리 애가 잘못했다."라고 말을 하며, 친구들과 아이스크림을 먹기 위해 용돈을 요구하는 에이코를 한 시간이 넘도록 무시하다가 마지못해 돈을 쥐여주기도 하며, 피아노 배우기를 강요하고, 자신과의 여행을 위해 친구들과의 선약을 깨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엄마는 에이코에게 말한다. (용돈을 받으니까/ 피아노를 배우니까/ 엄마랑 여행을 와서) 참 좋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코는 슬픈 눈을 하고 있지만 엄마의 눈엔 보이지 않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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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코는 자책만 늘어간다. 자신을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보잘것없는 또는 초라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에이코는 나이를 먹어가지만 그럼에도 어릴 때와 달라질 것 없는 일상을 보낸다. 엄마에게 시달리고, 그녀의 영향력 아래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한다. 아르바이트 자리를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원하는 것을 말하지 못하며, 사소한 부탁 한 번 하는 일이 에이코에겐 그 무엇보다 두렵고 무서운 일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원인은 모두 "내가 부족하기 때문에"라고 생각하는 에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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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관성 때문일까. 에이코는 자신의 엄마와 비슷한 남자와 사귀며 그에게도 역시 자존감을 착취당한다. 일이 잘 되면 '내 덕' 잘 못 되면 '남 탓'을 하는 타로는 에이코의 자존감을 먹어치우며 몸집을 불린다. 하지만 다른 남자를 만나도 에이코의 고민은 끝나지 않는다. 성인이 된 에이코는 부탁할 줄 모르는 어른이 되어있었다. 원하는 것을 요구할 줄 모르는, 그저 인형처럼 에이코는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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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몸은 에이코에게 계속해서 신호를 보낸다. 엄마에게서 벗어나야 한다고. 한 발자국을 떼야 한다고. 너 자신을 지키기 위해선 엄마를 뿌리칠 수 있는 용기를 내야만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엄마와 멀어지기란, 아주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결코 쉽지 않다. 에이코는 몇 차례나 다시 올가미에 붙잡히고 괴로워하다 다시 용기를 내기를 반복한다. 그러다 에이코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다. 자신과 자신의 엄마에게 중요한 것 하나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건 바로, 언제든 내 편을 들어줄 수 있는 '나 자신', 즉 자존감이다.


나 자신을 믿어주는 또 다른 '나'가 없는 사람들은 타인에게서 이를 충족하려고 한다. 100% 내 편이 되어줄 사람. 엄마에게 에이코가 그런 존재였고, 에이코에겐 애인이 그런 존재였다. 하지만 타인은 어디까지나 타인일 뿐. 아무리 가깝고 친밀한 사이라 할지라도 100%의 내 편이 되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역할은 오로지 자기 자신만이 해낼 수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을 깨달은 에이코는 '나' 돌보기 작전에 돌입하게 된다. 엄마와 나를 분리하고, 나 자신의 힘을 키우는 일. '엄마의 딸'이 아닌 '나'로 살기로 결정한 것이다.


엄마로부터 벗어나기. 가족과 멀어지기. 사실 이 과정은 내 삶을 조종하는 타인으로부터 벗어나기의 일종이다. 가족 역시 그 친밀도가 다를 뿐 결국 타인이다. 나를 조종하고 무너트리는 타인은 친구, 동료, 직장 상사를 넘어 가족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내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수는 없다는 것. 경계선을 긋고 그들로부터 의식을 독립하는 것의 중요성을 에이코는 말하고 있다. 우리 자신의 일은 오직 우리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다.




미워할 수 있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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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5월, 트위터에서 한 트윗을 봤다. 백화점에서 근무를 하다 보면 딸이 옷을 사는데 함께 따라나온 어머니가 점원을 향해 "얘가 살이 쪄서"라며 사과를 하고 다니는 장면을 종종 목격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트윗은 24000개 이상의 리트윗을 얻으며 공감을 샀다. 아래에 달린 답글들은 대부분 '자신의 어머니도 비슷한 말을 한다', '내 자존감을 가장 깎아 먹는 사람은 되려 나와 가장 가까운 엄마다' 등 트윗의 내용에 공감하는 반응이었다.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부모님이 자연스레 화두에 오르는 일이 잦다. 그럴 때마다 누군가는 부모님에 대해 자랑스럽게 말하고, 누군가는 아침의 다툼에 대해 투덜대기도 하며, 또 누군가는 아예 입을 다문다. 부모님과 사이가 좋지 않은 친구들, 혹은 아예 관계를 단절한 채 살아가는 친구들을 종종 본다. 누군가는 '뭘 그렇게까지 하느냐'라며 그들을 나무라기도 하고 '네가 더 노력해야 한다'라며 어깨를 두드리기도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다 그만한 사정이 있지 않았겠느냐'라고. 가족과의 멀어짐을 불효, 생존, 불건강, 자연스러움 중 어떤 카테고리에 넣느냐는 우리의 몫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거다.


이 만화 <엄마를 미워해도 될까요?>는 부모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으로 죄책감을 느껴본 적이 있는 사람에게는 공감과 위로의 책이, 그리고 평소 부모를 향해 부정적인 말을 뱉는 이들을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는 타인의 시선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줄 책이 될 것이다.


이 책은 모두 에이코처럼 부모가 싫다면 연을 끊고 달아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타인의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지 말자는 얘기다. 타인의 말을 절대적 진리로 삼고 이에 조종당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리고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죄책감을 느끼지 말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니까. 다만 자기 인생의 왕관을 타인의 머리 위에 씌워줬다면, 이제는 되찾아올 때이다. 당신 인생의 권력자는 오직 당신 자신이다. 이것이 에이코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목소리다.



[송영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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