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상처받은 모든 사람들을 위해, 헤드윅 [영화]

온전한 하나가 되기 위해 살아가는, 모든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
글 입력 2018.10.01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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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윅’이라는 영화를 처음 접한 것은 한창 자존감과 삶의 의욕이 바닥을 치던 재작년 가을이었다. 원하지 않는 대학에 와 배우고 싶지 않은 것들을 배우며 남이 짜 준 것만 같은 의욕 없는 나날을 보내던 그때 이 영화를 보았다.‘무너뜨릴 테면 무너뜨려 봐’라며 당당하게 노래하는 모습, 감당하기 힘든 상처에 괴로워하는 모습, 자신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모습 모두가 그 때의 내게는 큰 위로가 되었고, 그 이후로 ‘헤드윅’은 선선한 바람이 불어 생각이 많아질 때면 항상 생각나는 작품이 되었다.

온전한 하나가 되기 위해 살아가는, 모든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 영화 ‘헤드윅’을 소개한다.



The Origin of Love




타오르는 불꽃
벼락 되어 내리치며
번뜩이는 칼날 되어
함께 붙은 몸
가운데를 잘라내 버렸지
해님, 달님, 땅님 아이들


‘the origin of love’는 언젠가 헤드윅이 그의 엄마에게서 들은 설화를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이 작품의 메인 넘버이다. 이 넘버에서는 등이 붙어 하나가 된 두 사람이 제우스에 의해 몸이 반 토막 나고, 반쪽이 되어 외로워진 사람들이 다시 하나가 되려는 것이 사랑의 기원이라고 말한다. 가사가 조금 기괴하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이 기괴한 가사 속에는 ‘헤드윅’이라는 인물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작품에서 사랑의 이유는 성별이 아닌 ‘온전한 하나가 되고자 하는 마음’이다. 개인은 본래의 완성된 모습에서 반쪽이 떨어져 나간 불완전한 존재로, 나머지 반쪽과 하나가 되려는 본능을 지니고 있다. 헤드윅이 성적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배신당하고, 버림받으면서까지 사랑을 갈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헤드윅에게 사랑은 자신을 온전한 하나로 만들어 줄 존재의 반쪽, 즉 자신의 정체성이다. 하지만 헤드윅이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믿었던 사랑이 배신과 상처만을 남긴 채 떠나자, 그는 끝없는 자기혐오와 혼란 속에 빠진다.



Exquisite Corpse




헤드윅이 자신을 남자와 여자도 아닌 그 사이의 장벽이라 칭하며 불완전한 정체성을 갖게 되는 가장 큰 계기는 성전환 수술로, 수술이 실패한 이후 그는 Sugar Daddy와 Tommy에게 버림받는다. 그럼에도, 작품에 초반부에서 헤드윅은 ‘Angry Inch’를 지닌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무너뜨릴 수 있으면 무너뜨려 봐’라며 당당한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이야기가 절정으로 치달을 때쯤, 이 모든 당당함이 무너지고 자신에 대한 혐오가 폭발하는 순간이 오고야 만다.

‘헤드윅’ 하면 짙은 화장과 노란 머리를 한 로커가 가장 먼저 떠오를 만큼, 짙은 화장과 화려한 패션은 그의 가장 대표적인 상징이다. 하지만 헤드윅의 화장과 꾸밈에 대한 영화 초반부와 후반부의 느낌은 상당히 다르다. 처음에 ‘Tear me down’을 부르며 당당하게 등장했던 헤드윅은 ‘Exquisite Corpse’에서 얼굴을 짓눌러 화장을 지우고 입었던 옷을 찢어버린다. 멜로디가 거의 의미가 없을 정도로 강렬한 사운드와 찢어지는 듯한 보컬로 이루어진 이 넘버는 헤드윅이 자신의 맨몸을 바라보는 감정을 그려내고 있다. 당당함처럼 보였던 그의 짙은 화장과 꾸밈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Angry Inch만이 남은 끔찍한 맨몸으로부터의 도피이다. 그리고 도피처에서 벗어나 맨 몸을 똑바로 보는 과정과 그로부터 느끼는 고통을 상징하는 넘버가 바로‘Exquisite Corpse’이다.

헤드윅은 이 장면에서 토마토를 마구잡이로 자신의 몸에 던진다. 자신을 덮었던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맨 몸을 보는 과정에서 생기는 자기혐오이다. 엄마가 자신에게 던졌던, 과거의 사랑들이 자신에게 내비쳤던 혐오를 헤드윅은 고스란히 자신의 맨몸에 짓이긴다. 정체성과 존재 가치를 잃고 도피하며 방황하던 헤드윅에게, 자신의 초라한 본모습과 상처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어렵고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을 것이다.



Midnight Radio




과거 그는 자신을 남자 혹은 여자, 그리고 누군가의 연인과 같은 외부적 요소로 정의하려 했다. 하지만 그는 세상의 어떤 기준에도 맞지 않는 인물이었기에,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타인과 자신으로부터 부정당한다. 그렇게‘Exquisite Corpse’에서 완전히 무너지는 듯했던 헤드윅은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고 짓이기려 했던 맨몸으로 다시 일어선다. 그래서 ‘Midnight Radio’를 부르는 헤드윅은 본 모습을 가리고 있었던 가발과 화장, 화려한 옷과 같은 겉치장을 전혀 하고 있지 않다. 이는 헤드윅이 자신의 정체성을 자신의 내면에서 찾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작품에서 온전한 하나가 된다는 것은 사랑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본 모습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고 내면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떤 외부적 근거도 없는 내면의 굳은 심지 같은 정체성을 완성한다는 것은, 헤드윅이 자신의 초라한 맨몸에 토마토를 미친 듯이 짓이겼던 것처럼 어렵고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하지만 그는 결국 이 모든 과정을 겪어내고 맨몸으로 세상에 나아간다. 헤드윅의 그 한 걸음은, 상처받은 모든 사람들에게 큰 용기가 되었을 것이다.

간만에 헤드윅을 다시 보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 나에게 상처를 주거나 외부적 여건들이 크게 흔들렸을 때 나는 나의 정체성을 잘 지켜낼 수 있을까. 내가 허울뿐인 외부의 정체성만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장벽의 동쪽과 서쪽에 집중하느라, 나 자신이 장벽이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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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혜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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