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투명도 낮추기: 존재하기 위해 사라지는 법

존재의 증명
글 입력 2024.03.09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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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매일 수많은 디지털 발자국을 남기면서 살아간다. 책에서도 경고하고 있지만 우리는 더이상 자발적인 협조와 비자발적인 협조를 구분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CCTV가 없는 곳이 없고, 블랙박스는 곳곳에서 우리의 모습을 담고 있으며 어쩔 땐 카페에 앉아있다가 누군가의 셀카 속 배경이 되어버리기도 하니까.


디지털 세계에 내가 남긴 발자국은 얼마나 많을까. 아이폰 8을 쓸 때 휴대폰은 내 지문 데이터를 수집했고 지금은 페이스 아이디를 수집한다. 휴대폰이 나인지 내가 아닌지 인식할 수 있고 내 얼굴은 은행을 비롯한 인증 정보에 쓰인다. 나는 주기적으로 컴퓨터에 저장돼 있는 정보를 지우고 사용하지 않는 웹사이트에서 나의 존재를 없앤다. 그러나 그게 실제로 서버에서 지워지는지 소비자는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노트북을 사용할 때마다 정면의 렌즈가 부담스러운 나는 가장 아날로그틱한 보안 수단을 선택한다. 노트북의 웹캠 렌즈에 포스트잇을 붙여 두는 것. 나뿐 아니라 마크 저커버그와 미 연방 수사국(FBI) 국장을 지낸 제임스 코미까지 이 이상한 보안수단을 사용했다니 웃음이 났다. IT와 보안의 중심에 있는 그들마저 가장 전통적인 보안수단을 안전하다고 여기다니.


인스타그램을 반년 정도 안한 적이 있었다. 너무 많은 시간을 그 SNS에 쏟으면서 중독에서 오는 피로감이 힘들어서 충동적으로 비활성화를 했다. 일주일 정도는 심심한 게 가장 힘들었다. 다음은 단절감이었다.


친구들의 연애, 결혼, 퇴사, 이직, 여행 등 다양한 소식은 대부분 인스타그램으로 확인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으면 주변인들의 소식을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특히 24시간이 지나고 나면 휘발되는 스토리는 인스타그램을 하더라도 타이밍을 놓치면 다신 볼 수 없다.


그래서 가끔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을 때 나는 인스타그램을 지운다. 그게 지금으로선 세상에서 투명해질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기 때문이다. 단절되는 용기는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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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방법에 대한 미약한 방법을 몇 개 꼽아봤다.


처음엔 존재하기 위해 사라진다는 말은 크게 대단한 문장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인스타를 삭제하거나, 유튜브를 삭제하거나. 15초 짜리 짧은 영상에 갇혀 하루를 낭비한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오늘 정말 멍청하게 하루를 보냈다'라는 자괴감에 휩싸이기 마련이다.


그러한 세상에서 내가 존재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선 엄청난 디지털의 흐름에서 잠깐 발을 빼야 한다. 디지털 디톡스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가장 감동적인 경험을 할 때 내 존재가 희미해진다는 작가의 통찰은 그런 측면에서 놀랍다. 폴 K. 피프 캘리포니아대학 어바인 캠퍼스 심리학 교수는 경외심의 심리학이라는 이론을 소개했다. 하늘을 찌를듯한 활엽수에 있는 숲,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느끼는 막막함 앞에서 사람은 한없이 작아진다. 피프 교수는 이러한 경외심은 자의식을 줄이고 이타적인 감각을 만들어내는 요소라고 봤다.


그랜드캐년에서 은하수를 봤던 기억이 난다. 열심히 달려가는 차 안에서 해가 지는 걸 보니 기분이 착잡했다. 겨울의 서부는 해가 짧아서 4시면 해가 졌다. 이것저것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생기면서 생각보다 도착시간이 늦어졌다. 이윽고 완전히 암흑에 갇힌 도로에서 차는 조용히 달렸다. 그랜드캐년에 도착했을 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절벽인지 도로인지 모를 투명한 암흑이었다. 눈이 익숙해지자 하늘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것 같은 별과 은하수가 흩뿌려져 있었다. 여행 막바지 서로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하던 우리는 입을 다문채 한참 하늘을 올려다 보기만 했다. 나는 그 순간 정확히 존재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내 존재의 의미에 대해 한참 되새겨야 했다.

 

노출과 연결에 피로해진 사람들을 위한 '해리포터의 투명망토'. 에세이에 대한 설명이었다. 그런 절대적인 해법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책을 집어든 이유는 이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 이 정보의 바다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했을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사라짐의 여러 정의를 두고 존재에 대한 재미있는 통찰을 할 수 있는 책이었다. 책에 등장한 사회심리학자인 대니얼 길버트의 이야기도 재미있다. "우리는 계속 변화하는 중인데도 이미 완성되었다고 착각한다. 바로 지금의 우리는 지나간 매 순간의 우리처럼 일시적이고 임시이고 순간적이다. 우리 삶에서 변치 않는 건 변한다는 사실밖에 없다."

 

존재하기 위해 조금씩 앞으로 이동한다는 건 어쩌면 매 순간 사라지고 있다는 뜻과도 같지 않나. 그런 생각으로 책을 덮고 오랜만에 내 존재가 희미해지는 여행을 떠나볼까, 생각했다.


[우리 역시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의 파도가 만나는 해안선에서 끊임없이 덮쳐오는 파도를 맞고 있는 긴스버그의 잠수부들일 것이다.] - P.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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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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