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고흐의 발자취를 따라 걷다 [시각예술]

반 고흐 인사이드 : 빛과 음악의 축제
글 입력 2016.03.12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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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의 시작과 함께 1월 8일 부터 4월 17일까지
문화역 서울 284에서 ‘ 반 고흐 인사이드 : 빛과 음악의 축제 ‘라는 이름으로 전시가 열렸다.
이번 전시는 특별하게도 고흐의 인상파 작품에 ‘미디어아트’라는 장르를 접목했다.

이번 전시를 통해 고흐의 삶과 작품에 대해 더욱 더 깊이 알아보고,
전시와 같이 흐르는 음악으로 눈과 귀를 모두 만족시켜보도록 하자.

전시를 관람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서,
전시와 같이 고흐가 지냈던 지역과
그의 인생의 발자취의 흐름으로 글을 진행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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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ncent van Gogh
1853.3.30~1890.7.29
네덜란드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약한 후기 인상주의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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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_1 ‘ NUENEN ‘ (뉘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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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의 마을이라고 불리는 뉘넨은
그가 본격적으로 미술을 시작하게 된 ‘시작의 땅’이다.
목사였던 아버지 밑에서 청교도적인 삶을 살아온 조용하고 소극적이었던 고흐는
하층민을 구제하고자 하는 마음에 신학공부를 시작했지만,
현실과 괴리된 신학교육 과정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다른 방법으로 시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것은 바로 ‘그림’이었다.
27살의 그는 그렇게 뒤늦은 나이에 그림을 시작했고,
파리에서 지내다가 부모님이 계신 뉘넨으로 거처를 옮겼다.

파리 인상주의 화가들이 아름다운 색채로 그림을 물들일 무렵,
고흐는 뉘넨에서 노동자의 삶에 녹아들어
사실적이고 어두운 색채의 그림을 많이 그렸다.
그리고 그 결과 [감자 먹는 사람들]이라는 작품이 탄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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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자 먹는 사람들 (1885)


이 그림은 파리에선 혹평을 받았지만,
고흐가 농민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담긴 그의 초기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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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에서는 어둡고 서민적인 고흐의 그림과 상반되는
그 당시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을 만날 수 있다.

터너, 모네, 르누아르, 드가와 같은
밝고 뚜렷한 색채의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의 그림을 구경하다가
갑자기 나타난 모네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약간은 우울하고 칙칙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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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의 초기 화풍에서 드러나는 것이
그의 유년시절이자 화가로서 내딛은 첫 발걸음이라 생각하면
그 그림들 속에서 고흐라는 한 명의 사람을 읽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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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27살의 고흐가 그림을 그리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그의 동생 테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나를 먹여 살리느라 너는 늘 가난하게 지냈겠지.
네가 보내준 돈은 꼭 갚겠다. 안 되면 내 영혼이라도 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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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까지만 해도 고흐의 자화상으로 알려져 있던 [테오 반 고흐의 초상]은
남동생 테오의 초상화로 밝혀질 만큼 테오는 고흐와 거의 흡사한 외모를 가졌었다.
테오는 고흐에게 가장 큰 버팀목이자 지지자였다.
아마도 고흐가 불안정했던 초기 화풍에서 점점 그만의 화풍을 찾아가게 된 이유도
전부 다 동생인 테오 덕분이었을 것이다.



PART_2 ' PARIS '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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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 3월, 고흐는 테오가 있는 파리로 이주한다.
그는 그곳에서 당시 이름을 널리 떨치던
로트렉, 베르나르, 르누아르, 드가, 모네 등의 인상파 화가들과 만나게 된다.

그는 파리의 첫 인상에 대해서 별볼 일 없는 인상파의 색채와 드로잉에 실망했다고 말했지만,
그의 그런 말과는 달리, 그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인상파의 특징을 잘 흡수했던 화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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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조금씩 어두운 색채와 투박한 화풍에서 벗어나
풍부한 색채와 활기찬 화풍을 수용한다.

그가 파리에서 보낸 2년은 인상파 화풍, 일본 미술, 신인상주의 점묘법 등
그 시대에 영향을 받으면서
고흐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가는 도전의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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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가 파리에 도착한 해, 신인상파 조르주 쇠라와 폴 시냐크는
점묘법을 도입한 새 화풍을 선보인다.
점묘법이란 작은 보색의 점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리는 방법이다.

그리고 시냐크와 친하게 지내던 고흐 역시 그 영향을 받는다.
이 시기에 그린 고흐의 그림을 보면 새롭게 달라진 그의 붓질 기법봐 채색 방식을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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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흐의 방에서 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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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반 유럽의 만국박람회에서 소개된
일본 미술은 파리 예술가들을 사로잡는다.
그 중에서도 색채 판화 ‘우키요에’는 인상주의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여기서 ‘우키요에’란 ‘덧없는 세상’이라는 의미의 일본어로,
극장, 식장 등 유흥가를 나타내는 말이다.

이러한 ‘우키요에’의 대담한 구도와 이국적 색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고흐도
화려한 채색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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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기 영감의 초상 (1887)
 

파리에서만 200점 이상의 작품을 남긴 고흐는
점점 자화상을 그리며 괴팍한 성격으로 변해간다.
그는 다른 인상파 화가들과 어울리며 방탕한 생활을 하기 일쑤였고,
그러다가 파리의 대도시 생활에 부적응하며 우울증을 앓기도 했다.
점점 음주와 흡연을 즐겨 건강은 악화되었고, 주변 사람들과의 사이도 나빠졌다.

결국 그는 2년 남짓의 도시 생활을 접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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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_3 ' ARLES ' (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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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고흐는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에 있는 아를로 이주한다.
그의 지친 몸과 마음은 그곳에서 점차 치유된다.
평온한 분위기와 아름다운 자연을 가진 아를에서
그의 화풍은 어느 때보다도 발전해 나간다.
그는 이 곳에서 일본 미술에서 받은 영향을 폭발적으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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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는 아를의 삶에 완벽 적응 하게 되자,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교감하며 지내길 원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현실적이고 세련된 도시 화가인 폴 고갱을
설득 끝에 아를에서 함께 지내게 된다.

고흐의 위대한 걸작으로 꼽히는 [해바라기]는
고갱을 기다리며 그린 그림으로 노랑의 색채가 잘 드러난 그림이다.
이 그림을 통해서 자연 속에서 발견한 밝은 노랑색을 수많은 연작으로 그려가며
발전시키고자 했던 고흐의 열정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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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고흐의 아를 시기 중 가장 많은 사랑은 받은 작품이다. 
‘ 짙푸른 하늘 여기저기에는 코발트 색의 푸른색보다 더더욱 밝은
은하의 창백함을 닮을 푸른 구름이 떠 있었다.
그 창공 깊숙이 별이 여기저기에서 빛났다. ’라고 테오에게 편지를 보낼만큼
고흐는 아를의 자연 속에서 다양한 색채로 부터 영감을 받았다.
고흐는 아를의 밤 풍경과 하늘을 특히 좋아했다.
이 그림에서는 아를의 밤에 대한 고흐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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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콜에 의존하며 점점 괴팍한 성격으로 변해가던 고흐는
마침내 고갱과의 갈등이 깊어지게 된다.
그리고 결국 고흐는 자신의 귓불을 면도칼로 자르는
미치광이 같은 행동을 저지르고야 만다.

결국 고흐의 이상 행동과 함께 둘의 우정도 끝이 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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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잘린 자화상 (1889)

이 작품은 그 사건 이후에 그려진 고흐의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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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프러스와 별이 있는 길 (1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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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후 1889년 5월, 생 레미 지방의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곳에서도 고흐는 작품 활동을 계속해나갔지만
점점 악화되는 정신질환에 의해 그의 화풍 또한 조금씩 달라진다. 

이 시기 고흐의 그림에선 강한 필치와 굽이치는 곡선이 도드라진다.
요양을 하는 동안 고흐가 가장 관심 있게 그린 것은 바로 ‘사이프러스 나무’이다.

그는 “ 내 마음에는 늘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다”고 고백할 정도로
나무에 자신의 마음을 담아 그려냈다.



PART_4 ' AUVERS SUR OISE ' (오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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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5월, 고흐는 파리에서 한 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는
소도시 오베르로 이주한다.
이 곳에서 그는 죽기 직전까지 약 70일 정도를 보낸다.

이곳에서 그는 네덜란드 출신의 폴 가셰박사에게 치료받으며
상태를 호전시키려 노력하지만,
그의 상태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이 시기에 그가 그린 작품에서는 그의 불안감이 그대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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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뿌리 (1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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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 떼가 있는 밀밭 (1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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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7월 27일, 고흐는 권총으로 자신의 심장을 쏘았다.
그가 생을 마감한 장소는 검푸른 밀밭이었다.

이 곳에서 무려 80여 점이나 되는 그림을 그려냈지만,
결국 죽음을 선택한 고흐.
아무도 그의 자살에 대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결국 남겨진 사람들은 남겨진 그의 작품들에서 그의 생각과 철학을 찾아낼 뿐이었다.

위에서 본 [세 개의 뿌리]와 [까마귀 떼가 있는 밀밭] 중
어느 작품이 최후의 작품이었는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사람들은 그림에서 느껴지는 고흐의 고통을 느끼며
그의 죽음에 비통한 심경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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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가 삶을 떠난 뒤 6개월 후 남동생 테오 또한 고흐의 뒤를 따라 세상을 떠난다.
두 형제는 나란히 오베르에 묻히게 된다.


짧지만 강렬했던 고흐의 삶은 후세에 그 깊고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후대의 화가들, 특히 야수파, 표현주의, 추상주의 미술까지
그의 영향을 받지 않은 화가가 없을 정도였다. 


비록 고흐는 어두운 밀밭에서 세상을 떠났지만,
많은 예술 작품들과 더 나아가 우리의 삶 속에서 그는 하나의 반짝이는 별로써
그렇게 몇 백 년, 몇 천 년을 전 인류와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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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는 필자가 좋아하는 몇 안되는 서양 화가 중 한 명이다.
따라서 평소에 고흐의 그림에 익숙해져있었지만,
어떤 배경으로인해 고흐가 이러한 그림들을 그리게 되었는지
알지 못해 막연히 감상만 해왔었다.
하지만 이 전시를 다녀오고 나니,
고흐라는 한 명의 인간이자 화가에 대한 정보를
굉장히 많이 얻고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단순히 붓과 물감으로 이루어진 그림은
어쩌면 화가의 한이 서리거나 추억이 투영된 것일 수도 있다.

그림을 감상함으로써 전해지는
화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곧이 곧대로
전해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림을 통해 그 시대를 아우르고자 했던,
새로운 시도를 펼치고자 했던,
농민들의 한을 담아내고자 했던,
자신의 괴로움을 토로하고자 했던

그런 반 고흐의 마음은
백년도 넘게 지난 지금 현재 우리의 마음에
와닿아 깊숙이 자리매김 하고 있다.

예술을 통해 소통하고 교감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이야기 해보고 싶은 밤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김수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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