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한 회화 : 꿈의 집 짓기

글 입력 2014.10.26 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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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한 회화 : 꿈의 집 짓기



시간이 지나면서 생활이 부여한 단역, 조연, 주연이라는 역할들을 하면서 내가 경험한 것들이 사진 한 장으로 간직되겠거니 했다. 그러나 여전히 머릿속에서 ‘기억’은 사진이 아니라 영화처럼 돌아간다. 그리고 이 영화가 나도 모르게 상영돼서 놀라기도 하지만 나 없이는 돌아갈 수 없는 이 영화 덕택에 끝없이 바쁘게 편집되는 어제와 오늘을 가지고 있다.

놀이에 열중한 아이에게 색은 멈춘다.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집은 파랑과 보라가 뒤섞였으며, 바다는 초록과 노랑으로, 자동차는 빨강과 주황이었다. 어머니의 매서운 눈초리를 피해 나를 불러내던 단짝 친구의 발랄한 웃음은 노랑과 분홍이며, 선생님의 꾸중과 시험지는 빨강과 검정의 덩어리였다. 

그 시간들은 매끄러운 광택처럼 미끄러졌지만, 나의 ‘공간’은 손에 묻은 크레용 얼룩과, 이것과 저것을 이어붙이는 흰 무더기의 밀가루 풀에 있다. 친구가 보이지 않는 선을 따라 접어가며 만들었던 종이배는 멋있었지만 왠지 고독해 보여서 혼자타기에 좋을 것 같았다. 오히려 운동장 흙바닥에 물주전자로 만들었던 도형들처럼, 한지에 닿아 번져나가는 색 덩어리들과 손에 뭉치는 엉김이 끈끈한 인간사 같아서 종이죽을 만든다.

잘 짜여 진 안무처럼 기억이 흘러간다. 울퉁불퉁한 감정이 돌아가면 한지를 산다. 그림자 놀이를 해도 그만이고, 붓으로 그려도 좋고, 질기고 부드럽고 오래간다. 아마 내 머릿속의 영화의 필름은 한지로 만들어진 것 같다. 집모양의 판을 떠서 한지 죽을 넣고 조그만 집들을 떠내면서 기억한 장소들을 떠올리며 새로운 집을 짓는다. 아톰처럼, 마린보이처럼, 변신로봇처럼 엔돌핀 가득한 꿈을 가지고 있고, 집들을 세운다. 열두 채를 세워도 힘이 안든다. 

집안에 사람을 넣는다. 너를, 그를, 그녀를 닮은 집을 세우며, 내 작품의 마을을 스스로 돈다. 한때 나는 들어갈 수 없었으나, 너가 있는 집을, 이제 내가 웃으며 맞이하며, 한지처럼 살포시, 종이죽처럼 끈끈하게 색덩어리 속에 하나가 되는 걸 꿈꾼다.






- 전시기간: 2014.10.15~2014.11.11
- 전시장소: 희수갤러리
-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
※ 월요일은 휴무입니다.
- 입장료: 무료
- 문의: 02-737-8869  http://www.heesugallery.co.kr






[백혜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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