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살아있는 연주를 - 세르게이 말로프 내한공연 [공연]

글 입력 2024.04.3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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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본 클래식 공연이었다. 초등학생 때 피아노도 체르니100까지 꾸역꾸역 다녔던 내가 알고 간 지식은 그저 '어깨첼로'를 선보인다는 것. 어깨첼로라는 악기가 생소했던 나는, 급하게 찾아간 얕은 정보만을 가지고 엄마와 함께 예술의전당으로 향했다.

 

어깨첼로라고 불리는 악기,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violoncello da spalla)는 말 그대로 어깨로 연주하는 첼로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뿐만 아니라 클래식의 고장 서유럽에서도 지속해서 발굴 중인 이색 악기라고 한다. 보통의 첼로보다는 작고, 비올라보다 큰 사이즈의 악기를 연주하기 위해서는 스트랩을 사용해 악기를 고정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이 악기는 대부분 첼로 연주자가 아닌 바이올린 연주자가 다룬다고 한다.

 

세르게이 말로프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의 비올라, 바이올린 연주자이다. 그는 초기 바로크 음악부터 현대 음악까지, 다양한 시대를 넘나들며 본인만의 연주 세계를 구축 해나가고 있다. 4월 23일 예술의 전당에서 선보인 공연에서야말로 그의 독자적인 연주를 경험할 수 있었다. 300년이 지난 바흐의 작품을 연주하고, 전자 바이올린과 루프 스테이션으로 재해석한 세르게이 말로프의 공연. 악기 간의 경계와, 시대 간의 경계는 그가 선보인 고전의 세련됨으로 허물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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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ia Wesely

 

 

처음은 전자 바이올린이었다. 어두운 색깔의 갸름한 쉐잎을 지닌 그 악기는 세르게이 말로프와 잘 어울렸다. 처음 들어본 전자 바이올린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바이올린의 음색보다 더 날카롭고 어딘가 모르게 쓸쓸한 느낌을 주었다. 흔히 절망을 표현할 때 자주 삽입되는 곡,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 D단조>의 분위기를 잘 표현해 주었다. 본래 오르간곡으로 작곡된 이유, 그리고 전자 바이올린으로 연주하기로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달까.

 

뒤이어 연주되는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는 전자 바이올린과는 확실히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분명 바이올린과 같은 소리가 날 것이라 예상되는 연주 모습과 사이즈에도 불구하고, 첼로처럼 묵직한 소리를 내뱉는 악기가 신선했다. <모음곡 6번 D장조>의 첫 부분 prelude가 비교적 경쾌한 음형을 지녔음에도 우아하고 안정적인 분위기를 선사했는데,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가 지닌 고유한 음색과 아주 잘 어우러졌다.

 

알고보니, 이 악보는 첼로 개방현 중 최고 음인 A음보다 5음 위인 E음까지 적혀있다고 한다. 분명 첼로 모음곡이라고 명시되어 있었음에도 말이다. 이는 후대 음악가들에게 수많은 해석의 여지를 남겼고, 그 중 지기스발트 쿠이켄(sigiswald Kuiijken)을 비롯한 몇몇 음악가가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를 위한 악보가 아니냐는 가능성을 제기했다고 한다. 이 악기만을 위해 만든 것처럼 꼭 어울리는 곡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그랬을지도 모른다니. 진실은 바흐만이 알 테지만, 바흐도 이 연주를 본다면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 않을까.


공연의 후반부, 전자 바이올린과 함께 다시 등장한 세르게이 말로프는 즉흥 연주를 선보인다. 루프 스테이션 (Loop Station) 은 소리의 일부분을 녹음하고 반복 재생할 수 있는 장치이다. 자유롭게 음을 쌓아 바로바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국내에서는 팝가수 찰리푸스 (Chalie Puth) 가 곡을 만들 때 자주 사용하는 장치로 잘 알려져 있을 것이다. 그저 현대적이고 일렉트로닉한, 작곡을 도와주는 부가적인 장치라고 생각했나, 직접 눈앞에서 본 루프 스테이션 연주는 달랐다.

 

음을 쌓는 과정부터가 음악이었다. 그다음 음은 어떻게 쌓을까? 음 쌓기를 언제 멈추지? 언제 반복 재생을 풀지? 하는 설렘도 함께 했다. 나의 예측이 빗나가거나 적중했을 때의 감정은 연주에 대한 집중도를 자연스레 끌어올렸다. 현을 통해 발생하는 소리 말고, 다른 소리를 포착할 수 있었던 순간이기도 했다. 악기의 몸을 쳐서 소리를 낸 둔탁한 음은 의외로 현악기의 음색과 잘 어울렸다.

 

그중에서도 전자 바이올린의 특성을 최대로 살린 즉흥 연주가 기억에 남는다. 갈매기 울음소리를 연상케 하는 찢기는 소리와, 뱃고동이 울려 퍼지는 듯한 풍부한 소리. 어느 누가 설명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같은 공간에 똑 하고 떨어진 듯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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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본 클래식 연주는 생각보다 역동적이었다. 아무래도 '클래식'을 떠올리면 엄숙하고 정중한 분위기, 빼입은 옷차림, 귀로 듣는 연주 등이 생각나지 않는가. 내가 경험한 세르게이 말로프는 훨씬 더 살아있었다. 단순히 악기를 연주하고, 그 악기가 만들어내는 소리를 전달한다기보다는. 연주하고 있는 그 모습 자체까지 연주랄까. 악기를 따라 움직이는 그의 몸과 눈빛, 현을 키는 활의 유려한 움직임과 각도. 하나의 춤처럼 느껴지는 움직임이었다. 클래식은 귀로 듣는게 아니었구나. 눈을 절대 감으면 안되는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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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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