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름다움을 향한 질투는 나의 힘 - 금각사 [도서/문학]

글 입력 2024.05.18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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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 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의 시 <질투는 나의 힘>을 일부 발췌한 것이다. 질투의 방향성은 통상적으로 타인을 향해있다고 생각된다. 자기 자신을 질투하고 그에 대한 반성적 태도를 취한다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다. 물론 이 시에 대한 일반적 해설의 키워드로서의 '자책', '후회', '반성' 등이 과연 시인의 의도 내지 내밀한 심중과 일치하는가는 어느 정도 의문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질투를 자신의 일종의 원동력으로 취급하여 그것으로부터 하나의 일을 추동하거나 스스로에게 새로운 삶의 관념을 위한 포석을 제시하는 사람은 흔한 것 같기도 흔치 않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자신이 갖고 있는 질투를 외부 세계로 내비치는 사람은 드물다. 다시 말해 단순한 질투가 아니라 힘의 원천이 되는 질투가 하나의 행위로 옮겨지는 순간은 단언컨대 드물다.

 

미시마 유키오의 대작 <금각사>의 주인공 미조구치는 바로 그러한 행위자에 속하는 인물이며 그와 동시에 <질투는 나의 힘>의 화자와 달리 끝내 반성적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흥미롭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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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이 필요한 때에 언제나 나는 말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입에서는 말이 나오기 힘들기 때문에, 거기서 신경을 쓰다가 행동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타고난 말더듬이인 미조구치는 내부 세계와 외부 세계의 일치는 고사하고 양자 간의 소통조차 원활하게 형성하지 못하는 유형의 소년이다. 타인과의 소통에 있어서 비언어적 표현보다 말이 훨씬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미조구치가 열등감과 고독함을 바탕으로 성장했다는 사실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이해시키기 위해서 말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미조구치는 타인을 이해할 수도, 이해받을 수도 없는 인물이다. 따라서 그의 인생의 궁극적인 지향은 사람 혹은 사람과의 관계가 아닌 금각사라는 절로 낙착된다. 금각사는 말이 없다. 아무리 긴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자태를 통해 아름다움(미와 시대의 상징)만을 드러낸다.

 

하지만 지나친 아름다움은 견딜 수 없는 것이 된다. 혹은 처음부터 그러한 것이다. 추남, 말더듬이, 내성적인 성격, 부모나 친구와의 유대감 부재 등의 이유로 내부 세계와 외부 세계를 연결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비단 언어 소통의 문제만이 아니더라도 그 어떤 외부 세계와의 소통 역시 비가시적인 일종의 장애로 시작하게 되는 법이다. 금각을 미의 상징이자 동경의 대상으로 여긴 후로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에게 발견되는 모든 대립 구도와 갈등 상황은 미조구치 스스로가 자신의 삶에 미가 부재한다는 사실을 통렬하게 자각함으로써 야기된 에피소드이다. 과연 아름답지 않은 자가 아름다움을 동경하고, 그것이 끝내 질투로 비화했을 때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가.

 

우이코라는 여자의 아름다운 육체를 동경한 사춘기 소년의 마음은 그녀에게 무시와 조롱을 당한 이후 질투 내지 분개로 비화하여 그녀의 죽음을 목격하는 사건으로 이어진다. 미조구치의 성 관념을 지배하게 된 우이코의 죽음은 그 자체로 하나의 금각(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이 되어 그의 여생에서 만나게 되는 모든 여자들과의 관계에 개입하는데 이는 죽음으로부터 촉발되어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사건의 반복이다.

 

어머니와 외간 남자의 불륜을 회상하는 것, 미군과 동행하던 작부의 배를 밟은 것, 하숙집 딸과 꽃꽂이 선생이라는 두 여자와 관계를 맺으려고 할 때 금각이 그의 마음에 반복적으로 출현한 것.

 

"그 수차례의 좌절, 여자와 나 사이를 금각이 가로막으러 왔던 그 좌절은, 요번에는 더 이상 겁내지 않아도 좋다. 나는 아무것도 꿈꾸지 않았고, 여자에 의해서 인생에 참여하겠다고는 생각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여자라는 아름다움을 향한 집착, 육욕, 환상, 삶에의 의지가 모두 좌초되고 소멸한 후에 미조구치에게 남은 것은 결국 금각이라는 외부 세계이며 혹은 그 세계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우이코이다. 미조구치가 만나게 된 그 어떤 여자도 우이코를 대신할 수 없다면, 앞으로 인식하게 될 어떠한 아름다움도 금각을 대신할 수는 없다. 이미 그 시점부터 아름다움은 더는 아름답지 않게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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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는 정말 미조구치의 힘이었을까. 그것이 그를 방화라는 행위로 이끌었다고 할 수 있을까. 시 <질투는 나의 힘>에 대한 교과서적 해설을 무시하고 오롯이 문장과 어조, 행간과 시적 분위기에만 집중할 때 미조구치가 이 시를 썼다고 생각하더라도 큰 이질감 혹은 위화감이 없다고 보인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타인과 외부 세계로부터의 사랑을 갈망하다 결국 불행, 파멸,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하나의 이야기를 접했을 때 과연 그에게 왜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느냐고 질책하는 일이 타당한가에 대한 의구심이 있다.

 

그렇게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미조구치가 작중 남에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점이 자신의 유일한 긍지라는 생각을 드러냈듯이 세상에는 처음부터 그런 유형의 존재로 세상에 던져진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미는 아무에게나 몸을 맡기지만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니까. 미라는 것은 마치, 뭐라고 할까, 충치 같은 거야. 그건 혀에 닿아 신경 쓰이고 아프게 해서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지. 더 이상 아픔을 견딜 수 없게 되면 치과 의사에게 뽑아달라고 하지."

 

미조구치가 금각사 방화라는 결말로 치닫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이러한 미의 속성에 있다. 누구나 미를 인식할 수는 있으나 그것을 소유할 수는 없고, 그것을 소유하는 방식으로 무언가를 행위한다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기실 소유라는 어휘도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미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것. 그것의 존재 양식에 맞춰서 나의 존재를 이끌어가는 것. 바로 이것이 미조구치가 끝내 의욕했으나 이루지 못한 금각사에 대한 질투의 근원이며, 또 다른 사랑이다.

 

사랑을 하고자 하는 자는 그것이 수차례 내재적, 존재적 불능을 인식함으로 말미암아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암시하고, 나아가 진정한 사랑이란 불가능한 것임을 깨닫는 순간을 맞는다. 한 여자를 사랑할 수는 있으되, 그 여자의 미를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그럼에도 나는 미를 향해 나아간다. 질투와 두려움, 동경과 배반, 육욕과 미완성을 양손에 파지하고 미가 나를 부르는 방향으로 걸어나간다. 어느 날에는 벽에 걸린 미조구치의 자화상을 발견하고 나도 모르게 영탄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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