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모든 아이가 마틸다를 만났으면 좋겠다 - 뮤지컬 마틸다 [공연]

글 입력 2024.04.11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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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늘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불리는 이름만 다를 뿐, 폭력의 기저에 놓인 타인을 짓밟고, 통제하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자 하는 인간의 마음은 모두 똑같다.


어른과 아이의 관계에서, 누군가를 통제하고 억압하려는 인간의 폭력적인 마음은 ‘아이가 미숙하고 잘못해서’, ‘교육 목적으로’ 등 온갖 말들로 포장되고 미화된다. 매일 자신을 짓밟는 어른들의 폭력에 주눅들고, 눈치 보며 자기 스스로를 지켜내야만 했던 아이들의 시간을 생각하면 슬퍼진다. 하지만 아이들은 폭력에 쉽게 무너져 내리는, 무력한 존재는 아니다. 자신을 함부로 대할 수 있다고 믿는 어른들의 말과 행동, 그 속에서도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저버리지 않았던 아이들의 강인함을 본다.


마틸다는 그런 아이다. 부모의 학대 속에서도, 자신을 지켜내고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았던 강인한 아이. 하지만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며 다져 온 아이의 강인함을 보고 있노라면, 쓰라리듯 아프다. 마틸다는 이제 겨우 초등학교에 입학한 어린아이니까.

 

 

 

어른이 없는 아이는 너무 빨리 어른으로 자란다



로얄드 달의 소설 <마틸다>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마틸다>. 첫 넘버는 모든 아이가 기적이라고 노래하는 Miracle이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안아주고, 예뻐하며, 아이의 모습을 담으려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 뛰어다닌다. 그리고 아이들은 당당하게 노래한다. 우리 엄마, 아빠는 내가 ‘기적’이라고 말한다고. 나는 공주이고, 왕자이며 특별한 존재라고. 아이들은 자신이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한,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마틸다 미라클.jpg

 

 

그리고 그사이를 비집고 한 아이가 등장한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환영받지 못했던 마틸다다. 마틸다는 노래한다.


우리 엄마는 내가 소름 끼친대. 우리 아빠는 나만 보면 토가 쏠린대. 나는 싸가지가 없대. 나 같은 건 공장에서 잘못 만들어진 불량품이래.

 

 

마틸다 등장.jpg

 

 

극 중 마틸다의 부모는 우스꽝스럽게 표현되지만, 그들은 마틸다에게 심한 정서적, 물리적 폭력과 학대를 저지른다. 마틸다는 자기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며,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극 중 마틸다는 어른들도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어려운 책을 쌓아두고 읽는 천재로 등장한다. 마틸다는 독서를 사랑하고, 멋진 이야기를 지어 동네 도서관 사서 선생님에게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어릴 적 마틸다를 봤을 땐 그저 총명한 아이라고만 여겼다. 어른이 되어 마틸다를 마주했을 땐, 독서가 마틸다의 탈출구이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아이에게 부모(혹은 보호자)는 우주다. 그러한 부모가 부조리한 어른일 때, 자신을 보호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고 자신을 증오하며 깔아뭉개려 할 때, 아이는 너무나 큰 혼란을 느끼고, 상처받는다. 아이들이 부모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지 않기 위해선, 자신을 부모의 학대로부터 지켜내기 위해선, 부모가 내 세상의 전부가 아님을 알려주는 수많은 것들을 통해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내야 한다. 마틸다는 책을 읽으면서, 다양한 세상과 사람, 관계를 알려주는 여러 이야기들을 읽어가며 자신의 세상을 정립했다. 그리고 끝내, 자신을 지켰다.

 

 

책읽는 마틸다.jpg

 

 

마틸다는 또래보다 월등히 어른스러운 아이로 묘사된다. 마틸다가 처음 학교에 입학했을 때, 그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랐다. 여느 아이들처럼 투정을 부리거나 울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누군가를 찾지 않았다. 그의 가정환경을 생각하면 당연하다. 나의 마음을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고, 나의 어려움을 누군가 대신 해결해 주길 바라는 건, 아이의 마음이다. 그러나 마틸다에겐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고, 이해해 주고, 자신의 어려움을 해결해 줄 어른이 없었다. 부모에게 투정도, 응석도 부려보며 기대고 의지할 수 없었다. 아이의 투정을 온전히 받아주고, 아이를 조건 없이 사랑해 줄 수 있는 어른이 없다면 아이는 아이로 남을 수가 없다. 어른이 되어 하루빨리 자신과 부모를 분리하고,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던 자기 삶의 문제를 마주하고, 어려움을 스스로 해결해 가면서 자신을 지켜내야만 한다. 삶에서 어른을 만날 수 없던 아이는, 그 자신이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버린다.

 

 

 

어른과 아이는 친구가 될 수 있다



아이들을 무척이나 싫어하고, 아이들은 무조건 통제하고 길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트런치볼 교장. 그렇게 마틸다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며 멍청한 부모에 이어, 자신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못된 어른을 한 명 더 만나게 된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총명함과 사랑스러움을 있는 그대로 알아봐 주는 진짜 어른, 허니 선생님과 인연을 맺는다.


허니 선생님 역시 마틸다처럼, 과거 자신의 보호자에게 심한 학대를 받았다. 그는 여전히 매서운 트런치볼 교장에게 말 한마디도 제대로 못 하는 겁많은 어른이다. 그러나 허니 선생님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데까지 마틸다를 진심으로 위하고, 보호한다. 마틸다 역시 허니 선생님을 늘 위하고, 도우며 허니 선생님의 용기를 북돋는다.


그렇게 마틸다와 허니 선생님은 서로가 마주한 놀랍도록 비슷한 학대의 상황을 공유하며, 서로의 용기가 되어준다. 완전하고 성숙한 어른이 학대받는 무력한 아이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하고 겁많은 어른이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아이에게 손을 내밀고, 어린 시절 자신보다 강인한 아이의 모습을 보며 새롭게 용기를 얻는다. 그렇게 둘은 서로를 알아보고, 위로하며 ‘친구’가 된다. 지금까지 마틸다가 맺어 온 어른과의 관계와 달리, 허니 선생님과의 관계는 수평적이며 호혜적이다.


부조리한 부모와 교장에게 ‘그건 옳지 않다!’고 당당히 외치고,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모순적인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았던 어른스러운 마틸다 역시 허니 선생님과의 관계에선 온전히 아이가 될 수 있었다. 자기를 처음으로 알아봐 주고, 이해해 준 허니 선생님의 사소한 말 한마디에, 마틸다는 별안간 허니 선생님을 있는 힘껏 꽉 껴안는다. 어린아이처럼. 매번 학대 사실을 숨기며 어른스럽게 굴던 마틸다에게도 따뜻한 관심과 사랑이, 의지할 어른이 필요했다. 자신을 향한 조건 없는 따스한 사랑을 처음으로 받았을 마틸다는 허니 선생님에게 다정한 포옹을 건넨다. 무한한 감사함을 느끼면서.

 

 

마틸다와 허니선생님.jpg

 

 

 

틀려먹은 세상, 뒤틀려 먹은 애들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는 트런치볼 교장의 횡포에 마틸다와 친구들은 다함께 연대하며 그를 쫓아낸다. 이후 아이들은 부조리한 어른에 맞서 싸우고, 끝내 이긴 자신들의 모습에 환호하며 ‘자유로운 영혼을 위해’ 노래한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넘버, Revolting Children이다.


‘틀려먹은 세상의, 뒤틀려 먹은 애들’은 ‘눈치도 없고, 지치지도 않는’다. 그들은 당당하게 외친다. 틀린 틀은 비틀어버릴 거라고. 어른들이 정해놓은 그 틀이 잘못됐다면 그것에 순응하지 않고 저항하겠다고. 파워풀한 군무가 눈에 띄는 이 넘버를 보고 있으면, 부조리한 어른과 세상을 향한 아이들의 반항(revolt)에 이상하게도 어른인 내가 용기를 얻는다.

 

 

마틸다 revolting children.jpg


 

어릴 적 소설 마틸다를 읽었을 때 들었던 의문은 단 하나였다. 어떻게 어른이 아이보다 멍청하고 잘못할 수 있지? 그 시절 나에게 어른은 절대적으로 옳은 존재였고, 아이는 늘 어른보다 부족하기에 어른에게 복종해야 했다. 어른들의 말에 잘못이나 거짓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른의 말에 ‘대들지 않고’, 거역하지 않고, 잘 따르는 것이 착한 아이의 미덕이었다. 나는 착한 아이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안다. 멍청하고 미숙한 어른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를. 그 어른은 부모나 보호자가 될 수도, 선생님이 될 수도 있다. 뮤지컬 <마틸다>는 어른의 말에 무조건 따르는 아이가 되지 말 것을, 차라리 잘못된 어른에게 저항하는 반항아가 되라고 말한다. 그래도 괜찮으니까. 뮤지컬 <마틸다>는 수많은 어린이에게 전한다. 우리 어린이들은 잘못된 걸 잘못됐다고 당당히 이야기하고, 그걸 변화시킬 수 있을 만큼 강한 존재들이라고. 


나의 어린 시절에도 뮤지컬 <마틸다>가 있었으면, <마틸다> 속 메시지를 전해주었던 어른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잘못하지도 않은 일로 잘못을 빌어야 했고, 매일같이 ‘감히 네가’, ‘어린 것이’, ‘쪼그만 한 게’라는 말로 나의 무력함과 쓸모없음을 끊임없이 확인받아야 했던 그 순간들에, 어른이 잘못됐을 수 있다는걸, 그리고 아이인 내가 부조리한 어른을 이겨낼 만큼 강인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마틸다가 있었더라면.


<마틸다> 두 번째 관람 때였을까, 트런치볼 교장의 악행에 한 어린이 관객이 참다못해 외쳤다. 


“어린이의 힘을 보여줘!” 


아이들을 좁은 방에 가두고 학대하며, 비겁하게 구는 트런치볼 교장의 모습에 분개해 수많은 관객들 속에서 어린이의 힘을 보여달라고 당당히 외친 관객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그의 어린 시절에 뮤지컬 <마틸다>가 있음에 감사하다. 그가 앞으로 마주할 수많은 부조리에, 자신을 위력으로 짓밟고자 하는 수많은 어른들의 적의에 그렇게 소리칠 수 있기를, 그리고 이 세상에 모든 어린이가 그럴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한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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