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람과 사랑 그리고 삶을 잃어버린 [문화 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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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대한민국은 아주 큰 위기에 봉착하고 있다. 사실 단순히 '위기'라는 워딩만으로 그 심각성을 다룰 수 없을 정도인데, 우리는 아마 멸종될지도 모른다. 아니, 정확히는 멸종된다. 2023년 기준 한국의 출산율은 0.72명. 이는 200명이 한 세대 반 만에 25명으로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도 안 된다. 우리는 이미 늦었고, 손 쓸 수 없을 정도의 인구 감소가 일어나고 있다.
요즘 젊은이들이 연애를 안 한다-에 젊은이를 맡고 있는 나는. 무엇보다 이 사태에 감정적으로 동요하지만, 또 동시에 매우 차갑다. 그리고 겁이 많은 나는 아주 확대하여 바라본다. 우리는 관계를 제대로 맺고 살아갈 수 없는 종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출산에 이르는 관계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 말이다. 타인과 함께 사는 삶에 대한 행복을 잃어버릴지도 모르겠다는 것.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이 상상은 사실 아주 터무니없지는 않다.
실제 현 20대의 연애율은 눈을 의심케 하는 수치를 기록했는데, 통계청에 따르면 20~24세의 '이성 교제 상대가 없음'의 응답률은 78.2%이다. 예상하지 못한 수치임은 틀림없지만, 그렇게까지 놀랍지는 않았던 것이. 그 20~24세의 중간에 내가 자리 잡고 있으며, 그 78% 안에 내가 속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부에서 보았을 때는 확실히 무언가 이상해 보이긴 했나 보다. 연애를 하지 않는 나를 걱정하거나 다소 의아하게 생각하는 엄마 아빠 그리고 어른들이 있었으니 말이다.
내가 연애를 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힘이 없어서이다.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귀찮아서이다. 일주일에 최소 하루 정도의 시간을 내가 누군가를 위해 내어주어야 한다는 것 자체의 리스크가 너무 크다. 누군가를 알아가고, 나의 일상을 그 사람과 맞추어가고, 시간과 돈을 소비해야 한다는 것. 너무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지 않은가. 내 주변의 연애하지 않는 친구들에게 물어보아도 이러한 이유가 대다수이다. 한 마디로, 적극적으로 사람을 만나는 그 과정 자체가 귀찮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사실 우리는 단순히 '아기를 낳지 않는 것'의 문제를 마주한 것이 아니다. 아주 뿌리 깊은 곳에서부터 파생된 어떠한 불안감 혹은 비슷한 감정은. 결국 종족 번식이라는 인간의 본능을 거스르도록 하고 있으며, 이 종족 번식에 대한 거부는 점점 내려와 결국 연인이라는 친밀한 형태의 관계를 맺는 것을 피로해하는 지경이 이른 것이다. '아니, 도대체 왜?'라는 질문에 이.. 자연스레 튀어나는 '사는 게 힘드니까'라는 답은 잠시 넣어두고 생각해 보자면. 대한민국이 더욱더 살기 힘든 나라였을 때에도, 아기는 태어났다. 심지어 산아 제한 정책을 펼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보다 더 적합한 대답은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으니까'가 될 수 있겠다.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은. 인스타그램과 유튜브가 지배하는 세상을 의미한다. 이미 누군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너무 필요 이상으로 가까워져 있다. 24시간 365일 내내 타인과 연결되어 있는 삶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피로하다. 자신의 일상과 삶을 실시간으로 전시할 수 있는 공간. 셀프 브랜딩의 세상 속에서 다양한 장점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감히 이 지나친 연결이 우리 모두를 망치고 있다고 말한다. 타인과 나를 끊임없이 파편화하여 바라보고, 정보화하여 처리하는 습관이 몸에 자연스레 밴다. 행복만을 전시하는 세상 속에서 행복을 갈구하고, 높아질 대로 높아진 행복의 기준은 내려오질 않고, 자신만의 삶에 집중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정말 문자 그대로, '쏟아지고 있는' 연애 프로그램들도 한몫한다. 굳이 직접 연애하지 않더라도, 유사한 감정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 얻을 수 있다. 하트 시그널, 나는 솔로, 환승 연애, 솔로 지옥... 연애의 과정과 그 감정을 직접 방영하는 콘텐츠들은 현재 그 정점을 찍고 있다. 방송인이 아닌 일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이 프로그램들은 시청자로 하여금 더욱 몰입할 수 있게 만든다. 특히, 전 애인이 지켜보는 공간에서 새로운 이성을 만나도록 하는 방식은 더 이상 일반적인 만남에서 감흥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자극적이다. 유사 연애 감정을 극대화하는 아이돌 산업도 무시할 수 없겠다. 이처럼 성적인 매력과 자극을 쉽고 빠르게 얻을 수 있는 환경이. 진짜 사람을 만나서 얻어내는 감정에 대한 가성비를 감소시켰다고나 할까.
이처럼 우리는 기본적으로 '타인'이라는 자극에 취약해져 있다. 고개를 어떻게 돌려보아도 나에게 주입되는 타인의 삶들. 비집고 들어오는 그들을 자각하지 못한 채 조금씩 밀어내고 있는 우리들. 그렇다면 애초에 그들이 힘겹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타인의 삶은 왜 우리에게 자극으로 다가오는 것인가.
사실 정확히는 그들이 자극으로 다가온다기 보다는, 우리가 그들을 자극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당장 대학교 익명 커뮤니티를 접속해 보자. 어떠한 주제이든 간에 남자와 여자로 편 갈라 싸우는 사람들, 수시와 정시 중 누가 더 대단한지 목소리 높이는 사람들, 문과와 이과 그리고 여러 직업의 순위를 매기고 평가하는 사람들. 어떻게든 정답과 오답을 나누고, 대립 구도를 만들지 못해 안달 난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꼭 갈등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그룹화시키고 일반화시키는 현상도 만연하다. 개념 없고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젊은이들을 ‘MZ 세대’ 라고 묶어서 부르거나, 상대방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고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너 T 야?’ 라고 말하는 등 우리가 인지하고 있지 못했지만 분명한 일반화가 실생활 속에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도저히 부끄러울 지경인 이 사태에 대해 나는, 교육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가 없다. 갑자기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는 사람을 더 이상 사람으로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고, 나는 그 원인을 감히 교육 체계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과도한 경쟁 사회와 이분법적인 교육 방식. 성공과 실패를 단언하고, 정답과 오답, 좋은 것과 나쁜 것, 옳은 것과 틀린 것을 끊임없이 구분해 내는 연습을 해온 우리들은. 그 모든 것들이 혼재되어 얼렁뚱땅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개체. 그것을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연습이 부족하다. 사람을 입체적으로, 종합적으로 그리고 각자의 주관으로 바라보는 과정. 그것이 생략되어 있는 딱딱한 교육 시스템 속에서 우리는 결국 연인뿐만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진짜 방식을 잃어버린 걸지도 모른다.
정부에서 낮은 출산율에 제시하는 육아 휴직 관련 정책들, 자가 마련이나 청년 대출 관련 내용을 보다 보면.. 도통 답답하다. 그런 것들이 필요하지 않고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부가적인 문제들이다. 이미 말라버린 사람에 대한 감정과 의지. 이는 그런 단편적인 방안들로 단순히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사람을 잃어버린 현시대는 비통하기 짝이 없다. 우리조차 그 감정의 정확한 시작을 알지 못하게 된 것은... 이미 너무 오래전에 사랑의 본질을 잃어버린 채 달려왔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교육하고 배우고 지켜봐야 할 것은 1등급도, 인서울도, 대기업도 아닌... 그저 사랑이다. 중첩성에서 비롯되는 사랑. 사랑은 수많은 모순과 교집합에서 시작한다. 모든 것이 닮아있으며, 또 동시에 다르다는 것을 인지한다면. 우리는 사람과 사랑, 그리고 삶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사람을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순간이 올 것이라 단단히 믿는다.
[한정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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