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검은 터널 끝에서 기다리는 것은 - 검은 소년 [영화]

끝이 보이지 않는 암흑 속을 홀로 걷는 소년
글 입력 2024.01.31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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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 영화 과정 15기 출신 서정원 감독의 첫 번째 장편 [검은 소년]이 오는 2월 7일 개봉한다. [검은 소년]은 1997년 외환위기 속 한국을 배경으로, 고등학교 2학년인 ‘훈’의 성장통을 담았다.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마음 편히 기댈 곳이 없는 훈이 불안한 현실 속에서 방황하면서 답을 찾아 나가는 과정을 담은 [검은 소년]은 외로우면서도 혼란스러운 훈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검은 소년]은 서정원 감독이 직접 쓰고 연출한 그의 장편 데뷔작이다. 영화 [리바운드],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 등 다양한 작품 속에서 탄탄한 연기력을 보여준 배우 안지호가 주인공 ‘훈’ 역할을 맡아 열연했다. 또한, 그의 어머니 ‘소연’ 역으로는 시리즈 [사냥개들], [사랑의 이해] 등에서 활약한 배우 윤유선이 함께 한다. 영화 [서울의 봄], 드라마 [세 번째 결혼] 등 출연하는 작품마다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배우 안내상이 훈의 아버지 ‘무진’ 역을 열연하며 두 배우와 호흡을 맞췄다. 그 외에도 드라마 [청춘시대] 등에서 개성을 보여준 배우 신세휘 등 실력 있는 배우들이 출연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다.


알코올 중독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피해 집을 나간 어머니. 학교에서는 폭력적인 동급생이 자꾸만 시비를 걸고 하나뿐인 친구는 거리를 둔다. 문학 동아리에서 책을 읽고 작은 수첩 빼곡히 이야기를 채워나가며 숨 쉴 구멍을 찾아왔지만, 이젠 그마저도 녹록지 않다. 검게 펼쳐져 끝이 없는 것 같은 터널 속을 걷는 훈. 과연 그 끝에는 뭐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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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소년]은 상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그 나이의 미성숙한 소년들의 방황과 혼돈뿐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감정선은 정말 현실적이라 숨이 턱턱 막혀온다. 또한, 영화의 연출이 꽤나 어둡고 무섭게 진행되면서 관객의 답답함과 두려움을 고조시킨다.


이 지독한 현실의 무게는 야속하게도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간다. 그러니 영화를 감상할 때, 주인공이 훈이 외에도 다른 등장인물들의 감정에도 주목해 보라. 그렇게 한다면 보다 깊이 영화에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가장 주목하기 쉬운 등장인물은 단연 주인공 훈이다.


훈은 필사적이다.


연결되지 않는 전화기를 오래 붙들고 있는 것도, 한두 개쯤 잃어도 그만인 동전을 돌려받는 것도, 돌아오지 않을 엄마를 기다리는 것도, 제목 모를 어떤 책을 찾는 것도 전부 필사적이다. 그건 발버둥이다. 계속해서 가라앉는 것 같은 이 현실에서 조금이라도 떠오르기 위한 필사적인 발버둥이다.


그렇지만 그 발버둥이 현실을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건 무엇보다도 훈이 가장 잘 안다. 그렇기에 훈은 나름대로 현실과 타협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어린 소년은 가끔씩 터져 나오는 감정의 홍수를 감당할 수 없다. 그 속에서 잠겨 죽고 싶지 않아서 글을 써보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는 것 같은데 제가 감당해야 할 현실은 너무나도 무겁기만 하다. 훈은 알코올 중독이긴 하지만 위태로워 보이는 아빠를 홀로 둘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은 마음 깊은 곳에서 크기를 키워 가고 있다. 집을 나갈 수밖에 없었던 엄마를 이해하지만, 그만큼 엄마가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다. 제게 아무렇지 않게 커터 칼을 들이미는 동급생은 자꾸만 신경을 긁는다. 왜 아무도 훈을 가만두지 않는 걸까?


온전히 훈에게 공감해 줄 수는 없다. 훈은 아직 미성숙하기에.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훈이 더욱 안타깝다. 훈에게는 선택을 강요하는 어른이 아니라, 어두운 길을 안내해줄 어른이다. 그 누구도 훈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묻지 않는다. 누구나 겪는 성장통이라고 해서 그 아픔이 모두 당연한 것은 아니다. 아프지 않을 수 있다면 아프지 않는 게 가장 최선이니까. 그저 한 명의 어른으로서 훈이 더 이상 방황하지 않기만을, 헌책방 같은 아지트가 그에게 더 생기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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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이 헤매는 어둠의 가장 큰 원인은 분명히 부모님에게 있지만, 그렇다고 그의 어머니 소연을 원망할 수는 없다. 구체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소연이 집을 떠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훈의 아빠인 무진의 폭력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유추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소연이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선택은 집을 떠나는 것이었을 테다.


소연은 몇 번이나 훈을 데리러 온다. 그러나 아까도 말했듯이 훈은 아빠를 혼자 두고 떠날 수 없다. 그런 훈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집 근처로 이사까지 오지만, 결국 무진에게 발각되어 다시 떠날 수밖에 없다. 왜인지 아들은 선뜻 저를 따라오지 못한다. 그 기저에 아빠에 대한 연민이 있다는 것을 소연도 모르는 바는 아닐 테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집에 들어갈 수는 없다. 소연은 사람답게 살기를 원했다. 아빠를 놓지 못하는 훈을 위해 다시 집에 돌아간다면 이도 저도 되지 않을 뿐이다. 소연은 어른이지만 여전히 성장하는 중이다.


이 모든 비극의 원흉인 무진은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술을 마시지 않을 때는 가정의 화목함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는 아버지처럼 보이지만, 술만 마시면 그의 이성은 점차 휘발된다. 뒤틀린 집착과 변하지 않는 모습은 계속해서 소연과 훈의 발목을 잡는다. 소연은 독하게 결심하고 그에게서 벗어났지만, 신발 끈이 풀리는 것도 모른 채 저를 찾아다닌 아빠를 보며 훈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무진은 어른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장하지 못했다.


왜 언제나 의미 없는 부채감과 죄책감은 온전히 남겨진 이들의 몫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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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의 친구들에게로 시선을 돌리면, 방황하고 있는 또 다른 청춘이 보인다.


문학 동아리에서 만난 소녀 연희는 말한다. 세상에는 이상한 일이 너무도 많이 일어나고 있다고. 하지만 저는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어서 반항하고 싶다고. 그래서 연희는 강해지기 위해 책을 읽고,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담벼락에 낙서를 한다. 좋은 가방에 비싼 물건을 가득 들고 다니는 연희에게도 끓어오르는 분노가 있다.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 스트레스를 풀고 있는 것 같지만, 연희 역시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훈의 친구 병태도 마찬가지다. IMF로 인한 경제적 위기와 학교 내 괴롭힘으로 인해 고통받는 병태의 눈은 이제 더 이상 해맑게 웃고 있지 않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빛은 단단하게 변해 있어 그동안 병태가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을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너도 꼭 살아남으라며 매몰차게 훈의 손을 밀어내는 병태는 분명 위태롭다.


벽에 페인트로 낙서를 하고 땅에 침을 뱉는 소녀. 친구가 자신보다 불행한 것 같다는 사실을 위안 삼았다는 소년.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함부로 손가락질 할 수 없다. 그들은 지금 나름대로 정답을 찾아 헤매는 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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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우리는 모두 성장통을 겪었고, 앞으로도 겪을지 모른다. [검은 소년] 속 등장인물들 역시 계속해서 고통을 품고 살아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결말에 마주하든, 그들의 성장은 어떠한 결말에 다다를 것이며 각자만의 정답을 찾아낼 것이다.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 그 결말을 마주했을 때 그들이 웃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그랬으면 좋겠다.


[검은 소년]은 [파수꾼], [죄 많은 소녀] 등 수많은 명작과 재능 있는 감독과 배우를 탄생시킨 한국영화아카데미가 당당하게 선보이는 2024년 첫 번째 작품이다. 라이징 스타 안지호의 섬세한 연기와 베테랑 배우 안내상, 윤유선의 숙련된 연기로 완성한 [검은 소년]은 분명 짙은 여운을 남길 것이다.

 

 

*다만 영화 내에서 묘사되는 알코올 중독에 의한 가정폭력, 학교폭력, 날붙이에 의한 자해 등의 요소로 인하여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을 수 있으니 이에 유의하여 감상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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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시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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