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내 발목을 잘라줘 - 낮은 칼바람

데미안을 읽으며 연극을 기다렸다
글 입력 2023.11.26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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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연극, 낮은 칼바람을 보러 간다. 근대 만주를 배경으로 하는 논픽션극이다. 한편 나를 기다리고 있는 문화초대가 퍽 많다. 극장으로 가는 길, 써내야 할 리뷰와 써나가야 할 에세이를 생각하면 어딘가 벅차기도 해. 더구나 내일은 사업부 세미나에서 23년 업무 실적 발표가 예정되어 있는 참이었다. 바쁘지, 마음도 어딘가 벅차고, 괜스레 긴장되고 불편해. 허나 만주에 대한 나의 호기심과 알 수 없는 그리움이란, 그 정도로는 지극했다. 딱 그만큼은 반증되는 셈이지. 


나는 겨울이 참 좋아. 계절 자체가 온통 고독을 권하는 듯하거든. 혈액이 싸게 굳어지는 탓에, 심장도 느리게 뛰지. 그럼 차분해져, 그래 그게 어쩜 내가 겨울을 사랑하는 까닭이지. 너무 차분해지는 탓에, 나는 동면처럼 먹먹하고 어딘가 고요하게 응어리지는 기분이야. 반면에 코를 찌르는 한기에 의식은 쨍해지지. 나는 그런 냉랭하고도 고요한 상태를 사랑해. 만주에 대한 나의 수상한 사랑도 어쩌면 닮을런가. 가본 적 없지만, 그 시대와 배경에 흐르는 차가움을 나는 사랑한다. 


나는 언제나처럼, 너무 일찍 찾은 객석에 앉아 데미안을 읽고 있었다. 아직 사람은 얼마 없다, 나의 반대편에 앉아있는 여인 하나를 제하고는. 그녀는 학교 점퍼를 입고 있다. 그리운 나의 모교 이름이 적혀 있었다. 잠깐 책을 펼쳐놓고는 멍하니, 학교 생각을 했다. 나는 학교를 생각하면 겨울 어드매 피우던 담배를 떠올린다. 날카롭고 상쾌한 멘솔의 향기, 겨울바람이 코를 박박 씻겨주어 빨갛고 얼얼하니 아파오는, 그 상쾌한 겨울을 생각한다. 그건 차갑지만, 너무도 그립고 그리운 기억이다.


객석에 앉아, 하릴없는 나는 데미안을 읽고 있었다. 싱클레어가 김나지움에 들어가 고독과 방황과 불안을 누리는 장면. 어딘가 깊숙이 와닿았다. 그 즈음 사람들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나는 부러 치어다보지 않는다. 혼자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데미안을 읽는 건 유쾌하다. 그의 어리고 순수한 방황, 불안의 쏟아져버리는 고해가 더없이 깊어오는 까닭에. 사람들은 채워지기 시작하고, 언제나 사람은 말소리와 함께 오고, 웅성거리는 소리들로 금방 지하가 가득 차버렸다. 나는 어딘가 조금 아쉬웠다. 마치 글을 읽어볼 만한 좋은 자리 하나를 잃어버린 느낌에.


좀체 내 옆의 자리가 채워지지 않았다. 앞뒤, 그리고 옆쪽 멀찍이 사람이 채워진다. 자리는 좁았다. 나는 너무 넓은 자리를 혼자 차지하는, 어색한 호사를 누렸다. 자리를 바투 당겨 앉았다. 그 호사가 괜히 겸연쩍었기에. 계속해서 내 옆엔 아무도 오지 않았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데미안을, 계속해서 읽었다. 다리를 꼬고 데미안을 읽었다. 그리고 나는, 다른 이의 눈에 그려지는 나의 포-즈에 대해 잠깐 생각한다. 어쩌면 내가 의식 없이 풍기는 뉘앙스가 곁자리를 저어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런가. 나로서는 알 수 없지. 그래서 나는 그저 데미안을 읽었다. 그건 어딘가 겨울 같은 느낌이었다.

 

해는 빨리 졌다. 더구나 지하로 내려오는 극장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작은 불빛에 의지해 책을 읽는다. 그때 대목은 다음을 지나치고 있었다. "나는 우수에 잠겨 세상을 경멸하고 나 자신을 조소하면서 어떤 기쁨을 맛보았다." 우리의 오만한 싱클레어, 결국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고독형 刑에 처해졌다는군. 고독은 죄목과도 같아, 그건 스스로 선고할 수 있는 것으로써 맨 처음 오지는 않거든. 그것은 주어지는 것이고 내몰리는 것. 세상을 경멸하는 사람이라면 응당 그러해야지, 그렇게 되어야지. 경멸하는 자 우리는 발자국 하나 없이 사방 뽀얀 눈으로 덮인, 고독한 겨울 대지로 내몰린다. 그래, 어쩌면 만주 같은. 거기 이르러 치기 어린 심장이 뿜어대던 독소 같은 경멸과 오만을 차디찬 바람 앞에 스러뜨려야 해. 우리가 아무리, 지극히 개인적으로나마 세상으로부터 경멸할만한 것들을 떠받았다 하더라도, 살을 에는 찬 바람 앞에 고집스레 버틸 수나 있을 것이냐.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따뜻한 방 안에서 생각하는 경멸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니야. 포시라운 경멸이야말로 가장 경멸스러운 것이지, 생의 민가죽을 꿰고 에는 가혹한 바람 앞에 서자마자 비굴하게 스러지는 것. 그러니 싱클레어, 우리는 경멸보다 더 커다란 경멸을 가져야 해. 겨울이면 스러지는 비굴한 것에 대함, 자기 자신의 비루함에 대한 경멸을. 싱클레어는 고독과 술과 유흥에 젖어 방황한다. "나는 악명 높고 무모한 술집 귀신이 되었다. … 그 세계에서 멋진 녀석으로 통하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성적 쾌락에 빠져 자신을 망가뜨렸다." 네 심장 깊이 겨울이 들이차야 하겠구나, 나는 어딘가 측은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생각했다. 암전. 극이 시작한다. 


*


이 극을 무어라 불러야 마땅할까. 내게는 딱 만주 같은, 그런 연극이었다. 무대에는 하얀 것이라곤 하나 없었으나, 배우들의 몸짓을 통해 내 심상 속에는 온통 새하얀 눈밭과 칼바람이 펼친다. 멀리서 보면 아름답지만, 곁에 있을 때는 고통스럽기 그지없는 것. 아주 차가운, 현실 같은 것. 31년 만주에는 늘겨울이 있었고, 칼바람이 있었고, 되놈에게 빌붙던 조선 놈이 있었고, 왜놈에게 붙어먹는 조선 놈 밀정이 있었고, 조선 놈에게 빌어먹는 또 다른 조선 종놈이 있었다. 얼어붙은 땅에 조선 놈의 것은 없었다. 그리고 약하고 긍휼한 자에게, 땅과 지붕과 나라 없는 자에게 바람은 더욱 가혹해지는 법이지, 늘 그래 왔듯이. 


말해 무엇하겠어, 당대의 만주라며는야. 그 얼어붙은 땅에 무엇 먹을 것이나마 날 게라고, 되놈과 왜놈과 조선 놈들이 답지 않게 어우러 차 있더라지. 고향으로부터 쫓겨들어온 사람들의 겪게 될 핍박쯤이야, 내가 지리하게 묘사하지 않더라도 누구의 가슴속에나 기억처럼 있겠다. 극의 서사를 설명하려 드는 것은 아무래도 그만두겠어. 그래 봤자 묘사할 수 없을 것이고 묘사한들 아무런 생생함도 가질 수 없을 바에는. 이 먹먹하고도 역력한 기억 앞에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어, 다만 조금 숙연해지고 묵념하는 것이 아니고서야. 이런 것들은 그저 보여주는 수밖에 없어, 이 극이 내게 했듯이. 그건 내 힘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지. 


남의 것으로나마 보습 데일 땅 마지기 없는 사람들과 폭군과 탐관의 것으로나마 불러볼 조국이 없는 사람, 마침내는 남의 나라로 밀려 나간 사람들. 그들에게 내리는 하얀 서리 같은 추위와 냉혹한 현실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나 발목을 자르는 낮은 칼바람을 빗겨낸 것은 강한 사람이 아니라 낮은 사람이었다. 비굴한 사람이었고 두려워하는 사람이었고 약한 사람이었다. 엎드려 발길질을 당하던, 종놈 아이였다. 전부 다 흉흉한 눈보라 소리와 함께 잘려나갔어. 되놈 옷을 입은 조선 놈도, 포수 놈도, 밀정도, 조선족 사내도. 오직 왜놈과 조선 아이만 살아남았지. 왜놈은 말없이 떠났고 아이는 주인 없는 여관의 재물을 들쳐 안고 고향인 영남 지방으로 내려갈 모양인가 봐, 제 또래쯤 되는 여자아이와 함께. 그들은 어떻게 살아나갈까. 눈먼 재물이 생기면 눈먼 적도 많아지는 법. 그 어리고 착한 것들이 혹여 강도라도 당하진 않을지, 죽임을 당하진 않을지, 저 어수룩한 모습을 보면 걱정만 무성히 차오르지만 글쎄, 그것도 이미 답이 정해진 것 같군. 작가의 외조부가 겪은 일이라잖아? 


본 극은 작가의 외조부가 겪은 실제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논픽션극이다. 그래서 극에는 별다른 서스펜스가 없어. 현실처럼 차갑고, 현실처럼 지엄했지. 극적 카타르시스를 위한 고조, 위기와 절정의 인위 구조가 없다. 먹먹하고 차가운 현실만이 있을 따름. 그게 너무 좋았어. 정의구현이나 권선징악을 위해 서사와 구조를 고쳐들지 아니했다는 것. 그럴수록 내게 깊이 스며들지. 현실보다 냉엄한 리얼리티가 어디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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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목을 자르는 낮은 칼바람을 빗겨낸 것은 오만하게 서 있는 사람이 아니라 바닥에 엎진 채 낮아진 사람이었다. 그건 나와, 아마 극의 내내 곁을 함께한 싱클레어에게 울림을 준다. 우리가 경멸하는 게 무엇이지, 다만 우리 자신을 지나치게 높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서는? 그런 건 모조리 칼바람에 잘려나가게 마련이지. 냉엄한 현실이 그렇게 할 것이다.  

 

우리가 경멸하는 게 무엇이지? 그건 추위를 모르는 따뜻한 방 안에서나 기능하는 경멸이 아닌가. 그것이야말로 가장 경멸스러운 것이지. 그리고 경멸스러운 것에는 언제나 고독이라는 걸맞은 형벌이 주어진다. 어쩌면 바깥의 냉엄함과 추위를 알게 하려고 그리 한 것일지도 모른다. 


극은 지금 이 겨울 위에다가 성큼, 만주를 데려다 놓았다. 바라보고 있는 두 눈으로도 한기가 들이차는군. 의식과 영혼에 현실이라는 북풍이 불어 든다. 한없이 비대해지려고만 하는 우리의 영혼, 고마운 칼바람은 곧잘 발목을 잘라버리어 주겠지. 더 낮게 엎질 수 있도록, 내 발목을 잘라줘. 


그래서 나는 겨울이 좋아, 지극할수록 더욱. 그 앞에서 나는 경멸하게 되거든, 어쩌면 따뜻한 방 안에서 생각하고 있는 것을. 그러면 심장은 좀 더 낮고 겸허한 색깔을 띠게 되지. 날이 썩 차지면 섶을 매고 몸을 숙여야지. 그건 낮고 겸허한 사람의 뒷모습이다. 우리 비대한 심장 깊숙이도 겨울이 들이차려는구나, 겸허함을 몸소 알게 하는 그런 계절이. 나는 어딘가 기분 좋은 떨림으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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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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