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언니도 선생님은 처음이라, 서툴러서 미안해

글 입력 2024.03.29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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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까지 편입 공부에 매진했던 나는 수업비를 벌어야 했다. 마침 이모가 사촌 동생들의 과외 선생님을 구한다고 하여 냉큼 지원했다. 고등학생 때까지 최상위권은 아니었지만, 전교 300명이 넘는 인원 중 3, 40위권에는 머물렀고, 주요 과목은 1, 2등급을 유지했다는 말로 설득했다. 물론 아이들이 좀 컸다면 감히 내가 가르칠 수는 없겠다 싶었겠지만, 초중등생이었으니 도전해 봐도 좋지 않을까 싶었다. 이모도 전부터 나를 꽤 신뢰했었고, 무엇보다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맡길 수 있다는 사실에 오히려 좋다며 수락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원래도 쉽지 않지만, 가족 사이라는 것이 더욱 큰 방해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사제간에는 라포 형성도 중요하지만 다소간의 거리감은 필요하다. 그래야 아이들은 선생님을 따르고, 선생님은 아이를 존중하고 신뢰하며 원만하게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에겐 그런 긴장감 따위가 부재했다. 아이들은 종종 짓궂은 장난을 치거나, 언니와 동생의 사이일 때는 굳이 내보일 필요가 없었던 발톱을 드러내며 나를 할퀴었다.

 

그나마 자매 중 첫째는 나를 신뢰해서인지, 잘 따랐다. 정확히는 내가 가진 영어 실력을 신뢰했다. 당시 나는 토익 준비도 병행하던 터라 문법 서적을 자주 펼쳤다. 그 덕에 첫째의 참고서에는 자세히 나오지 않았던, 기본적이지만 유용한 문법 지식까지 따로 메모해 줄 수 있었다. 첫째의 눈에는 내가 참고서에도 없는 꿀팁도 전수하는 마법사쯤으로 보였던 것 같다. 뭐 언니 말이 맞겠지, 그런 말도 습관적으로 했다. 물론 역효과도 있었다. 언니는 똑똑해서 잘할지 몰라도 나는 못 해! 하며 당당하게 파업 선언을 해댔으니.

 

그런 첫째와 달리 둘째와는 자주 부딪혔다. 초등학교 3학년생인 둘째는 방어기제가 심한 아이였다. 둘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완수하지 않아서 꾸중을 들을 때조차도 노여워했고, 사랑받지 못하는 상황을 극도로 못 견뎌 했다. 또 그러한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거짓말로 자기를 포장하는 일을 일삼았다. 분명 조금 전에 설명해 줬는데 본인이 듣지 않은 거면서 언니가 안 알려줬다거나, 수업 직전까지도 놀았음에도 학원에 가야 해서 숙제를 못 했다든가 하는 그런 거짓말들을 너무 쉽게 했다.

 

한 번은 구구단 숙제를 해 오지 않은 둘째에게, 앞에서 직접 문제를 풀라고 시켰다. 그러자 아이는 힐끔힐끔 책상 밑을 보면서 문제를 풀었다. 밑에 뭐가 있나? 수상했다. 둘째가 물을 마시러 간다며 자리를 비운 사이 의자를 슬쩍 봤다. 아이의 손바닥만 한 미니 구구단표가 덩그러니 있었다. 이런 행동을 당당하게 대놓고 하다니, 내가 우습나? 기가 찼다. 여태껏 해온 숙제도 이렇게 베껴온 건가 하는 의심마저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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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탈을 쓰고 춤을 추다가, 카메카를 들자 포즈를 취한 둘째. 
분명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함께 공부하는 지금이 행복했던 순간들도 많았다. 
그러나 주제 상, 그런 내용까지는 담지 못해 아쉽다.

 

 

누군가는 가벼운 거짓말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둘째가 나를 속이며 상황을 무마할 때마다 괘씸함을 크게 느꼈다. 가까운 사람인 만큼 그런 감정에 면역이 없었던 이유도 있지만, 하필이면 내가 거짓말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이었던 탓이 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나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며 올바르게 혼내는 스킬이 한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계속해서 물어보며 대답을 부추기기만 했다. 나는 진실을 알고 있는데 너는 왜 거짓말을 하냐, 차라리 솔직하게 말을 해달라, 그럼 넘어가겠다. 네가 원하는 게 뭔지 말을 해달라. 숙제가 많아서 그런 거면 맞춰줄 의향이 있다.

 

그럴 때일수록 아이는 빗장을 더욱 단단히 걸어 잠갔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입을 쭉 내밀고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미칠 것만 같았다. 제발 뭐라도 말해주면 안 돼? 도대체 뭐 때문에 그러는 거야? 다른 건 말 안 해도 되니까 뭐 때문에 말을 안 하는 건지라도 알려주면 안 돼? 응? 답답한 마음에 또 쏘아붙였지만 아이는 입을 열지 않았다.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이런 내 이야기를 들은 애인은 웃으며 말했다. “아 잔소리 언제 끝나지, 그런 생각만 하고 있을걸?” 분통이 터졌다. 정말 그런가. 정말 내 이야기는 안 듣는 걸까 싶기도 하면서, 만약 맞다면 도대체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답답하기도 했다. 


과외를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혼란만 가중되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이의 행동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동시에 내가 좋은 선생님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 했으니까. 그런데 그만해야 할 것 같다는 말을 꺼내지도 못 했다. 이기적이게도, 돈이 필요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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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당시의 감정을 떠오르게 하는 일을 겪었다. 학원 조교로 일을 할 때였다. 후드를 뒤집어쓴 학생이 자습 도중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멀리서 봐도 잠든 기색이 역력했다. 곧장 다가가 흔들어 깨웠고, 너무 피곤하면 일어서서 공부하는 것도 추천한다며 가볍게 뒤돌아섰다. 아니, 뒤돌아서려 했다. 순간 후드 학생의 싸늘한 조소가 뒤통수를 쳤다. "안 잤는데." 괜히 기분이 나빴다. 묘하게 짧은 말투와 눈동자를 부라리면서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표정까지, 전부 다 거슬렸다. 방금 자고 있던 거 제가 봤는데요? 그렇게 되물어도, 학생은 굽히는 기색이 없었다. 안 잤는데. 같은 말만 중얼거렸다. 기가 막혀서 더 해야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학생을 오래도록 쳐다봤다. 학생도 지지 않고 내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공기는 팽팽했고 머릿속은 하얘졌다. 어떤 대응 방식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화난 발걸음으로 저벅저벅, 조금 빠른 템포로 그 방에서 빠져나왔다.


내 자초지종을 들은 선생님은 후드를 입은 학생이지 않냐고 물었다. 전적이 있는 모양이었다. 사실 그 전날에도 나는 분명 자는 학생들을 깨운 건데도 허위 사실을 전했다며 다른 선생님께 꾸중을 들은 상태였다. 물론 자는 것을 확실히 확인했고, 흔들어 깨운 사실도 있기에 억울했다. 그러다 짐짓, 그 사실을 고한 학생과 후드 학생이 동일 인물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 그런 이야기를 전하자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가끔가다가 영악한 아이들이 있어요. 조교님들한테 가끔 욕설을 퍼붓기도 하는데, 조교님들은 당황하시죠. 그런데 당황하실 필요 없어요. 그런 학생들한테는 더 확실히 하는 수밖에 없어요.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가, 내가 1분 동안 쳐다봤는데도 너는 알아채지 못하더라, 그런 확증이 있어야 아이들도 납득을 해요. 왜냐면 정말 억울한 걸 수도 있거든요. 자기가 잠든지도 모르고 졸고 있을 수도 있는 거고요. 조교님도 사람이니까 실수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 이야기를 하며 선생님은 물었다. “조교님은 규칙이 왜 있는지 아세요?” 대답할 수 없었다.

 

“여기가 법정이 아니잖아요. 아이들에게 벌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란 말이에요. 사실 규칙이 있는 이유는 단체 생활이라서예요. 단체 생활이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최소한의 규칙을 정해놓은 것이지, 아이들에게 호통을 치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한 번쯤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도 필요해요.”

 

마지막 말이 마음에 걸렸다.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것. 그래 맞다. 나는 늘 내가 억울한 것만 생각하고 억울함을 푸는 일에만 집중했던 것 같다. 아이를 가르치겠다면서 한 번도 아이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선생님 말씀대로 정말 내가 실수한 걸 수도 있지 않나. 한 쪽의 역성만을 들어주지 않고 최대한 공평하게 보려고 노력하는 선생님의 조언을 들으며, 나는 점차 평정심을 되찾았다. 곧 선생님의 조언대로 실행해 보고자 후드 학생의 반을 찾았다. 

 

출입구 앞에 멈칫 서서 한참을 망설였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만 싶었다.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않는 학생과 굳이 상종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자든 말든 내 알 바 아니니 무책임하게 미뤄두고 싶은 충동도 있었다. 그러나 피할 수만은 없어, 이내 마음을 다잡고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후드 학생은 여전히 고개가 떨어져 있었다. 옆으로 가까이 다가가 1분 남짓을 기다렸고, 선생님께서 알려주신 대로 행동했다. 학생은 안 잤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러나 1분 동안 두 눈으로 확인했지만 미동도 없었다는 말을 꺼내니 학생의 말이 바뀌었다. “계속 잔 건 아니었어요.” 결국 나도 꼬리를 내렸다. “그래요, 아까는 제가 확인을 제대로 하지 못한 걸 수도 있죠. 그랬다면 죄송해요. 그런데 방금도 계속 보고 있었는데 안 잤다고만 하니까 제 입장도 난처했어요. 이제부터 저도 확실하게 확인할게요. 그러니까 학생도 주의해 주세요.”

 

후드 학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했다. 그 뒤로 다시는 졸지 않았다. 이제 와서는 학생이 진짜로 졸았는지 안 졸았는지, 그런 게 중요한 것 같진 않았다. 중요한 건 학생의 입장도 이해하고 헤아리면서, 가장 수평적으로 눈높이를 맞추는 대화가 필요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내 부족함이나 실수도 인정하며 상대도 존중하는 대화, 그런 게 필요했던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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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도중 둘째가 포켓 웨하스를 권했을 때, 거절했다. 
집에 돌아와 가방을 확인하니 웨하스 하나가 달랑 들어있었다. 
'그냥 먹어'라는 짧은 문구와 함께.

 

 

그 상황에서 나는 둘째를 떠올렸다. 둘째도 그런 것 아니었을까. 그의 입장에서는 나름의 억울한 점이 있었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자기주장이 강한 선생님이었고, 그 기세에 눌려 아이는 원하는 바를 제대로 표명하지 못했을 수 있다. 돌이켜보면 과외하는 내내 아이가 숙제해 오지 않았거나 미흡한 부분이 있으면 시간을 더 들여서라도 더 가르쳐주거나 옆에서 단어를 더 외우게 했었다. 이러한 점도 아이에겐 고역이었을 수 있다. 당시 나는 내가 희생해서라도 아이의 성장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시간을 더 들이는 게 맞지 않나 싶었다. 그런데 아이는 겨우 초등학생밖에 안 되지 않나. 아이에겐 자꾸만 자신을 억지로 붙잡아 두려는 선생님보다, 제 눈높이에 맞게 할 수 있는 만큼만 알려주는 선생님이 필요했던 걸 수도 있다. 그랬다면 그 시간은 아이의 교육을 빙자한, 그저 내 만족을 위한 시간에 불과했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아이가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 내가 실수한 걸 수도, 내가 아이를 신뢰하지 못한 걸 수도 있다. 그런 선생님에게는 입을 다물 수밖에.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정말 빵점 짜리 선생님이었다. 여태껏 선생님은 단순히 지식뿐이 아니라 살면서 올바르고 이상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삶의 지혜를 전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론을 알고 있는 것과 달리 내가 얼마나 실전에 약했고 인생 수업에 서툴렀는지 절감했다. 

 

후드를 입은 학생에게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보고했을 때 선생님께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렇게 하면 되는 거라고, 잘 했다고 하셨다. "선생님께 정말 많이 배웠어요, 감사합니다." 그런 말이 절로 나왔다. 여전히 아이를 대하는 건 어렵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건 더 어렵다. 그러나 지금 알겠는 건, 내 생각만을 맞다고 고지식하게 굴면 그것보다 더 최악인 것은 없다는 사실뿐이다.

 

오랜만에 애물단지 같은 둘째에게 전화를 걸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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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찍은 진귀한 장면. 
아지랑이가 피어날 정도로 뜨거운 여름, 나무판자를 침대 삼아 늘어진 냥이들을 보고 있자니 나까지 덩달아 나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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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예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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