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 <애니멀 킹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짐승화, 변이가 일어나는 세상. 수인을 보고도 “세상이 미쳤네요.” 한 문장으로 치부되는 이 세계는 인간과 짐승으로 변해가는 수인 두 부류로 구분된다. 영화 세계관 속에서 우리는 변이의 기준과 루트 그 어느 것도 자세히 알 수 없다. 갑작스러운 변화인 거다.
누군가는 그들을 짐승 혹은 수인으로 부르며 ‘-마리’로 셈한다. 또 누군가는 그들을 피해자라고 부른다. 국가에서는 이 수인들을 강제로 격리하여 조치를 취한 뒤 보호소로 이동시킨다.
이 영화는 남부보호소로 이동 중이던 수송차량이 사고로 전복되어 수인들이 실종된 시점부터, 그리고 그 수송차량을 타고 이동하던 에밀의 엄마, 리나 또한 실종되며 그녀를 찾는 과정에서부터 흥미진진해진다.
언제 봐도 벅차오를 수미쌍관의 영화

영화는 에밀과 그의 아빠 프랑수아가 차를 타고 어딘가로 향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프랑수아는 인간 존재 규정과 사회를 향한 반항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서 에밀에게 짭조름한 과자를 개에게 먹이지도 먹지도 말라고 잔소리한다. 불안하고 어긋난 관계를 유지하는 듯한 두 사람이 향하는 곳은 병원이다.
의사를 통해 엄마, 리나의 유의미한 진전에 대해 들은 에밀과 프랑수아는 보호소로 이동해야 하는 리나를 따라 이동을 준비한다. 남부보호소에 무사히 도착할 것 같았던 리나는 밤사이 사고로 인해 실종되고 만다.
리나를 찾기 위해 프랑수아는 경찰에게 들키지 않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그 사이 에밀에게는 은밀한 변화가 찾아온다. 날카로운 손톱과 울퉁불퉁한 등뼈, 털, 예민한 청력을 갖게 된 것이다. 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에밀은 우여곡절 사건을 겪다가 축제 때 사람들에게 쫓기게 된다.

그렇게 깊은 숲속으로 도망친 에밀은 그곳에서 완전한 변화의 과정을 거친 엄마를 만나 잠시간 코를 비비며 교감한다. 이 숲속에는 수송차량에서 탈출한 듯 보이는 수인들이 조화롭고 자유롭게 제자리를 찾은 듯 지내고 있었다. 여기서 드는 의문이 하나 있다. 정말 이들이 ‘실종되었다’라고 볼 수 있는가.
각자도생의 인간 세계. 그 옛날 고양이를 불태웠던 인간들은 고양이가 불타 죽으며 질렀던 비명을 듣는 걸 즐겼고, 에밀이 변이되었단 사실을 알아챈 친구는 먹잇감을 찾은 듯 짐승들만이 괴로워하는 소리로 에밀을 괴롭혔다.

그에 반해 난폭하고 공포의 대상처럼 비추어졌던 수인들은 공존하고 있었다.
에밀은 날지 못하는 새는 죽음뿐이라는 픽스를 위해 연습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로 안내했고, 그를 위해 뾰족하고 무거운 나뭇가지들은 노을이 질 때까지 치워주었다. 그 과정에서 유대감을 쌓은 두 사람. 이후 픽스는 에밀이 사냥꾼들에게 잡힐 위기에 처해있을 때 선뜻 날아올라 구해주러 왔으며, 그 과정에서 총에 맞아 죽고 말았다.
수미쌍관이 인상 깊은 이유는 비슷한 구도와 장면 속에서 포착하는 변화의 순간이 강렬하게 다가오기 때문일 테다. 경찰에게 수인인 것을 들킨 에밀을 지키기 위해 프랑수아는 에밀을 차에 태우고 달리기 시작한다.

첫 장면에서는 개와 함께 있었지만 결말에서는 에밀과 프랑수아뿐이다.
이는 개처럼 행동하곤 했던 늑대 수인 에밀의 정체성을 암시하기도 할 테다. 보호소에 가야 하는 아내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과자 따위 먹지 말라던 프랑수아는 결말에 이르러 과자를 한 움큼 집어 들고 입에 욱여넣는다. 그리곤 에밀을 절대로 보호소로 보내지 않겠다며 숲속 앞에 차를 멈춰 세우고 그에게 가라고 외친다.
지키기 위해 통제하던 프랑수아가 지키기 위해 떠나보내는 것을 선택한다. 나는 울고 있으나 어딘가 행복해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힘차게 숲을 달리는 에밀의 모습에서, 드디어 자유와 자리를 찾은 듯한 짐승의 숨소리에서 벅찬 상쾌함을 느끼고 만다.

짐승으로 변한 가족을 숨기고 통제하기 급급했던 인물들. 그들이 정상의 테두리 안에 속하도록 그들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것이 옳지만은 않음을 알려준다. “인간은 정착하면 안 돼. 정착은 죽음이야.” 자신을 내보이는 사회이면서 동시에 숨기는 것 또한 많아진 현 사회.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이 사회는 이대로 머물러 있어도 되는가에 대한 의문이 서린다.
